선거 앞두고 ‘대통령 경제학’ 논란‘정책 실현’인가, ‘현장 독려’인가
선거 앞두고 ‘대통령 경제학’ 논란‘정책 실현’인가, ‘현장 독려’인가
대통령의 경제학. 정책으로 실현하는 게 정답일까, 민생·산업 현장에서 독려하는 게 정답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정치 스타일과 관련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 화두다. 사실 노 대통령은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민생·산업 현장 방문에 거부감을 가졌었다. 스스로 “거의 ‘결벽증’에 가까웠다”고 했다. 경제장관 회의조차 ‘이벤트성 행사’로 여겨 주재하지 않았다. “위선 아니냐” “실제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등 그의 말에서 현장 방문에 대한 그의 인식을 읽을 수 있다. 그런 대통령이 지난 연말 느닷없이 현장을 찾겠다고 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며 “논리성만을 계속 얘기하는 것이 꼭 현명한 지도자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현장 방문 등 민생·기업 챙기기에 본격 나서겠다는 것이다.
“나라가 공부 뒷바라지” 그리고 다음날 노 대통령은 바로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29일 권양숙 여사와 함께 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을 찾은 것이다. 그는 노인에게 건강 상태를 묻고 어려운 점을 들었다. 또 목도리와 코트를 직접 입혀주는 자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열다섯 살의 소녀 가장에게는 “나라가 넉넉하게는 못해주지만 공부 하나는 끝까지 뒷받침해주려고 한다”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서민의 애환이 담긴 삶의 현장과 기업이 땀흘리는 공장을 찾아가 직접 그들과 어울리며 고통을 함께 나눈다…. 보기에는 참 좋다. 최고 권력자가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감동 정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다수 정치학자들은 이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근대적인 후진국 스타일”이라거나 “대중영합정치인 포퓰리즘의 상징”이라고 본다. ‘서민과 함께 스킨십을 나누는 정치’는 그래서 사실상 현대,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재난을 당한 지역이나 전쟁터를 찾는 것은 물론 예외다. 대통령제 역사가 오래된 미국은 역사적으로도 현장중시형 대통령은 거의 없다. 미국 문화의 기반인 ‘개인주의’가 잘 살고 못 사는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성향이 강한 탓이다. 미국의 많은 정책 입안자들은 지금도 어설픈 온정주의가 나라와 개인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유럽에 비해 복지나 서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평가 역시 이 같은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변화된 노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몇몇 국내외 정치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중장년층은 우선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릴 것이다. 가난한 노동자·농민·영세업자들과 함께한 그의 모습은 ‘국민을 아끼고 사랑한 대통령’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농민과 모내기를 하는 장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자리 잡고 있다. 작업복을 입고 산업 현장을 둘러보다 노동자의 손을 꼭 잡고 “열심히 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말 한마디가 국민의 영혼을 자극한 것도 사실이다.
‘서민 정치’는 포퓰리즘 낳기도
1960년대 중반 독일에서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를 만난 광경은 눈물겹다. 젊은이들이 가난한 나라를 뒤로한 채 달러를 벌겠다며 탄광과 병원을 찾아 먼 이국 타향으로 떠나야 했던 것이 당시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었다. 서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이 눈시울을 적시며 광부·간호사들의 손을 잡고 포옹하자 함께 자리를 했던 뤼브케 대통령도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아르헨티나 페론 대통령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는 노동자·서민층의 대변자였다. 44년 노동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이미 노동자·서민을 강력한 정치적 지지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들을 자주 접촉했고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을 찾아 생활 향상을 약속했다. 46년 대통령이 되자 그는 실제로 서민들과 했던 약속을 지켜나갔다. 철저하게 노동자·농민을 위한 정책을 펴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거나 ‘나라를 망가뜨리는 잘못된 정치’로 받아들여진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통적 통치자의 전형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철학이 강력했던 동양의 유교 정치 아래서 국왕은 그야말로 ‘백성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해야 했다. 아프고 따뜻한 곳을 어루만져주고 어려운 현실을 함께 나누는 임금이 성군(聖君)으로 떠받들어졌다. 군주제의 전통이 살아 있던 시대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박정희는 그런 역할을 자임했던 통치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동양에서도 이런 전통이 살아 있을 리 없다. 페론은 ‘실패한 대통령’의 전형이다. 노동자·농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반기업·고립주의적 정책을 펼쳤던 그는 40년대 세계 10위권의 강국 아르헨티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기업은 창조적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돈이 부족했던 정부는 닥치는 대로 돈을 찍어냈다. 그리고 이 돈을 서민들에게 선심 쓰듯 나눠줬다. 600~1000%의 물가상승률은 이제 재정적자와 화폐 남발이 가져오는 최악의 사례로 남아 있다. 근대 민주주의 형성 이후 서민과의 스킨십은 사실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의 부인 즉, 퍼스트 레이디 몫이었다. 대통령은 온갖 정책을 펴느라 바빴고 서민경제보다는 국가안보를 더 중시했다. 19세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세계는 늘 전운이 감돌았고 실제 크고 작은 전쟁을 겪었다. 서민과 함께한다는 것은 여유로워 보였다. 이 대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역시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일 것이다. 조용하고 온화한 이미지의 그녀는 당시 한국의 전형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내놓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지도 않았고 치부하지도 않았다. 대신 빈곤계층 아이들과 여성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어머니”라고 불렀다니 당시 그녀와 국민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도 이와 관련된 주요 사례다. 대공황기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무려 12년이나 권력의 정점에 섰던 남편을 대신해 실업과 빈곤으로 고통받았던 서민들을 감싸안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그리고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참모들과 머리를 맞대며 정책을 짜내기에 바빴다. 엘리너는 그런 대통령을 대신해 전국 각지를 누볐다. 특히 빈곤층 아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쏟아 대공황기 10년 동안 아이들로부터 100만 통의 편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킨십은 퍼스트 레이디 ‘몫’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에서도 ‘퍼스트 레이디는 서민들과 스킨십을 나눠야 한다’는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빈곤층·난민, 특히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여성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는 퍼스트 레이디의 주요 역할로 자리 잡았다. 힐러리 클린턴이 실종·학대 아동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펼친 것이나 로라 부시가 심장병을 앓는 빈곤여성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것이다. 하지만 서민에 대한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페론 시절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에비타는 이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당신들께 한없는 사랑을 바친다”며 빈곤층에게 현찰과 상품권을 마구 뿌리고 다녔다. 필요한 돈은 부자들에게 강압적으로 거둔 성금으로 충당했다. 퍼스트 레이디를 직접 만나고 손도 잡아 보고, 게다가 현찰까지 주는 그녀에게 서민층이 아낌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는 것은 당연했다. 이 같은 에비타의 행태는 지금도 혼란을 준다. 서민에게는 ‘성녀(聖女)’로 받아들여지지만 경제학자들은 나라 경제를 망친 ‘악녀’로 여긴다. 마돈나가 주연했던 영화 ‘에비타’가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비토당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성녀인 에비타의 역을 음탕한 마돈나가 맡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녀가 남긴 유산은 지금도 크다. 에비타에 열정적인 서민표를 얻기 위해 아르헨티나 정치 지도자들은 지금도 그녀의 이미지를 팔아먹고 있다. 대통령의 경제학. 전문가들은 그것이 정책으로 실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장 방문은 경제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물론 국민의 단합이 필요할 때는 실효를 거둘 수 있지만. 박정희나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경제적 ‘업적’이 없었다면, 그들 혹은 퍼스트 레이디가 보여준 국민과의 스킨십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민생·산업 현장 방문은 부수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서민을 찾아다니고 사진이나 찍는 정치는 제왕적 대통령이나 하는 짓”이라며 “유신 시절을 상기시킨다”고 했다. 심지어 ‘정치쇼’라는 표현도 썼다. 그런 그가 서민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혼란스러운 일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자는 “국민의 단결을 위한 것인지, 진정 서민과 고통을 나누려는 것인지, 아니면 선거를 위한 ‘표’를 의식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뭐든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평가했다. 참고한 책 ▶윌리엄 라이딩스 지음,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한언) ▶송희준 외 지음, 『통치이념은 어떻게 정책에 반영되는가』(이화여대출판부) ▶김석준 지음, 『현대 대통령 연구 I』(대영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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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공부 뒷바라지” 그리고 다음날 노 대통령은 바로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29일 권양숙 여사와 함께 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을 찾은 것이다. 그는 노인에게 건강 상태를 묻고 어려운 점을 들었다. 또 목도리와 코트를 직접 입혀주는 자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열다섯 살의 소녀 가장에게는 “나라가 넉넉하게는 못해주지만 공부 하나는 끝까지 뒷받침해주려고 한다”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서민의 애환이 담긴 삶의 현장과 기업이 땀흘리는 공장을 찾아가 직접 그들과 어울리며 고통을 함께 나눈다…. 보기에는 참 좋다. 최고 권력자가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감동 정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다수 정치학자들은 이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근대적인 후진국 스타일”이라거나 “대중영합정치인 포퓰리즘의 상징”이라고 본다. ‘서민과 함께 스킨십을 나누는 정치’는 그래서 사실상 현대,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재난을 당한 지역이나 전쟁터를 찾는 것은 물론 예외다. 대통령제 역사가 오래된 미국은 역사적으로도 현장중시형 대통령은 거의 없다. 미국 문화의 기반인 ‘개인주의’가 잘 살고 못 사는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성향이 강한 탓이다. 미국의 많은 정책 입안자들은 지금도 어설픈 온정주의가 나라와 개인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유럽에 비해 복지나 서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평가 역시 이 같은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변화된 노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몇몇 국내외 정치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중장년층은 우선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릴 것이다. 가난한 노동자·농민·영세업자들과 함께한 그의 모습은 ‘국민을 아끼고 사랑한 대통령’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농민과 모내기를 하는 장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자리 잡고 있다. 작업복을 입고 산업 현장을 둘러보다 노동자의 손을 꼭 잡고 “열심히 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말 한마디가 국민의 영혼을 자극한 것도 사실이다.
‘서민 정치’는 포퓰리즘 낳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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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십은 퍼스트 레이디 ‘몫’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에서도 ‘퍼스트 레이디는 서민들과 스킨십을 나눠야 한다’는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빈곤층·난민, 특히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여성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는 퍼스트 레이디의 주요 역할로 자리 잡았다. 힐러리 클린턴이 실종·학대 아동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펼친 것이나 로라 부시가 심장병을 앓는 빈곤여성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것이다. 하지만 서민에 대한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페론 시절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에비타는 이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당신들께 한없는 사랑을 바친다”며 빈곤층에게 현찰과 상품권을 마구 뿌리고 다녔다. 필요한 돈은 부자들에게 강압적으로 거둔 성금으로 충당했다. 퍼스트 레이디를 직접 만나고 손도 잡아 보고, 게다가 현찰까지 주는 그녀에게 서민층이 아낌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는 것은 당연했다. 이 같은 에비타의 행태는 지금도 혼란을 준다. 서민에게는 ‘성녀(聖女)’로 받아들여지지만 경제학자들은 나라 경제를 망친 ‘악녀’로 여긴다. 마돈나가 주연했던 영화 ‘에비타’가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비토당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성녀인 에비타의 역을 음탕한 마돈나가 맡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녀가 남긴 유산은 지금도 크다. 에비타에 열정적인 서민표를 얻기 위해 아르헨티나 정치 지도자들은 지금도 그녀의 이미지를 팔아먹고 있다. 대통령의 경제학. 전문가들은 그것이 정책으로 실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장 방문은 경제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물론 국민의 단합이 필요할 때는 실효를 거둘 수 있지만. 박정희나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경제적 ‘업적’이 없었다면, 그들 혹은 퍼스트 레이디가 보여준 국민과의 스킨십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민생·산업 현장 방문은 부수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서민을 찾아다니고 사진이나 찍는 정치는 제왕적 대통령이나 하는 짓”이라며 “유신 시절을 상기시킨다”고 했다. 심지어 ‘정치쇼’라는 표현도 썼다. 그런 그가 서민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혼란스러운 일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자는 “국민의 단결을 위한 것인지, 진정 서민과 고통을 나누려는 것인지, 아니면 선거를 위한 ‘표’를 의식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뭐든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평가했다. 참고한 책 ▶윌리엄 라이딩스 지음,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한언) ▶송희준 외 지음, 『통치이념은 어떻게 정책에 반영되는가』(이화여대출판부) ▶김석준 지음, 『현대 대통령 연구 I』(대영문화사)
■■■■ 또 하나의 스킨십 ‘대중연설’ ■■■■ 노 대통령 “국민에게 더 다가서겠다”… TV 연설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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