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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객원기자의 공개하지 못한 취재수첩] 박철언, 美 따돌리고 극비로 訪蘇

[이호 객원기자의 공개하지 못한 취재수첩] 박철언, 美 따돌리고 극비로 訪蘇

헝가리에서 열린 국제의원연맹(IPU) 총회는 정재문 의원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막상 소련으로 들어가는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혹시 스칼라피노 교수의 연락이 국제관계·세계경제연구소(IMEMO)에 도착해 있지 않나 싶어서 모스크바 IMEMO로 전화를 몇 번 했습니다. 근데 영어를 못 알아듣는지 IMEMO 직원이 계속 끊어버리는 겁니다. 그랬는데 부다페스트 IPU 회의장에서 소련 국회의원들이 우리 의원들 주변에 모여 올림픽 얘기로 웃음을 나누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래서 처음 대해보는 사람들이라서 긴장이 됐지만 한 의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지요.” 정 의원은 소련의 한 의원에게 “내가 IMEMO를 방문하려고 한다. 나에 대한 소개가 IMEMO 소장에게 가 있을 것이다”라며 “IMEMO에 연락해 내가 방문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겠는가”하고 요청했다.

“구한말 민영환 공사보다 힘들어” 실제로 IMEMO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경제·외교·국방·정보·과학·사회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연구하는 소련의 대표적인 두뇌집단이며 거대 조직이다. 바로 그러한 IMEMO의 소장에게 정 의원에 대한 소개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으니 소련 의원이 놀란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더구나 IMEMO의 소장 프리마코프 박사는 당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이면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외교특보로, 이른바 ‘신사고 외교노선’을 주창한 핵심 인물이었다. 정 의원의 말은 계속됐다. “막상 들어가려고 했을 때, 지금 생각해 보면 민영환 특명전권공사는 황제의 명령에 사신으로 가는 흠차로서 러시아를 방문했으니까 그래도 저보다는 절차상 고생은 덜했겠다 싶더라고요, 하하. 혼자서 잠행을 하려니까 절차부터 얼마나 까다롭고 피곤하게 하는지 말입니다. 어느 나라든 외교관계가 없으면 교류부터 힘들다는 걸 가르쳐 주는 셈입니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소련 대사관에서부터 찬바람이 쌩쌩 돌아요. 비자를 신청하러 갔는데 국적이 ‘코리아’라고 하니까 아예 여권은 쳐다보지도 않는 겁니다. 국영관광공사 ‘인투리스트’에 가서 항공권과 숙박료,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차비까지 선불로 내고 그 영수증을 가져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3일 체류밖에 허가를 안 해주는 깁니다. 그러면 가는 날, 오는 날 빼고 모스크바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하루밖에 안 되는 거지요. 그게 소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정 의원의 소련 입국 전에 황병태 의원이 먼저 방문을 시도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건 내가 자세히는 모르는 거고요, 나중에 들었는데 이그나텐코가 서울에 왔을 때 김영삼(YS) 총재 초청 얘기가 잠시 나왔습니다. 그 후에 이그나텐코가 돌아가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까 당 차원에서는 이그나텐코 발언의 가능성 여부를 체크해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총재께서 황 의원을 은밀히 보낸 모양입디다. 가만히 보면 YS께서는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그라는지 오른손, 왼손이 하는 걸 모르게 하더라고요, 하하. 근데 황 의원이 소련에서는 누구도 만나지를 못하고 도쿄에서 옵샤니코프를 만나 소련의 입장을 들은 것 같습디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경제 건설을 강조하며 개혁과 개방을 외친 이후 소련 권력 중심부에서 암투에 가까운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황 의원의 증언에서 묻어나오고 있다. “내가 모스크바까지 가서도 이그나텐코 편집장을 못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요. 그래서 귀국길에 곧바로 도쿄에 있는 옵샤니코프 기자를 만나니까 그 친구가 의외의 얘기를 하는 겁니다. ‘(옵샤니코프)저도 크렘린 궁의 안정이 빨리 왔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난데없이 무슨 소립니까?’ ‘저희 이그나텐코 편집장께서 올림픽 취재 도중에 서울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그건 프라우다 통신사 부사장으로 전격 발령받으셨기 때문인데, 금방 부사장에서 다시 편집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만큼 내부에 격변이 있었습니다. 총재님과 관련된 문제는 일체 극비에 부쳐주시고 특히 우리 소비에트 대사관에 정보가 들어가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의외의 얘기군요. 우리가 사회당 초청으로 일본에 왔을 때는 소련 대사관을 연락 창구로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이미 과거입니다. 지금 반(反) 고르바초프 저항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물론 조속히 정리가 되리라고 봅니다만.’ ‘그렇다면 도쿄에 있는 소련 대사가 반 고르바초프 조직에 가담하고 있다는 겁니까!’ ‘대사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 정책을 지지하지만 그 밑에 있는 요원들이 공산당 세력인 보수 세력들과 연계돼 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조직이나 개혁을 하게 되면 그동안 권력을 누렸던 보수 세력들이 저항하게 마련 아닙니까.’ 깜짝 놀랐지요. 말하자면 고르바초프가 불안한 상태다, 그 밑의 세력은 옛날 브레즈네프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니 크렘린에 가야 될 얘기는 옵샤니코프 자기를 통해 달라,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소련의 권력 암투로 訪蘇 늦어져 황 의원은 너무도 뜻밖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반대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르바초프가 89년 시점에 벌써 저항세력들과 맞서고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소련은 집권자가 사망하기 전에는 권좌를 찬탈당한 예가 드물기 때문이다.

황 의원의 증언을 들으면 정 의원님의 모스크바 잠입 전에 권력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이그나텐코가 서울에 왔을 때 YS의 초청 문제를 언급했다면 반대세력들도 묵인했다는 것일까요?
“반대세력과 상관없이 이그나텐코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국가의 권좌라는 것은 집권하는 그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불안이 있는 겁니다. 왜?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권좌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이 뒷받침해주는 힘이 없기 때문이지요. 철저한 공산주의 체제의 김정일이 왜 거처마저도 숨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항상 저항이 있고 충성을 다짐하는 측근들이 더 불안하니까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그나텐코의 행동은 소련의 권력 움직임하고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봐야 되지요. 그리고 김 총재의 초청 언급도 당시에는 사실 일반적인 인사 수준이지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나온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이그나텐코가 농담처럼 김 총재의 손금을 좀 보자고 하더니 ‘소련에 갈 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랬단 말입니다. 웃으면서 그랬는데 이그나텐코가 간단한 인물은 아니니까 YS께서도 믿은 거지요. 근데 제가 생각할 땐 그래요.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한국의 경제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잖습니까? 말하자면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던 시점의 전쟁은 총이나 전차나 혹은 핵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이미 서방세계들도 경제 원조, 무역, 문화 확산, 기술 지원, 이런 것들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거든요? 고르바초프도 ‘경쟁적 공존’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소련이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일원은 아니되 자본주의 국가들의 힘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러니 당시 노태우 정부도 필요했고 다음 정권까지 내다보고 김 총재를 염두에 두지 않았겠나, 그렇게 보는 겁니다.” 정 의원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얘기는 소련 주재 초대 한국영사처장을 역임했던 공노명 전 외무장관의 증언에서도 나타난다. 공 장관은 외교전문가이기 때문에 상당히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하는 입장이었다. “제가 부임해서 나중에 들은 얘깁니다만, 그때 소련 측에서는 두 기관이 경합을 했어요. 한국하고 향후에 실질적인 관계를 맺어나가자면 누구를 파트너로 생각할 것이냐, 그 문제를 놓고 소련의 두 기관이 경합했다는 겁니다. 물론 당시 야당인 정재문 의원이 적극적인 접촉을 하던 그 무렵이 될 겁니다. 하나는 IMEMO, 또 하나는 미국·캐나다연구소였습니다. 알바토프가 소장으로 있었지요. 그래서 각자 소련 핵심부에 건의를 하는데 IMEMO 쪽에서는 김영삼씨를 접촉의 대상으로 하자, 미국·캐나다연구소 쪽에서는 김대중씨 쪽으로 하자, 그랬는데 김영삼씨 쪽으로 떨어졌다면서 미국·캐나다연구소에 있는 노소브라는 사람이 그 당시 비화를 소개하면서 김대중씨를 찍었던 자기네가 졌다고. 그런 얘기예요.” 국교도 없는데 상호 방문을 약속…

어려운 과정은 거쳤지만 모스크바로 들어가는 것은 성공을 했군요. IMEMO에서는 환대를 했습니까?
“스칼라피노 교수께서 서신을 보내셨기 때문에 환대를 받았습니다. 프리마코프 소장은 급한 업무 때문에 출장 중이라서 저의 하루 일정으로는 미팅이 불가능했고요, 수석부소장인 마르티노프 박사, 키슬로프 부소장, 키리첸코 부장, 쿠나제 일본·태평양 담당과장, 그런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들은 소련 외무부에서 파견 형식으로 근무하던 최고 엘리트였다. 나중에 프리마코프 소장은 소련의 서열 2위인 연방회의 의장이 되고, 마르티노 박사는 IMEMO 소장이 되고, 쿠나제 박사는 한국에 대사로 부임해 왔다. “그런데요, 제가 모스크바에 처음 갔으니까 붉은 광장이 어딘가 하고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나중에 보니까 광장의 바닥은 적색이 아니라 회색에 가깝더라고요. 무자비한 피의 통치는 이미 사라졌다 그거지요. 광장 끝에 담장이 있는데 그게 적색입디다. 하하. 하여간 그런 얘기도 하면서 웃었는데, 본론에 들어가니까 매우 진지해져요. 더구나 서로 영어로 하니까 핵심만 주고받는 거지요.” 당시 정 의원과 IMEMO 측이 나눈 대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귀하가 이곳에 온 목적이 뭔가.”(IMEMO) “나는 야당인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를 모시고 있다. 솔직히 이웃나라하고 잘 지내고 싶어서 왔다.”(정재문) “잘 지내자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귀하가 가지고 왔는가?” “서로 마음을 여는 것 아니겠는가. 세계는 변하고 있고 소련도 변화를 갈망하기 때문에 경제협력도 대내외에 천명한 것 아닌가. 그런 모든 문제들을 열고 마음을 나누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한·소 양국이 관계 개선도 필요하고, 그런 인식을 같이한다면 상호 방문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호 방문을 동의하겠다. 그런데 김 총재가 소련을 방문할 수 있겠느냐.” “물론이다. 양국 간에 국교가 없지만 초청을 한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모시고 올 수 있다.” “환영하겠다. 초청장은 곧 보내겠다. 6월께 방문해주기를 희망한다.” 정 의원은 깜짝 놀랐다. 국교도 없는데 정치 지도자의 상호 방문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국교 관계를 설정하는 기본단계가 되는 거 아닌가? “통상적으로 보면 상호 방문을 교섭하는 데에만 보통 몇 달씩 걸리잖아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야당 당수를 초청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습니까. 근데 첫 만남에서 6월께로 시점까지 잡아 초청을 약속받았으니 이건 누구도 믿지 못할 일이 성사된 거 아닙니까. 그러고 그날 저녁에 IMEMO 측에서 만찬을 베풀어주는데, 제가 이웃나라하고 잘 지내고 싶어서 왔다는 말을 상기시키면서 ‘양국의 친선을 위해 건배’하자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평생 잊을 수 없는 환희였지요. 다음 날 바로 귀국해서 총재님한테 보고를 드렸더니 ‘꿈에 갔다 왔나?’ 이래요. 하하하. 황 의원이 만나지도 못하고 왔다는 것도 알고 계시잖아요.” 이 말을 전해들은 YS의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 어무이 때부터 하던 옛말이 있다이? 일본은 일 저지르고, 미국은 믿지 말고, 소련은 속지 말라고 그캤는데, 그기 참말이가?” 이 무렵, 청와대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동안 북방 외교를 추진해 온 청와대 ‘박철언팀’이 정 의원의 활동을 알아챘는지 비밀 교섭의 형식을 띠고 소련 방문을 극비에 추진한 것이다. 대통령 밀사 자격으로 무려 21박 22일간의 일정이었다. 한국 정부의 공식 고위관리로는 첫 기록이 된다. 그러나 박 보좌관의 방소 문제는 내부에서부터 불협화음이 생겼다. 헝가리 수교 교섭 때도 그랬었지만 사전에 미국에 알려야 한다는 지적이 외무부에서 제기됐고 청와대 내부에서는 박 보좌관을 견제하는 세력이 형성되는 것이다. 김종휘 보좌관이 지휘하는 외교안보 보좌관실도 그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박 보좌관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비공개로 추진하는 일을 일일이 미국 측에 보고하는 것을 마땅찮게 여겼다. 외무부는 그래도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보안이 중요하더라도 미국이 사전에 안다고 해서 교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리는 없지 않습니까.”(외무부) “미국의 눈치를 왜 그리 봅니까. 자주외교를 하는 겁니다. 헝가리 수교 때도 48시간 전에 알렸잖아요. 그런 일로 내가 미국하고 관계가 껄끄럽게 됐는데, 소련도 윤곽이 나오기 전에는 보안이 필요합니다.”(박철언)

대신 옐친 러시아 대통령 만나 결국 박 보좌관은 극비로 모스크바에 들어간다. 소련 외무부의 루킨 차관과 미팅이 약속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보좌관은 노대통령의 친서까지 소지하고 갔지만 고르바초프와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다. 양국의 수교 문제 역시 조속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자 당시의 옐친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물론 그 배경은 고르바초프의 권력이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직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럽게 된 것이다. 아무튼 5월이 되자 약속했던 YS에 대한 초청장이 진짜 날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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