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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칼럼] 할머니와 호랑이의 교훈

[김병주 칼럼] 할머니와 호랑이의 교훈

세 살 어린이조차 인터넷 게임을 즐긴다는 요즘에도 잠들기 전에 부모가 들려주던 옛날 얘기의 매력이 여전할까 궁금하다. 옛날 옛적 깊은 산골 외딴 집에 어린 남매를 둔 가난한 홀 할머니가 아랫동네 잔칫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얻은 떡 광주리를 이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오다가, 음흉한 호랑이를 만난다. 얘기는 사뭇 조마조마하게 전개된다. 할머니가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되풀이하자 겁에 질려 하나 둘 떡 다 빼앗기고 팔, 다리 순서로 잘라 먹힌다. 사지를 잃고 몸통으로 굴러가던 할머니를 송두리째 호랑이가 삼켜버린다. 그러고도 호랑이는 뱃속을 다 채우지 못해 할머니로 분장하고 남매까지 잡아먹으려고 접근한다. 다행히 호랑이가 덥석 잡은 썩은 밧줄이 끊겨 수숫대에 찔려 죽는다. 권선징악을 담은 종결 부분을 듣고서야 아이들이 안심하고 잠든다. 사람으로 위장한 각종 맹수들이 날뛰고 약육강식하는 것이 현실 세계라고 한다면, 그들이 소탕돼 안심해도 좋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요즘 세태는 아직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같은 위협이 반복되는 단계에 있지, 그 위협요인이 속 시원하게 제거된 단계는 아직 요원하다. 오히려 호랑이가 튼튼한 새 밧줄을 골라 잡고 올라가 오누이가 해님, 달님 되기 전에 다 잡아먹는 얘기로 끝날지 모른다. 시장경제는 아무 곳에서나 번성하지 않는다. 적당한 습기·양분·햇빛이 있는 곳에서만 개화하는 화초인 셈이다. 때로는 강인하고 때로는 섬세하다. 사람들이 제각기 소유한 상품들을 자유로이 유무상통하는 시장이 부랑배들의 지배하에 들어간다면 시장거래는 위축된다. 사람들이 얻은 거래이익이 깡패들에게 탈취당하는 손실보다 크냐 작으냐에 따라 시장의 흥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깡패두목이 현명하다면 상인들의 적정이익이 보장되도록 배려해 시장 거래질서를 지켜 주는 명분으로 낮은 수준의 대가를 뜯어내 오랜 기간에 걸쳐 갈취 규모를 최적화한다. 국가(정부) 발생 근원을 설명하는 다양한 학설 가운데 떠돌이 신세이던 도적떼들이 한 곳에 정착한 결과의 산물이 국가라고 보는 견해가 관심을 모은다. 맨커 올슨(1932~98)의 사후 출판 저서 <권력과 번영> (2000년 刊)의 주제가 그러하다. 그는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든 자본주의 독재국가이든 간에 근본 생리는 도둑 생리라고 보았다. 기업들은 민간부문의 불법탈취와 공공부문(조세·준조세등) 장애물을 뛰어 넘고 달리듯 경영해야 한다. 민간의 불법탈취는 배임·횡령·절도·강도 등 단순 비조직적 행위와 조직화된 범죄행위가 있다. 불법 파업을 상습화하면서 기업의 해외 이전도 반대하는 강성노조가 기업 안에 있고, 기업 밖에는 다양한 특수이익을 보호하는 비정부기구(NGO)들이 포위하고 있다. 일부 NGO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어 반관반민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정부기관의 규제 중에는 시장질서에 이바지하는 것도 있고, 시장경쟁을 과도하게 억제하는 것도 있다. 가계에도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을 넘나드는 탈취의 손길들이 존재한다. 서민들은 작은 사건겭怜?발생시 하부 정부조직과 접촉을 통해 일반적으로는 도움을 받지만, 때로는 가면 쓴 도둑을 만났다고 느꼈던 경험을 갖고 산다. 이것이 오해더라도 그렇다. 가계나 기업이나 “이번 고비를 참고 넘기면 살게 되겠지” 하는 기대 때문에 현실을 인내한다. 그러나 동화 속 호랑이처럼 아무리 들어주어도 요구가 그침 없는 것이 요즘 세태이기에 인내심의 한계가 시험된다. 공동체 질서를 바로잡는 정부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지킨다. 외국 언론은 세계 일류 상품을 만드는 기업을 공격하는 한국 정부와 여론에 의아해 한다. 지난날 기업의 원초적 책임을 추궁하는 과거사 정리 부담도 과중하다. 규제완화와 규제강화가 반복되면서 총체적으로 규제의 무게가 더해진다. 일부 지역의 부동산 투기억제책 역시 그렇다. 하나의 규제가 약발이 떨어지면 또 다른 규제대책이 겹쳐진다. 다시 옛날 얘기로 돌아가자. 떡을 하나 둘 빼앗기던 할머니가 기지를 발휘했다. 가던 길을 되돌아 마을 어귀에 몸을 숨기고 날 밝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들은 밤새 배를 곯았지만, 할머니와 아이들 모두 생명을 부지했다. 복지부동(伏地不動)·투자중단·거래기피, 이것이 오늘날 민간경제 주체들의 선택인 듯하다. 호랑이를 피하는 길은 아예 길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이러고도 시장경제가 살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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