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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하늘은 얼마나 안전한가

한국의 하늘은 얼마나 안전한가

지난해 한국에 취항한 국제선 여객기를 이용한 승객은 3000만 명쯤이다. 국내선 여객기의 승객도 연인원 1738만 명이었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센서스)에서 잠정 집계된 한국 인구는 4725만 명이다. 그러니까 1년간 한국의 인구만큼 한반도의 하늘을 오르내린 셈이다. 지난 2월엔 하루 평균 800편의 국내·국제선 여객기가 운항됐다. 비행기는 이제 누구나 편하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용하는 항공기의 안전도는 어느 수준일까? 한국의 하늘은 얼마나 안전할까?영국의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와 뉴스위크 일본판이 작성한 자료를 보면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와 뉴스위크 일본판은 전 세계 주요 여객 항공사 284개의 지난 12년간 비행 관련 기록을 토대로 안전도를 평가했다. 한국의 하늘이 얼마나 안전한가를 계산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국내 취항 중인 61개 항공사가 지난해 각각 실어나른 전체 여객 수 분담률에 항공사별 안전도를 곱해 얻었다. 운송분담률에 가중치를 부여해 전체 평균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항공사별 안전도는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와 뉴스위크 일본판이 해당 항공사에 매긴 점수를 적용했다. 그러나 국내 취항 항공사 중 오리엔트 타이 항공, 사할린 항공 등 10개 항공사는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와 뉴스위크 일본판이 작성한 284개 항공사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 항공사는 점수 계산에서 배제했다. 그러나 이들의 운송 분담률이 미미해 통계상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가령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 국내선 1155만4000명, 국제선 1161만2000명 등 총 2316만6000명을 운송했다. 284개 항공사 명단에 포함된 국내 취항 항공사가 지난해 국내·국제선에서 실어나른 인원(4672만1600명)의 49.6%에 해당한다. 여기에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가 대한항공에 부여한 안전도 점수 78.4점을 곱하면 38.87점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아시아나 항공(23.82점), 일본항공(3.03점), 중국동방항공(1.72점) 등 국내 취항 항공사 51곳의 점수를 모두 더해 79.9점을 얻었다. 284개 항공사 안전도 순위에 대입할 경우 한국에 취항한 비행기의 안전도는 미국 알로하항공(65위, 79.9점)에 해당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여객기의 안전도는 284개 항공사 중에서 65위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는 얼마나 안전하다는 뜻일까. 항공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대단히 안전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안전도치고는 점수가 그다지 높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전도가 높지 않은 항공사의 운송분담률이 상대적으로 조금 높기 때문이다. 전체 안전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루프트한자나 4위의 에어 캐나다, 5위의 KLM 네덜란드 항공, 7위 콴타스 항공도 국내에 취항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들의 여객 수송 실적은 비교적 미미하다. 루프트한자의 경우 지난해 20만7500명의 승객을 분담, 국내 취항 외국 항공사 59개 중에서 15위에 불과하다. 에어캐나다(17만2000명, 국내 순위 16위), KLM 네덜란드 항공(16만1700명, 국내 순위 19위), 콴타스 항공(611명, 국내 순위 56위) 순이다. 지난해 한국을 오가는 여객 수송 실적이 상위 10위 안에 드는 국내 취항 항공사 중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의 안전도 순위 10위 안에 든 항공사는 단 한 곳도 없다. 2005년 71만4000명의 여객을 수송해 국내 취항 외국 항공사 중 다섯 번째로 많은 국제선 승객을 나른 캐세이 퍼시픽 항공이 안전도 11위에 들었을 뿐이다. 국내 취항 외국 항공사 중에는 일본항공(JAL)이 지난해 가장 많은 여객(176만 명)을 수송했다. 하지만 영국의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의 안전도 순위에서 62위에 머물렀다. 국내 취항 중인 중국동방항공도 일본항공에 이어 둘째로 많은 116만5000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지만 안전도 순위는 136위다. 아시아권 항공사들이 여객 수송에서 선전하는 반면 안전도에서 앞서는 미국과 유럽의 항공사들은 한국시장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분담률은 각각 49.6%와 27.3%였다.두 항공사의 운송 분담률이 전체의 76%를 넘는다. 이처럼 국적 항공사의 운송 분담률이 높은 이유는 한국인들이 같은 값이면 국적 항공기를 이용하려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애국심에서 그런다기보다 기내 서비스나 영화·음악 등 각종 오락물이 외국 항공사보다 한국인의 취향에 더 잘 맞아서다. “비용 대비 서비스 면에서 한국 항공사들이 앞선다. 승무원만 비교하더라도 선진국에 비해 양질의 노동력을 훨씬 더 싼 값에 이용할 수 있다”고 유광의 항공대 교수(항공교통물류학과)는 분석했다. 결국 두 항공사의 안전도가 한국 항공의 안전을 좌우한 셈이다. 하지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도 할 말은 많다. 우선 2000년 이후 모두 무사고 운항 기록을 이어가는 중이다. 따라서 최근 6년 기록만으로 항공사 안전도를 살펴보면 판도는 크게 달라진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영국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사의 안전도 산출 공식에 2000년부터 2005년까지의 각 항공사 운항기록을 살펴보면서 안전도를 다시 매겼다. 그 결과 국적 항공사들의 순위는 대폭 상승했다. 대한항공이 87.5점을 얻어 전체 284개 사 중 12위에 올랐고, 아시아나 항공도 86.9점으로 14위가 됐다. 주요 항공사들의 순위도 변했다. 에어캐나다가 92.1점으로 1위를 기록했으며, 그 뒤를 US 에어라인스(91.7점), 브리티시 에어라인스(91.1점), 루프트한자항공(90.8점) 등이 이었다. 그렇다면 6년 기록으로 평가한 한국의 항공 안전도는 얼마일까. 84.1점이다. 순위도 올라가 32위 이베리아항공(84.1점)과 같다. 소수점까지 계산에 넣으면 이베리아항공을 제치고 32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국의 항공 산업이 안전도를 높이려면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의 안전도 조사에서 국적 항공사들은 크게 손해를 보았다. 항공사의 자체적인 안전 운항 성과와는 별개로 국가에 부여하는 안전관리 지수가 낮게 매겨졌기 때문이다. 주요 항공사 순위 도표의 ‘안전관리’항목을 보라. 이 점수는 각 항공사가 법인 등록된 나라의 안전관리체계를 미연방항공국(FAA)의 평가 등을 기초로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가 매겼다. 국적 항공기는 10점 만점에 7.5점을 받았다. 이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책임이 아니다. 한국 관계당국의 안전관리 평가가 7.5점이라는 말이다. 전체 순위 50위권에 든 항공사를 둔 국가 중에서 7.5점을 받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10점이다. 오만·키프로스·레바논·페루·에티오피아 등 어느 모로 보나 국제사회의 위상과 경제력이 한국보다 떨어지는 국가 상당수가 10점을 받았다. 만약 우리도 이들처럼 10점을 맞았다면 국적 항공사의 안전도 등수는 12년을 끊어 보든 6년으로 좁혀 봐도 모두 크게 상향 조정된다.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는 항공사의 안전 실적이 현저하게 낮거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감사보고서를 완전 공개하지 않는 국가에 7.5점을 매겼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경우 2001년 FAA는 한국의 항공 안전등급을 항공 후진국과 다름없는 2등급으로 하향 조정했었던(당시 한국의 안전관리 평가는 잠시 0점으로 떨어졌다) 점이 크게 반영된 듯하다. 미국 내 신규 노선 취항이 금지되고, 기존 노선 운항도 까다롭게 제한될지 몰라 당시 국내 항공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한국 정부가 신속한 보완조치를 취해 같은 해 12월 1등급으로 복귀했다. 그럼에도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가 한국의 안전관리에 준 점수는 아직까지 7.5점을 맴돌 뿐 한 번도 만점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건설교통부 산하 항공안전본부의 이광희 사무관은 “ICAO 감사 보고서를 완전 공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FAA 항공 안전등급 하향 조정의 경험이 우리의 안전관리 지수에 악영향을 주는 듯하다”고 말했다. 플라이트 세이프 컨설턴트의 존 트레벳 대표도 최근 “지난 5~6년간 사고 기록이 전혀 없는 사정을 감안할 때 조만간 한국의 안전관리 지수를 만점으로 회복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계 자료를 검토할 때 한국은 아직도 항공 안전에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건교부 자료에 따르면 80년 이후 25년간 13건의 항공사고가 일어났다. 2년마다 한 건으로, 이 정도면 세계 최고 수준의 사고율이다. 한국의 항공사고율(10만 시간당 0.136건)은 세계 평균(0.085건)의 1.6배 수준에 이른다. “한국은 안전 정보와 자료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수집·분석·평가하는 절차가 미흡해 실시간(real time) 안전도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한 항공전문가는 진단했다. “FAA 항공안전 등급도 꾸준한 투자와 관심이 없다면 다시 2등급으로 추락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 이런 배경 때문인지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덩치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한국의 국제항공 운송 순위는 2004년을 기준으로 세계 8위(여객 12위, 화물 5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ICAO 기여금 납부액도 지난해 1억4300만 달러로 180여 개 회원국 중 일곱 번째로 많다. 하지만 항공 분야 외교력이나 대외 활동력은 형편없다. ICAO에서 한국은 카메룬·칠레·에티오피아·가나 등 13개국이 참여하는 ‘파트 3’(Part Ⅲ) 이사국이다. 미국·영국·일본·중국 등 주요 항공운송국 11개국이 이사국으로 있는 ‘파트 1’(Part Ⅰ)은 고사하고, 아르헨티나·오스트리아·콜롬비아·이집트 등이 이사국으로 참여하는 ‘파트 2(Part Ⅱ)’에도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이런 불균형의 이유를 설명하던 정부의 한 관계자는 “70, 80년대 압축성장 시절엔 안전보다 성장이나 성과가 우선시됐다. 항공 분야라 해서 그런 기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한국의 경제가 그랬듯이 항공 분야 역시 성장 위주 정책으로 외형 확장에만 치중했을 뿐 안전 관리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건설교통부는 올 3분기에 항공 분야별 안전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안전관리 프로그램도 연말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건교부 항공안전본부 운항기술국은 “내년 6월까지 항공 안전 모니터링 관리체계를 구축해 항공 안전도를 실시간으로 지수화·등급화하겠다”고 개선안을 밝혔다. p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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