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으면 공룡처럼 멸종”
“변하지 않으면 공룡처럼 멸종”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객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어딜까. 정답은 4,800만 국민 모두를 고객으로 하는 한국전력공사(KEPCO)일 것이다. 그러나 한때 공기업 청렴도 꼴찌, 스스로 몸을 주체 못하는 공룡, 복마전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제 그 오명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확 바뀌면서 세계를 무대로 뛴다. 그 변화의 중심에 한준호(61) 사장이 있다. 해방둥이인 그는 오늘도 산에 오르듯 2만여 직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호흡한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들면서 흰둥이 식구에게도 밥을 먹인다. 그런데 강아지 한 마리가 어미 젖꼭지를 찾지 못한 채 어둠 속을 헤맨다. 이를 본 아이들이 “너무 어두운가 봐”하며 선을 연결하고 오렌지에 꽂아 꼬마 전구를 밝힌 뒤 흰둥이 곁에 갖다 놓는다. 강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어미 젖을 빨아 댄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최불암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한다. “밝으니까 아주 좋구나.” 한국전력의 TV 광고다. “세상에 빛을, 이웃에 사랑을…”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4,800만 고객에게 따뜻한 기업으로 다가가고 싶어한다. 어둠을 밝히는 반딧불처럼 깨끗한 기업이 되고자 한다. 또 그동안 국내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저개발 국가에서 전력사업을 펼치고 싶어한다. “한전이 공기업 대표로 국가와 경제발전에 기여했고, 누구든 입사하고 싶어하는 좋은 직장이죠. 하지만 동시에 복마전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요. 바로 이 점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강조한 게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입니다.” 2004년 3월 실질적 의미의 첫 한전 공채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한준호 사장은 단단히 결심한다. 가장 먼저 나쁜 이미지를 벗자고. 그래서 욕 먹지 않는 기업, 돈 받지 않는 직원, 그리고 고객을 감동시키는 기업이 되자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전이 국가청렴위원회의 청렴도 조사에서 한때(공기업 중) 2년 연속 꼴찌를 했답니다. 이대론 안 된다고 판단했지요. 한전이 국내는 물론 뉴욕 증시에도 상장해 있잖아요. 그런 대한민국 간판 기업이 청렴도에서 꼴찌를 한대서야…. 세계 경영을 목표로 뛰는 기업으로서 손색이 없도록 투명한 회계와 깨끗한 경영으로 거듭나기로 전 직원과 함께 다짐했습니다.” 공기업 처음으로 부조리 신고 포상 제도를 도입했다. 공사현장에 대한 암행감찰을 통해 단돈 만원을 받아도 당사자는 물론 상급자까지 문책했다. 300만원을 넘는 구매나 공사 계약은 전자공개입찰로 돌려 부패의 불씨를 남기지 않았다. 모든 입찰 계약에 담당자 실명제를 도입했다. 아울러 직원들의 출장비와 여비를 현실화했다. 그 결과 사장 취임 첫해인 2004년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고, 지난해 청렴도 조사에선 공기업 중 2위로 올라섰다.
정부 우산 속의 공기업은 ‘공룡’과 비슷 한전은 이따금 공룡에 비유된다. 직원 수와 자산 규모 등 몸집이 여느 재벌에 못지않아서다. 그러나 공룡은 스스로 진화하지 못해 멸종됐다. 한 사장은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정부의 우산 아래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장사해 온 공기업은 더욱 그렇다고 본다. “어느 조직이나 변화를 싫어하잖아요. 그러나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강제적 개편이 따를 수밖에요. 그래서 2002년 4월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따라 발전 부문이 6개 자회사로 떨어져 나간 거죠. 그전에는 계약 관계에서 한전이 갑(甲)이고, 하청업체가 을(乙)이었죠. 그러나 지금 한전은 갑이 아닌 을의 자세에서 제도와 절차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지난해 말 현재 한전 직원은 2만362명. 한 사장은 거대 기업 한전을 변화시키려면 조직을 유연하게 해야 하고, 핵심은 인사 혁신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 첫걸음으로 인사를 하며 직군을 없앴다. 조직 간 벽을 허물어 원활한 의사소통과 화합을 꾀하기 위해서다. 우선 처장급 인사에서 사무·배전·송변전 등 직군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 위주로 발탁하는 ‘교차 인사’를 단행했다. 창사 45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부처장이 탄생했다. 아울러 국제 무대에서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할 글로벌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2015년까지 세계 5대 종합 에너지 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 사업영역별·지역별·직무별 글로벌 인재를 전체 인력의 1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조직 내 벽을 없애야 합니다. 그냥 두면 패거리 문화에 빠져들어 죽은 조직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모르고 안주하다가 도태되고 말지요. 작은 물은 그 물길을 쉽게 바꿀 수 있지만 오래 가질 못해요. 그런데 큰 물은 물길이 더디게 바뀌지만 일단 방향을 잡으면 파급력이 대단합니다. 한전의 규모가 큰 게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리더가 솔선수범하며 제대로 끌고 가야지요.”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에너지 전문가다. 30여 년 공직 생활에서 옛 동력자원부 시절부터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분야에서 20여 년을 근무했다. 관료 시절 밖에서 봐 오던 한전에서 사장을 공모하자 지원서를 냈다. 그는 면접을 보면서 솔직하게 말했다. “공직자로서 할 만큼 했습니다. 그 결과 에너지와 관련된 일이라면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습니다. 에너지 분야 대표 기업에서 마지막으로 봉사하고 싶습니다. 직원 2만 명에 매출 22조원의 공기업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겠느냐고요? 전문지식이나 조직관리 측면에서 볼 때 취약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 스스로 먼저 노력할 것이고, 부족한 점에 대해선 경영혁신위원회를 두고 자문을 받아 실행하겠습니다.” 3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5대 한전 사장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밖에서 보던 한전과 너무 달랐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고 큰 조직에서 직원들이 활기에 차서 근무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외부 충격을 받은 데다 민영화와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따라 발전에 이어 배전 부문도 분할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있었다. 수용가에 전기를 공급하는 배전 부문은 진통 끝에 사업부제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이러다간 한전에는 송전철탑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며 직원들의 동요가 심했습니다. 사기가 완전히 바닥이더군요. 게다가 청렴도는 꼴찌였고요. 깨끗한 기업, 활기찬 조직으로 되살리기 위해 함께 뛰자고 약속했습니다. 모두가 근무하고 싶어하는 일터로 만들자고!” 사장 취임 이후 2년여의 변화에 대해 몇 점을 주겠느냐고 묻자 웃으며 대답했다. “직원들의 노력과 동참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지금의 변화가 지나가는 바람이 되지 않도록 제도로 확립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죠. 올해 안에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이 완비되면 그간의 투명화 노력이 결실을 볼 것입니다.”
“세계적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우뚝 설 것”
한전은 계열 자회사 10개를 합치면 자산 규모가 102조9,000억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그룹이다. 공기업으로서 최대임은 물론 민간기업과 비교해도 삼성에 이어 2위다. 그러나 국내 연간 전력 성장률이 5%대에 머물고 있어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적이다. “지금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 돼가고 있지 않습니까. 전력 분야도 예외는 아니지요. 중국이 고성장을 거듭하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동남아는 물론 중동·아프리카에도 적극 진출해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한전의 해외사업 강화 프로젝트 명은 ‘KS-GT 5(KEPCO Sustainability-Global Top 5=한전의 지속가능 경영 수준을 세계 5위로 향상시킨다)’. 2004년 매출 기준 세계 277위였던 것을 2010년 200대 기업, 2015년 100대 기업 진입을 목표로 뛴다. 지난해 0.2%였던 해외사업 매출 비중을 2015년에 4%로, 지난해 2조4,000억원대의 순이익을 4조원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45년 역사의 한전은 그 기술과 인적자원, 공급 가격, 브랜드 면에서 경쟁력이 충분합니다. 이제 단순히 국내에서 전기를 파는 회사에서 벗어나 시야를 세계로 돌려 글로벌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한전의 해외 발전시장 개척 노력은 필리핀에서 첫 성공을 거뒀다. 1995년부터 말라야와 일리한 두 곳에서 발전소를 돌리는 데 규모는 185만㎾. 필리핀 전체 전력의 12%를 대는 제2 민간 발전사업자다. 순이익으로 보면 필리핀 10대 기업에 낀다. 내친 김에 필리핀 정부의 요청을 받아 지난해 12월 세부섬에 20만㎾ 규모의 석탄화력 발전소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올 8월 처음으로 한전이 만든 전기가 팔린다. 2004년 허난(河南)성 우즈(武陟)에 착공한 10만㎾ 발전소가 이 무렵 준공된다. 또 허난성 구리산에 120만㎾ 용량의 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지금 세계는 자본력을 앞세운 다국적기업과 중국·인도 등 신흥경제대국이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치열한 자원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도 석유공사·광업진흥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과 손잡고 해외 자원 개발과 발전 플랜트 사업을 연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적극적인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첫 성과가 바로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의 나이지리아 순방 때 가스 발전소와 가스관로 건설운영 사업 투자와 연계해 석유광구 탐사권을 확보한 것이다. 발전사업과 유전개발을 동시에 추진한 결과다.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와 기술을 전수받고 싶어하는 아프리카 국가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는 윈윈 전략을 쓴 것이다. 이 밖에 중동 지역은 지난해 말 레바논 전력청이 발주한 87만㎾급 발전소 운영정비 사업자로 낙찰받아 올해 2월 운영에 들어갔다. 이를 거점으로 중동에서 사업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2004년 3월 한 사장 취임 당시 2만원에 턱걸이했던 주가가 요즘 4만3,000원대로 올랐다. 그동안 주가가 두 배 이상 올랐으니 연봉도 더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한전의 기업가치나 성장성에 비해 주가는 아직도 저평가돼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산에 오르며 삶과 기업경영 원리 터득
한 사장은 10여 년 전부터 골프를 접고 등산하는 맛에 빠져 지낸다. 매주 주말이면 청계산·검단산 등 서울 근교 산에 오른다. 지난 2월 말에는 임원 및 노조 간부들과 함께 한라산을 등반하며 산상 경영전략 회의를 가졌다. 올해 안에 직원들과 지리산 종주를 할 참이다. “낮은 산이든, 높은 산이든 깔딱 고개가 있지요.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산은 역시 산입니다. 달리기를 잘한다고 산도 잘 타는 것은 아니에요. 20대 젊은이도 갑자기 산에 오르면 헉헉대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오르는 사람이 결국 정상을 밟는 법이죠. 산에 다니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국내 어지간한 산은 대부분 올라가 봤다는 산악인이기도 한 그의 등산 경영론을 들어보자. “산에 가보면 세 부류가 있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다른 일행이 산행을 마치기를 기다리며 처음부터 밑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힘들다며 이내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힘이 들어도 정상까지 기필코 오르는 사람이 있지요. 우리네 인생도 어느 조직에 속하든 마찬가지 아닌가요. 어디서든 열심히 노력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죠. 그리고 정상은 하나지만 오르는 코스는 여러 갈래 아닙니까. 어느 코스든 꾸준히, 열심히 오르는 게 중요하죠.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 경주처럼 처음에 잘나가다가도 중간에 게으름을 피우거나 꾀를 부리면 이내 도태되는 것 아니겠어요. 또 왼발과 오른발이 같이 움직여야 정상에 오르는 법입니다.” 한 사장처럼 ‘등산 경영’으로 건강도 다지고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에 도움을 받는 최고경영자가 늘고 있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과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등이 대표적 등산 경영인이다. 한 사장은 등산이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응집력을 키우는 데 최고라고 강조한다. “몇 시간 동안 같은 길을 걸으며 산 공기를 함께 마시면 어느새 마음을 터놓게 되고 흉허물이 없어지지요. 올라갈 때 힘들어 하는 동료의 손을 잡아주면서 끈끈한 동료애를 느끼고, 내려올 때는 전부 웃으며 한 가족이 되는 게 바로 등산입니다.” 국내 최대 공기업 한전이 넘어야 할 (깔딱) 고개는 많다. 그래서 등반대장 한준호 사장이 짊어진 배낭도 여전히 무겁다. 발전 자회사의 매각 등 민영화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광주전남 혁신도시로 잡힌 본사 이전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 개성공단 등 북한에 전력을 잡음 없이 공급하는 것과 중장기적으로 전력요금 체계를 공급원가에 맞춰 개편하는 것도 그의 숙제장에 적혀 있다.
대형 정전사고 다시 없게 예방 시스템 구축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한 사장의 얼굴에서 그림자를 보았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묻자 “제주 정전 사고 이후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4월은 한전에 있어선 잔인한 달인가. 1일 제주도에 이어 7일 전남 여수 석유화학단지에서 대규모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더구나 여수 사고는 자회사인 한전기공 직원이 정비해야 할 변압기가 아닌 다른 것을 만지고 대나무 사다리가 아닌 알루미늄제를 쓰는 등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인재(人災)로 밝혀져 더욱 곤혹스럽다. 잇따른 사고에 대한 한 사장의 자아비판이 이어졌다. “우리 전기가 품질은 좋아졌는데 가끔 사고를 냅니다. 작은 사고도 없어야 하겠지만 특히 송전선로에 문제가 생기면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사고가 나면 우리 한전이 응급복구는 119 구급대 이상으로 잘합니다. 하지만 사고가 난 뒤 아무리 빨리 복구하면 뭐 합니까. 사고 자체가 안 나도록 해야죠. 사후 조치보다 사전 예방과 점검이 훨씬 중요합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 취약 지역과 요소를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겠습니다. 아울러 사고예방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전 전력연구원에선 송전망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를 위성 통신망으로 전송해 사고를 막는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중소기업청장과 대통령 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한 사장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상생해야 나라경제의 미래가 있다는 믿음이 확실하다. 전력 기자재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이 잘 돼야 질 좋은 전기 공급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전과 함께하면 성공한다’는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파이를 나눠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 가야지요. 그래서 지난해 10월부터 공기업 최초로 중소기업과 성과공유제를 시행했고요. 해외사업도 중소기업과 함께 전개할 것입니다.” 한 사장을 만나 보면 아담한 체구에서 뿜어 내는 열정이 대단함을 느낀다. 쉰을 넘긴 나이인 2000년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활성화 요인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에너지 전문가인 그는 자원 외교론을 강조한다. “에너지 정책은 금방 효과가 나질 않아요. 요즘 베트남 해상유전에서 석유와 가스가 나오는데 우리가 10년 전부터 추진해 온 게 이번에 결실을 본 거죠. 탐사기술이 발전했고 석유 등 자원도 금융상품처럼 스와프(swap) 거래가 가능합니다. 지역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공급원 확보가 중요하지요. 아프리카와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이르기까지 자원 외교를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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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우산 속의 공기업은 ‘공룡’과 비슷 한전은 이따금 공룡에 비유된다. 직원 수와 자산 규모 등 몸집이 여느 재벌에 못지않아서다. 그러나 공룡은 스스로 진화하지 못해 멸종됐다. 한 사장은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정부의 우산 아래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장사해 온 공기업은 더욱 그렇다고 본다. “어느 조직이나 변화를 싫어하잖아요. 그러나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강제적 개편이 따를 수밖에요. 그래서 2002년 4월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따라 발전 부문이 6개 자회사로 떨어져 나간 거죠. 그전에는 계약 관계에서 한전이 갑(甲)이고, 하청업체가 을(乙)이었죠. 그러나 지금 한전은 갑이 아닌 을의 자세에서 제도와 절차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지난해 말 현재 한전 직원은 2만362명. 한 사장은 거대 기업 한전을 변화시키려면 조직을 유연하게 해야 하고, 핵심은 인사 혁신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 첫걸음으로 인사를 하며 직군을 없앴다. 조직 간 벽을 허물어 원활한 의사소통과 화합을 꾀하기 위해서다. 우선 처장급 인사에서 사무·배전·송변전 등 직군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 위주로 발탁하는 ‘교차 인사’를 단행했다. 창사 45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부처장이 탄생했다. 아울러 국제 무대에서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할 글로벌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2015년까지 세계 5대 종합 에너지 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 사업영역별·지역별·직무별 글로벌 인재를 전체 인력의 1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조직 내 벽을 없애야 합니다. 그냥 두면 패거리 문화에 빠져들어 죽은 조직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모르고 안주하다가 도태되고 말지요. 작은 물은 그 물길을 쉽게 바꿀 수 있지만 오래 가질 못해요. 그런데 큰 물은 물길이 더디게 바뀌지만 일단 방향을 잡으면 파급력이 대단합니다. 한전의 규모가 큰 게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리더가 솔선수범하며 제대로 끌고 가야지요.”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에너지 전문가다. 30여 년 공직 생활에서 옛 동력자원부 시절부터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분야에서 20여 년을 근무했다. 관료 시절 밖에서 봐 오던 한전에서 사장을 공모하자 지원서를 냈다. 그는 면접을 보면서 솔직하게 말했다. “공직자로서 할 만큼 했습니다. 그 결과 에너지와 관련된 일이라면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습니다. 에너지 분야 대표 기업에서 마지막으로 봉사하고 싶습니다. 직원 2만 명에 매출 22조원의 공기업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겠느냐고요? 전문지식이나 조직관리 측면에서 볼 때 취약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 스스로 먼저 노력할 것이고, 부족한 점에 대해선 경영혁신위원회를 두고 자문을 받아 실행하겠습니다.” 3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5대 한전 사장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밖에서 보던 한전과 너무 달랐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고 큰 조직에서 직원들이 활기에 차서 근무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외부 충격을 받은 데다 민영화와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따라 발전에 이어 배전 부문도 분할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있었다. 수용가에 전기를 공급하는 배전 부문은 진통 끝에 사업부제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이러다간 한전에는 송전철탑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며 직원들의 동요가 심했습니다. 사기가 완전히 바닥이더군요. 게다가 청렴도는 꼴찌였고요. 깨끗한 기업, 활기찬 조직으로 되살리기 위해 함께 뛰자고 약속했습니다. 모두가 근무하고 싶어하는 일터로 만들자고!” 사장 취임 이후 2년여의 변화에 대해 몇 점을 주겠느냐고 묻자 웃으며 대답했다. “직원들의 노력과 동참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지금의 변화가 지나가는 바람이 되지 않도록 제도로 확립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죠. 올해 안에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이 완비되면 그간의 투명화 노력이 결실을 볼 것입니다.”
“세계적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우뚝 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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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며 삶과 기업경영 원리 터득
한전 1999년부터 7년 연속 공기업 고객만족도 1위 비결 ①인터넷 접수 민원 처리시간 지난해 평균 28분 ②고장신고는 전국 어디서나 123번으로 ③공공요금 최초 월 기준 아닌 연체일수로 연체료 계산 ④전기요금 분할납부 확대 ⑤집안 전기고장·정전복구 24시간 지원 체제 ⑥사회봉사단 운영 및 미아찾기 캠페인 |
대형 정전사고 다시 없게 예방 시스템 구축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한 사장의 얼굴에서 그림자를 보았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묻자 “제주 정전 사고 이후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4월은 한전에 있어선 잔인한 달인가. 1일 제주도에 이어 7일 전남 여수 석유화학단지에서 대규모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더구나 여수 사고는 자회사인 한전기공 직원이 정비해야 할 변압기가 아닌 다른 것을 만지고 대나무 사다리가 아닌 알루미늄제를 쓰는 등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인재(人災)로 밝혀져 더욱 곤혹스럽다. 잇따른 사고에 대한 한 사장의 자아비판이 이어졌다. “우리 전기가 품질은 좋아졌는데 가끔 사고를 냅니다. 작은 사고도 없어야 하겠지만 특히 송전선로에 문제가 생기면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사고가 나면 우리 한전이 응급복구는 119 구급대 이상으로 잘합니다. 하지만 사고가 난 뒤 아무리 빨리 복구하면 뭐 합니까. 사고 자체가 안 나도록 해야죠. 사후 조치보다 사전 예방과 점검이 훨씬 중요합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 취약 지역과 요소를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겠습니다. 아울러 사고예방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전 전력연구원에선 송전망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를 위성 통신망으로 전송해 사고를 막는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중소기업청장과 대통령 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한 사장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상생해야 나라경제의 미래가 있다는 믿음이 확실하다. 전력 기자재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이 잘 돼야 질 좋은 전기 공급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전과 함께하면 성공한다’는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파이를 나눠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 가야지요. 그래서 지난해 10월부터 공기업 최초로 중소기업과 성과공유제를 시행했고요. 해외사업도 중소기업과 함께 전개할 것입니다.” 한 사장을 만나 보면 아담한 체구에서 뿜어 내는 열정이 대단함을 느낀다. 쉰을 넘긴 나이인 2000년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활성화 요인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에너지 전문가인 그는 자원 외교론을 강조한다. “에너지 정책은 금방 효과가 나질 않아요. 요즘 베트남 해상유전에서 석유와 가스가 나오는데 우리가 10년 전부터 추진해 온 게 이번에 결실을 본 거죠. 탐사기술이 발전했고 석유 등 자원도 금융상품처럼 스와프(swap) 거래가 가능합니다. 지역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공급원 확보가 중요하지요. 아프리카와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이르기까지 자원 외교를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러브 펀드’ 만들어 사회에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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