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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곳서 밥 먹으며 음식점 연구했죠”

“하루 15곳서 밥 먹으며 음식점 연구했죠”

흔히 창업할 때 입지 선정이 성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목 좋은 입지를 선점하기 위해 불꽃튀는 경쟁이 벌어진다. 더군다나 경기가 불황일 때는 창업시장으로 쏠림현상이 심해진다. 좋은 자리를 고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가 아닌 초보 창업자들이라면 상권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주변에 동종 점포가 몇 개나 있는지도 중요한 체크 사항이다. 가뜩이나 처음이라는 두려움이 앞서는데 주변에 경쟁 점포가 많다면 “저 집하고 경쟁해 이길 수 있을까? 몇 안 되는 손님을 나눠 먹어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창업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고 청진동 한 블록을 점령하는 방식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있어 눈길을 끈다. 숯불직화구이 전문점 ㈜신씨화로의 김원석(42)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상식과 비상식은 통한다 2002년 2월 문을 연 신씨화로 본점은 해장국 골목으로 유명한 청진동에 있다. 하지만 해장국 골목을 아무리 다녀봐도 신씨화로 본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청진동 해장국 골목 중간쯤에서 다시 비좁은 샛길로 들어가야만 어렵사리 찾을 수 있다. 종로 쪽에서 청진동 골목으로 진입하면 처음 맞닥뜨리는 신씨화로를 본점으로 착각 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는 본점이 아닌 신씨화로 4호점이다. 왜 이렇게 찾기 어렵고 구석진 곳에 신씨화로 본점을 차렸을까. “누가 봐도 본점 입지로서 좋은 곳은 아니죠. 골목 안 깊숙이 위치해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장소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불리한 입지를 극복하고 성공한다면 어디를 가든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거든요. 특히 프랜차이즈 사업은 입지에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어야 된다고 봐요. 남의 소중한 돈을 가지고 하는 사업이 프랜차이즈인데 그 정도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어요?” 상식을 벗어나는 김 사장의 대답이다. 더구나 신씨화로 본점 자리는 애초 다른 음식점이 입점했다가 망해서 한동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던 자리였다. 일반적인 창업자라면 절대 금기시하는 입지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출발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신씨화로 본점은 문을 연 지 6개월 정도 지날 때까지는 장사가 지금처럼 잘 되지 않았다. 역시 골목 안 외진 곳에 위치한 입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서 입소문이 퍼지자 매출이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자리가 없어 기다리는 손님 줄이 골목 안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말 그대로 대박이 난 것. 김 사장 말로는 제일 장사가 잘될 때는 이것저것 비용을 다 빼고도 한 달에 3000만원이 넘는 돈이 손에 떨어졌다고 한다. ‘좋은 농사꾼에게 나쁜 땅은 없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청진동이 리트머스 시험지 신씨화로 본점의 성공에 자극받은 김 사장은 또 다른 시험에 들어갔다. 청진동 한 골목에 몇 개 정도의 체인점이 있으면 장사가 제일 잘 될까 하는 점이다. 보통 식당은 잘 된다고 인테리어를 뜯어고치거나 매장을 늘리면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 연유로 대부분의 대박집은 절대 인테리어를 고치거나 가게를 넓히지 않는다. 심지어 30년이 넘는 허름한 외관과 실내를 고집하는 유명 맛집이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본점 장사가 잘 된다고 바로 같은 골목에 또 다른 자신의 체인점을 낸 김 사장의 시도는 역시 상식에 벗어나는 일이었다. 신씨화로는 청진동 본점이 2002년 2월 문을 연 이후 2003년 12월 신씨화로 4호점이 문을 열 때까지 청진동 골목에만 4개의 같은 점포가 있었다. “한 동네를 공략해 신씨화로 타운을 만들고 싶은 게 꿈이었어요. 이런저런 속설도 직접 몸으로 검증해보고 싶었고요. 지금은 한 블록(상권) 안에 같은 체인점이 2개가 제일 적합하다는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청진동에 있던 4개의 신씨화로 체인점을 본점과 4호점만 남기고 정리했죠. 물론 체인점들이 한군데 모여 있으면 그만큼 관리하기가 쉽다는 장점도 고려했습니다.” 김 사장의 시험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청진동 골목 안에 또 다른 프랜차이즈 체인점들을 잇따라 입점시킨 것. 2002년 12월에는 숯불돼지갈비 전문점 ‘황금돈’을 시작했다. 2003년 4월에는 와인바인 ‘브릭’을 열었다. 또 올해 1월에는 일본식 청주 전문점인 ‘춘산’까지 개점했다. 청진동 한 골목에만 김 사장의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4개나 되는 셈이다. “처음 생각은 단순했어요. 신씨화로와 황금돈에서 고기를 먹고 난 손님들이 어디를 갈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거죠. 신씨화로 주변에 와인바도 만들고 일본식 청주 전문점도 문을 열면 매출 연계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우리나라 저녁문화가 1차에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가게들끼리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고 최근에는 이런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김 사장은 조만간 이른바 ‘우리끼리 마케팅’을 시도한다. 신씨화로에서 고기나 술을 먹고 난 손님이 김 사장이 운영하는 주변의 청주 전문점 등에서 다른 음식을 먹을 경우 일정부분 가격을 깎아 주겠다는 것이다. 한 골목 안에 4개나 위치한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하나의 세트 메뉴로 엮겠다는 전략이다. 마일리지 카드를 발급해 주거나 할인쿠폰을 주는 방법 등을 고려하고 있다.
하루 15끼, 먹고 토하고 또 먹는다


김 사장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치열함이다. 김 사장은 군대 제대 이후 일본을 왔다갔다 하며 20년 정도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잔뼈가 굵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외국에 나가보고 싶다는 어린(?)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간 곳이 한국에서 그나마 제일 가깝다는 일본. 비행기삯이 없어 간신히 마련한 뱃삯으로 도착한 곳은 시노모세키였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일본 여행을 마친 김 사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국 아줌마 부대들이 일본산 전자제품을 보따리로 사가는 장면이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김 사장을 눈여겨본 한 아주머니가 자신의 돈을 빌려주면서 전자제품을 사가라고 권유했다. 설마 돈이 될까 의심하면서 부산항에 돌아오니 사정이 달라졌다. 서로 김 사장이 들고 온 전자제품을 사려고 달려들었다. 김 사장은 “머리에서 껍질이 하나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이른바 장사에 눈이 트인 것이다. 지금도 김 사장은 한 달에 두세 번 일본에 간다. 그래서 신씨화로를 비롯한 청주 전문점 춘산 등에는 일본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일본에 가면 절대로 지하철을 타지 않고 꼭 걸어만 다닙니다. 지하철을 타면 주변 풍경을 볼 수 없기 때문이죠. 걸어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가게나 식당이 있으면 무작정 들어갑니다. 먹어보는 거죠. 심지어 하루에 밥 열다섯 끼와 술집 다섯 군데를 돌아다닌 적도 있습니다. 먹고 토하고 또 먹는 거죠. 직접 몸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그냥 얻어지는 게 없다고 생각해요. 사진도 기본적으로 한 2000~3000장 정도는 찍습니다.” 김 사장의 이런 치열함은 신씨화로를 비롯한 체인점의 메뉴와 인테리어에 그대로 묻어난다.
고깃집도 디자인이 경쟁력이다 고깃집 차리기에 앞서 김 사장은 국내 많은 고깃집 역시 직접 둘러봤다. 그런데 하나같이 기존의 고깃집들은 실내 분위기가 ‘장판+형광등’이었다. 처음에는 다 이유가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든 생각은 주인들이 하나같이 구태의연하게 기존 고깃집 분위기를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무릎을 탁 쳤다. 고깃집도 신세대적인 분위기로 변신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와인바 분위기가 나는 지금의 신씨화로 인테리어다. 세련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소주뿐만 아니라 와인까지 즐기면서 먹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면 장사가 되겠다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상상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벌어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다는 식의 막연한 생각을 한 게 아니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문은 어떤 색이고 현관은 어떻게 생겼고 마루는 어떻게 깔고 소파는 어디에 어떤 색상을 놓고 등등. 그런 상상력들이 지금의 신씨화로를 꾸민 아이디어의 밑천이 됐죠.” 한 가지 더 이색적인 점은 인테리어를 남한테 맡기지 않고 김 사장이 직접 한다는 점이다. 아이디어에서 그치지 않고 의자나 식탁 등의 제작도 김 사장이 직접 해 설치한다. 얼마 전 새로 문을 연 춘산의 경우 간판에 오래된 효과를 주기 위해 직접 산화작업을 하다 눈을 다치기도 했을 정도다. 수시로 발품을 팔아 일본 등지를 돌아다니며 얻은 아이디어도 그때 그때 매장에 적용한다. 한번은 기자가 매장을 방문한 날 새로 선보인 꼬치메뉴를 보고 연기가 너무 많이 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며칠 있다 다시 취재를 위해 매장에 들렀을 때는 메뉴판에서 그 메뉴가 사라져 있었다. ‘즉시실행’이 김 사장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버드 경영대 교수를 지낸 아마 하이드(Amar Bide)가 한 ‘사업의 초기 단계에서는 선견지명과 계획보다는 시행착오에 대한 신속한 반응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백년 기업이 되고 싶다 김 사장의 또 다른 꿈은 비록 식당이지만 백년 기업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점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맛’에 최선을 기하고 있다. 소스류를 직접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된장이나 쌈장을 만들기 위한 시설도 현재 짓고 있다. 김치 역시 계약을 한 공장에서 조달한다. 물론 원산지뿐만 아니라 원하는 산도나 젓갈 등도 직접 꼼꼼히 챙긴다. 고기 역시 가격이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브랜드육만 고집한다. 대기업에서 철저한 관리를 거친 고기는 일반 고기에 비해 육질이 균일하기 때문이다. 김 사장이 품질에 신경 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처음 신씨화로를 열기 전 가게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무척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신씨화로로 지어라”는 선몽을 주셨다고 한다. 언뜻 듣기에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더 황당한 일은 1년 뒤에 일어났다. 뒤늦게 정말로 신씨네 종갓집에 화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 사장의 어머니가 바로 영월 신씨였던 것. 김 사장은 곧바로 전라남도 영광에 위치한 영월 신씨 종갓집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차마 불씨를 달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인사만 하고 돌아왔다. 그 후 세 번을 더 찾아갔다. 그제야 영월 신씨 종손은 ‘나누지 않으면 가짐도 없다’는 가르침과 함께 “좋은 일에 쓰라”는 당부를 하면서 불씨를 건네줬다. 그때 받아 온 불씨는 지금도 신씨화로 1호점에서 365일 꺼뜨리지 않고 보관되고 있다.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사람의 노력이 많이 작용합니다. 하지만 절대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600년 동안이나 꺼뜨리지 않았던 불씨를 건네준 영월 신씨 종갓집의 선한 마음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손님들에게 최상의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불씨에서 시작됐지만 나누면 나눌수록 불씨는 커지지 않겠어요. 앞으로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김 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조언도 했다. 프랜차이즈를 고를 때 세 가지를 유념해서 보라고 당부했다. 첫 번째가 직영점이 있느냐는 것. 프랜차이즈가 자기 직영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식자재 등을 조달하는 직영 공장이 있느냐의 여부. 음식점의 중요한 맛을 내는 핵심 역량까지 아웃소싱한다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맨 먼저 따지는 가맹점이 장사가 잘 되느냐 안 되느냐는 마지막에 따져보라고 했다. 자칫 장사가 잘되는 한두 개 체인점에 혹해서 섣불리 창업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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