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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재계 32위 부호”

“얼굴 없는 재계 32위 부호”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이호진 회장은 국내 재계 순위 38위이자 계열사만 52개를 거느린 태광그룹의 오너(회장)다. 마흔 넷의 나이에 국내에서 서른 두 번째로 재산이 많은 부호이기도 하다(2006년 5월, 에스엔제이 조사 기준). 하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취임한 후 2004년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언론과 인터뷰한 적이 없다. 그룹 관계자는 “앞으로도 전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본지의 인터뷰 요청에도 이 회장은 “재미없는 사람 인터뷰해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가 어떤 경영자고 어떤 인물인지는 그와 가까운 그룹 고위 관계자, 고교·대학 동문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에 대해 “재미없고 무덤덤한 사람”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들은 “학교에서 부잣집 아들, 재벌 2세라고는 알려졌지만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고 밖에 노출되는 것도 싫어하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 공부만 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동기들과 어울리거나 하지도 않았죠. 다만 일반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다고나 할까요. 아무래도 재벌가 아들이니까.”(서울대 81학번 동기)
이임룡 창업주의 3남 그는 지금도 그렇다. 재벌 2세 모임도 나가지 않고, 특별한 이너서클도 없다고 한다. 아주 친한 지인 외에는 잘 안 만나고, 정·관계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룹 내에서 그를 돕고 있는 진헌진 티브로드(태광계열 MSO) 사장, 진형준 흥국생명 부사장의 얘기다. 진헌진 사장과 진형준 부사장은 이호진 회장과 대원고, 서울대 동기다. 진형준 부사장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이호진 회장은 2001년과 2002년에 두 친구를 그룹으로 불러들였고, 이들은 현재 태광그룹이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케이블TV 사업과 금융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술은 맥주나 와인을 가끔 하는 정도다. 대신 담배는 많이 피운다. 대략 하루 한갑 반 정도다. 그는 원래 몸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유독 운동을 많이 한다. 골프는 80대 초반이지만 최근에는 골프장을 자주 찾지 않는다. 대신 헬스를 하거나, 장충동 자택 근처에서 걷기를 많이 한다. 불교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 읽는 것을 좋아하고 종종 절을 찾아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부인은 신격호 롯데 회장의 동생인 신선우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의 맏딸인 신유나씨다. 슬하에 현준, 현나 남매를 뒀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외삼촌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태광그룹 경영 일선으로 나선 것은 1996년 11월 창업주인 이임룡 회장이 사망하면서다. 그 전까지 흥국생명 이사로 재직(1993~96)했던 이호진씨는 그 다음해 태광산업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그룹 회장 자리는 이임룡 회장의 처남인 이기화 회장이 넘겨받았고, 장남인 석진씨가 부회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2002년 이기화 회장이 사임하고, 석진씨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2004년 태광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는 회장에 취임한 후에도 외부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전에 장충동 태광산업 사옥으로 출근해 오후에 계열사를 들르지만 수행비서 없이 다닌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그의 얼굴을 모르는 직원도 많다. 그의 측근들은 “스타일을 딱히 규정하기도 힘든 무덤덤한 오너”라고 표현했다. 보고서는 한 페이지로 간략히 받는 것을 좋아하고, 큰 프로젝트를 지시하고 나면 꼼꼼히 챙기는 유형은 아니다. ‘무덤덤한 오너’라고 하지만 경영과 관련해서는 매우 공격적이다. 그런 만큼 고민도 큰 모양이다. 유선방송사업과 금융 분야에서 확장 일로를 걷고 있지만 화섬·석유화학 중심의 그룹 모체인 태광산업 실적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째 매출과 이익이 내리막이다.
그룹 모체인 태광산업은 하락세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태광산업 사옥, 초등학교를 개조햇다.







▶태양그룹의 돈줄로 급부상한 한국도서보급과 종합금융그룹의 지주격인 흥국생명, 태광그룹이 올해 인수한 쌍용화재.

측근은 “오너 2세라면 자신이 받은 것보다는 그룹을 늘려야 한다는 부담을 갖는데, 미디어산업과 금융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본체인 제조부문 성과가 좋지 않아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룹 자체가 제조업에 대한 향수가 있는데, 새로운 신수종 사업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호진 회장은 태광산업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유선방송사업에 적극 뛰어들었다. 당시 내부 반대는 심했다. 당시 이기화 회장도 본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렸고, 그룹 내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모친인 이선애 여사를 설득해 안양방송을 시작으로 케이블TV 사업에 뛰어들어 현재는 전국 1위 사업자가 됐다. 태광산업의 한 인사는 “젊은 사람들이 와서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는 식으로 반응이 좋지 않았지만 이호진 사장이 밀어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회장이 된 이후에는 흥국생명을 중심으로 금융산업에도 공격적인 M&A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에는 쌍용화재, 피데스증권(현 흥국증권중계), 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자산 7조원 규모의 흥국금융그룹(기존 흥국생명, 고려저축은행, 태광투신운용)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 회장의 경영 능력을 높이 사는 분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태광그룹과 이호진 회장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태광그룹과 관련한 숱한 의혹이 일어도 대응조차 하지 않는 탓에 루머가 루머를 낳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대해 한 국회의원은 “교만한 기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에 대해 태광 관계자는 “정치권에 돈을 주지 않아 태광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사실 정치권이나 업계에서는 오히려 “태광이 로비를 잘하는 기업”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태광은 반응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뿐이다. 태광 내부의 한 관계자는 “이호진 회장과 그 친구들이 새 사업에서 성과를 많이 내고 있지만 선대 회장님의 유지를 잘 받들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적을 많이 만든 것도 걱정이 큰 부분”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두 가지 측면만 봐도 이해가 된다. 이임룡 회장은 평소 ‘정도’와 ‘신의’를 강조했던 오너였다. 그는 1973년 흥국생명을 인수하면서 “보험회사 재산은 보험 가입자 자산이므로 흥국생명 돈을 태광에 가져다 쓰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선대 회장의 약속은 이호진 회장 때 깨졌다. 2004년 9월 흥국생명은 대주주(이호진 회장)에게 125억원의 불법 대출을 해준 혐의로 기관경고를 받고 8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태광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부상한 유선방송업체(한빛아이앤비)를 인수하기 위한 돈이었다. 계열사인 한국도서보급에 대한 외부의 우려도 크다. 도서상품권과 경품용 상품권을 발행하는 한국도서보급은 이호진 회장과 이 회장의 아들인 현준군이 지분의 95%를 갖고 있는 회사다. 사실상 금융기관이 한국도서보급에서 지난해 12월 이후 관련 계열사에 대여된 돈만 400억원이 넘는다. 지난해 71억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자본금 10억원(자산 870억원)인 회사, 여기에 종합신용등급 ‘BBB0’, 현금흐름등급 ‘CF4(연간 창출한 현금으로 운전자금 투자수요 금액을 충당하지 못하는 보통 이하의 상태’라는 신용등급(한국신용평가)을 받는 회사치고는 과도한 대여라는 지적이다.
또 선대 회장이 강조했던 “직원을 자르지 마라”는 유지도 지켜지지 않았다.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2001년 태광산업과 계열사인 대한화섬에서 400여 명을 무더기 해고했고, 2004년 말부터 그 다음해 사이에 정리해고 명목으로 흥국생명 근로자 250여 명을 해고했다. 이뿐이 아니다. 2004년 이후 20여 개의 유선방송사업체(SO)를 인수하면서 끊임없이 적대적 M&A 논란을 일으켰다. 쌍용화재 인수 때는 금감원 특혜설(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주장) 파문도 일으켰다. 이런 과정에서 ‘조용한 기업’ ‘보수적인 기업’ 이미지뿐이던 태광그룹은 대표적인 ‘노동자 탄압’ 기업이라는 공격을 지금도 시민단체로부터 받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 회장의 측근들은 오너에 대해 ‘그룹에 새바람을 일으킨 회장님’ ‘친구가 봐도 훌륭한 회장님’이라고만 하고 있다. 대그룹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래서 그 그룹의 오너가 어떤 경영을 하고, 어떤 사람인가 하는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태광그룹이 ‘우리가 알아서 잘할 테니 신경 꺼라’는 식으로 나선다면 문제다. 태광그룹은 더 이상 일반인들은 몰라도 되는 그런 기업이 아니다. 국민 생활과 접점이 닿아 있는 방송사업, 금융사업을 하는 그룹이다.
대외 이미지 신경써야 이임룡 선대 회장은 이호진 회장에게 이런 얘기를 남겼다고 한다. “보기에 별이 참 아름답지 않으냐? 하지만 저 반짝이는 별보다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이 훨씬 더 많고, 그냥 사라지는 별도 무수히 많은 거다. 보기가 좋다고 쫓지 마라. 누구나 생각은 쉽게 하지만 일이란 그럴수록 간단하지 않는 법이다.” 이호진 회장이 재계 순위 38위 그룹의 오너라는 사실을, 그룹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수많은 소비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룹 성장의 뒤편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수많은 해고 노동자와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간단치 않게 봐야 할 시기다. 그룹 밖 몇 사람을 만나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이런 얘기를 이호진 회장은 알지 못할까. 그렇다면 그것이 ‘경영 리스크’다. 이렇다 보니 그의 얼굴을 모르는 직원도 많다. 그의 측근들은 “스타일을 딱히 규정하기도 힘든 무덤덤한 오너”라고 표현했다. 보고서는 한 페이지로 간략히 받는 것을 좋아하고, 큰 프로젝트를 지시하고 나면 꼼꼼히 챙기는 유형은 아니다.


태광그룹은

섬유 기반으로 급성장 … 자산 7조5000억원
1954년 창업주인 이임룡 회장과 부인인 이선애 여사(현 태광산업 비상근 이사)가 부산에 차린 태광산업사(모직공장)가 모체다. 태광산업은 섬유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70년대는 국내 최대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이 당시 흥국생명, 대한화섬 등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80년대에도 석유화학 부문 호조로 성장은 이뤘지만 이기택 야당 총재가 일가라는 이유로 매년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태광그룹의 총자산은 지난해 기준 약 7조5000억원이며 매출은 3조6000억원대. 태광산업을 주축으로 하는 섬유 및 석유화학 부문 매출은 약 1조6000억원, 흥국생명 등 금융 부문 매출은 1조7000억원 선이다. 이호진 회장 취임 전후로 케이블TV 사업과 금융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004년에는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했다. 태광 측은 “제조업 또는 건설 부문에서 신수종 사업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태광그룹은 현금유동성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언론에서는 내부유보율이 2만5000%로 현금 동원력이 1조5000억원이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태광 측 관계자는 “그룹 내 캐시(현금)는 1000억원이 안 된다”고 밝혔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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