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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 은행장 고액 연봉 들여다 보니…] “판공비 포함됐고 세금이 40%”

[국책 은행장 고액 연봉 들여다 보니…] “판공비 포함됐고 세금이 40%”

7억1120만원. 2005년 공공기관 CEO 최고 연봉자로 선정된 산업은행 총재의 연봉이다. 2004년에도 산업은행 총재는 최고 연봉(5억4000만원)을 받았었다. 중소기업은행장은 5억7600만원으로 산업은행 총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pubmis. mpb.go.kr)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318개 공공기관 기관장 평균 연봉은 정부출자기관이 2억1200만원, 정부출연기관이 1억2000만원, 정부보조위탁기관은 1억1000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으뜸은 단연 금융 관련 기관이었다. ‘연봉은 역시 금융기관장’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대목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속 빈 강정’이란 소리도 높다. 산업은행 총재 연봉 7억1120만원의 내역을 살펴보자. 7억1120만원은 기본급 3억8000만원에 성과급 3억3000만원이 합쳐진 금액이다. 성과급은 은행의 경영실적에 따라 평가된다. 여기에 근로소득세(40%)를 제외하면 실지로 받게 되는 세후 소득은 4억5000만원 정도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총재 연봉엔 활동성 경비(판공비·기밀비 3억원 상당)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세금과 판공비 부분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개인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1억5000만원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내 돈 쓰는 경우도 있다” 판공비란 각종 경조사나 접대, 고객 관리를 위해 쓰는 돈이다. 국내에서는 기업의 투명 경영을 위해 2000년 1월 1일부터 ‘기밀비’가 폐지됐다. 판공비 명목의 기밀비를 CEO 연봉에 포함시킨 것이다. 보통 판공비는 기본급의 50%를 넘지 못하게 돼 있다. 기밀비가 폐지된 이후 격려금·경조금·후원금 등 상당 부분을 기관장들은 급여에서 사용하게 됐다. 공공기관장 연봉이 높은 이유가 이런 활동성 경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은행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총연봉 5억7600만원 중 기본급이 3억3000만원, 성과급이 2억4600만원이다. 중소기업은행 관계자는 “기본급 중 2억원은 판공비와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2000년 이전 중소기업은행장의 기본 연봉은 9000만~1억원 선이었다. 이 때문에 기본 연봉만 따지고 보면 2000년 이전과 비교해 그다지 나아진 것도 없는데 수치만 과장됐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공공기관장들은 국정감사 때면 ‘고액 연봉’ 때문에 깨지기 일쑤다. 국민 혈세를 왜 그렇게 많이 가져가느냐는 게 국회의원들이 꺼내드는 전가의 보도다. 그래도 이들은 해명하기가 마땅치 않다. 일반 국민의 눈 높이로 봐서는 어쨌든 고액 연봉을 받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느 국책 은행장은 “국책 은행장 연봉과 관련한 기사나 국정감사 자료가 나오면 답답하기 그지없다”며 “지금은 예전처럼 은행장이라고 돈을 마음대로 만질 수 없어 비즈니스 비용을 전액 판공비로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떨 때는 내 돈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시중 은행의 경우 우리은행장은 3억원, 신한은행장은 5억원 정도의 판공비를 연봉에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액 연봉 3위를 기록한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경우 연봉 4억2530만원 중 기본급은 3억원, 성과급은 1억2500만원이다. 성과급은 포함돼 있지 않다. 대신 업무상 접대비 등은 법인카드로 결제한다. 산업은행 총재나 중소기업은행장 역시 판공비가 기본급에 포함돼 있지만 공식적인 접대나 업무상 활동에서 나오는 경비는 법인카드로 대행하기 때문에 주택금융공사 기관장의 연봉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에서는 본인이 비공식적으로 쓰는 돈을 줄이고, 공식적 접대를 법인카드로 처리한다면 ‘연봉에 판공비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연봉 액수가 많다 보니 각 기관에서 판공비 핑계를 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비난 여론에 속 앓는 공기업 CEO 연봉은 각 개인이 회사의 수익에 기여하는 정도를 반영한다. 기업이 CEO에게 엄청난 양의 주식 옵션을 주는 이유는 옵션을 주면 주가가 오를 때 CEO의 연봉이 저절로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CEO는 주가를 올리려는 일만 하려고 할 것이다. CEO는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일할 모티브를 갖는 것이다. 공공기업이나 공기업은 주식 옵션을 받지 못한다. 대신 ‘성과급’이 주식 옵션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 산업은행은 2004년 범양상선 매각 차익과 SK네트워크 M&A 등을 통해 997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2005년 역시 대우종합기계의 주식처분 이익과 하이닉스, 두루넷, 쌍용양행 등이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과정에서 2조421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얻었다. 이런 경영 성과들이 총재의 연봉에 성과급으로 반영됐다. 하지만 국책 은행 관계자들은 시중 은행장 연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나타난 시중 은행장들 연봉을 살펴보면 지난해 한국씨티은행장 연봉은 12억원을 넘었다. 국민은행장은 8억4000만원, 하나은행장은 6억원 정도였다. 신한은행장과 조흥은행장 등도 연봉이 6억~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판공비를 포함, 8억4000만원 연봉에 성과급까지 포함해 16억원 상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시중 은행장들은 스톡옵션까지 받기 때문에 개인에게 돌아가는 연봉 액수는 국책 은행보다 훨씬 웃돌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2004년 5월 65만2000주의 한미은행 스톡옵션을 행사해 53억원의 차익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 12일 기획예산처의 임종성 산하기관정책팀장은 국정브리핑을 통해 ‘공공기관장 연봉 격차에 대한 오해’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임 팀장은 “연봉이 많다, 적다를 떠나 핵심은 연봉이 기관장의 실적과 책임 확보 장치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영 성과에 따라 기관장의 연봉 차이가 나도록 인센티브 성과급의 차등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을 통해 연봉을 국민에게 공개한 것도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공공기관 기관장의 연봉에 대한 부담감은 일반 기업체나 금융기업 CEO에 비해 더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세금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철도공사의 이철 사장은 지난 11일 취임 1년을 맞아 “연봉 8400만원을 모두 반납하고 월급을 1원만 받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 사장의 월급 반납은 기획예산처가 지난 6월 19일 발표한 ‘2005년도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 결과’ 발표에서 철도공사가 꼴찌를 기록한 데 대해 자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결단이었다. 한 국책 은행 관계자 역시 “공공기관이라도 경영 평가에 대해 부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책 은행들 역시 외환위기를 거친 후 시중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실적을 따지다 보니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책 은행장들도 시중 은행장들 못지 않게 필드에서 경쟁하는 풍토가 만들어졌다. 시중 은행과 상응하는 판공비를 써야 경영 성과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본인 살을 깎는 고통을 감내하기도 한다. 고액 연봉을 받는 공공기관 CEO들이 이런 이유로 속앓이를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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