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영원한 해적’
할리우드의 ‘영원한 해적’
‘촌놈의 객기’ 부리던 시절 접고 이제야 돌아갈 집 찾은 조니 뎁, 세상 이치에 고개숙일 줄 알게 됐지만 방황과 반항의 과거는 잊지 않아 아빠가 되면 사람이 달라지는 법이다. 인습에 도전하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처음 아빠가 됐을 땐 마치 장막이 거둬지는 기분이었다”고 조니 뎁(43)은 말했다. 그는 무릎에 밤색 종이를 놓고 담배 가루를 말면서 몸을 앞으로 숙였다. “전부터 연기생활을 좋아했지만 직업상의 위험이 딱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직업상의 위험이란 졸졸 따라다니는 파파라치, 집적거리는 낯선 사람들, 풍선껌 광고 출연, 그리고 기타 유명세를 말한다. “스스로 ‘유명인’ 어쩌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혼란스럽고 불만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런 목적도 없었다.” 그는 뒤로 기대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내뿜었다. “결코 나 자신만 생각하거나 나만의 괴팍한 세계에 빠지지 않았지만, 우리 딸이 태어나는 순간 갑자기 모든 일이 명쾌해졌다. 더 이상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평생 처음으로 일체의 사심이 사라지는 체험을 했다. 해방감을 느꼈다. 그 순간 내가 다른 무엇으로 바뀌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참모습이 드러났다.” 조니 뎁의 참모습이라. 얼마나 그를 찾아다녔던가? 솔직히 말해 할리우드 배우 중에서 그처럼 스타가 되지 않으려고 기를 쓴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런 고집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런 고집 때문에’ 그는 동세대 배우들 중에서 가장 절찬받는 스타로 우뚝 섰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Pirates of the Caribbean: The Curse of the Black Pearl)’는 세계적으로 6억530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덕분에 조니 뎁은 출연료 2000만 달러를 받는 대스타가 되고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일급 스타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일급 배우들은, 연기력이 진정으로 뛰어난 배우라 해도 정상에 머물기 위해 자신의 페르소나(밖으로 내보이는 외적 인격)에 충실하다. 우리가 10달러를 내고 윌 스미스나 줄리아 로버츠를 보러 가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개성이 다른 모두를 압도해 버린다. 그들은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브랜드다. 조니 뎁의 예측불가성은 거의 병적 수준이다. 엽기적이기도 하고, 아주 웃기기도 하며, 심란한가 하면 짜증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결코 같은 적이 없다. 톰 크루즈와는 정반대다. “크루즈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지금은 뎁이 더 큰 배우일지 모른다”고 존 워터스 감독은 말했다. 그는 1990년 영화 ‘사랑의 눈물(Cry-Baby)’에 뎁을 출연시켰다. “조니 뎁에 질리는 사람은 없다.” 7월 7일 미국에서 개봉되는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Pirates of the Caribbean: Dead Man’s Chest)’은 올 여름 납량특선 중 최고 히트작이 될 공산이 크다. 편집실에서 처음 감상한 뉴스위크의 판단으론 크루즈가 추락해 불타버리고 ‘다빈치 코드’가 재미없는 특대작으로 판명난 이번 시즌에 반가운 햇살이 될 전망이다. ‘캐리비안’ 3부작 중에서 두 번째인 이 작품(3탄은 내년 여름 개봉 예정이다)에서 사랑에 빠진 윌(올랜도 블룸)과 엘리자베스(키라 나이틀리)는 결혼식 날 체포된다. 정체가 수상쩍은 자아도취자 잭 스패로 선장의 탈출을 도왔다는 죄목이다. 윌이 신부와 자신을 석방시키려면 잭 선장을 찾아 신비스러운 나침반을 넘겨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징그럽게 생긴 베켓 경에게 건네야 한다. 베켓은 그것을 이용해 세계의 해적들을 일망타진하려 한다. 한편 잭에겐 당장 더 급한 일이 있다. 해적 선장 데이비 존스에게 영혼을 저당잡힌 그는 크라켄이라는 거대한 바다 괴물에 쫓겨 식인종들의 섬에 상륙한다. 식인종들은 그를 신으로 떠받든다. 이 원주민들이 자기네 신을 잡아먹는 습관만 만들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이 영화로 감독에 복귀한 고어 버빈스키,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진은 2탄에서 액션 강도를 높였다. 촬영용으로 만든 거대한 세트 중에는 바깥 틀이 부서진 채 밀림 속으로 전력을 다해 굴러가는 물레방아 바퀴 위에서 벌어지는 세 팀의 칼싸움 장면이 있다(“그런 순간에는 배우라는 직업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깨닫게 된다”고 뎁은 말했다. “재미는 있지만 그런 장면을 찍기는 힘들다.”). 다행히도 제작진은 뎁에게 출연시간도 많이 주었다. 뎁의 과장된 표정과 뜻밖의 대사가 ‘귀여운’ 순간을 아주 유쾌한 순간으로 바꾸는 경우가 1탄보다 많다. 한 장면에서 엘리자베스는 잭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뎁은 너절하게 속삭이듯 대꾸한다. “모든 증거는 그 정반대라고 말하지.” 로스앤젤레스의 샤토마르몽 방갈로. 뎁은 입을 열 때마다 잭 선장의 모습을 조금씩 풍겼다. 해적 금니는 원래 치아에 금박을 붙여 만들었다. 8월 중으로 3탄 촬영이 재개되기 때문에 뎁은 금니를 그냥 내버려두는 쪽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놀이가 끝날 때까지 달아둘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과정이다. 금니를 빼냈다가 도로 붙이는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해적 선장의 분위기가 계속 간직된다.” 조니 뎁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간다. 그는 평생 어디를 급하게 가거나 급하게 온 적이 없는 사람 같다. 인터뷰 약속에는 늘 지각이다. 네댓 시간은 예사고 며칠씩 늦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사적으로 겨우 50분만 지각했다. 그리고 일단 자리를 잡으면 떠나려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일이 없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저음으로 중얼거린다. 몸은 항상 움직인다(담배를 말거나 팔꿈치를 긁거나 잔을 집는다). 그러나 그 리듬은 발바닥을 핥는 고양이처럼 잔잔하고 유동적이다. 차분하게 최면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본모습에 충실하다”고 팀 버튼 감독은 말했다. 버튼이 뎁과 함께 만든 영화는 지난해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을 포함해 모두 다섯 편이다. “그는 돈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또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아마 미국이라서 통하는 이야기겠지만 어떤 일에 열정적으로 대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겁을 먹는가 보다. 엽기적이니 괴짜니 하는 소리를 듣지만 내가 볼 땐 자신이 누군지 잘 알 뿐이다.” 뎁은 80년대 초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뛰어난 용모를 보고 영화사 간부들은 애정영화의 주인공감이라며 군침을 흘렸다. 딱 한 번만이라도 그의 머리카락을 만져보면 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오빠부대(와 몇몇 남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뎁은 90년께 할리우드 스타군단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특이하고 때론 아름다운 영화들 속으로 숨었다. 흥행 면에서 거의 흔적도 남기지 못한 영화에서 인상적인 배역(‘가위손’의 에드워드 시저핸즈, ‘에드 우드’의 에드 우드,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의 헌터 S 톰슨, ‘길버트 그레이프’의 길버트 그레이프)을 맡았다. 뎁이 2003년 이전 주연을 맡은 영화 20편 중에서 흥행수익 1억 달러를 가까스로 돌파한 작품은 팀 버튼의 ‘슬리피 할로(Sleepy Hollow)’가 유일하다. 뎁은 유별나며 돈벌이가 안 되는 배우라는 명성을 얻었다. “맞는 말”이라고 그는 말하면서 자신의 전과를 나열했다. “저 친구 영화는 안 돼. 이상한 예술영화에만 나와. 발음도 안 되는 감독들하고만 일해.”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더 심한 말도 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뎁이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항간에는 돈이 떨어졌으며, 여러 해 동안 고고한 예술의 길을 걷더니 결국 영혼을 팔고 말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뎁은 그 문제로 걱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전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걱정해야 마땅하다고들 생각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나만의 목소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흥행의 성공 여부는 고민거리가 못됐다. 다만 흥행에 성공하려고 억지를 부리거나 거짓말하는 것이 싫었다. 어떤 일을 할 때는 반드시 내 식으로 해야 성이 찬다. 일을 내 손으로 장악해야만 만족하는 고약스러운 성격이라서가 아니라 거짓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난 순전히 사기꾼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정통으로 남으려는 그 투쟁은 오랜 세월 큰 희생을 요구했다. 그래서 20대 시절 대부분을 분노 속에서 살았다. 켄터키에서 4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플로리다에서 자랐다. 부모는 툭하면 싸우더니 결국 그가 열다섯 살 때 이혼했다. 뎁의 소원은 악단에 들어가 기타를 치는 일이었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그 꿈을 막 이뤘다. 그의 악단은 이기 팝 같은 인기가수의 공연에 앞서 분위기를 조성했다. “멋진 시절이었다”고 뎁은 말했다. “최고로 행복했었다.” 그러나 악단이 로스앤젤레스로 무대를 옮겼을 무렵 뎁은 빈털터리가 됐다. 당시 그와 잠시 부부생활을 했던 음악가가 니컬러스 케이지에게 소개해 줬고, 케이지는 한번 연기에 도전해 보라고 권했다. 뎁은 일시적 충동으로 그렇게 했다가 ‘나이트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에서 조역을, ‘플래툰(Platoon)’에서 작은 배역을 맡았다. 여전히 궁핍에 쪼들리면서 TV 시리즈 ‘21 점프 스트리트(21 Jump Street)’에 출연했다. 고등학교에서 비밀활동을 수행하는 경찰관들의 이야기였다. 덕분에 뎁은 하루아침에 10대들의 우상이 됐고, 그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모든 것이 뒤집혔다”고 그는 말했다. “갑자기 식당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자유가 사라지면서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됐다. 호텔을 나와 저녁식사를 하러 가면 온통 카메라 플래시 세례였다. ‘조니, 웃어주세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제기랄, 집에나 갈까.’ 그러나 돌아갈 집이 없었다.” 뎁은 폭스 네트워크와 장기 계약에 발이 묶였다. “그들은 나를 이런 상품으로 만들었고 나는 아무 발언권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 목소리가 없다는 말이다. 포로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공격 성향을 드러냈다. 내심 방송사에서 해고하기를 기대하면서 ‘점프 스트리트’ 촬영장에서 분위기 망치는 짓을 자주 했다. “정말 못된 놈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고 함께 주연을 맡았던 여배우 홀리 로빈슨 피트는 말했다. “그의 입장은 전적으로 이해가 됐다. 그러나 나는 그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너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망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과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탈의실에 들어가 내 생각을 솔직히 말했더니 즉시 자기 트레일러를 때려부쉈다.” 피트는 뎁에게 아무 악감정이 없다면서 모두 젊고 미숙했던 탓으로 돌렸다. “그는 마음이 따뜻하지만 실의에 빠져 있었다”고 피트는 말했다. “자신이 도시락 뚜껑이나 어떤 사춘기 소녀 방의 벽을 장식한다는 생각에 진저리를 쳤다.” 마침내 ‘점프 스트리트’에서 해방된 뎁은 틀에 구애받지 않는 진취적인 감독들(워터스, 버튼, 짐 자무시, 테리 길리엄 등) 밑에서 전통 양식의 외톨이와 몽상가 역을 연이어 맡았다. 그러나 뎁이 ‘촌사람 분노’라 부르는 그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94년 뉴욕시에서 호텔방의 기물을 부숴 체포된 사건은 유명하다. 뎁은 그 사건이 부풀려졌다고 말하지만(“나는 보르네오의 야만인이 아니었다.”) 자신의 명성과 성공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일종의 자기파괴적인 시기를 거쳤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조금씩 자학하는 시절을 겪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스스로 이 약, 저 약을 먹고 술을 마신 짓들이 순전히 시간낭비였다.” 말런 브랜도가 뎁의 구세주 가운데 하나였다. 두 사람은 1995년 ‘조니 뎁의 돈 주앙(Don Juan DeMarco)’에 함께 출연했다. 첫 연습 때부터 죽이 맞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조니가 아마 진 술병이었던가, 그걸 들고 브랜도의 무릎에 앉았다”고 제러미 레벤 감독은 말했다. “내내 그렇게 있었지 싶다.” 두 사람 사이의 유대관계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둘 다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통찰력, 불태울 역량, 상업성에 물든 예술을 경멸하는 배우였다. “브랜도는 선구자였다”고 뎁은 나지막이 말했다. “감히 우리의 의식수준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나의 많은 면을 이해했다. 지극히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영화나 연기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의 마음이 통한 이유는 아니다. 그는 내가 자기와 같은 고통(나의 유별난 촌사람 분노)을 겪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유대관계가 강하고 깊었다.” 그러나 프랑스 배우 겸 가수 바네사 파라디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서야 비로소 배우로서 모든 의미가 확실해지는 듯했다. 셔릴린 펜, 제니퍼 그레이, 위노나 라이더, 케이트 모스 등의 연예인들과 오랫동안 사귀면서 염문을 날리던 그가 파라디스를 만나 중심을 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1999년 딸아이 릴리-로즈가 태어났다. 2002년에는 아들 잭이 태어났다. 아빠가 되면서 오로지 출연작에서만 의미와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해방됐다. “아빠가 됐다는 사실이 한 차원에서 그를 부드럽게 만든 다음 다시 예술적 차원에서 강하게 만들었다고 본다”고 버튼은 말했다. “흥미로운 대비다.” 뎁은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이제는 집이 어디 있는지 안다.” 뎁이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한 이유는 자식들에게 보여줄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5년 전쯤 디즈니 영화사를 방문했을 때 딕 쿡 회장을 만나 딸과 함께 디즈니 영화를 많이 봤는데 재미있었으며, 픽사가 만드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성우로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쿡은 테마파크 놀이기구인 ‘캐리비안의 해적들’을 소재로 영화를 구상 중이라고 거론했다. “뎁은 몹시 흥분했다”고 쿡은 회상했다. “‘진짜 해적영화처럼? 칼싸움이 나오고?’라고 묻기에 ‘그렇다. 칼싸움이 나온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내가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이제는 ‘캐리비안의 해적’ 팬들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영화사 간부들은 뎁의 캐릭터 연기를 보면서 당혹감을 느꼈다. 원래는 잭 스패로 선장을 젊은 버트 랭커스터로 그린다는 구상이었으나 뎁이 다른 상상을 내놓았다. 방탕하고 허영심 많으며, 약간 맛이 간 록스타로서 롤링스톤스의 우상인 키스 리처즈와 만화영화의 귀여운 스컹크 페페 르 퓨의 영향을 받은 인물로 하자는 제안이었다. “영화사는 ‘그 친구 게이인가? 주정뱅이인가?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고 제작자 브룩하이머는 말했다.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감독을 맡은 버빈스키는 만족스러워했다. “배우와 감독들 간에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데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사를 초조하게 만들지 못하면 감독의 입장에서 좀 반성해야 한다.” 물론 비딱한 연기의 뎁이야말로 ‘캐리비안의 해적’을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우선 조니의 생활이 해적처럼 엉뚱하다”고 존 워터스는 말했다. “여태 맡아본 배역 중에서 자신의 본모습에 가장 가깝다. 그러나 마치 게이처럼 연기했다는 사실이 큰 위험요인이었다.” 잠시 후 워터스의 말이 이어졌다. “진짜 게이 해적들이 그렇게 웃기지는 않지만.” 과감하거나 뜻밖의 작은 영화들에서 수십 년 동안 과감하거나 뜻밖의 모습을 보여준 뎁이 이제는 대형 납량특선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간다. 굳이 밖에서 맴도는 국외자가 될 필요는 없었다. 안에서도 얼마든지 국외자가 될 수 있었다. “적 진영에 침투한 기분이 든다. 어찌어찌하다가 그곳에 들어가 성벽에 내 이름을 남긴 것처럼.” 뎁의 말이다. 영화의 대성공이 “내 입장에서 한편으론 완벽하게 말이 됐고, 한편으론 전혀 말이 안 됐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는 담배연기를 또 한 모금 빨아들인 뒤 내뿜었다. “그래,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인형, 시리얼 통, 과자, 과일 주스가 사방에 널린 지금이 내겐 앤디 워홀식으로 재미있게 느껴진다. 황당하다. 더 이상 황당할 수 없다.” 뎁은 아직 잭 선장을 놓아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 연기는 참 재미있다”고 말했다. “잭과 헤어지면 깊은 우울증에 빠질 성싶다.” 너털웃음이 터져나왔다. “의상을 보관하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줘야겠다.” 아니면 나머지 세계를 즐겁게 해주든가. “어쩌면 ‘캐리비안이 해적’ 4탄, 5탄, 6탄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대본만 좋으면 못할 이유가 없다. 내 말은 어느 시점에서는 광기가 멈춰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의 수명이 다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요즘 뎁은 촬영 스케줄이 없을 때 가족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의 자택과 프랑스를 오가며 산다. 외국인 거주자로서 프랑스 시민권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언론 보도는 과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물론 그곳 생활이 좋다. 전부터 늘 좋았다. 전화 벨이 미국처럼 자주 울리지 않는다. 대화에서도 영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트램폴린이나 그네를 태워주며, 정원에 들러 우리가 심은 토마토가 자라는 모습을 구경한다. 그런 옛날 생활이 좋다.” 뎁은 마침내 운명이 됐든 명성이 됐든 그 무엇과의 싸움을 멈추는 방법을 터득했다. “세상 만사는 원래 다 일어나게 돼 있는 대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도로의 모든 융기를 기억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유를 굳이 알 필요가 있나? 사실은 이곳이 내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것을 즐기고, 경의를 표하며 계속 전진한다.” 그가 미소를 짓자 금니가 번뜩였다. “내겐 그 모두 말이 안 되지만, 따지고 보면 꼭 말이 돼야 할 이유가 있느냐?” With JAC CHEBATORIS and MARC PEYSER 최한림 parasol1@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MBK, 10년 내 고려아연 팔까…경영협력계약 ‘기한’ 명시 없어
2GS리테일 4세 허서홍 시대 열린다...오너가 세대 교체
38억 아파트, 6700억으로 '껑충'…손해만 봤다, 왜?
4이재현 CJ 회장 “마지막 기회 절실함” 당부…인사 이틀만에 소집
510조 대어 놓친 韓조선, ‘원팀’ 물꼬 튼 한화오션·현대重
6한동훈 "가상자산은 청년들의 희망, 힘겨루기 할 때 아냐"
7오데마 피게, 서울 첫 플래그십 스토어 그랜드 오프닝
8“초당 25개 판매”…무신사, ‘무진장 블프’ 6시간 만에 300억 매출
9"내 돈 갚아"...빚 독촉, '1주일에 7번'으로 제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