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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표와 차 한잔] “내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홍세표와 차 한잔] “내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삭막한 세상에서 덩치 큰 대기업과 경쟁을 벌이며 29년간 선두를 지켜온 기업이 있다. 바로 피죤이다. 1978년 한국에 ‘섬유 유연제’라는 제품을 처음 소개한 이후 지금까지 이 분야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피죤을 이끌며 ‘빨래엔 피죤~’이라는 광고 문구를 온 국민의 귀에 각인시켜온 이윤재 피죤 회장을 만났다.
73세를 넘어선 이윤재 회장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었다. 피죤의 새로운 제품 이야기나 중국에 진출해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는 어린이처럼 즐거워 했다. 나 역시 70을 넘어선 인간이다.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면 ‘노인은 조용한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농담을 하며 웃기도 한다. 하지만 이 회장은 달랐다. 그는 나에게 한 가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바로 열정이 있는 인간은 젊다는 것이다. 요즘에 중국에 자주 가신다면서요? “중국에 톈진(天津)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 공항 인근 보세구역에 2만 평 규모의 공장을 신축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천진공항물류가공구(天津空港物流加工區) 관리위원회와 총 2500만 달러 규모의 단독 투자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내년 중순까지 세탁세제, 섬유유연제 등 생활용품을 연간 50만t 생산할 수 있는 공장 건설을 마무리한 다음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공장은 수도인 베이징(北京)과 자동차로 1시간30분 남짓 거리로 톈진시 동쪽 연해에 있습니다. 상표는 ‘피죤(碧珍·삐쩐)’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중국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다. 외국 기업에 대한 우대 정책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새로운 기회가 있다고 한다. 우선 그는 중국의 중산층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는 생활용품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피죤은 1993년부터 톈진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중국 진출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리고 이제 본격 진출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중국 가정의 세탁기 보급률이 78년 당시 한국과 비슷합니다. 세탁기 사용은 자연스럽게 섬유 유연제와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피죤은 중국에서 경쟁제품의 1.5배 가격에 팔리고 있다. 크기는 한국 제품보다 작다. 이유는 자전거에 싣고 집에 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지화된 제품 개발을 위해 중국 현지는 제일기획과 공동으로 구성한 태스크포스 팀이 활동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향, 듣기에 어감이 좋은 브랜드 이름, 섬유유연제 구매 패턴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하늘도 우리를 돕지 않겠습니까?”

“노사 함께 경영회의에 참석” 많은 기업인이 노사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피죤은 어떻습니까? “노사관계의 기본은 신뢰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희는 노사가 함께 경영회의에 참여합니다. 또 분기별 노사 협의회를 개최해 전사원 교육 계획 수립과 사원 평가제도 변경 관련 의견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기업 문화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대화를 통한 이해가 없이는 신뢰를 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죤은 창립 이후 단 한 건의 노사분규도 기록한 바 없다. 피죤의 주력 상품이 바뀌고 있다는 말이 있던데요. “지금까지 국내에서 유통된 대부분의 세제는 가루였습니다. 이번에 저희는 액체 세제를 소비자들에게 소개했고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액체 세제는 가루에 비해 물에 용해되는 속도가 빠릅니다. 찬물에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시장의 75%가 액체 세제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액체 세제는 옷에 세제 찌꺼기가 남지 않아 아기 옷이나 속옷, 그리고 민감한 피부에 좋다. 또 세탁기 주변에 가루가 전혀 날리지 않고 습한 곳에서도 굳지 않아 사용 보관이 편리하다. 피죤의 액체 세제 ‘액츠’는 지난해 7월 출시해 첫 달 1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올 7월까지 1년간 3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최근 홈쇼핑에 처음 소개됐을 때는 40분 만에 1억6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도 액체 세제 출시를 서두르고 있기 때문에 4~5년 안에 액체 세제 시장이 50%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저희는 회사 모토를 아예 ‘리퀴드 사이언스’로 정할 정도입니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에 매년 매출액의 10%인 약 120억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공이 내일 성공 보장 안해” 국내외에서 아주 잘하고 계신데요, 성공 비결이 궁금합니다. “비결이 없는 것이 비결이라고 할까요. 사실 기업이 생존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한 보고서에는 100대 기업의 30년 잔존율이 한국 13%, 미국 21%, 일본 2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30년간 기업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의 경영 비결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고객 수요에 발맞추기 위해 성심 성의껏 노력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기본 원칙이 기업을 살린 것이지요. 혹자는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만족에 대한 욕구’라고도 합니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된 상품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는 명예박사를 받으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난 5월 27일 미국 링컨 대학으로부터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제가 뭐 하나 받겠다고 노력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갑자기 연락이 와서 저도 놀랐습니다. 링컨 대학 측에서는 산업자원부가 주관하고 한국무역학회가 선정해 제가 받은 ‘무역진흥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알아보니 제가 적임자라 생각돼 연락했다고 하더라고요.” 링컨 대학은 매년 아시아 28개국 중에서 경제 발전에 공헌이 있거나 국제 협력에 노력한 인물을 선정해 학위를 수여해왔다. 역대 수상자로는 전 베트남 총리와 전 베이징 시장 등이 있다. 이 회장은 상을 받으며 항상 생각해 오던 인생철학에 대해 말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알아서 변하지요. 신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24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변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됐다 싶어서 안주하는 이의 운명은 그 순간 결정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70이 넘었지만 쉬지 않고 일하는 것도 제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언젠간 오겠지요, 제가 일할 수 없는 순간이. 그때에는 웃으며 주위에 말하겠습니다. 전 참 열심히 살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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