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Ⅱ] 원천기술 인수로 도약 노려
[Special ReportⅡ] 원천기술 인수로 도약 노려
| ▶해외 M&A를 통해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린 두산중공업의 중동 현지 발전소. | |
과거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M&A한다면 중국이나 동남아 공장 인수를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최근 해외 기업 M&A 트렌드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기술력이 탄탄한 해외 기업 M&A를 통해 글로벌 기업들을 따라잡는 게 화두로 떠올랐다.
사례 1. 1995년 5월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은 폴란드 자동차 회사 FSO를 인수했다. 폴란드 정부가 조건으로 내건 ‘종업원 2만 명에 대한 고용 유지와 추가 투자’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기존 인력의 30%만 남기겠다는 인수 경쟁자 제너럴 모터스(GM)의 전략에 비하면 파격이었다. 당시 김 회장은 “생산량을 현 수준(5만 대)의 네 배로 끌어올리면 2만 명의 근로자를 모두 고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언론들은 “루마니아의 로대 자동차 인수(94년)·체코의 아비아 인수(95년)로 시작된 김 전 회장의 세계 경영이 FSO 인수로 돛을 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인수 대상 기업의 기술력이나 수익성보다는 동유럽이라는 시장성을 중시했던 김 전 회장의 전략이 적중하는 듯했다. 김 전 회장은 당시 M&A 전략을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라고 내세웠다. 잘나가던 대우의 세계경영은 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자금난에 봉착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대우는 98년 말부터 시간을 다투며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이 사들였던 동유럽의 어떤 회사나 공장도 외국 기업들이 탐낼 만한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사례 2. 2006년 4월 효성은 독일 아그파포토의 산업용 필름 연구부문과 생산설비를 인수했다. 효성이 당시 인수를 통해 고급 필름기술을 획득한 후 부가가치가 높은 고기능 필름 생산에 나설 것으로 기대됐다. 주가 역시 이를 반영하듯 4년 만에 신고가를 기록했다. 효성 관계자는 “당장 매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독일 필름 생산기술을 이전받아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말했다. 효성은 지난 9월 세계 3위의 타이어 기업 굿이어(Goodyear)의 4개 타이어코드(타이어 내부보강재) 공장을 인수했다. 효성은 공장 인수와 함께 굿이어에 총 32억 달러 규모의 타이어코드를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이 계약으로 타이어코드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효성의 시장점유율은 25% 수준에서 3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효성 관계자는 “미국이나 아시아와는 다른 소재의 타이어코드를 많이 쓰는 유럽과 남미 지역에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며 “레이온 등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효성은 그동안 국내에서 대우종합기계과 대우정밀 인수전에 나섰다가 번번이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발 빠르게 해외로 눈을 돌린 후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키며 발전 계기를 마련했다. 효성은 앞으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해외 업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M&A를 검토하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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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기업들의 해외 기업 M&A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과거 대부분의 글로벌 M&A는 중국·동유럽 등지 의 공장이나 설비를 인수해 생산량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지금은 해당 분야의 일류 기업들과 기술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의 전략기획 담당 임원은 “관련 업계에 원천기술이 있는 기업 인수에 관심이 많다”며 “국가 간 경계가 사라진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연구·개발(R&D)에 매진해 글로벌 기업들의 기술력을 따라잡긴 힘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선진국들의 일부 기술 기업들은 고임금과 시장 정체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부가 수익을 내는 데 고심하고 있고, 중국이나 인도 등지의 기술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살 만한 상대나 시장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 기업들은 해외 M&A에 적극 나서 이 틈을 적극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풍요 속 빈곤’ 현상을 보여 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가 지난 2000년 1,960건에서 2005년 3,559건으로 5년 만에 건수가 81.6%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외 기업에 대한 M&A 등 선진 기술 도입을 위한 해외 투자는 2000년 157건(8.0%)에서 2005년 128건(3.6%)으로 오히려 줄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재무 건전성이 중시되면서 해외 기업 인수 사례가 사실상 사라졌다”며 “M&A를 통해 기술격차를 좁히고 있는 중국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M&A를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두산은 최근 기술경쟁력을 세계 일류로 끌어올린다는 목표 아래 해외 M&A에 적극 나서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10월 미국 AES사의 역삼투압 방식(RO) 수처리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AES의 이 부문은 원천기술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 걸친 영업 네트워크도 확보하고 있었다. RO 방식이란 역삼투압 막을 이용해 바닷물 속의 염분을 제거한 후 담수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발전소를 함께 건설할 필요가 없어 경제성이 매우 뛰어나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연간 2조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이를 통해 담수 분야의 3대 원천기술을 모두 갖추게 됐다. 기존 중동 시장 이외에도 미국·유럽·동남아 등 지역 다각화가 가능해져 연간 4조원 규모의 세계 담수설비 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됐다. 두산 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인수 외에도 담수 처리와 관련된 원천기술을 가진 해외 업체 인수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 역시 해외 M&A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 9월 말 중국 지주회사를 설립한 두산인프라코어는 탄탄한 중국 건설·기계 업체를 찾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 회사가 워크아웃을 거치면서 한동안 R&D에 소홀히 했던 게 사실”이라며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인수해 선진 기업과의 기술격차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화를 위한 M&A도 여전히 관심 대상이다. 포스코의 이구택 회장은 올해 초 세계 1위 철강사인 미탈스틸(Mittal Steel)이 2위 철강사인 아셀로르에 대한 적대적 M&A를 선언하면서 “포스코도 M&A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포스코가 세계 철강 산업 M&A의 능동적인 주역이 돼야 한다”며 글로벌화를 강조한 바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세계 철강업계의 대형화 추세에 대응해 몸집을 키우기 위해 M&A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동양제철화학은 지난해 카본블랙 분야 세계 3위인 컬럼비안케미컬(CCC)을 인수했다. 동양제철화학 관계자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마케팅 능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원 수석연구원은 “최근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이 국제 M&A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며 “한국 기업들도 중국·러시아·인도 등 신흥국에서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것보다 경영 요소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M&A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에도 글로벌 M&A에 성공한 케이스는 많지만 정작 현지 회사를 운영하는 데 실패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한국에서처럼 기업을 인수한 후 주재원들을 점령군처럼 대거 보내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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