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흥식 전 군수는… 1937년 전남 장성 출생 56년 광주사범학교 졸업, 78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수료 56∼66년 월평·광주수창·양동·서석초교 교사 75년 장성군 문화공보실장 76년 일진금속 상무·전무·부사장 84년 두양 사장 86년 화성금속 고문 92년 전라남도교육위원회 위원 95∼2006년 전남 장성군 민선 1∼3대 군수 | |
전라북도와의 경계 영광군과 담양군 사이 전라남도 장성군. 2005년 말 기준 인구는 4만9710명. 그나마 열 중 둘이 노인이고, 연간 예산 1901억원에 농업 비중이 44%인 작은 시골.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을 것 같은 이곳을 찾는 손님이 많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기업인, 학교에서 배우러 온다. 이들의 수강 과목은 ‘지방자치단체 혁신경영론’. 장성은 공무원이 경영하는 회사로 통한다. 이른바 ‘주식회사 장성군’이다. 군수는 최고경영자(CEO), 군청 공무원은 임직원이 되어 군민을 주주 내지 고객으로 모시는 것을 실천했다. 그 결과 76개 기업을 유치했고, 11년 동안 169개의 상을 휩쓸어 상금으로만 106억여원을 벌었다. 그 혁신의 주인공 김흥식(70) 전 군수를 만났다. “장성군청 직원들은 시골 공무원이 아닙니다. 중앙부처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도전적입니다. 이 모두가 교육 덕분이지요.” 그가 1995년 첫 민선 단체장 선거에서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군민의 살림꾼은 전문경영인으로!’. 행정기관에 주식회사란 명칭을 처음 붙였다. 하지만 당선 뒤 취임해서 보니 공무원들은 고정관념이 강했고,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었다. 간부회의에서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를 깨뜨리기 위해 95년 팀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당시 내무부는 조직이 파괴된다며 반대했다. 예상한 답변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실정에 맞는 팀제를 도입했다. 첫 번째로 만든 게 경영관리실. 이어 수출입계, 국제협력계, 기업유치관 등 다른 지자체들에는 생소한 조직을 두었다. “어느 날 총무처 국장이 전화를 걸어와 팀제를 하려고 하는데 군수가 생각하는 팀제는 어떤 거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이것저것 말했는데 실제로 도입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지난해입니다.” 김 군수는 96년 다면평가제를 도입했다. 상사가 아래 직원을, 아래 직원이 상사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대를 너무 앞서갔나? 일각에선 어떻게 아래 직원이 상사를 평가하느냐며 ‘살생부’라고 때리기도 했다. “일을 시키면 ‘규정에 없다’ ‘관례가 없다’ ‘예산이 없다’고들 합디다. 어떤 일은 검토에만 몇 달씩 걸리고요. 군 직원 600명 중 계장·과장 등 간부가 100명인데 하는 일이라곤 도장 찍는 것뿐이었어요.” 7∼9급은 열심히 하는데, 6급 이상 상위직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장·계장들의 도장을 빼앗고 업무분장을 새로 해 다들 일을 하도록 했다. 업무방식을 바꾸니 공무원들이 싫어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의사결정을 빨리 하도록 결재과정도 5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했다. 그렇게 공무원들과의 전쟁을 1년 동안 했다. 공무원 조직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역 유지로 행세하는 토호세력의 입김이 대단했다. 인사나 공사 관련 청탁을 공공연히 했다. 그러나 김 군수는 이들과 타협하지 않았다. 지역인사 중에 경찰서장 출신이 있었다. 군수 취임 며칠 뒤 찾아와 “왜 인사하러 오지 않느냐”고 따지기에 “내가 왜 인사하러 가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소문은 금방 퍼졌고, 군민들은 김 군수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는 11년 동안 군수로 있으면서 공식행사 외에는, 저녁은 늘 집에서 먹었다. 원칙을 지키려는 그에게 군수 자리는 고독한 자리였다. 민심 파악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 “매일 새벽 5시부터 집에서 마을 이장들과 30여 통씩 전화했지요. 그렇게 하니 지역 돌아가는 사정은 실장·과장보다 더 잘 알게 되더라고요. 주민들이 군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있답니다. 잔재주 부리면 안 돼요. 힘 좀 쓴다는 유지보다 전체 군민과 접촉하는 기회를 늘려야지요.”
| ▶홍길동전시관에 설치된 홍길동 캐릭터. | |
95년 9월 외부 강사를 초청해 장성 아카데미를 시작했다. 그 뒤 매주 금요일이면 빠짐없이 연다. 처음 1년간은 마지못해 참석하던 직원들이 어느새 자신의 고정 자리가 있을 만큼 자진 출석한다. 11년째 매회 500여 명씩 연인원 25만 명이 경청함으로써 대한민국 사회교육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11월 16일 아카데미가 511번째다. “세상은 사람이 바꾸지만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입니다. 인구 5만의 장성군이 11년 동안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106억원의 상금을 번 것이 바로 교육효과 아니겠어요?” 총론 교육 아카데미와 각론 교육을 병행했다. 매주 토요일 직원들을 서울 코엑스에 보냈다. 전시회를 보고, 백화점에도 들르고, 호텔에서 커피도 마시게 했다. 장성에선 커피 한 잔이 1500원인데 세상에는 1만원짜리 커피도 있음을 보여주며 그 맛과 서비스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라는 뜻에서다. 3박4일의 기업체 연수도 벌써 10년째다. 김 군수는 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95년부터 모든 직원을 유럽에 연수 보냈다. 미국과 캐나다에도 400명이 다녀왔다. 직원들이 낯선 곳에서 고생도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게 많다. 이런 교육혁신 이야기는 전국 지자체에 퍼져 장성을 견학하려는 인파가 줄을 잇고 있다. 장성군은 군민 교육에도 투자했다. 농민들을 해외로 보내 영농기술을 보고 익히도록 했다. 택시기사들에게 일본 MK택시 견학 기회를 주었더니 다녀와서 복장을 통일하고 서비스를 확 바꿨다. 장성군이 올해 쓰는 교육비는 11억원으로 1인당 220만원꼴. 우리나라 평균 교육비(50만원)의 네 배가 넘는다. 특히 장성군 공무원은 1년에 130시간 교육을 받는다. 대한민국 공무원 평균은 고작 30시간이 안 되는데 말이다.
주식회사 장성군의 ‘민원인 10대 권리장전 | ① 모든 서비스를 편리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② 모든 서비스를 신속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③ 모든 서비스를 친절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④ 모든 서비스를 공평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⑤ 작은 것일지라도 기꺼이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⑥ 솜씨 좋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⑦ 개인에 대한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⑧ 행정에 대한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다 ⑨ 공무원에 대한 평가를 할 권리가 있다 ⑩ 민원 사무착오에 대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 |
“교육 효과가 금방 나오진 않지요.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빠져도 콩나물이 자라듯 교육 효과는 그렇게 서서히 나타나고 오래가는 것 아닌가요?” 김 군수는 직원들에게 경영 마인드를 불어넣었다. 행정도 경영이라고 보기에. 군수로 와서 살피니 이자 수익이 한 해에 4억9000만원이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 보통예금이었다. 이를 정기예금으로 바꾸니 이듬해 이자수익이 16억원으로 늘어났다. 그 이듬해엔 27억원, 지난해에는 46억원까지 올랐다. 공사 발주의 경우 10억원 이상은 외부에 용역을 주어 원가를 계산토록 했다. 그렇게 해서 몇 천만원씩 절약한 것을 모으니 수십억원이 됐다. 공무원들은 특히 연말이면 남은 자투리 예산을 모조리 쓰려 든다. 김 군수는 이를 철저히 막아 이월시켜 집중 투자하게 만들었다. 주식회사 간판을 내건 장성군은 투자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기업들이 찾진 않았다. 투자유치에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04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 협력업체들이 몰려오면서다.
“장성 공무원은 다릅디다” 경기도에서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던 한국물산도 그중 하나다. 이 회사 나정균 사장은 삼성전자가 백색가전 사업을 광주 하남공단으로 옮김에 따라 따라갈지, 아니면 업종을 바꿀지 고민에 빠졌다. 이 고민을 해결해준 게 바로 장성군 공무원의 발로 뛰는 서비스 정신. 다른 데서 적어도 2주 걸리는 토지사용 심의 허가가 하루만에 나왔다. 군에서 진입로를 뚫어주고, 길 양쪽 나무도 심어주었다. 석 달 만에 공장을 지어 납품했다. “담당 공무원이 서류를 직접 들고다니며 11명의 심사위원을 찾아가 결재를 맡아줍디다. 법으로 못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도와주더군요. 이 일로 공무원에 대한 선입견을 바꿨습니다.”
|
▶장성군 생활체육관인 홍길동체육관(왼쪽)과 디지털 도서관 아카데미하우스 전경. |
나 사장은 장성군 투자유치 홍보대사 역할을 자임했다. 삼성전자 협력업체 사장들이 전화를 걸어오자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그대로 설명했다. ‘장성에 가면 인허가가 쉽다. 땅도 알선해 준다’는 소문이 경기도에 퍼졌다. 그 소식을 듣고 모여든 중소기업이 2004년에만 29개다. “군수로 있으면서 장성군을 원없이 개방하려고 애썼습니다. 규제 심하고, 세금 많고, 공무원들마저 까다롭게 굴면 어느 기업이 옵니까?” 장성군이 98년에 제정한 ‘민원인 10대 권리장전’은 선언만이 아닌 실천으로 관공서 문턱을 낮췄다. 권리장전에 따라 민원실에선 ‘모래시계 보상제’를 도입해 민원이 늦게 처리되면 보상해준다. 2000년부터 나노산업 유치에 나섰다. 당시 전라남도에선 나노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였다. 그러나 2003년 포항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재차 도전해 바이오 분야 나노산업 유치권을 확보했고, 진원·남면 일대에 30만 평의 나노단지를 조성했다. 2009년까지 900억원의 중앙정부 지원 예산을 확보한 상태라서 나노업체 입주는 시간문제다. 시골 사람이라고 건강관리나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 김 군수는 150억원을 들여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시설을 갖춘 생활체육관을 만들었다. 매일 저녁 300여 명이 이용한다. 디지털 도서관도 세웠다. 군립 도서관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80억원을 들여 완전히 디지털화함으로써 국회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책도 볼 수 있다.
장성의 ‘최초 시리즈’는 계속된다 KTX를 타고 장성역에 내리면 택시·버스에서 독특한 기업통합 이미지(CI)를 발견한다. CHANGSUNG(장성)이란 영문 표기 밑에 파란색 반달(장성호)이 떠받치는 형상이다. 세계화·지방화 시대를 대비한 마케팅 전략으로 CI를 개발한 장성군은 브랜드 이미지(BI) 구축에 나서 농산물 64개 품목 234종에 패키지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 사과는 물론 마늘·깨·고추 포장재도 만들었다. 다른 데 농산물은 신문지로 둘둘 말거나 빈 상자에 담는 정도였는데 장성산(産)은 다르다. 장성에 가면 곳곳에서 홍길동 캐릭터를 만난다. 장성군은 홍길동을 허균의 소설 속 주인공에서 15세기 중엽 장성 아치실마을에서 살았던 실존인물임을 고증을 통해 입증했다. 이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세운 데 이어 290억원을 들여 홍길동테마파크를 건설 중이다. 소설에서 걸어나온 홍길동은 장성군에 돈이 되는 캐릭터로 부활한다. 지자체 중 처음으로 문화 콘텐트 사업에 뛰어든 장성군은 홍길동을 문구류 등 학습교재에 이어 인터넷을 이용한 캐릭터 다운로드 서비스에도 출연시킨다. 당시 라이선스 계약으로 올린 수입이 1억6000만원. 이때부터 김 군수에게 ‘홍길동 군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홍길동을 미키마우스나 포켓몬스터를 능가하는 캐릭터로 키우는 게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캐릭터를 세 번 바꿨어요. 지금 캐릭터는 모바일과 애니메이션 등 청소년에게 친숙한 모습입니다.” 팀제와 CI 도입 외에도 장성군의 ‘전국 최초’기록은 많다. 청와대가 홈페이지를 개설하기 일주일 전인 95년 12월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먼저 홈페이지를 열었다. 이와 함께 1인 1PC 운동을 전개하고 주민 정보화 교육에 앞장섰다. 97년에는 전국 최초로 전자결재 시스템을 도입하고, 토지민원 행정 종합전산화도 처음으로 추진했다. 김흥식 전 군수의 요즘 직업은 ‘혁신 전도사’다. 3연임 뒤 퇴임을 기다린 듯 중앙부처와 지자체, 대학, 기업체에서 특강 요청이 쇄도한다. 그의 혁신 이야기를 적은 책 『주식회사 장성군』(양병무 인간개발연구원장 지음)은 12월 일본에서 번역판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