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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달리는 ‘바이오토피아’

미래로 달리는 ‘바이오토피아’

▶오창 과학산업단지 전경. 오른쪽 옆으로 중부고속도로가 달린다.

중부고속도로 동서울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뽑아들고 달린 지 1시간, 깊은 산속을 지나던 고속도로가 평지로 빠져나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오른쪽에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곧이어 나타난 오창IC. 동서울에서 정확하게 100㎞ 거리다. 고속도로에서 본 아파트 단지는 오창IC 바로 옆에 위치한 오창과학산업단지.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다. 오창에 들어서면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8차로 도로가 시원스레 뻗어 있다. 도로 양 옆으로 이제 막 새 단장을 마친 듯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상가 지역을 벗어나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고층 아파트 단지가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올해 초부터 입주가 시작됐으며, 11월까지는 8400가구 모두 입주할 예정이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 곧바로 공장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창의 핵심인 산업단지다. 지난해부터 설비를 들여놓고 가동을 시작한 공장들은 신생 산업단지답게 겉모습부터 깨끗하다. 오창은 이처럼 상업지역과 주거지, 공장이 한데 모여 있다. 도시 전체가 이제 막 문을 연 듯, 그야말로 신도시의 초기 모습이다. 10월 18일 정식 개관한 충북보건의료산업센터 신용국 센터장은 “몇 달 전만 해도 저녁시간엔 불빛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적막했는데, 요즘은 아파트 주민도 늘고 직장도 많아져 음식점마다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고 말했다.

공장면적보다 넓은 녹지·택지 오창은 충청북도에서 개발해 만든 지방 산업단지다. 중부권 최대의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BT) 산업단지를 목표로 건설됐다. 80년대식 개념으로 보자면 공단이다. 그러나 기존 산업단지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공장이 들어선 생산용지는 전체 부지의 28%에 불과하다. 반면 공원과 녹지, 주거용지를 합치면 공장 면적보다 넓다. 그러다 보니 신도시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오창 남서쪽 끝의 생산단지를 벗어나 서쪽으로 10여 분, 새로 뚫린 길을 따라 12.5㎞를 달리면 드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야산을 파헤치고 논밭을 갈아 엎어 뻘건 황토가 드러난 140만 평 규모의 거대한 공사장이다. 벌판 곳곳에서 중장비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다. 토지공사가 부지 조성 공사를 벌이고 있는 오송생명과학단지다. 공사장 한복판에는 인근 오송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한 곳만 덜렁 남아있다. 오송 역시 오창과 마찬가지로 4000여 가구의 아파트와 50만 평의 산업용지 등이 포함된 복합단지로 개발되고 있다. 다만 오창과 달리 산업단지의 경우 철저하게 BT 분야로 특화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충청북도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오송 단지를 포함한 이 지역 일대 800만 평을 아예 신도시로 개발하겠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2025년까지 인구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개발한다. 국토의 한가운데에 놓인 충청북도, 그중에서도 청주 바로 위쪽에 새로 들어서고 있는 오창과 오송은 여러 가지 면에서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탁월한 입지가 돋보인다. 오송에는 KTX 호남선 분기역이 들어선다. 새로 건설되는 오송 신도시는 KTX 오송역을 중심으로 설계된다. 앞으로 건설될 행정수도와 오송 단지 간의 거리도 12㎞에 불과하다. 행정수도와 오송·오창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각각 10여 분 거리를 두고 나란히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고속도로망도 전국 어느 지역보다 잘 돼 있다. 경부와 중부선이 만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전국 어느 지역이건 두 시간이 채 안 걸린다. 한마디로 사통팔달이다. 게다가 청주국제공항이 5분 거리로 지척에 있다. 기업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곳이다. 대덕연구개발특구와 탕정 크리스털밸리도 불과 20~30분이면 닿는다. 청주 역시 자동차로 10분 남짓이면 닿을 정도의 거리다.


오창·오송이 성공하려면?


초광역 클러스터로 규모의 경제 달성 오창·오송과 대덕, 천안·탕정은 동일 경제권이나 마찬가지. 상호 연계시스템을 갖추면 얼마든지 시너지 효과 창출이 가능하다.

글로벌 선도기업과 R&D센터 유치 지금은 클러스터 경쟁시대다. 세계적 클러스터를 따라잡으려면 대기업이나 세계적 R&D센터와 손잡아야 한다.

내생적 인력양성 시스템 구축 첨단 지식이나 우수 인력은 외부 수혈로는 한계가 있다. 대학 유치를 통해 자체 공급을 늘려야 한다.

정교한 운영 소프트 마련 복합형 산업도시는 공단과 다르다. 주거·업무·상업 기능의 유기적 운영을 위한 미시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박용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오창과 오송은 충청북도에서 슬로건으로 내건 ‘바이오토피아 충북’ 건설의 핵심 사업지역이다. 충청북도는 “오창은 IT, 오송은 BT가 중심이지만 두 분야의 융합화를 통해 차세대 성장동력을 이끌어내는 쌍두마차가 될 것”이라고 한다. 형제처럼 힘을 합쳐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한다. 박경국 충청북도 기획관리실장은 “오창과 오송을 근간으로 한 IT·BT산업으로의 방향 전환과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이 오송으로 결정되며, 충북 발전의 호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오창은 형님, 오송은 동생 두 지역 가운데 형님 격인 오창은 96년 말 착공해 2001년 말 단지조성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당시 280만 평의 부지 가운데 분양률이 20~30%에 불과해 충북도에서 골머리를 앓았다. 사업 초기에 외환위기가 터져 이후 몇 년 동안 기업들의 투자가 꽁꽁 얼어붙었던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이 계약을 깨고 부지를 반납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2003년을 지나면서 기업들이 다시 찾아왔다. 투자를 재개한 기업들이 정부의 수도권 규제 등으로 수도권에서 마땅한 공장 입지를 찾지 못해 충청권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산업단지공사 충청지사 김경오 소장은 “행정구역은 충북이지만 도로망이 워낙 잘 돼 있어 기업들이 수도권과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게다가 대덕특구의 연구개발 인프라와 천안·탕정의 디스플레이 및 반도체 산업 등 주변 지역과의 네트워크가 얼마든지 가능했다. 충청북도에서도 각종 인센티브를 내걸고 IT와 BT 기업들에 손짓했다. 충북도는 전담팀을 만들어 부지 세일에 나서기도 했다. 산업과 연구·교육·주거 문화 등이 복합된 전원기술도시로 건설한다는 계획도 매력적이었다. 충청북도 측은 “2005년을 기점으로 오창이 정상궤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2006년 9월 현재 오창에는 기업용으로 마련한 121개 필지 가운데 119곳이 분양됐다. 이 가운데 89곳이 가동 중이며 나머지도 공장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다. 대기업 가운데는 LG화학이 2004년 3월 5만 평의 부지에 LCD 핵심부품인 편광판과 2차전지를 생산하는 최첨단 공장인 ‘오창테크노파크’를 완공해 가동 중이다. LG화학은 2010년까지 2차로 잔여 부지 5만 평에 공장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제약업체인 유한양행이 올 봄 공장을 준공했고, 녹십자 공장은 내년에 완공된다.

▶오송 생명공학단지 공사현장.

오창에는 외국인 투자용 부지도 24만여 평이나 된다. 이곳은 디스플레이 분야로 입주업체를 제한하고 있다. 일본계 기업인 스템코가 공장을 이미 가동 중이며 독일의 쇼트클라스는 8만 평 부지에 유리기판 공장을 신축 중이다. 오창단지관리공단의 최병구 부장은 “쇼트글라스의 투자 규모는 4억6000만 달러로 단일 제조업 분야 외국인 투자로는 최대 규모”라고 소개했다. 연구시설과 지원시설도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각각 분원을 오픈했다. 10월 18일에는 충청북도 보건의료산업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고령친화산업에 대한 지원을 하게 된다. 신생 벤처를 지원하게 될 충북테크노파크도 연내 이곳으로 옮긴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창의 고용 인원은 올해 6월 말 현재 6300여 명. 상반기 중 8200억원의 생산 실적과 5억5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신도시 모습도 차근차근 갖춰가고 있다. 올해로 입주가 끝나는 아파트 단지에 이어 단독주택까지 들어서면 오창은 인구 5만2000여 명 규모의 자족 도시가 된다. 이제 막 삽을 뜬 오송은 오창과 달리 미래형 신도시다. 충청북도의 기본 구상은 3단계에 걸쳐 모두 2조8000억원을 투자해 ‘유비쿼터스-바이오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다. 2025년까지의 장기 구상이다. 계획대로 마무리되면 아우(오송)가 형(오창)보다 훨씬 커진다. 오송 신도시 구상의 배경이 된 것은 행정도시와 KTX 호남 분기점인 오송역 건설이다. 충청북도는 “KTX 오송 분기역 건설이 확정되면서 국토공간의 핵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오송 신도시 건설이 필요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실 입지 면에서 볼 때 오송은 행정도시 배후지역이면서 생명과학도시라는 성격이 복합돼 있다. 그러면서 행정도시와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성격도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바짝 붙어 있지만 충남(행정도시)과 충북(오송)으로 행정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초광역 클러스터’로 활로 찾아야 현재 진행 중인 것은 1단계 사업. 토지공사의 부지 조성은 공정률 60% 선이다. 지난 6월 산업용지 51만8000평 가운데 22만 평을 대상으로 1차 분양에 나서 ㈜CJ가 4만4000평을 매입하는 등 지금까지 19만 평이 팔려나갔다.
나머지 부지 분양도 내년까지 단계적으로 하게 된다. 주거용지는 이미 다 팔렸다. 토지공사 오송사업단의 김본용 과장은 “오송은 분양가격이 평당 49만9000원으로 수년 전 분양한 오창의 45만원에 비해 싼 편이어서 관심을 갖는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산업단지공사 충청지사 황하중 소장은 “내년 하반기부터는 기업들이 공장 신축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창과 오송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서로 간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 오창과 오송은 두 곳 모두 BT 관련기관이 입주하며, 관련 기업들도 유치하고 있다. 적어도 BT 분야에서는 경쟁관계다. 이에 대해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사업단장은 “오창이 IT 특성화단지로 추진됐음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로 기업 유치가 어려워지자 다른 업종까지 유치하는 바람에 성격이 모호해졌다”고 지적했다. 세계적 대기업이나 R&D센터가 없다는 것도 약점이다. 부족한 기술을 보충해 줄 젖줄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신생 단지이다 보니 클러스터 모습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오창에 입주한 기업 중 상당수가 삼성전자 탕정 사업장의 협력업체인 점만 봐도 그렇다. 오창에서 온오프 매체를 발간하는 퍼스트데일리의 안태희 편집국장은 “아직은 천안·탕정 권역에 머물러 있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산학연의 한 축인 대학이 부족하다는 것도 약점이다. 오창 단지 내에는 충북대 제2캠퍼스 부지가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입주계획도 없다. 오창과 오송이 중부권 핵심 산업기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초광역 클러스터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된다. 충청북도 측도 “오창과 오송의 미래 생존 키워드는 초광역 클러스터”라고 말한다. 대덕연구개발특구 및 탕정크리스털밸리와의 연합전선 구축이다. 그러나 서로 간의 미묘한 입장 차이 때문에 그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퍼스트데일리의 조영호 대표는 “대덕은 R&D가 앞서 있고, 탕정은 삼성전자라는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지만, 오창·오송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초광역 클러스터가 만들어지면 오창·오송은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의 현실과 고민을 잘 말해 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를 따지기보다는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초광역 클러스터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용규 수석연구원은 “기존 산업단지처럼 저렴한 용지와 기반시설만 제공해서는 첨단과학단지가 성공하기 어렵다”며 “하드 인프라보다는 정교한 조성 프로그램과 운영 소프트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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