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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D클러스터 넘어 기업도시로 발돋움

LCD클러스터 넘어 기업도시로 발돋움

▶삼성전자의 탕정 LCD 1단지 전경. 왼쪽 공사 중인 건물이 8세대 라인 공장. 가운데와 오른쪽 두 건물은 7세대 라인공장. 뒤쪽 아파트가 직원 기숙사이다.

충청남도 천안시와 아산시의 경계선에 자리 잡은 KTX 천안아산역. 서울역을 출발한 KTX가 광명역에 이어 두 번째로 정차하는 곳이다. 최고 시속 300㎞를 넘나드는 KTX를 타고 불과 39분. 서울 시내 직장인들의 웬만한 출퇴근 시간과 비슷하다. KTX 개통 이후 충남 지역과 수도권 사이의 거리감이 바짝 좁혀졌음을 실감케 한다. 천안아산역을 벗어나 도로 좌우로 군데군데 늘어선 포도밭 사이를 달린 지 10여 분,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서자마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나타난다. 곧 이어 아파트 20층 높이는 될 듯싶은 커다란 박스형 건물이 시야에 들어찬다. 가로 116m에 세로 362m나 된다. 한 층의 단면적이 축구장의 5.5배가 넘는 크기다.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 200번지. LCD 분야에서 단일 공장으로는 국내 최대이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삼성전자 LCD 탕정 사업장이다. 현재 가동 중인 1단지 규모만 해도 74만6000평이다. 기초공사가 진행 중인 2단지 63만9000평까지 합치면 140만 평 가까이 된다. 앞서 본 아파트는 여기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 탕정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직원 가운데 1000명 정도가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탕정(湯井)은 한자 표기에서 보듯 뜨거운 물이 솟는 우물, 즉 온천지역을 뜻한다. 지금은 10여 분 거리의 온양온천이 유명하지만, 옛날엔 지금의 탕정면을 포함해 이곳 일대를 모두 탕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요즘은 포도 산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 초가을이면 탕정 LCD 사업장 곳곳에 달콤한 포도향이 퍼진다. 야산과 포도밭, 논밭이 뒤섞여 있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 들어선 탕정 사업장은 아산과 천안을 잇는 이른바 ‘크리스털밸리’의 핵심 사업장이다. 2005년 4월 1단계 공사가 완공되고 공장 가동이 시작되면서 삼성전자의 LCD 사업을 주도하는 LCD 총괄 본사도 기흥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경기도 파주에 들어선 LG필립스LCD와 함께 세계 1위의 우리나라 LCD 사업을 주도하는 곳이다. 한적하기 짝이 없던 농촌이 불과 몇 년 새 세계적인 LCD 단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세계 최대의 LCD단지 삼성전자의 LCD 사업장은 모두 세 곳에 있다. 그러나 세 곳 사업장의 규모는 크게 차이가 난다. 가장 먼저 들어선 기흥 공장은 불과 1만 평 정도다. 휴대전화 등에 사용되는 소형 LCD를 만든다. 두 번째 사업장은 천안에 있다. 모니터용 제품을 주로 생산하며 9만 평 규모다. 탕정 사업장은 경기도 남부의 기흥, 충남 천안과 차례로 연결되는 벨트의 끝 부분에 들어섰다. 규모 면에서 기흥이나 천안은 탕정과 아예 비교가 안 된다. 탕정이 한마디로 말해 거대해서다. 탕정의 첫 번째 생산라인인 7세대 라인만 들어섰는데도 이 정도다. 삼성이 LCD를 미래 수종사업으로 보고 외환위기 이후 집중 투자한 결과다.


세계 1위 LCD 유지하려면


기업·지자체·정부 간 협력 강화 첨단 산업일수록 신속한 사업 전개는 필수.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관련 기업 간 지식교류 프로그램 마련 기업 간 파트너십 없이는 클러스터도 불가능.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 뛰어넘는 공동의 어젠다를 개발하라.

부품·소재 기업의 전략적 육성 부가가치 높이려면 핵심 부품 소재 국산화는 필수. 대학과 연계한 효과적인 기술개발 추진체계를 만들라.

지속적인 투자 여건 조성 LCD는 대규모 장치산업. 차세대 라인에 대한 투자 시기 놓치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히 대비하라. 박성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천안과 탕정의 LCD 사업장을 일컫는 크리스털밸리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해 붙인 이름. 탕정 라인의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2004년 6월 23일 이건희 삼성 회장 주재로 천안 사업장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사장단 회의에서 정식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삼성은 크리스털밸리를 세계적인 디스플레이 단지로 육성하기 위해 탕정 사업장에 2010년까지 20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어 2015년까지 10조원을 더 투자한다. 크리스털밸리의 핵심 사업장인 탕정에서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40인치와 46인치 대형 TV용 LCD 패널을 만든다. 이곳에서 만든 패널을 삼성전자가 넘겨받아 LCD TV를 만들어 국내외 시장에 내다 판다. 2006년 9월 19일 탕정 사업장에선 큰 자축 행사가 열렸다. 공장 가동 1년5개월 만에 TV용 패널 1000만 개 생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여기서 생산된 패널을 펼쳐 놓으면 133만 평이나 된다. 삼성전자 LCD 총괄 이승호 부장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라고 자랑했다. 유럽 등 세계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올해 4월 출시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100만 대가 팔려나간 보르도 TV도 탕정 사업장에서 만든 LCD 패널로 만든 제품이다. 현재 탕정 사업장에서 가동 중인 생산라인은 7-1과 7-2 등 두 개. 두 라인 모두 가로 1870㎜ 세로 2200㎜ 크기의 7세대 유리기판을 만든다. 2005년 4월 가동에 들어간 7-1라인은 삼성전자와 일본 소니의 합작회사인 S-LCD가 투자해 만든 것이다. 한 달에 7만5000장의 유리기판을 생산해 삼성전자와 소니가 절반씩 가져간다. 7-2라인은 삼성전자가 독자 추진한 생산라인으로, 월 생산규모는 7만5000장. 이 두 라인은 추가 투자를 거쳐 2007년 초면 모두 월 18만 장의 기판을 쏟아내게 된다. 7세대 유리기판 한 장으로 40인치 TV용 패널 8장을 만드는 것을 감안하면 한 달에 144만 대, 연간으론 1728만 대까지 TV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7세대 라인 바로 옆에는 가로 2200㎜ 세로 2500㎜ 크기의 유리기판을 만들 수 있는 8세대 라인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에서는 내년 가을부터 50인치대 TV용 패널을 만들게 된다. 8세대 투자가 끝나면 9, 10세대 라인도 차례로 세워 2010년까지 가동할 계획이다. 여기까지가 탕정 1단지 계획이다. 이어 탕정 2단지에는 2015년까지 10조원을 더 투자해 11, 12세대 라인을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탕정은 40인치 이상 대형 LCD 제품 시장을 주도하는 세계적인 생산기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연간 매출은 10조원을 넘게 된다.

미래형 도시 2015년에 완공 탕정 사업장이 지향하는 것은 세계 최첨단 LCD 클러스터이다. 이를 위한 협력단지 조성도 활발하다. 충남도는 현재 아산시 둔포 지구에 72만 평 규모의 협력업체 단지를 조성 중이다. 천안과 아산 등 충남 일대의 기존 협력업체들도 클러스터에 포함된다.
천안 2공단에 위치한 세메스는 LCD 세정장비 등의 국산화에 성공, 관련 장비들을 탕정 사업장에 공급하는 업체다. 이 회사 이승환 대표는 “LCD는 장비가 갈수록 대형화되는 데다 모기업과 협력업체가 장비를 공동 개발해 설치하는 경우가 많아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야 생산라인에 혹 문제가 발생해도 즉각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기업을 중심으로 협력업체가 집결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클러스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탕정과 천안 일대는 LCD 클러스터가 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삼성전자 탕정 사업장 가동에 맞춰 충남도와 아산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아산신도시 조성사업이다. 탕정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산업단지’나 ‘클러스터’의 개념을 뛰어넘어 자족적 복합도시를 만드는 게 목표다. 신도시의 규모는 상업지구와 업무지구 중심의 1단계 111만 평(배방지구)과 주거지 중심의 2단계 510만 평 등 모두 621만 평 규모. 1단계 사업지구인 KTX 천안아산역 바로 옆 현장에선 요즘 야산을 깎아내는 중장비 소리가 시끄럽다. 이곳에는 66층짜리 주상복합 건물과 55층짜리 아산신도시타워도 들어설 예정이다. 아산신도시타워는 63빌딩보다 높은 285m 높이로 설계됐다. 아산시 유선종 홍보계장은 “이 타워는 아산신도시 1단계 사업의 핵심으로 2010년 완공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1단계 사업지구와 탕정 LCD 사업장 사이에 놓여 있는 2단계 사업은 4만8000여 가구, 14만여 명이 사는 미래형 도시로 꾸며져 2015년 완공된다. 탕정 LCD단지와 아산신도시 조성 이후에 대한 충남도와 아산시의 기대감도 사뭇 높다. 충남도는 2015년 이후 탕정 단지가 정상 가동될 경우 연간 300억 달러 생산 및 240억 달러 수출, 5만 명 고용효과, 국세 8600억원 지방세 1500억원의 세수 증대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첨단 산업지구이자 아산신도시의 핵심인 탕정 LCD 단지가 불과 2~3년이라는 짧은 시일 안에 성공하게 된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존 클러스터를 최대한 활용한 데다 삼성전자의 적절한 투자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우선 삼성전자가 탕정에 투자하게 된 배경은 ‘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투자침체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미래사업으로 꼽히던 LCD 분야에 투자를 계속했고, 때마침 90년대 중반 확보해 놓았던 탕정의 땅(지금의 1단계 사업부지)을 자연스레 LCD 총괄에서 활용하게 됐다. 탕정은 인접한 천안의 기존 LCD 클러스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국내 어느 지역보다 비교우위에 서 있다.

2009년엔 1억대 이상 팔릴 듯 삼성전자의 LCD 전략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삼성전자 측은 발 빠른 투자와 표준화, 기술력 등 세 가지를 꼽는다. LCD TV 시장의 성장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등 외부 여건도 좋았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세계 LCD TV 시장 규모는 올해 4900만 대에 이르고 2009년에는 1억 대를 넘길 전망이다. 이상완 사장은 지난해 “향후 디지털 TV 업계에 해일과 같은 파도가 몰려올 것이며 디스플레이 빅뱅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빅뱅의 주역이 탕정이 될 것임을 전제로 한 발언이었다. 충청남도 등 지자체의 지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충청남도는 특히 2단지 사업을 위해 행정부지사를 팀장으로 한 ‘삼성지원팀’을 구성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 화제가 됐다. 지자체가 특정 기업을 위해 전담팀을 구성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그 결과 개발계획 수립에서 공사 착공까지 통상 36개월 정도 걸리는 행정절차 이행기간이 불과 13개월 만에 끝나 삼성전자의 2단계 사업에 숨통을 터줬다. 그렇다고 장밋빛 앞날이 펼쳐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성배 수석연구원은 “한국 LCD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긴 하나 2004년 20%가 넘던 수익률이 불과 1~2년 사이 5% 이하로 하락했다”며 “공들여 구축한 초대형 클러스터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공정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산신도시는 삼성전자의 LCD 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점에서 기업도시에 가깝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계획된 기업도시는 아니지만, 탕정 LCD 사업장을 중심으로 협력업체가 들어서는 등 자연발생적인 기업도시의 성격을 띨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업도시건 클러스터건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선 양적 팽창 못지않게 질적 성장에도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 산학연 유기적 협력이 뒤따라야 한다. 일단 지역 대학들의 움직임은 긍정적이다. 호서대·선문대 등은 앞다퉈 디스플레이 산업 관련 교육센터를 설치하거나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만으로는 고급 연구인력 공급에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30여 분 거리인 대덕연구개발특구의 박사급 두뇌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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