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vs 공정위 법정까지 간‘결투’
신세계 vs 공정위 법정까지 간‘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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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지철호 독점감시팀장은 국정브리핑 사이트에서 블로그(http://blog.korea.kr/ji5502)를 운영한다. 지 팀장은 2006년 10월부터 이 블로그에 ‘이마트의 궤변’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시리즈 첫 글의 제목은 ‘요구르트 가격에 숨겨진 경제학’. 지 팀장은 이 글에서 신세계 이마트의 지점 11곳에서 파는 요구르트 묶음의 판매가 추이를 비교했다. 주변에 다른 경쟁 할인점이 없는 이마트 매장 5곳의 요구르트 값은 1년 내내 1,600원 수준이었다. 반면 다른 할인점과 경쟁하는 이마트 6개 매장은 훨씬 낮았다. 그 중 한 곳에서는 한때 1,050원까지 떨어져 약 2개월 동안 그 수준에 머물렀다. 다른 곳에서는 1년 중 몇 주만 빼고는 대부분 1,400원 선이었다. 이 사례를 통해 지 팀장은 “이마트도 다른 기업처럼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을 인하하고 독과점적 지위에 있으면 가격을 인상한다”고 썼다. 이어 “(따라서 이마트의 월마트코리아 인수 이후) 독과점적 지위를 갖는 일부 (지역의 월마트코리아) 할인점을 매각하도록 시정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세계는 이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논리라며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매장별로 값을 낮춰 판매한다. 또 많은 품목을 비교해 봐야지 가격 데이터의 일부만 놓고 따질 수는 없는 문제다.”
소송으로 치달은 입장 차이 = 양측의 상반된 시각은 신세계가 2006년 5월 월마트코리아의 16개 점포를 인수하고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하면서부터 하나 둘 언론보도 등을 통해 드러났다. 심사는 깐깐하게 진행됐고 과연 공정위는 9월 전원회의를 열어 신세계에 4·5개 월마트 매장을 매각하라는 시정명령을 의결했다. 신세계는 심사 대리인을 맡긴 김&장 법률사무소에 자문을 구한 뒤 11월 30일 마침내 ‘선전포고’를 했다. 구학서 부회장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공정위를 상대로 매장 매각명령에 대한 행정소송을 내겠다고 밝힌 것. 신세계가 12월 12일 서울고등법원에 공정위의 시정명령 취소를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하면서 공방은 법정으로 비화됐다. 신세계와 공정위의 입장은 두 가지 참고자료에 집약돼 있다. 하나는 ‘국내 대형할인점시장 구조개편 및 경쟁제한성에 관한 분석’ 보고서(이하 보고서). 신세계가 한국산업조직학회에 의뢰해 작성됐다. 연구 책임자는 정갑영 연세대 원주캠퍼스 부총장. 다른 하나는 공정위 의결서. 의결서에는 여러 자료와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보고서도 일부 반영됐다. 쟁점은 세 가지. 첫째가 ‘상품시장의 획정’으로, 이는 시장의 범위를 종류별로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뜻한다. 둘째는 시장의 지리적 경계를 어디까지로 그을 것인가 하는 ‘지리적 시장 획정’이라고 한다. ‘경쟁제한성’이란 기업결합 이후 경쟁을 제한하는, 즉 값을 비싸게 받는 등의 가능성이 높은가를 따져 보는 것이다.
요구르트는 대표적인 사례인가 = 공정위 의결서와 지 팀장이 거론한 ‘요구르트’는 경쟁제한성과 관련한 사례. 이 사례에 대해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단편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 교수는 같은 학부 정진욱 교수, 김동훈 일본국제대 조교수와 함께 분석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기업결합 후 이마트가 경쟁을 제한할지와 관련해 현재 이마트가 독점적인 지역에서 시장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시장점유율이 높을수록 값도 비싸야 한다. 보고서는 이마트의 시장점유율과 매장별 가격에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회귀분석했다. 매장별 가격은 판매금액 기준 100대 품목의 가중평균으로 잡았다. 분석 결과 시장점유율과 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방식으로 분석해 본 결과도 비슷했다. 보고서는 인근 10km에 다른 할인점이 없어 독점적으로 장사하는 평택·군산·김천·강릉 등 13개 매장과 나머지 경쟁지역 매장의 가격을 비교했다. 보고서는 “이마트가 독점적 지역에서 다른 지역보다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한다는 유의미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독점지역에서 100대 품목 중 76개는 비독점지역보다 더 비쌌지만 26개는 더 저렴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점포별 영업이익률도 비교했다. 이마트가 독점지역에서 우월적 시장지위를 활용해 다른 지역보다 큰 이익을 챙겼는지 확인해 본 것. 김 교수는 보고서에서 “독점지역의 평균영업이익률은 9.7%, 비독점지역은 9.4%로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정위의 지 팀장은 기자와 만나 “통계는 기법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 있다”며 “이마트 독점지역에서 요구르트 외에도 약 30개 품목의 가격이 경쟁지역보다 높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보고서는 면밀하게 조사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자료를 손질할 의도가 있었다면 독점지역에서 값이 더 비싼 품목의 수 76개를 밝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장하려면) 근거를 갖고 얘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 팀장은 이와 관련한 추가 질의에 “30개 품목은 모두 100대 품목에 속해 있다”면서도 “현 단계에서 세부 품목을 밝히기는 곤란하다”는 e메일 답변을 보내왔다.
신세계의 최저가격신고보상이 많은 까닭 = 경쟁제한성과 관련해 지 팀장은 최저가격신고보상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최저가격신고보상제란 인근의 다른 매장보다 비싸게 파는 상품이 있음을 알려 주는 소비자에게 5,000원을 현금·상품권으로 지급하거나 가격차액의 2~10배를 보상해 주는 제도. 이마트는 신고받은 값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면 자체 매장 판매가를 낮춘다. 신세계 이마트뿐 아니라 다른 할인점도 이 제도를 운영한다. 지 팀장은 “이마트의 보상건수가 다른 3개사 평균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마트의 보상건수는 나머지 3개사 평균에 비해 2003년 4배, 2004년 17배, 2005년 17배나 많았다. 그는 “이를 통해 이마트가 값을 비싸게 받으려다가 고객의 신고에 따라 값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할인점 경쟁이 치열한 지역일수록 보상건수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신세계 경영지원실의 성낙구 부장은 “보상건수가 많은 건 당연한 일”이란 반응을 보였다. 이마트가 다른 할인점보다 규모가 크고, 슈퍼마켓과 재래시장을 비교한 최저가격 신고도 받아들였으며, 영수증 없이 전화로만 신고해도 보상해 줬다는 요인을 들었다. 지 팀장은 보상건수 차이는 그런 요인들로만 돌리기에는 너무 크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연세대 김 교수는 “(이마트가 최저가격신고보상제를 그런 의도로 운영했다면) 그 결과 경쟁지역의 가격이 독점지역보다 낮아야 하는데, 앞에서 말한 대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슈퍼마켓 등도 포함할 것인가 = 구 부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독일 등 해외 사례를 보니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독일 사례란 독일 연방카르텔청이 2006년 10월에 독일 유통업계 2위인 메트로(Metro) 그룹의 월마트 점포 85개 인수에 대해 조건 없이 승인 결정을 내린 것을 말한다. 이 같은 결정은 신세계처럼 현지 업체가 세계 1위 유통업체인 월마트(WalMart)를 인수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공정위의 지 팀장은 이에 대해 “메트로 그룹과 월마트를 합쳐도 시장점유율이 23%에 그치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마트는 2005년 매출 기준 시장점유율이 32.4%로, 3.2%인 월마트와 합치면 37%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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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시장을 긋는 근거 논란 = 공정위도 자주 거론하는 해외 사례가 있다. 지 팀장은 ‘이마트의 궤변’ 시리즈 네 번째에서 “여러 나라에 많은 사례가 있지만 유통 분야는 물론 경쟁법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1등 사례’ 하나로 충분할 것”이라고 적었다. 1등 사례란 미국 사무용품 전문 대형유통업체인 스테이플스(Staples)와 오피스디포(Office Depo)의 1997년 결합 건을 말한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두 회사가 결합하면 경쟁을 저해한다는 의견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합병을 불허했다. 스테이플스는 “우리와 같은 전문 대형유통업체 외에도 컴퓨터 사무용품업체와 일반 할인점도 사무용품을 다룬다”는 입장이었다. FTC는 그러나 사무용품 전문 대형유통업체가 형성한 시장을 따로 구분해 심사했다. 공정위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같은 사례를 신세계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신세계의 성 부장은 “스테이플스-오피스디포 건에서 시장을 좁게 획정한 것은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스테이플스가 독점지역에서 경쟁지역보다 13% 비싸게 판매했지만 독점지역 소비자는 일반 할인점 등 다른 곳으로 구매를 전환하지 않았다. 이런 근거가 있었기에 FTC가 시장을 사무용품 전문 대형유통업체로 한정한 것이 타당했다는 것이다. 신세계는 “반면 공정위는 단순히 고객과 사업자가 할인점을 별도 시장으로 인식한다는 등의 구분지표로 시장 범위를 정했다”고 비판했다. 공정위는 “할인점의 특성, 할인점에 대한 법·제도, 소비자 인식, 국내외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지 팀장은 “할인점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다른 업태로 구매를 전환하는 경향이 매우 낮다는 증거도 다양하게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지리적인 시장의 범위 공방 = 신세계는 할인점의 지리적 시장을 전국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할인점들이 판촉·제품 선정 등 영업의 주요 사항에 관한 의사결정을 개별 매장이 아닌 본사 차원에서 내리기 때문이란 근거에서다. 반면 공정위는 “그렇다 하더라도 각 점포가 가격 결정·판촉 등에서 지역별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공정위는 이 같은 시각에 따라 매장을 중심으로 한 반경 5km(지방도시는 10km)의 원을 기본적인 지리적 시장으로 파악했다. 그 뒤 이 지리적 기준에서 인수 전에 경쟁하지 않았던 이마트와 월마트 점포는 심사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어 시장집중도가 낮은 지역을 또 제외한 뒤 서울, 인천·부천, 안양·평촌, 성남·용인, 대구, 포항 등 6개 지역을 집중 심사했다. 이들 6개 지역에서는 월마트 매장을 중심으로 위와 같은 반경의 원을 그린 뒤 이 원에 포함된 모든 할인점을 중심으로 다시 동일한 반경의 원을 한 번 더 그려 시장의 범위를 정했다. 그렇게 잡은 시장에서 이마트가 독점이 되거나 심사 기준상 경쟁을 크게 저해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매장을 매각하란 시정명령을 내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신세계의 구 부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길 자신이 없으면 소송을 제기하겠느냐”고 되물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제 법정에서 법리와 경제 논리로 따져볼 때다.
“매각명령은 너무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월마트코리아의 계양점·중동점(인천점을 매각하면 계양·중동점을 유지 가능)·평촌점·대구시지점·포항지점 등 4·5개 매장을 6개월 이내에 매각하란 시정명령을 내렸다. 신세계와 공정위의 입장 차이는 4·5개 매장 매각이란 시정명령에서도 뚜렷하다. 신세계는 “월마트 종업원의 고용승계 약속을 지켜야 하고 매장을 매각하기도 힘들다”고 주장한다. 매장을 매각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에는 매각 대상자 제한도 있다. 공정위는 “백화점을 제외한 대형종합소매업에서 상위 3사에 속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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