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근무하면 연봉이 두 배
코트라는 1962년 대한무역진흥공사로 창립된 후 95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로 그 명칭을 변경했다. 설립 당시 “무역진흥과 국내외 기업 간의 투자 및 산업기술 협력의 지원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이란 거창한 모토를 내세웠다. ‘수출입국’에 정권의 명운을 건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와 염원이 철저하게 구현된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국내 기업을 위한 해외 수출시장 개척이란 고유의 업무와 함께, 최근에는 외국인 투자 유치, 외국인투자 기업의 정착 지원 및 고충 처리도 주요 업무로 부상했다. 정부 수임사업을 수행하면서 국가 무역 및 투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코트라의 주요 기능이 됐다. 2005년 기준 매출액 약 2000억원, 당기순이익은 5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비영리 무역투자진흥기관으로서 당기 순이익을 일반 기업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왜 신이 내린 직장인가 | · 무주택 지원 4000만원 융자 · 대학생 자녀 학비 무이자 융자 · 해외 순환근무 기회 부여 | |
현재 코트라의 임직원은 634명. 본사는 4본부, 4실, 29팀으로 구성돼 있고 해외에는 8개 지역본부, 100개 무역관을 운영한다. 전 세계 73개 국가에 코트라의 지역본부가 나가 있다. 신입사원 초임은 성과급 포함, 약 3000만원이다. 승진체계는 3직급 또는 4직급으로 이뤄져 있고 승진시에는 각각 2년 정도가 소요된다. 코트라는 최근 트렌드로 정착한 선택적 복리후생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각 복지항목을 임직원 개인의 기호에 맞게 자유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는 국내 근무 직원에게만 이 제도가 적용된다.
여직원 채용 비율 45%나 일단 코트라에 입사하는 신입사원들은 약 5000만원에 이르는 회사 자금을 아주 싼 이자로 빌려 쓸 수 있다. 주택자금 대부는 주택 구입 및 임차를 희망하는 무주택 직원에게 4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운영돼 생활안정자금으로 개인당 1000만원씩의 융자도 가능하다. 중·고등학교 취학 자녀에게는 학자금 전액이 무상으로 지원되며 대학교 취학 자녀가 있는 경우 학자금 전액을 무이자로 빌려준다. 코트라는 일반적인 공기업보다는 확실히 업무 강도가 세다. 흔히 생각하는 오후 6시 칼퇴근은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사업 성수기에는 주말 야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이 노력하면 다양한 교육 및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확실히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초봉도 은행권에 비하면 적지만 대기업이나 제2금융권보다는 많이 받는다. 코트라의 특징은 순환근무다. 처음에는 국내 근무 3년 후 해외 근무를 4년하고, 그 후에는 국내 근무 2년, 해외 근무 3~4년으로 계속된다. 해외 근무 때에는 해외파견 수당 등으로 국내근무 때보다 약 2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을 수 있고 자녀교육 등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여직원의 경우 결혼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고민거리가 생길 수 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조직이 더 크기 때문에 예외란 있을 수 없으며, 해외파견을 나가길 원하지 않으면 퇴사해야 한다. 최근 2005년 여직원 채용비율 40%, 2006년도 여직원 채용비율 45%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며, 회사에서도 여직원에 대한 예외적용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해외파견 시에는 전공 및 직무와 연관된 지역으로 파견되지만 국내근무 시에는 전공과 상관없이 거의 세계 전 지역을 대상으로 일하기 때문에, 영어는 그야말로 필수다. 코트라는 당연히 국제적인 감각의 인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 회사 이래서 좋다 |
“치열한 공동체 정신에 반했어요” 보통 공기업이라고 하면 고루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입사하기 전부터 우리 회사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역시 ‘공사(公社)’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함을 느끼는 것에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입사 과정에서 느낀 회사의 인상은 그동안 일했던 어떤 대기업, 어떤 외국계 기업보다 활기차고 신선했기에 기대감에 들떠 첫 출근을 했고, 첫날부터 이런 기대는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OJT 과정과 관련 업무를 세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선배, 해외에서 막 귀임해 업무에 정신없어도 까마득한 후배에게 다정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차장·과장님, 열심히 업무를 익혀나가는 소중한 같은 부서 동기와 함께 좌충우돌하면서 ‘공사 창립 이래 최초 기획조정실 신입 여사원’의 1년은 계속되는 야근 속에 그렇게 흘러갔다. 전 세계 코트라(KOTRA) 무역관을 통해 모르는 것을 그때 그때 메신저로 또는 전화로, 시차에 상관없이 선배들을 괴롭히고 혼나기도 하면서 나의 업무 능력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KMS에 대해 알려주고, 제안에 대한 의견을 호주 시드니에서 보내주기도 하는가 하면, 인트라넷을 통해 내부 조직원끼리 다양한 케이스를 공유하고, 많은 사업과 업무 절차에 대해 서로 질문을 던지고 해결해 나갔다. 업무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느끼던 2005년 말 무렵, 처음으로 TFT에 발령받게 되었다. 2005년 한 해 동안 우리 공사가 수행한 사업 및 경영활동에 대해 정부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받기 위한 전담반이었기에 공사 업무에 대해 환히 꿰고 있어야 했다.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달려들었으나 곧 능력 부족을 깨달았다. 결국 지식의 공유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새롭게 배우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이제 나의 동기를 포함한 많은 분이 해외 발령을 받아 세계 곳곳에서 일하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 본사 기획조정실에서 나는 또 다른 해외 귀임 선배들을 맞아 그들의 노하우와 업무능력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또 나처럼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각오가 되어있는 후배들을 맞아 능력껏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본사와 73개국, 100개 무역관(2006년 12월 기준)을 통해 우리 코트라 직원 모두가 대한민국의 수출과 투자를 위해 노력하고, 그 열매를 맺고 있다. 수출 3000억 달러 시대에 고객을 위해 뛰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내가 존재하고 일하는 보람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최명례(경영혁신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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