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멍청한 것들 만날 시행착오야”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멍청한 것들 만날 시행착오야”
|
日, 가지마건설이 설계 맡아
일본에서 조선소는 가지마건설이 도맡아서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쿠라마 소장이 자문을 하면서 한국말을 배워가지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이 남겼다는데 회장님도 들으셨습니까? “하하항, 가지마건설을 된발음으로 하면 카지마가 돼요. 우리 직원들도 카지마, 카지마, 그랬어. 그런데 울산 사람들이 경상도니까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그카지마, 그카지마, 그러거든? 근데 그때 조선소 밖에 찻집이 하나 생겼던 모양이야. 연구소장이 점잖은 사람인데 어쩌다 거기 레지 손을 한번 잡으니까 그 아가씨가 ‘그카지 마요 그카지 마요’ 그랬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소장이 ‘응, 나야, 응, 나야’ 그랬다는 거야, 하하항. 그카지 마요 하니까 자기가 그 카지마 맞다 그거지. 그래가지고 사이가 좋아져서 우리 직원들이 엄청 자료를 얻었대. 나도 얼마나 웃었는지 말이야. 하하항. 별일 다 있었지.”
미쓰비시조선소도 가지마에서 짓지 않았습니까? “맞아. 미쓰비시와 가와사키 조선소도 건설은 가지마건설이 맡았어요. 우리가 처음부터 가와사키 규모 이상으로 조선소를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에 가지마의 자문을 받은 거지요. 그런데 규모나 공장 레이아웃은 스코트리스고에서 자문을 했으니까 기본 도면은 영국에서 가져왔고, 건조에 필요한 상세도면이 없었는데 그것은 가와사키에서 얻었어요. 젠지 우메다 회장하고 아주 가까워서 그걸 얻은 거예요. 배를 건조하자면 반드시 있어야 되는 상세도면인데 그걸 아무나 주나? 사실 그분 덕분에 첫 배를 완성시켰어요. 상세도면에 대해 지도도 해 주고. 도면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거든. 도면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가와사키가 전적으로 잘 도와주지 않았으면 첫 번 배를 제 날짜에 만족스럽게 만들어서 인도하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당시 건조 현장에서 뒹굴었던 엔지니어들의 기억은 가와사키가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섬세한 설계를 제시해 과연 그대로 해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이 많았다고 했다. 현장의 건조팀들은 가와사키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잡아먹게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정일 전 미포조선 회장도 그랬던 기억을 풀어놓았다. “우리가 6호선까지는 일본 가와사키(KHI)조선소의 설계로 제작을 했고, 7호선부터 현대도 설계에 참여해 8호선부터는 현대가 독자적으로 기본 설계를 했는데 초창기 때는 가와사키도 감독을 했지만 유럽 쪽에서 감독이 많이 왔었어요. 선박 건조를 우리가 잘 모르니까요. 그럴 때 도면상으로 요구한 것이 정밀기계 허용오차 정도로 아주 정확하게 만들라고 돼 있었단 말입니다. 그건 실제로 시간만 낭비하는 건데, 포항제철에서도 산소공장의 기초 같은 것을 할 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기계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너무 정밀하게, 예를 들면 10배 이상으로 정밀하게 표시하는 일도 가끔 있었어요. 물론 왜 그렇게까지 요구하는 도면을 줬을까에 대해서는 여러 시각이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골탕을 먹이고 시간을 끌게 하자는 속셈이 아니냐 하는 소리까지 나왔지만 결국은 당시 우리 엔지니어들이 너무 정밀하다 싶어서 일반적인 기준으로 해버렸거든요? 그랬더니 통과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엔지니어들의 판단이 맞은 거지요.”
설계도는 배를 발주하는 선주 측에서 가져오지 않습니까? “리바노스도 그랬지만 배를 수주할 당시에 선주들은 주로 중요 재원만 얘기를 하지요. 이러이러한 배다, 배기량은 얼마고, 짐은 얼마를 싣고, 엔진은 대략 어떠어떠한 것을 써라, 상세설계까지 선주가 해오는 경우도 극히 드물게 있긴 했지만 대부분 재원만 정해서 오면 그때부터 우리가 상세설계에 들어가는 거예요. 물론 처음에는 우리한테 설계를 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가와사키에서 완성돼 있는 설계를 가지고 와서 시작을 했지요. 그걸 일명 생산설계라고도 하는데 좌우간 시행착오라는 착오는 다 겪어가면서 한 거야.”
자체적으로 설계 능력이 안 되면서 시작을 했으니 오죽 시행착오가 많았겠습니까? “발주자가 보내오는 1차 설계는 사실 설계도도 아니고 그냥 그림이거든? 자기들이야 머릿속에 들어있으니까 알지만 그걸 가지고 생산부에서 배를 만들 수는 없지요. 그래서 상세설계에 들어가는데 그때부터는 필요한 자재가 도면에 나오니까 즉시 자재 발주를 해야 되거든? 자재가 오늘 발주해서 내일 들어오는 게 아니고 구매 기간이 필요한 거니까. 철판만 해도 지금은 대부분 포항제철에서 들어오는데 그 당시는 일본에서 들어오는 게 많아서 시간이 걸리지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자재 구매에서부터 시행착오야 멍청한 것들이 말이야, 하하항. 그래도 뭐 기업은 시행착오가 투자이기 때문에 후회는 한 적이 없지만 하여간 가와사키의 도움이 컸고 조선소 입지도 가와사키 회장이 직접 와서 나하고 같이 둘러봤던 기억이 나요.” 조선소 입지는 적합성을 검토하는 일이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입지 선정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피를 말리는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현대가 제2제철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사실은 남궁연 사장이 입수했다는 일본의 군사자료를 참고해 가로림 지역까지 조사했지만 그 많은 것을 일본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새롭게 알려진 사실이다.
|
처음에는 설계도면도 볼 줄 모르고 설계도가 없기도 해서 일본 것을 훔쳐오기도 하고, 열성들이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훔쳐오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훔쳐왔다고 혼낸 적도 한 번도 없고. 하하항. 일본에서 저네들끼리 술 한잔 하면서 얻어온 정보는 있을지 모르지만 훔쳐온 것은 없고, 가와사키가 협조를 잘 해주었으니까요. 다만 방금도 얘기했지만 뭣보다도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그때 수량을 뽑는 것도 보면 전부 잘못 뽑아가지고, 이를테면 철판을 주문하는데 배 6척 만들 만큼만 하면 되는데 얼마나 주문했는지 12척을 만들어도 물자가 태산같이 남았어. 그렇게 서툴렀다는 얘기예요. 당시에는 설계부장이라든가 그런 사람들이 전부 미국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거든? 그런데 그 모양이었어. 시행착오지요.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나중에 현대에서 배를 하나 만든 경험이 있다 해서 삼성에서 데려갔지요. 배를 한 척도 안 지어보고 어떻게 박사가 됐는지 몰라, 하하항. 그게 다 미경험에서 오는 거예요. 지금 미포만에 가보면 당시에는 해변에 소나무 몇 개 있고 어촌이 몇 개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미포조선소 주변에만 약 20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사니까 그 정도로 옛날 얘기다 그거지요.” 실제로 초창기 시절을 들어보면 그 시행착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정일 전 미포조선 회장은 아예 철판도 버리기 위해 자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만큼 엉성했다는 것이다. “철판이 들어오면 우선 배에 필요한 모양대로 잘라가지고 용접을 하게 돼요. 과거에는 리벳(Rivet)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용접을 하지요. 그런데 이게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이, 철판 자르는 것을 부재라고 하는데, 그 부재가 수만 개가 됩니다. 그 수만 개가 각기 번호가 있고, 번호를 찾아서 맞춰주는 걸 배재(配材)라고 하는데, 이걸 끼워넣지 못하면 건조도 안 되고 엉망진창이 되거든요? 문제는 여기서 생기는 거예요. 그게 초창기고 경험이 없다 보니까 그랬는데 배재를 제대로 못 해요. 말하자면 잘라놓기는 잘라놨다고 하는데 후공 조이는 팀에서는 재료가 없다, 있어도 맞지가 않는다고 소리쳐요. 그러면 선공팀에서는 분명히 정상적으로 잘라서 줬는데 왜 없느냐고 노상 싸워요. 그러니 시간은 급하죠, 부재 없다는 소리만 나오면 얼른 새 철판 갖다가 잘라요. 그래놓고 나중에 보면 잘라서 줬다는 게 다른 데 가서 처박혀 있고. 하하하. 철판 값이 오죽 비쌉니까? 회장님한테 혼나는 거지 뭐. 하하.”
“이병철 회장도 조선소에 모셔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소들은 정부에서 지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방금 얘기한 옥포조선소야. 남궁연씨가 하다가 대우로 넘어갔는데 한때 대우도 시련을 겪고 있어서 정부가 지원을 해주고 그랬지. 근데 정부가 지원을 해주는 건 미국에서 볼 때 덤핑이라는 거야. 하여간 남의 회사 얘기할 건 없고, 삼성중공업도 나중에 조선소를 만들지 않았어요? 그게 다 우리가 조선소를 만든 다음에 일어난 일들이지만 이병철 회장을 우리 조선소에 모셨더니 ‘바로 이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이야, 아주 칭찬을 하면서 도와달라고, 그래서 흔쾌히 좋다 했더니 시작한 거예요. 하하항.” <계속>계속>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킨텍스 게임 행사장 ‘폭탄테러’ 예고에...관람객 대피소동
2美항모 조지워싱턴함 日 재배치...한반도·中 경계
3공항철도, 시속 150km 전동차 도입...오는 2025년 영업 운행
4두산 사업구조 재편안, 금융당국 승인...주총 표결은 내달 12일
5‘EV9’ 매력 모두 품은 ‘EV9 GT’...기아, 美서 최초 공개
6민희진, 빌리프랩 대표 등 무더기 고소...50억원 손배소도 제기
7中, ‘무비자 입국 기간’ 늘린다...韓 등 15일→30일 확대
8빙그레, 내년 5월 인적분할...지주사 체제 전환
9한화오션, HD현대重 고발 취소...“국익을 위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