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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 실용성 겸비한 친환경 건축

멋과 실용성 겸비한 친환경 건축

이제 환경운동은 단순히 우리가 어떤 종류의 자동차를 타느냐, 혹은 타지 않느냐의 차원을 넘어섰다. 초호화 저택 건축 붐이 사라진 지금, 미국인들의 주택·사무실·공공시설에는 새로워진 환경의식이 반영됐다. 백열전구를 형광등으로 대체하는가 하면, 생활공간 전체를 태양 전지판, 퇴비 더미, 대마 벽지로 다시 꾸민다. 미국건축가협회(AIA)는 매년 환경친화적 건축물 10개를 선정해 발표한다. 선정 기준은 이른바 ‘지속 가능한 설계(sustainable design)’ 개념이 적용됐는가 여부다. 건축물이 에너지 효율적인가? 자연광을 활용하고 물을 절약하는가? 지역사회의 상호작용을 증진하도록 설계됐는가? 요컨대, 우리가 짓는 건물이 주변 세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2006년에 선정된 건축물 네 개를 소개한다.

Trees Grow in an Old Parking Lot

옛 주차장 터에서 나무들이 자란다 한 기업의 본사 건물은 최고경영자의 사무실을 들이느라 지어지지 않는다. 본사 건물은 기업의 가치관을 세상에 알리는 일종의 3차원 광고판이다.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의 교정을 연상케 하는 ‘캠퍼스’ 같은 건물을 짓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미주리주에 자리 잡은 국제적인 건설회사 앨버리치 코프가 수용 인원 200명의 새 본사 건물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환경 감수성이다. 회사 측은 대부분 주차장 용지였던 5.3ha 넓이의 부지에서 기존 공장을 개조·재활용함으로써 그런 가치관을 부분적으로 구현했다. 나머지 부지는 토종 나무와 관목들이 있는 공원으로 재설계됐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말하자면, 앨버리치는 이렇게 함으로써 건축 자재와 운송량을 줄였다(회사 측은 반경 800㎞ 이내 업체들의 물자만 구입했다). 물론 이에 상응하는 비용 부담도 있었다. 에너지를 흥청망청 낭비하던 행태가 보편적이었던 수십 년 전에 설계되고 지어진 건물을 개조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다. 개장된 건물은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설계됐다. 설계를 맡았던 매키 미첼 & 어소시에이츠사는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기존 건물이 남서향이어서 오후 늦게 태양 빛을 받는다는 문제였다. 그 해결책으로 톱니 모양의 출창(出窓·벽보다 쑥 내밀게 만든 창)을 여러 개 설치해 창문이 남향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빛의 양은 많이 받아들이되 오후 태양의 열기와 눈부심 현상은 차단했다. 또 건물들 사이에 안뜰을 조성해 실내 공간의 75%에서 자연 채광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설계사 앤절러 하인즈는 이렇게 말했다. “시공하기 전에는 설계를 두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건물은 놀랍게 변신했다. 단순히 에너지 효율성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새 건물을 사랑한다.”

A Roof Above the Rest

‘녹색’지붕 시카고 시청 건물과 포드사의 리버 루주 공장 등은 옥상에 식물이 심어져 있는 이른바 ‘녹색’ 지붕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미국에서 녹색 지붕은 아직까지는 신기한 풍경이다. 녹색 지붕이 보편화되려면 적은 예산으로 건축되는 평범한 건물들에서 그 효용성이 입증돼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시애틀 공립도서관의 분관인 밸러드 도서관이다. 볼린 시윈스키 잭슨사가 설계한 밸러드 도서관의 지붕(1670㎡)은 약 10cm 깊이의 흙으로 덮여있고, 토종 잔디와 즙이 많은 지피(地被)식물이 자란다. 이 식물들은 빗물을 흡수·여과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며, 여름과 겨울에는 단열·보온 효과를 낸다. 또 전통적인 딱딱한 지붕보다 수명이 길다. 건물 창문에는 엷은 광전지 막이 덮여있어 태양의 열기와 눈부심을 줄이는 동시에 최대 5㎾(일반적으로 대형 주택에서 사용되는 전기량)의 전력을 생산한다. 설계사 로버트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장소 이상의 건물을 만들고자 했다. 일반인들에게 환경친화적인 건물을 체험하도록 했다.”

Soak Up the Sun on Venice Beach

보기 좋은 태양전지판 건축가가 자신이 살 집이 아니라면 이처럼 합리적이고 멋진 설계를 생각해내지 못했으리라. 사실 박공 (지붕 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짐) 구조의 판자 지붕에 번쩍이는 태양전지판들을 갖다 붙인 주택은 점잖게 말해 건축학적 변태라고 불릴 만하다. 아무리 친환경적인 미덕의 소산이라 해도 그렇다. 그러나 건축가 앤지 브룩스는 캘리포니아주 베니스 해변 인근에 1920년대 지어진 방갈로를 개축하면서 급진적인 결정을 내렸다. 태양전지판을 디자인의 한 요소로 채택한 일이다(태양전지판은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하다). 그녀는 옥외 베란다에 그늘을 만들어주고 건물벽을 뒤덮은 태양전지판들을 가리키며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태양 우산 주택’으로 명명된 이 집은 인상적인 디자인과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성을 모두 갖췄다. “사람들은 태양전지판들이 보기 흉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매우 아름답다.” 게다가 태양전지판은 이 집에서 필요한 전력의 95%를 공급한다. 햇빛이 찬란한 날에는 태양전지판이 많은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브룩스네 전기계량기는 거꾸로 돌아간다. 그녀는 태양열 시스템을 만드는 데 3만4000달러가 들었지만 7년 뒤면 수지타산이 맞으리라 예상한다. 옥상의 태양전지판들은 수영장 물을 예열하고, 가스온수기의 효율성도 높여준다. 개축 공사로 주택의 규모가 두 배 이상으로 커졌지만, 천연가스 소비량은 반으로 줄었다. 이 집은 1년 내내 에어컨이 필요 없도록, 또 몹시 흐린 날을 제외하고는 전등도 불필요하게끔 설계됐다. 브룩스의 자랑을 들어 보자. “실내의 통풍이 사방으로 잘 되고, 서쪽의 햇빛을 막아주며, 내물림 구조의 지붕 덕분에 큰 유리창이 있는 곳에도 그늘이 만들어진다. 환경친화적인 설계를 했더니 유지비도 적게 드는 주택을 갖게 됐다.”

Save a Pooch, and the Environment

개와 환경 동시에 살린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환경에서 가장 명백한 사실은 연간 일조일 수가 300일을 넘는 무더운 기후다. 그러나 호텔방의 유리창을 통해서만 이 도시를 쳐다보는 방문객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여름에 산들바람이 많이 분다. 건축회사 테이트 스나이더 킴지의 설계사 랜디 스피츠메서는 그 점을 참작해 동물재단 개 입양소의 새 집을 설계했다. 그는 낮은 높이에 길게 늘어선 ‘개 방갈로’들의 위치와 방향을 특수하게 설계했다. 산들바람이 그늘진 방갈로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고, 증발 작용으로 냉각되며, 높은 굴뚝을 통해 빠져나가도록 했다. 이 모든 시스템은 바람과 환류작용으로 작동된다. 기계로 만들어진 에어컨과 통풍장치가 필요 없다는 얘기다. 전통적인 설계방식과 비교할 때, 이 건물은 에너지 소비를 최대 81% 감축하도록 설계됐다. 네바다주는 무더울 뿐만 아니라 건조하기도 하다. 스피츠메서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 시설은 사육장을 세척하느라 매일 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물은 전부 하수구로 유입된다.” 그래서 그는 “물이 수직으로 흐르는 습지대”를 통해 매일 7만6000ℓ의 물을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대자연의 정화장치인 늪의 기능을 모방한 장치다. 이 시스템은 모래와 자갈로 만들어진 460㎡의 여과장치와 토종 식물들로 구성됐다. 그리고 태양 에너지 펌프를 이용해 물을 이 시스템에 공급한다. 이런 여과장치를 거쳐나온 물은 바닥과 벽을 청소하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깨끗하다. “우리 회사는 이 지역에서 가장 풍부한 원자재인 태양을 이용해 가장 귀중한 자원인 물을 절약한다”고 스피츠메서는 말했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환경친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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