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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빅뱅 신호탄인가

자본시장 빅뱅 신호탄인가

최근 2금융권에는 인수합병(M&A)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증권사·자산운용사·보험사·저축은행 등 올해 M&A가 진행됐거나 진행 중인 회사만 20여 개에 달하는 상태며, 그 규모는 최소 5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도 개선에 따른 겸업화와 대형화, 외국 금융기관의 시장진출 가속화 등으로 2금융권의 중소형사들이 자의 반 타의 반 M&A 대상이 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이 같은 M&A 열풍이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으로 성장의 한계에 놓인 2금융권의 체력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외국자본이 대거 참여함에 따라 윔블던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2금융권에서 M&A로 가장 시끄러운 곳은 증권 및 자산운용업계다. 최근 M&A가 결정됐거나 진행 중인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만 7곳에 달하고, 매각설이 흘러나오는 곳까지 합하면 10여 개사가 넘는 상태다. 이처럼 M&A가 잇따르는 가장 큰 이유는 저금리와 고령화로 저축보다 투자 상품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밥그릇이 커지면서 너도나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투자 상품을 대표하는 펀드의 증가세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2003년 142조원이었던 펀드 시장 규모는 4월 말 현재 238조원으로 100조원 가까이 증가한 상태다. 특히 최고 인기 상품인 적립식 펀드의 경우 이미 지난해 1월 18조1860억원을 기록, 은행의 대표 상품인 정기적금(17조2642억원)을 추월한 상태다. 더욱이 2008년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이 본격 시행되면 투자 상품 시장은 그야말로 빅뱅이 예상된다. 주식·선물·펀드 등 모든 투자 상품을 취급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가 설립되고, 투자 대상 규제가 풀리면서 더욱 다양한 투자 상품 개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외 금융 및 산업자본들에는 지금이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 M&A의 적기로 여겨지고 있다. 사모펀드를 통해 증권사 인수에 나선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국내 자본시장은 이제부터 고속성장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증권 및 자산운용사 M&A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KGI증권 인수 3파전 양상 올해 증권업계 M&A의 신호탄이 될 곳은 KGI증권이다. KGI증권 인수에는 국민은행, KTB자산운용-솔로몬저축은행 컨소시엄, 동부금융그룹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별한 변동이 없는 한 이들 3파전 양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들 인수희망사는 개별적으로 KGI증권에 대한 실사를 진행 중이며, 이달 중 최종 입찰 여부를 밝힐 예정이다. 따라서 이르면 오는 6월께 KGI증권 매각이 가시화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김기홍 국민은행 수석부행장은 “KGI증권 매각주간사로부터 인수 후보 통보를 받고 지난 4월부터 KGI증권에 대한 실사를 진행 중”이라며 “이달 23일 중 최종 입찰 여부를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 3사 중 가장 유력한 인수자를 꼽으라면 단연 국민은행과 동부금융그룹이다. 국민은행과 동부금융그룹은 인수 의지가 강할 뿐 아니라 막대한 자금력도 갖추고 있어 M&A를 결정짓는 가격경쟁에서 여타 경쟁사보다 우위에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반해 KTB자산운용-솔로몬저축은행 컨소시엄은 사모펀드인 만큼 투자 대비 수익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어 무리한 가격경쟁은 피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현재 KGI증권의 인수가격은 1000억원 내외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장 사장은 “KGI증권이 인수 메리트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펀드인 만큼 투자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무리한 가격을 제시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KGI증권 매각이 가격경쟁으로 간다면 3파전 양상이 국민은행과 동부금융그룹의 2파전으로 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SK증권, CJ투자증권, 교보증권 등도 물밑에서 매각작업이 진행 중이다. SK증권과 CJ투자증권은 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을 계기로 시장에 매물로 나온 케이스. 현행 지주회사법상 금융-산업 분리원칙에 따라 이들 그룹은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 또 이들 증권사는 그룹 내 주력회사가 아니라는 점도 매각 사유가 되고 있다. SK증권은 SK네트웍스와 SKC가 각각 22.43%와 12.2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SK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이들 회사는 34%에 달하는 SK증권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데 보유 물량이 적지 않아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블록세일 방식의 처분이 유력해 보인다. SK증권의 예상 매각가격은 2500억~3000억원 수준. SK증권 인수에는 농협 등 3~4곳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투자증권 역시 CJ(주)·이재현 회장·우리사주조합·CJ개발 등이 35.7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프리미엄과 함께 블록세일 방식으로 매각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CJ투자증권은 자산운용사(CJ자산운용)를 자회사로 두고 있어 최고의 M&A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증권사 인수로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 그만큼 매각가격도 높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예상 매각가격은 경영권 프리미엄과 자회사 매각을 포함해 최소 500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CJ투자증권 인수에는 유진기업, 농협, 기업은행, 국내외 PEF(사모주식펀드) 등 다수의 기관과 사모펀드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 중 유진기업이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유진기업이 박광준 전 CJ투자증권 상무를 계열사인 서울증권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한 것도 M&A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교보증권은 최대주주인 교보생명(51.63% 지분 보유)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금 확보 차원에서 매각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교보생명은 지난 3월 자회사인 교보자동차보험을 외국자본에 매각한 바 있다. 교보증권도 자회사로 자산운용사(교보투신운용)를 두고 있어 인수희망사들에 매력적인 M&A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교보증권 인수에는 국민은행, 농협, 외국 투자은행 및 보험사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 매각가격은 7000억원(경영권+자회사 포함)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밖에 하나금융지주의 자회사인 하나증권도 매각설이 나돌고 있다. 하나증권과 대한투자증권 등 2개의 증권 자회사를 갖고 있는 하나금융지주가 자회사 역량집중 차원에서 규모가 작은 하나증권을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이다. 하나금융지주가 최근 하나증권 인력을 대거 대한투자증권으로 이동시킨 것도 이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으로 업계에서는 풀이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몸값은 천정부지 증권업계 못지않게 자산운용업계도 M&A가 한창이다. 특히 자산운용사의 경우 M&A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규모에 비해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상태다. 자산운용사 한 CEO는 “펀드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자산운용사의 몸값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며 “특히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외국 자본이 공격적으로 자산운용사 인수에 나서면서 국내 자본은 명함도 내밀기 힘든 상태”라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대한투신운용을 인수한 UBS는 지분 51%를 사기 위해 18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고, 맥쿼리IMM자산운용을 인수한 골드먼삭스도 지분 100%에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풀었다. 대한투신운용과 맥쿼리IMM자산운용의 자본금이 각각 450억원, 13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몸값을 지불한 셈이다. 현재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랜드마크자산운용의 몸값도 1500억원이 넘는 상태다. 랜드마크자산운용 인수에는 푸르덴셜생명, ING생명, 악사(AXA·프랑스 보험사) 등 외국계 보험사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자본으로는 롯데그룹이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인수조건 및 자금 부담으로 중도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랜드마크자산운용의 가장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는 곳은 교보자동차보험을 인수한 악사다. 프랑스 최대 보험사인 악사는 국내 보험 및 자산운용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공격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3~4곳의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이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최근 JP모건, 블랙록-메릴린치, 뱅가드, 얼라이언번스타인 등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들이 국내 자산운용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며 “이들 외국계 자산운용사는 국내 시장 조기 안착을 위해 M&A를 원하고 있고, 일부는 이미 중소형사들을 대상으로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보험-저축은행도 M&A 바람 보험이나 저축은행업계도 공개적이지는 않지만 물밑에서 M&A 작업이 한창이다. 한·미 FTA 타결, 생보사 상장 등 시장 변화와 과다경쟁에 따른 수지악화, 감독당국의 구조조정 의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외국계 금융기관의 시장 확대도 중소형 보험 및 저축은행들의 입지를 압박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악사의 교보자동차보험 인수를 시작으로 손해보험사(이하 손보사)에 대한 M&A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동안 손보업계는 M&A 무풍지대로 불렸지만 손해율 상승으로 경영악화가 심화되면서 중소형사들이 속속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손보업계는 2005 회계연도에 자동차보험에서만 사상 최대인 8000억원대의 영업수지 적자를 기록했고, 2006 회계연도에도 1조원이 넘는 적자가 예상되는 상태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손해율 상승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이 점점 악화되면서 중소형사들을 중심으로 M&A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손보업계에서 M&A 매물로 거론되고 있는 회사는 그린화재, 대한화재 등이다. 이들 회사는 업계 하위권인 데다, 대주주도 개인 또는 법인들로 구성돼 있어 항상 M&A 1순위로 구분돼 왔다. 손보사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자동차보험이 숙원 사업인 농협공제와 국내 시장 진출을 계획 중인 외국계 보험사들이다. 생보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삼성·대한·교보생명 등 빅3와 외국 생보사들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서 중소형사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독일의 DVK, 미국의 에이스와 하트포드, 캐나다의 메뉴라이프, 영국의 아비바 등 세계적 보험그룹들이 잇따라 한국 시장을 노크하고 있어 중소형 생보사에 대한 M&A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생보사 중 현재 M&A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곳은 금호생명이다. 금호생명은 지난해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매각이 논의됐으며, 미국 보험사인 에이스가 실사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에는 금호그룹이 지주회사 전환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M&A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태다. 110개 회사가 난립하고 있는 저축은행 업계도 지방 중소형 저축은행들의 M&A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감독당국도 제도 개선을 통해 저축은행 M&A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초우량 저축은행의 영업 확대를 골자로 하는 ‘저축은행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은 데다 최근에는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해 저축은행 충당금 비율을 높였다. 이에 따라 중소형 저축은행들의 영업 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자금압박도 심해진 상태다. 저축은행업계 한 CEO는 “지난 4월 말 금감원이 저축은행 여신에 대한 충당금 비율을 기존의 2배 이상 상향 조정했다”며 “이에 따라 올해부터 막대한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데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형 저축은행들이 자금압박으로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저축은행 중 M&A가 거론되고 있는 곳은 예아름저축은행과 BIS자기자본비율이 기준치에 미달하는 지방의 대아, 경북저축은행 등 8개다. 예아름저축은행은 예금보험공사가 부실저축은행인 대운·좋은·홍익저축은행 3사를 합병해 설립한 가교은행으로 연내 M&A가 가시화할 전망이다.


윔블던 효과 (Wimbledon Effect) 윔블던 효과는 집 대문을 열어놓자 외국인들이 몰려와 안방을 차지해 버리는 경제적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86년 대처 영국 총리가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대폭 철폐하는 빅뱅을 단행하자 영국 증권회사들이 줄도산하고 미국과 유럽 자본이 절반 이상의 금융회사를 차지하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윔블던 효과란 단어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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