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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원의 건강칼럼] 천사의 음식 된장의 힘

[권성원의 건강칼럼] 천사의 음식 된장의 힘

한 · 중 · 일 세 나라 사람들은 콩과 콩 발효 식품을 많이 섭취한다. 그래서 전립선암이 적다.
현대의학의 여러 분야 중에는 일반인에게 좀 생소한 역학(疫學)이 있습니다. 진단, 약물 치료, 수술요법 같은 임상의학이 아니고 질병의 지역적 특성, 환경의 영향, 질병 발생의 위험인자 등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흔히 알고 있는 공중보건학의 한 분야입니다. 우리나라의 남성 암 중 단연 1위는 위암입니다. 그 뒤로 간, 폐, 대장의 순서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전립선암은 10위권 밖이었는데 최근 6위로 껑충 뛰어오르다 보니 정부나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양에서는 전립선암이 압도적 1위이고, 미국의 전립선암 사망률은 두 번째입니다. 인종별로 보면 흑인이 가장 높고, 동양인이 가장 낮은 빈도를 보입니다. 아주 흥미있는 것은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 · 일본 · 중국 사람들이 가장 발병률이 낮다는 사실입니다. 역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간과할 리 없습니다. 물론 지방식을 많이 하는 서양인은 채식을 위주로 하는 동양인에 비해 전립선암이 훨씬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수많은 통계에서 밝혀진 바 있습니다. 그런데 왜 동양에서도 한 · 중 · 일 세 나라만 전립선암이 적을까요. 10여 년 전부터 전립선 질환이 세계보건기구(WHO)의 중점 관리 대상으로 채택되면서 전립선암 발생률의 증가와 더불어 위험인자를 찾기 위한 연구가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수많은 역학조사가 진행되면서 아주 이상한 통계들이 나타납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흑인이 일본인이나 화교보다 암 발생률이 25배나 높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인이나 화교들의 발생률이 흑인의 25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미국 전체를 봐도 인구 10만 명당 전립선암 사망률이 일본인은 미국인의 5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질병 발생의 위험인자를 좇는 역학 연구진들은 범인을 찾아내는 수사관들과 같습니다. 한겵?일의 전립선암 발생률이 낮은 원인을 알면 예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발짝씩 더 깊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의 미주 이민은 한국인들보다 수십 년 앞섭니다. 수적으로도 훨씬 많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일본 교포나 화교를 들여다봅니다. 벌써 3·4 세대들도 전립선암에 잘 걸리는 50 · 60대 연령층이 됐습니다. 계속되는 역학 연구는 몇 가지 흥미 있는 통계를 더 찾아냅니다. 초기에 이민 간 1세대들보다 2·3세로 내려갈수록 암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통계입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이와 비슷한 추세입니다. 역학적인 수사(?)가 더 빠르게 진행됩니다. 한·중·일 이 세 나라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답이 나옵니다. 바로 콩과 콩 발효 식품을 주식으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인은 된장 · 고추장 · 간장을, 일본인은 된장(미소)과 간장을, 중국인도 춘장·두반장 · 간장을 먹습니다. 두부도 세 나라 사람들 모두 좋아하는 식품입니다. 식품영양 학자, 생화학자, 비뇨기과 의사들이 연구에 달려듭니다. 드디어 이소플라본(Isoflavones)이란 기특한(?) 범인을 찾아냅니다. 대두의 성장 과정에서 생성되는 이소플라본은 여성호르몬인 식물성 에스트로겐의 일종입니다. 이소플라본이 대사되면서 생성되는 다이드제인(daidgein)·이퀄(Eguol) 등이 전립선암의 발병원인인 남성호르몬을 억제함으로써 암 발생률을 낮춘다는 사실도 알아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이주했던 화교나 일본인 1세대들은 그들의 신토불이 음식만 먹었습니다. 2 · 3세대로 내려갈수록 악마의 음식인 지방식 · 패스트푸드 · 튀김 음식만 좋아합니다. 천사의 음식인 콩 식품이나 야채를 외면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전립선암의 발생률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벌써 우리네 50대들도 햄버거 · 스테이크 · 피자 등 서양 음식에 습관 들인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된장국 · 두부찌개 · 콩자반 같은 음식들은 식탁을 떠난 지 오랩니다. 맥도날드 · 아웃백스테이크 등 패스트푸드 가게에 줄지어선 아이들과, 젊은 세대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갑니다. 늙어서 철든다더니 요즘 들어 우리네 선조의 음식 문화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아갑니다. 된장국 · 콩나물국 · 김치, 모두가 천사의 음식입니다. 트랜스 지방, 발암물질 등은 눈 씻고 찾아 봐도 안 보입니다. 전립선암 예방에는 그야말로 ‘왔다’입니다. 발생률에서 마구 치고 올라오는 전립선암을 막아야 할 제게는 ‘된장의 힘’도 큰 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두부를 썰어 넣은 된장찌개! 전립선암 세포에게는 천적입니다. 독자 여러분, 콩 음식 많이 드세요!


권성원 박사 1940년 生, 65년 부산대 의대, 74년 연세대 의학박사, 73년 연세대 의대 비뇨기과 교수, 76년 이화여대 비뇨기과 교수, 96년 대한비뇨기과학회 이사장, 2001년 현 한국전립선관리협회 회장, 2005년 현 포천중문의대 강남차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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