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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금융인가, 불법금융인가

대안금융인가, 불법금융인가

“철원에 혼자 계신 친정엄마가 당뇨 혈당지수가 높아 집에서 인슐린을 맞는 중에 합병증이 생겼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직접 간호할 여력이 안 됩니다. 그래서 간병인과 병원비를 구하는 중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못난 딸이기에 마음이 아픕니다. 신청금액 200만원, 신청이자율 연 24%, 신청기간 12개월.” 대부업체들의 살인적인 고금리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에서 개인 간 금전 거래를 중개해주는 P2P파이낸스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어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P2P파이낸스는 대출이자, 상환방식 등을 대출자가 직접 결정하는 수요자 위주의 온라인 자금거래 시장이라는 점에서 기존 오프라인 대부업의 고금리 부작용을 상쇄시킬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에 반해 금융권 및 정부 당국에서는 P2P파이낸스가 대안금융이라기보다는 대부업의 온라인 진화에 불과하다며 또 다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개간 거래로 자금 관리가 힘든 데다 개인 신용정보 노출, 개인 대부업자 양산 등의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권보다 금리 낮아 인기 현재 국내에서 P2P파이낸스 서비스를 하는 곳은 머니옥션, 팝펀딩, 퍼스트핸드, 돈조이, 론옥션 등 5곳. 이들 업체는 대부분 6월 초부터 영업을 시작해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은 없는 상태지만 저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과 높은 투자수익률이 부각되면서 회원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태다. 가장 먼저 P2P파이낸스 서비스를 시작한 머니옥션은 영업 시작 한 달 만에 회원수가 5000명을 돌파했고, 팝펀딩·퍼스트핸드 등도 1000여 명의 회원을 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 방식은 거의 똑같다. 대출자가 대출금액과 이자율, 원리금 상환방법 등을 제시하면 경매를 통해 투자자들이 돈을 빌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급전이 필요한 A씨가 300만원에 연 이자 25%라는 희망 대출조건 및 사유를 해당 사이트에 제시하면 투자자들은 연 25% 이하로 경매에 참가하게 된다. 투자자 B씨와 C씨가 각각 150만원에 연 20%, 150만원에 연 24%로 경매에 참가해 낙찰됐다면 A씨는 연 22%의 이자로 300만원을 빌리게 되는 것이다. A씨는 대부업체나 저축은행보다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고, B씨와 C씨는 은행 예금보다 5배 높은 투자수익을 얻게 되는 셈이다. 거래방식은 같지만 수익구조와 서비스는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다. 머니옥션은 제도적인 문제점을 피하기 위해 다른 업체들과 달리 투자자들에게 대부업자 등록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명확한 유권해석이 나오지 않았지만 현행법상 등록 대부업자가 아닌 사람이 돈을 빌려주고 수익을 취하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니옥션의 또 다른 특징은 투자자가 직접 대출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투자자 대신 회사가 대출해주고 투자자는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즉 채권(법인채권)을 사는 것이다. 이동진 머니옥션 팀장은 “회사가 돈을 빌려주고 그 채권을 투자자가 사도록 한 것은 만일에 발생할 수 있는 대출 부실과 연체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현행법상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한 채권(민사채권)은 채권추심회사가 취급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가 대신 대출을 하고 그 채권을 투자자가 사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팝펀딩은 여타 업체와 달리 거래에 따른 수수료를 받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또 대출한도가 최고 200만원에 불과하며 투자자들의 투자한도도 1인당 2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200만원을 대출받기 위해서는 100명의 투자자가 모여야만 가능하다. 대출한도가 작지만 대출이자는 연 29% 이하로 가장 싸다. 신현욱 팝펀딩 사장은 “P2P파이낸스의 목적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원활한 자금 거래를 통해 대출자와 투자자 모두 윈윈(Win-Win)하는 데 있다”며 “투자한도와 대출이자를 소규모로 제한한 것은 투자자는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고, 대출자는 고금리 부담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이냐, 약이냐 의견 엇갈려 후발주자인 퍼스트핸드는 신용대출·전환대출·담보대출 등 자금 용도에 따라 대출경매가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 대부업 등록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대출경매에 참가할 수 있다. 신용대출 최고한도는 500만원이며 대출이자 한도는 30%, 이용수수료는 대출금액의 3% 정도다. 이들 업체는 한결같이 P2P파이낸스를 통해 개인 간 금전거래가 정착되면 일반 서민들의 자금수요 해결은 물론 대부업체의 고금리 부작용도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부업의 대안금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현욱 사장은 “금융도 시장 경제에 맞아야 하는데 그동안 국내 금융시장은 공급자 위주의 시장으로 굳어져 서민들의 대출제한, 고금리 등 불합리한 구조가 발생하고 있다”며 “P2P파이낸스는 공급자 위주의 시장을 수요자 위주의 시장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동진 팀장도 “P2P파이낸스가 활성화되면 제도권 금융기관의 신용대출 이자도 낮아질 것”이라며 “서민들을 위한 새로운 대안금융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업체들의 이 같은 주장과 달리 금융권과 정부 당국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온라인 거래의 특성상 개인정보 유출 및 악의적 해킹 가능성이 높고, 또 악의적인 사용자가 대출만 받고 돈을 갚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만 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여신담당자는 “P2P파이낸스의 개념을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 시장에 정착하기는 힘들 것 같다”며 “온라인을 통한 개인 간 거래이기 때문에 손실 가능성이 높고 개인정보 유출도 막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P2P파이낸스가 대부업자를 양산해 불법 대부업이 오히려 극성을 부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준상 사회연대은행 과장은 “P2P파이낸스는 대부업이 온라인으로 진화한 것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대부산업을 키우고 불법 추심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P2P파이낸스의 적법성 여부도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대부업법은 대부를 ‘업’으로 할 경우 반드시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팝펀딩과 퍼스트핸드에선 투자자들이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아도 돈을 빌려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자체 법률자문 결과 ‘업’이라는 기준이 모호할뿐더러 인터넷의 개인 간 소액 대출인 만큼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부업체 관리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나 금융감독원조차 아직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타인에게 돈을 빌려줄 목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대부업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ㆍ영국의 P2P파이낸스 열풍


英 조파닷컴 회원 13만 명 모아
P2P파이낸스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5년 영국의 조파닷컴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조파닷컴(www.zopa.com)은 저금리로 돈을 빌리고자 하는 대출자들과 은행 예금 이자보다 높은 투자수익률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을 인터넷에서 연결해주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이트는 지난 2년간 13만여 명에 달하는 회원을 모았고 이 중 30%가량이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들로 구성돼 있다. 사이트의 주 수익원은 중개 수수료다. 조파닷컴은 대출자로부터 대출금의 0.5%를, 자금 제공자로부터 연간 투자금액의 0.5%를 각각 받고 있다 조파닷컴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부채 상환 등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어느 정도 차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사이트는 대출자에 대한 기준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대출자가 사이트를 통해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세한 신용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물론 연 소득 1만 파운드 이상 등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조파닷컴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이듬해 미국에서도 ‘프로스퍼닷컴(www.prosper.com)’이라는 P2P파이낸스가 등장했다. 이 사이트는 개설한 지 1년여 만에 14만 명의 회원을 모으는 등 대박을 터뜨렸다. 회원수가 급증하면서 거래대금(대출금액)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2007년 상반기 동안 총 거래대금은 4000만 달러 정도로 이는 2006년 전체 거래대금보다 40% 이상 많은 수치다. 이 사이트의 특징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뱅크처럼 회원들을 그룹화해 대출거래를 관리한다는 것. 그룹 회원 중 한 사람이 연체하거나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그룹 전체가 대출금리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조파닷컴, 프로스퍼닷컴의 성공으로 P2P파이낸스가 새로운 비즈니스로 부각되면서 미국, 유럽 등에서는 유사 사이트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용자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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