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놀 자리 깔아야지”
“온 국민이 놀 자리 깔아야지”
▶미대 출신인 박자금 사장은 스파시설을 직접 구상, 스케치한다. 뒤에 보이는 것이 야외 스파. |
독일 기술자가 설계한 스파 그렇다 하더라도 나이 70에 갑자기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은 박 사장의 과거를 보면 금방 해소된다. 그는 원래 미술교육학과 출신의 미술교사였다. 1963~70년까지 명성여고에서 미술 교편을 잡았다. “제가 원래 미술에 소질이 있었지요. 아버지께서도 교편을 잡아서 저도 미술선생님을 꿈꾼 것이고요.” 교사를 하면서 1년간 프랑스 유학을 갔다 왔을 정도로 미술에도 집념이 있었다. 지금도 스파그린랜드 안내데스크 위에는 박 사장이 직접 작업한 대형 부조가 전시돼 있다. “다시 미술을 하려는 건 아니고, 제 사업장에 제 손길을 남기고 싶어서 그렸죠. 제가 죽어도 훗날 제 작품은 남잖아요.” 평범한 미술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어떻게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을까? “제가 참 사업가 기질이 있었나 봐요. 60년대에 미술교사하면서도 미술학원을 운영했거든요. 미술학원으로 번 돈으로 화곡동에서 유치원도 했죠. 원래 10개를 만들려고 하나, 두나, 세나라고 이름지었는데 결국 세나에서 그쳤지만….” 그렇게 운영한 미술학원이 당시 장안에 소문이 자자한 입시명문학원이 됐다. “북아현동에 있었던 고운미술학원이었는데 거기 출신들이 서울대, 이대에 많이 들어갔거든요. 그 소문 듣고 유명인사 자녀들도 우리 학원에 많이 다녔어요.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두 딸, 홍승환 전 제일은행장의 딸, 동아건설 전 사장의 아들이 다 우리 학원 출신이에요. 하하하.” 소문이 나면서 장안의 미술 입시생이 몰려들었다. 비결이 뭐였을까? “학원에 대학교수를 강사로 채용했죠. 그렇게 하니 소문이 쫙 나는 거야.” 요즘은 대학교수의 레슨이 불법이지만 그때는 그런 규정이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교사가 대학교수를 강사로 채용한다는 발상 자체도 쉽지 않았다. 박 사장은 미술학원에 만족하지 않았다. 3층짜리 건물을 팔고 생긴 돈으로 영동대교 남단에 땅 5만 평을 샀다. 그때가 70년대 초반이었고 땅은 평당 9000원이었다. 교육부도 드나들면서 초급대학 인가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런데 5만 평으로는 대학을 하기에 좀 부족해 보였다. 땅값도 몇 년 사이 좀 오르고 해서 그 땅을 팔면 외진 곳에 더 넓은 땅을 살 수 있었다. 몇 년 뒤 영동 땅을 팔고 일원동 쪽에 땅을 샀다. 그게 10만 평이었다. “이번엔 아예 4년제 대학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어요. 미술선생 하다가 미술대학장을 하게 생긴거지….” 그렇게 한참 준비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다른 제안이 왔다. ‘요새 땅값도 많이 오르고 아파트 건설이 잘되니까 그 땅에 아파트나 짓자’는 것이다. 건설업체에서 끈질기게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돈 더 벌면 그때 대학교 세우면 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듣고 보니 그럴듯해서 결국 팔았죠.” 땅을 건설회사에 팔고 생긴 돈으로 천호동에 땅을 샀다. 일부는 강남구 삼성동 뉴월드 호텔(현 라마다호텔) 땅을 샀다. 78년에 박 사장도 천호동에 해바라기 아파트 600여 가구를 직접 시행, 시공했다. 풍한건설이라는 건설회사도 직접 차렸다. “건설이 돈벌이는 좀 되는데 너무 힘들어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리고 80년대 초 건설붐이 불어서 우리나라에 큰 건설회사가 많이 생겼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같은 조그만 회사는 살아남기도 힘들고, 또 큰 회사에서 우리 회사 사겠다는 제안도 많았어요.” 결국 82년에 그의 건설회사는 삼환기업 계열사였던 삼환까뮤에 인수됐다. 그때 받은 돈으로 뉴월드 호텔도 짓고, 지금 스파그린랜드가 들어서 있는 경기도 광주 땅과 가평 땅도 샀다.
교수들 강사로 채용해 ‘대박’ 여성 기업인으로 활동이 활발했던 80년대 초, 박 사장은 해외로 많이 다녔다. “외국을 다녀 보니까 호텔들이 참 근사해요. 그리고 다 잘되더라고요. 그래서 막연히 ‘아,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런 관광업이 잘되겠구나’하고 생각했었죠.” 마침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유치 소식이 전해지면서 박 사장의 결심은 더욱 단단해졌다. 몇 년간의 준비 끝에 박 사장은 86년 12월 강남구 삼성동에 뉴월드호텔을 개장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뉴월드호텔이 강남 최고 호텔이었어요. 그때는 인터컨티넨탈도, 르네상스도 없었을 때죠.” 개장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뉴월드호텔은 뛰어난 시설과 서비스로 고위층들이 자주 이용했다. 1987년 6·29 선언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한 그의 핵심 측근이 준비작업을 한 곳도 바로 뉴월드호텔 특실이었다.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춘구, 황영시, 박세직씨 등 당시 실세 정치인이 특실을 빌려 놓고 수일간 6·29선언 실무작업을 한 것이다. “여자라서 그랬는지 그 방을 마음대로 드나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논의하던 것이 얼마 뒤에 6·29선언으로 나오더라고요.” 당시 박 사장은 정희자 힐튼호텔 사장과 함께 ‘유이한’ 호텔 여사장이었다. 정 사장이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부인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박 사장이 유일한 호텔 여성 경영자였던 셈이다. 여기서 잠깐 여성동아 87년 8월호 기사를 인용한다. ‘박자금씨는 아침 5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1시간가량 집에서 그날 스케줄과 업무를 점검한 뒤 6시 조금 넘어 집을 나서 호텔에 도착하는 것이 7시쯤, 출근하면서 곧바로 중역회의 소집,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중략)…귀가 시간도 10시를 넘길 때가 거의 대부분. 집에 들어가서는 또 그날의 일에 대한 점검과 다음날 일에 대한 계획으로 2~3시간을 훌쩍 보낸 다음 새벽 1시나 3시 가까이에 잠자리에 든다. 잠자는 시간은 하루 3~4시간뿐.’ 당시 인터뷰에서 “일을 놔두고 잠을 자는 성격이 못 된다”고 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박 사장은 스파그린랜드 공사 구상으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울 때도 많다고 한다. 이런 정력으로 박 사장은 결국 개장한 지 6개월 만에 호텔을 흑자로 돌려놓았다. 보통 2~3년은 걸린다는 호텔 경영 정상화 속도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편이었다.
86년 뉴월드호텔 개장한 주인공 호텔이 제 궤도에 들어서자 박 사장은 또 다른 사업을 준비했다. 미리 사 둔 가평 땅 100만 평에 대단지 골프리조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호텔업을 시작으로 관광, 레저 산업에 도전해 보려고 했어요. 우리나라도 소득이 높아지면 이쪽 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잖아요?” 91년 ‘뉴월드 타운’이라는 기본개발계획도 세우고 본격적인 골프리조트 사업에 뛰어들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정치가 변수였다. 92년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공무원들에게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평소 등산과 조깅을 즐기던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의 골프연습장도 없애버렸다. 집권 초기 하나회를 해체시키고 장군들의 목을 날리면서 90%를 넘기는 지지율을 기록했던 대통령의 말은 추상과 같았다. 결국 개발계획서까지 만들어 놓고 사업을 포기했다. 상심이 컸던 탓일까? 그는 94년부터 심한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다. 결국 98년에 뉴월드호텔을 재일동포 사업가에게 팔고 사업을 정리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그때 독일에서 물 치료를 받은 것이 계기가 돼 현재 스파그린랜드 사업까지 이어지고 있다. “레저사업은 앞으로도 잘될 거라고 믿습니다. 4800만 명의 국민이 이 좁은 땅에서 놀 곳이 없어요. 일주일에 이틀을 노는데 어디를 가겠어요? 우리보다 인구가 적은 유럽국가들도 우리보다 갈 데가 많잖아요?” 그는 10만 평 땅에 지은 스파그린랜드를 제대로 된 스파리조트로 만들 작정이다. “아직 땅이 많이 남아 있어요. 여기에 실버타운도 세우고, 숙박시설도 지을 거예요. 스파시설도 더 확장해 온 가족이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죠.” 박 사장은 밤나무가 무성한 야산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스파그린랜드 맞은편에 ‘허브아일랜드’라는 허브 체험관도 들어서 있다. 스파그린랜드가 완성되면 그의 다음 꿈은 뭘까? “벌써 나이 70인데 뭘 또 시작할 수 있겠어요? 이제 우리 아들이 해야지….” ‘요즘 70이면 아직 일할 나이’라고 하자 그는 숨을 고른 후 계획을 밝혔다. “가평의 100만 평 땅에 골프와 레저가 복합된 리조트를 만들어야죠. 이미 경기도와 건설교통부 심의는 통과했어요.” 그는 91년에 만든 ‘뉴월드리조트’ 개발계획 책자를 내밀었다. 그에겐 20년이 다 돼 가는 숙원사업이다.
찜질방용 식혜가 접대용 차 수백억원이 넘는 재산가인 박 사장의 집무실은 스파 출입구 옆에 붙어 있다. 들어가려면 스파에 들어가듯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열쇠를 가져가야 된다. 사무실 한 칸을 막아 쓰는 그의 집무실은 서류더미 그 자체였다. 응접세트는 아예 없고, 회의용 탁자와 의자가 있다. 그나마 회의용 탁자의 반 이상은 서류더미가 차지했다. 손님 접대용 차는 찜질방에서 파는 2000원짜리 식혜와 냉커피다. 손님도 그도 함께 빨간 투명 플라스틱 컵에 담긴 식혜를 빨대로 마신다. 20년 전 기사처럼 그는 여전히 일에 파묻혀 살고 있는 듯 보였다. 나이 70에 수백억원을 가진 여성인 그에게 사업은 무엇일까? “이 나이가 되면 밤에 잠도 별로 안 와요. 그러면 혼자 우리 스파에 어떤 조형물을 설치할까 고민해요. 색깔은 어떻게 하고, 배치는 어떻게 할지도 가만히 생각하죠. 그 다음날 내가 스케치를 해서 구조물을 만들게 하고, 설치되고 나서 사람들이 그걸 보고 좋아하는 걸 보면 그 짜릿한 기분은 말로 할 수 없어요. 그런 게 없으면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하겠어요?” 그에게 사업은 하나의 작품 활동과 같다. 미대를 나온 그는 캔버스에서 못다 한 작업을 땅에 하는 셈이다. 한 평 크기도 채 안 되는 캔버스 대신 100만 평의 거대한 땅에 만들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미술교사 시절에는 사업을 꿈꿨다면 지금 사업가 박자금은 작품을 꿈꾸고 있다.
스파그린랜드는… 스파그린랜드는 광주에서 양평으로 넘어가는 88번 국도 변에 있다. 스파그린랜드 시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다양한 기능의 물 안마·치료 시설인 대형 버블탕이다. 스파그린랜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버블탕은 정통 독일식 바데풀 시설로 실내 버블탕과 노천 아쿠아탕으로 구분된다. 일반 사우나시설이나 온천시설처럼 흉내내는 수준이 아니라 대체의학 물 치료 개념으로 설계돼 총 120여 개 분사구에서 물줄기가 나온다. 실내에는 매일 다른 아이템(허브, 딸기, 유자, 레몬, 마늘, 고추, 인삼, 술 등)의 테마 이벤트탕이 운영되며, 실외에는 키즈워터랜드가 마련돼 자녀가 있는 고객들은 부담 없이 쉴 수 있다. 폭포 노천탕은 1000t의 자연석으로 꾸며지고 다양한 조경수로 이루어진 이국적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사우나 스파시설을 모두 이용하고 나면 1층에 있는 전통 불한증막, 참숯황토방, 소금방, 피라미드 보석방, 얼음냉방 등 찜질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인근에는 천진암, 눈썰매장, 힐하우스, 바탕골 예술관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양평 인근에서 수상스키와 웨이크보드 등을 즐길 수 있고 붕어찜으로 유명한 분원이 승용차로 5분 거리에, 남한산성이 승용차로 20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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