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만 선진국 매뉴얼은 후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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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 사는 30대 초반의 가정주부 마리 갈리시아는 얼마 전 시내 쇼핑몰에서 구입한 삼성전자 휴대전화가 마음에 쏙 들었다. SPH-M300 모델로 중저가 제품이지만 디자인이나 성능이 좋았다. 게다가 영문 사용설명서의 문장이 명쾌하고 분명한 데다, 지시사항도 간결하고 적절했다. 옥에 티라면 기능을 나타내는 아이콘 인쇄상태가 안 좋았을 뿐이다. 마리는 “사용설명서 대로 했더니 조작에 전혀 문제 없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SPH-M300 모델의 영문 설명서는 전문가들도 잘 만들어졌다고 본다. 최형선(40)씨는 솔루션 프로그램 개발 업체인 미국 브룩스오토메이션 한국지사에서 10년 가까이 영문 사용설명서 제작에 종사해왔다. 현재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최씨의 생각도 같다. 최씨는 “화살표(→)와 오른쪽 방향 키(>·Right-arrow key)를 하나로 통일하지 않고 혼용한 점이 눈에 거슬린 유일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쌍따옴표에서 쉼표, 마침표까지 용법이 모두 정확했다고 최씨는 평했다. 그러나 삼성이나 LG등 국내 대기업이 수출하는 모든 제품의 영문 사용설명서가 완벽에 가깝지는 않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삼성전자의 감시 카메라와 LG TV의 영문 사용설명서를 복수의 전문가에게 의뢰해 분석했다(50~51쪽 상자기사). 그랬더니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 일관성이 없거나, 전혀 엉뚱한 의미가 담긴 대목들이 발견됐다. 최형선씨는 “세계적 회사인 삼성이나 LG도 제품에 따라 영문 사용설명서의 편차가 심하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제품에 따라 영문 사용설명서 제작에 들이는 정성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원가절감의 차원도 있고, 해외 시장에 주력하지 않는 제품의 경우도 있다. 따라서 질이 떨어진 삼성의 감시 카메라나 LG TV의 영문 사용설명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작성됐을 가능성이 크다. 가령 한국인 테크니컬 라이터가 실무에 어두웠거나 외국인 감수자가 사용설명서 작성의 기본 소양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모두 한글 사용설명서를 잘 쓰지 못하듯이, 영어 원어민이라고 영문 사용설명서를 모두 잘 쓰지는 못한다. 따라서 사용설명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영어 원어민에게, 그저 인건비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감수를 맡겼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해진다. 미국 테크니컬 라이터들의 모임인 STC(The Sociery for Technical Communication)는 매년 경진대회를 열어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자제품 사용설명서의 우열을 가린다. 미국과 전 세계 제품을 10여 개 권역으로 나눠 각 권역에서 예선을 통과한 사용설명서를 본선에서 경쟁케 한다. STC 한국 지부의 오인희 대표는 “지금까지 한국 기업의 제품 매뉴얼이 STC 권역 예선을 통과한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다만 LG전자가 2000년대 들어 STC 워싱턴DC 지부에서 몇 차례 수상했을 뿐이다. “해외에서 한국 기업의 영문 사용설명서는 낮은 평가를 받는다”고 오인희 대표는 말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라는 악몽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국내 대기업도 세계 일류의 영문 사용설명서를 뽐냈을지 모른다. 국내 대기업은 1997년의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사내에 원어민 테크니컬 라이터들을 뒀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주요 사업부별로 테크니컬 라이팅 전담팀(TW팀)을 꾸려 회사 전반의 사용설명서 작성에 전문성과 통일성을 높여왔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오면서 사정이 돌변했다. 구조조정 압력에 직면한 기업들이 전담팀을 해체했다. 원가절감 차원에서 공정도 줄이고, 담당 직원들도 분사 형태로 내보낸 경우가 많다. LG전자도 2000년 이후 테크니컬 라이팅 업무를 외주로 돌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외부에 노출해서는 안 되는 첨단 기술 제품을 제외한 제품들은 외부 협력업체에 위탁한다. 분사한 업체의 직원들이 LG 본사의 사용설명서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형식이다. 테크니컬 라이팅 업체인 솔트룩스의 신석환 상무는 “1년 열두 달 항상 일이 있지도 않고, 직접 고용관계를 유지하면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각 회사들이 사용설명서 제작은 외주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물론 휴대전화 사용설명서 제작엔 각 기업이 정성을 쏟는 편이다. 간판 수출품이고 세계시장 점유율도 높기 때문이다. 삼성과 LG가 지난해 미국 시장의 약 30% 이상을 점유했다. LG 휴대전화 영문 사용설명서의 경우 우선 사내 테크니컬 라이터가 영문으로 작성한다. 그런 다음 현지법인이나 현지의 테크니컬 라이팅 전문업체의 감수를 받는다. 이어 품질인증시험과 사업자 검증을 받고 나서야 출시한다. LG전자 홍보팀의 배진경 차장은 “휴대전화처럼 SW기술 개발에 필요한 경우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영문 설명서를 자체 제작한다”고 말했다. 삼성 휴대전화는 오랜 기간 특정 테크니컬 라이팅 업체와 협력하면서 품질을 관리한다.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1990년 이래 한샘이지유저가이드(이하 한샘)와 호흡을 맞춰왔다. 삼성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면 한샘에서 영문 사용설명서를 작성한다. 한샘은 국내 테크니컬 라이팅 업체로는 처음으로 올해 들어 원어민 테크니컬 라이터를 전속 고용했다(국내 대부분의 테크니컬 라이팅 업체들은 한국에서 활동 중인 외부의 원어민들에게 감수를 받는다). 삼성은 이렇게 만든 사용설명서를 사내 CS(소비자 만족)센터와 미주 현지법인을 통해 검증한 다음 출시한다. 그러나 PC, TV, 캠코드 등 분사한 업체의 직원들이나 외주업체들이 작성하는 영문 사용설명서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테크니컬 라이팅 업체 테스코에선 직원 약 30명이 삼성의 TV, 컴퓨터, 캠코드 영문 사용설명서를 제작한다. 그러나 2년 전 1000만원대를 오가던 42인치 PDP TV가 지금은 100만원대로 떨어졌다. 그 바람에 100쪽에 달하던 사용설명서도 10쪽으로 줄여야 했다. 테스코의 김홍균 이사는 “테크니컬 라이팅만으로 먹고사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업계의 실정을 토로했다. “기획, 편집, 그래픽 디자인 등 부업을 해야 회사가 굴러간다.” 대다수 테크니컬 라이팅 업체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국 전자제품 경쟁력의 원천 중 하나는 속전속결이다.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제품을 공급하려고 노력한다. 영문 사용설명서도 이런 속도전에서 예외가 아니다. TV의 경우 시제품이 넘어오고 대략 10일 안에 영문 설명서를 만들어야 한다. TV보다 기능이 복잡한 캠코드 같은 제품은 12일이 주어진다. 김홍균 이사는 “가격 경쟁뿐 아니라 시간 경쟁도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회사별로 매년 쏟아지는 20~30종의 PC, 50종의 휴대전화, 200~300종에 이르는 가전기기의 사용설명서는 모두 숨가쁘게 만들어진다. 25년 이상 다국어 사용설명서를 제작해온 김온양 솔트룩스 대표는 체계화된 설명서 제작은 꿈 같은 얘기라고 말했다. 라성일 한국TC협회 전문위원도 “기업들은 보다 싸고, 빠르고, 정확한 영문 설명서를 요구하지만 투자는 뒷전이다. 결국 마른 수건 쥐어짜듯 테크니컬 라이터들만 죽어난다”고 말했다 한샘의 김양숙 대표는 “삼성만 해도 소비자 욕구 충족에 100개의 노력을 쏟는다면 사용설명서 제작에는 40개 정도의 노력만 기울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문장 즉, 글쓰기 자체만 놓고 보면 정확하고 뛰어나다. 하지만 보다 충실한 설명과 알기 쉬운 그림을 통해 소비자의 이해를 돕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삼성으로부터 50쪽 분량의 영문 사용설명서 의뢰가 들어왔다. 김 대표가 보기에 주어진 지면에 필요한 정보를 담자면 활자 크기를 줄여야 했다. 그러나 작아진 글씨가 보다 쉽게 읽히려면 검정 외에 파란색을 하나 더 넣어 변별력을 높여야 했다. 그러나 삼성 측은 1도(검정)와 2도(검정+파랑) 설명서 제작에 드는 비용 차이를 고민하면서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김양숙 대표는 “기업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설명서의 크기와 페이지를 줄여 제작비와 물류 비용을 절감하느냐에만 쏠려 있다”고 아쉬워했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테크니컬 라이팅 업체의 생산단가표를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영문 설명서 1쪽을 작성하는 데 1만1000~1만2000원을 받는다. 숙련된 테크니컬 라이터가 하루에 제작하는 영문 설명서 분량은 8~10쪽. 하루를 꼬박 일하면 10만 원 안팎의 보수를 받는다. 미국 STC가 지난해 작성한 통계표에 따르면 미국의 테크니컬 라이터는 시간당 40달러를 받는다. 8시간 근무로 환산하면 320달러. 우리 돈으로 30만원에 해당한다. 이 자료를 제공한 어느 전문가는 “1인당 GNP나 물가를 감안한다 해도 가격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에서 영문 설명서를 제작하는 테크니컬 라이터들도 기업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 네트워크 사업부 다큐먼트 센터에서 일하는 김경화 과장은 2001년 입사했다. 이 부서에는 이동통신, 와이브로, 시스템 장비, 교환기 분야에 10명 안팎의 테크니컬 라이터가 일한다. 밀려드는 일감을 감당하자면 인원이 턱없이 모자란다. 적어도 20명은 있어야 일이 제대로 돌아가리라 생각됐다. 그래서 올초 회사 측에 증원을 요청했지만 인원을 대줄 여력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용설명서 제작비가 마케팅 항목이 아닌 제품의 원가항목으로 인식되는 현실도 문제라고 지적된다. 가격 경쟁이 가열될수록 원가 절감 압력이 사용설명서에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대기업 소속 테크니컬 라이터들은 승진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 테스코의 김홍균 이사는 “테크니컬 라이터가 올라갈 자리는 부장이 고작”이라고 말했다. 임원을 두자면 사업 부서가 있어야 하는 데 사용설명서만으로 사업부서를 꾸릴 대기업은 거의 없다. STC 한국 지부의 오인희 대표는 LG전자 PC 사용설명서 개발을 담당하는 ‘디지털매이트’사를 이끈다. LG전자 PC사업부에서 설명서 제작을 담당하던 직원들이 2000년 분사해 만들었다. 경기도 평택 LG전자 단지 내에 회사 사무실이 있어 사실상 LG전자 직원처럼 작업한다. 지난 7년간 이 일을 해온 오 대표는 국내 CEO들이 사용설명서의 중요성과 마케팅 기능을 보다 진지하게 고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니와 같은 외국 기업들은 소비자가 설명서를 읽으면서 제품을 더 신뢰하게 된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대처해왔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인지하는 단계일 뿐이다.” 사용설명서가 제품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일까? 일본 JTCA (Japan Technical Communication Association) 자료에 따르면 마쓰시타전기산업의 경우 설명서 제작비용은 제품 출시 가격의 0.4~0.5%선이며, 포장 비용을 포함하면 1%선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홍보실은 대외비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일본의 예에 비춰보면 한국의 경우 아무리 많이 잡아도 1% 미만이라고 추정한다. 오인희 대표는 심지어 0.1%선까지 내려 잡기도 한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설명서 제작에 너무 인색하다고 불평한다. 게다가 설명서 투자는 당장 빛을 발하는 사업이 아니다. 설령 누군가가 제조원가 상승이라는 부담을 안고서라도 투자를 늘렸다고 치자. 궁극적으로 회사 이미지가 고양되고, 매출에도 기여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그 부서의 장은 다른 부서로 옮겨 있을 테고 그 공은 후임자에게 돌아간다. 결국 자기 실적에 반영되지 않는 투자에는 모두 인색하다. 그래서 “최고경영자가 결단을 내려야 가능하다”고 삼성전자 김경화 과장은 말했다. 사실 기업 하는 입장에서도 영문 설명서 작성에 얼마나 투자해야 하나 난감할지 모른다. 비용 대비 효과의 변변한 연구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TC협회의 장석진 사무국장도 “사용설명서가 기업 이미지 제고나 매출 증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한 자료가 없다는 사실이 뼈 아프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주장과 논리만 무성하다. 또 기업은 소비자들이 매뉴얼을 꼼꼼이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LG전자 홍보실은 “고객은 두꺼운 설명서를 읽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아무리 잘 만든 설명서라도 소비자 눈에는 어려운 교과서다. 심지어 “제품 포장지가 뜯어지는 순간 그 포장지와 함께 설명서도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나돈다. 그래서 LG전자는 “고객이 원하는 내용을 쉽고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해주는 설명서 제작에 주력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마쓰시타전기산업도 정보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쪽 수를 줄이는데 노력한다고 한국TC협회는 전했다. 한샘에서 일하는 미국인 테크니컬 라이터 에드윈 E 홀런 3세는 “대부분의 외국 회사는 적합한 설명서 제공이 자사 제품의 가치를 높인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강조했다. 또 인터넷 사용이 증가하면서 많은 회사가 온라인을 통한 설명서 공급에도 주력한다. 일본 마쓰시타전기산업은 자사 웹사이트 방문객의 약 40%가 제품 구매에 앞서 설명서를 검색한다고 밝혔다. 일본 캐논사도 웹을 기반으로 한 설명서 사용이 증가한다고 보고 관련 기술과 도구 개발에 나섰다. 어쩌면 설명서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는지 모른다. 사용설명서란 제품의 조작 방법과 고장시 처지 방법 등을 사용자가 알기 쉽게 설명한 문서다. 제품의 설치와 사용, 유지보수 방법과 안전지침을 담아낸다. 설명서로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면? 콜센터에 전화해 알아내야 한다. “설명서를 잘 만들면 제작에 투자한 비용의 갑절 이상을 콜센터 운영비에서 절감할 수 있다”고 오인희 대표는 강조했다. 더구나 미국이나 유럽에선 사소한 고장은 직접 기능을 익혀 고치는 사용자가 많다. 이런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려면 설명서는 더욱 친절하고 알차야 한다고 라성일 전문위원은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제조물 책임법이 도입된 이후로는 설명서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안전사고가 발생했다고 치자. 그 설명서에 국제 표준이 정한 모든 경고와 안전 문구가 들어 있다면 회사의 면책 범위가 넓어진다. 한국에서도 제품 결함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볼 경우 제조업자가 보상을 하는 제조물 책임법(PL법·Product Liability)이 2002년 7월부터 시행 중이다. LG경제연구원은 ‘제조물 책임법과 기업의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PL법 도입은 기업에 추가비용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적정 수준의 체계적인 대응이 이뤄질 경우 소비자 만족 경영 정착을 통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with RUPALI ARORA i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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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LG의 영문 설명서를 살펴보니… 테크니컬 라이터는 말 그대로 기술문서를 작성하는 사람이다. 제품에 들어간 고난도 기술을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쉽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시 말해 공학 지식과 글쓰기 능력을 겸비한 전문인이다. 여기에 어학 능력까지 겸비하면 영문 사용설명서 제작이 가능한 테크니컬 라이터로 인정받는다. 최형선씨는 한양대 전산과를 졸업하고, 하이닉스반도체 공장의 공정자동화 프로젝트에서 3년을 근무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처음엔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영문 사용설명서 제작 경력이 붙으면서 전문가가 됐다. 대부분의 국내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비슷한 경로를 밟아 성장했다. 물론 한국TC협회(KTCAㆍ Korea Technical Communications Association) 라성일 전문위원의 경우는 다르다. 라 위원은 국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뉴욕주립대 테크니컬 라이팅 학과에서 테크니컬 스타일을 전공했다. 한국TC협회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200~300명의 테크니컬 라이터가 활동 중이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위 두 사람에게 LG와 삼성전자의 영문 사용설명서 2종의 분석을 의뢰했다. LG는 컬러 TV(30SS4D), 삼성은 디지털 감시 카메라(SCC- B2311)를 골랐다. LG, 삼성의 홈페이지에 해당 제품의 영문 설명서가 올라 있다. 두 사람에 따르면 LG TV 영문 설명서는 첫 장부터 표현이 매끄럽지 못하다. 첫문장 ‘Please read this manaul carefully and completely before operating your TV.’(위 왼쪽)는 ‘TV를 조작하기 전에 이 사용설명서를 주의 깊게 전부 다 읽어 달라’는 의미다. 라성일씨는 중요한 정보는 문장의 후미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Before operating TV, please read this manaul carefully and completely”가 더 정확하다는 얘기다. 최형선씨는 제시된 문장이 너무 무겁고 거추장스럽다고 평가했다. “설명서는 물 흐르듯 해야 하며, 지나친 강조는 프로답지 않은 기법”이라고 했다. 따라서 “read this manaul carefully and completely”는 “read through this manual”로 간명하게 처리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권고했다. LG 매뉴얼의 경우 구두점 사용도 적절치 않았다고 한다. 콜론(:)은 바로 앞의 단어에 붙여야 한다. 하지만 띄어쓰거나(‘Cord :’ 4쪽), 붙여쓰는 등(‘Notes:’ 5쪽) 일관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괄호도 마찬가지. 한국에서는 바로 앞의 단어와 괄호를 붙여쓰지만 영어는 반대로 띄어쓴다. 한국식 사고에 젖어 번역하면서 빚는 오류다. 실제로 설명서에서는 붙이거나 [Interface(HDMI)], 띄우기도 [Devices (Player or Set Top Box -16쪽)]했다. 삼성 디지털 감시 카메라다. 영문 설명서 2쪽 그림(오른쪽)은 요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최형선씨는 분석했다. 그림만 봐서는 아주 무거운 물건을 옮긴다고 이해된다. 하지만 감시 카메라는 그렇게 크지도, 무겁지도 않다. 따라서 설명과 전달하려는 뜻이 따로 논 셈이라고 했다. 5쪽 목차란에는 ‘Installation and Use Instructions----9’, ‘Install the lense----11’ 가, 6쪽에는 ‘~device that Operates in color mode~’라고 표기돼 있다. 이유 없이 문장 속 단어에 대문자(Instructions나 Operates)들이 등장한다. 8쪽을 보면 ‘it’s useful to use LSS’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영문 설명서에서는 축약형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최씨는 지적했다. 그래서 ‘it is’로 써야 했다. ‘제품을 절대 분해하지 마시오’라는 의미의 ‘So do never disassemble the product’(10쪽)도 아주 어색하다. 좀 더 간결하고 쉽게 쓰자면 ‘So never disassemble~’이 낫다고 최씨는 강조한다. 라성일씨는 “제시된 모델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삼성이나 LG의 영문 사용설명서들이 상당한 수정 작업을 필요로 한다”고 진단했다. 최형선씨도 일관성을 상실한 설명서는 소비자의 제품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설명서가 이렇게 원칙이 없는데 제품은 오죽할까 하는 심리가 작동하게 된다”는 최씨의 부연 설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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