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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건축가들의 혁명

신세대 건축가들의 혁명


현대식 발상을 전통적 감각과 융합해 중국의 개성 살리기에 나서 중국 건축가들은 일거리가 없어 걱정했던 적이 거의 없다. 하버드대 렘 쿨하스 교수와 그의 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몇 년 전에 이미 “중국의 건축가 수는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었지만, 업무량은 5배”였다. 하지만 일 자체는 재미라곤 없었다. 대다수 건축가가 정부 기관에서 일하며 특징 없고 밋밋한 고층건물의 설계도만 계속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런 진부함 속에서 최근 세련된 건축을 추구하는 놀라운 분위기가 조성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용으로 짓는 최신식 건물이 가장 대표적이다. 대부분 유명한 외국 회사가 주도하는 이 건설 사업은 중국에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건축 문화가 조성되는 데 일조했다. 자기 사무실을 열고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는 젊은 건축가가 늘었기 때문이다. 건축가 마얀송(31)은 “전통에 도전하는 게 바로 중국의 전통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상하이가 반짝이는 초고층 건물로 알려졌다면 베이징은 혁신적인 설계의 중심이 됐다. 중국 당국은 올림픽 시설을 맡은 설계자들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었다. 네덜란드인 건축가 쿨하스와 그의 파트너 올레 스히렌이 지은 CCTV 방송센터는 끊임없는 고리 모양으로 설계돼 고층건물 개념의 과감한 발상전환으로 꼽힌다. 런던의 건축 회사 포스터 앤 파트너스가 세운 새 공항은 세계 최대 규모의 터미널일 뿐 아니라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노먼 포스터가 말했다. 100만㎡의 공간을 하나의 지붕으로 덮었다. 스위스의 헤르조그 드 뮤론이 지은 올림픽 주경기장은 고풍스러운 21세기 건축물이다. 이들 건축물에 쓰인 기술 역시 놀랍다. 호주 건축 회사 PTW가 설계한 올림픽 수중경기 센터는 비누 거품의 물리적 원리를 이용해 만든 벽을 가진 거대한 정육면체다. 물론 일부 전위적인 건축물은 중국에서, 특히 전통을 중시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외국 건축가 다수는 중국 문화를 추상적인 방법으로 녹이려 애썼다. 포스터는 신공항 설계를 두고 “사람들이 런던이나 뉴욕이 아니라 중국에 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자문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낸 것이 중국 특유의 밝은 붉은색에서 ‘용을 닮았다’고 불리는 황금색으로 점차 변하는, 굴곡진 거대한 지붕이다. 불규칙적으로 휜 강철봉으로 사발 모양을 만든 올림픽 주경기장(‘새 둥지’로 불린다)의 경우에는 헤르조그 드 뮤론이 중국 미술가 아이웨이웨이를 자문역으로 기용해 아이디어를 얻었다. 자크 헤르조그는 “아이는 이 모양이 중국인들의 마음과 정신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젊고 독립적인 건축가들에게는 급진적인 발상을 중국적인 감각과 융합하는 게 관건이다. 대부분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중국 문화를 표현하는 정교한 방법을 찾는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재료나 공간을 이용한다. 캘리포니아대(버클리)에서 훈련 받은 건축가 주페이(45)는 “늘 ‘무엇이 현대의 중국인가’란 질문에 답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가 설계한 올림픽 자료 센터인 ‘디지털 베이징’은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킨다. 섬유유리로 만든 벽은 컴퓨터의 마더보드처럼 홈이 패어 있다. 하지만 이 벽은 “종이로 바른 중국의 창문”과 같이 바깥 세상과 건물 내부를 구분 짓는다고 그는 말했다. 마얀송은 예일대에서 공부하고 자하 하디드의 런던 건축 사무실에서 일한 뒤 베이징에 돌아와 자신의 회사 MAD를 열었다. 그는 베이징 북쪽에 차분한 동양의 정서가 깃든 홍 뤄 클럽을 지었다. 굴곡진 지붕을 가진 이 현대식 건물은 산맥을 배경으로 하며 호수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중국의 족자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이 신세대 건축가들의 대부는 융오창(51)이다. 그가 베이징에 첫 독립 작업실을 연 것은 15년도 채 안 된다. 그는 이 작업실과 미국에서 시간을 반반씩 보낸다. 매사추세츠공대 건축학부 학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의 회사는 중국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UFIDA가 사용할 4만5000㎡의 건물을 베이징에 지었다. 그는 UFIDA에 평범한 고층 건물 대신 회색 콘크리트 블록(기존의 벽돌보다 더 환경친화적이다)으로 3층 건물을 짓자고 설득했다. 건물 내에 중국식으로 작은 마당을 넣고, 지붕에는 테라스를 만들었다. 창은 중국의 현대 건축물뿐 아니라 중국 도시의 수준 또한 심각하게 걱정한다. 그는 “이제 어떤 형태의 건축물도 지을 수는 있지만 거기에 영혼이 없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도시가 도시다워야 하지만, 현재 베이징에는 별 볼일 없는 건물만이 가득하다.” 여러 독립 건축가들이 그의 우려에 공감한다. 아직 도시 외관에 큰 변화를 주진 못했지만 그들은 첨단 설계뿐 아니라 지속성, 역사 보존, 도시의 미래도 고려한다. 마는 MAD가 토론토 타워 설계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자 “우리가 대중에게 이런 구상을 제시할 수 있고, 사람들이 여기에 귀를 기울일 거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MAD는 2050년의 베이징을 위해 추상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마는 오래된 길과 안마당 몇 개는 보존하되 천안문 광장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박물관, 도서관 등을 갖춘 숲의 공원”으로 바꾸자고 대담하게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 베이징 2050계획은 지난해 베네치아 건축 비엔날레에서 발표됐다(MAD 홈페이지 i-mad.com에 나와 있다). 건축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멈춰 서서 생각하도록 만들려는 게 목적이다. 그래야만 새로운 건축 문화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중국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With JONATHAN ANSFIELD and DUNCAN HEW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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