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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동아 파산 시나리오 있었다”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동아 파산 시나리오 있었다”

▶93년 6월 최 회장은 특강에서 국영기업이었던 대한통운 인수 후 기본에 불충실하고, 고객을 존중하지 않고, 청결하지 않은 3대 ‘통운병’을 고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포매립지 용도변경 불허 문제는 동아건설 파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형 건설사가 도산하면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협력업체까지 줄줄이 부도로 이어져 그 후유증은 건설업계 전반을 위축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아 파산은 오늘날 리비아의 잠재 성장력을 생각할 때 국가적으로도 여간 손실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비화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대한건설협회 회장이기도 했던 최원석 회장이 DJ정권에서 곤란을 겪고 있다는 언론보도와 비서진의 보고를 받자 제일 먼저 물은 것이 ‘리비아 공사는 우째 되고 있나!’였다고 했다. 역시 ‘불길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보고를 듣자 YS는 손가락을 쳐드는 특유의 액션으로 청와대 쪽을 가리키며 분노에 가까운 언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전부 다 직이겠다는 거가! 그 친구(최 회장을 일컫는 듯)가 말은 어눌해도 대한민국 건설 역사에서 그만큼 엄청난 역사를 쓴 건설인이 누가 있노! 권력이 경제를 직이는 우를 범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보는 거 아이가! 권력이 지꺼가! 리비아가 지구상에 마지막 남았다는 황금시장인데 장간(장관) 직책을 주도(줘도) 근처만 돌다가 왔지 누구 하나 카다피하고 악수 한번 몬해 보고 왔다 아이가! 최 회장만큼 수완 있고 행동력이 뛰어난 사람이 없는데 그런 황금시장을 어디에 뺏길라고 저 작당을 하고 있다는 기야! 건교장관 전화 대바라.” YS도 리비아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었다는 것이고 동아사태를 매우 우려했다는 것이다. 사실 리비아는 대수로 공사를 필두로 유전개발과 관광 인프라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발주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하고 있다. 석유만 해도 확인 매장량은 390억 배럴이지만 국토의 75%가 아직 탐사조차 되지 않은 채 원시림처럼 남아 있고, 실제 매장량은 추정이 어렵다고 할 정도다. 미국의 엑손모빌, 세브론텍사스, 코노코 필립스, 옥시덴탈 같은 메이저급 주요 석유회사들이 대거 리비아로 찾아들고 유전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그것을 방증한다. 리비아 정부도 공개적으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기간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확인까지 했다. 그 예로 지난 5월 리비아 정부는 수도 트리폴리에 5성급 35층 높이의 대형 특급호텔을 발주하기도 했다. 다행히 한국 업체인 대우건설이 수주했지만 그처럼 리비아는 관광, 문화유적지 개발 등에서부터 공격적이고 가시적인 프로젝트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비아 시장을 눈앞에 두고 어느 기업보다도 신뢰를 쌓아왔고 리비아의 모든 공사를 수행한다는 DAM까지 공동설립했던 동아의 대리비아 외교력을 생각할 때 동아의 침몰은 동아만의 침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짚어보게 한다.

-김포매립지만 용도변경이 되고 40억 달러를 유치했으면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말씀 아닙니까?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동아도 정상화됐고 리비아 공사에다가 해외시장을 더 확대했을 거요. 그 시점에서 동아건설이 수행하던 해외공사만 해도 대수로 공사를 포함해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베트남에도 진출했으니까 그것만도 4개국에서 12건이었는데 그게 계약액만 69억4000만 달러였어요. 이건 채권단이 집계한 겁니다. IMF 사태로 우리가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환란을 겪은 게 아니니까 우리가 계속 진출하면 시장 확대는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용도변경 안 되고 회사에 여유 자금이 없어서 은행에 협조융자를 요청했더니 그마저도 불허돼 파산까지 갔는데, 생각할수록 분하지만 동아만 김포매립지를 용도변경 못할 이유가 도대체 뭔지 말이지요.”

-정부에서 가져간 농지는 필요한 용도로 전부 변경을 했잖습니까?
“그러니까 속이 뒤집어질 노릇이지요! 왜 동아만 안 되느냔 말이오. 시작할 때 농지로 매립을 허가했기 때문에 안 된다? 해보니까 염분 때문에 농지로는 부적격한 걸 매립 당시 조건만 강조해서 될 일입니까 그게? 아니, 다른 얘기는 다 그만두고라도 우리가 김포 갯벌을 매립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1100만 평이 넘는 농지가 어디서 나와요? 그러고 끝까지 (용도변경)안 된다고 했으면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전용을 불허했어야 논리에 맞는 거 아니오?” 최 회장은 분노했지만 톤을 높이지는 않고 있었다. 활공하는 매는 놓쳐버린 먹이를 다시 낚아채지 않는다는 의미 같았으나 비판의 날은 날카로웠다. “솔직히 파산 시나리오가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거요. 나한테는 절대 용도변경은 불가능하다 해놓고 내가 물러나고 동아 관리를 맡은 고병우(전 건설부 장관)씨가 있을 때, 김포매립지를 거래가도 아닌 공시지가의 60% 가격에 정부가 삽디다. 그래가지고 사들인 매립지를 1년도 안 돼서 내가 98년도에 제안했던 방식 그대로 개발계획을 발표했어요. 이게 뭡니까 그래. 절대 농지변경은 있을 수 없다 하더니 침도 마르기 전에 말이지. 그러고도 파산 시나리오가 없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고 판 것도 그렇습니다. 고병우씨가 DJ정권에서 건설장관을 했잖아요. 그러면 동아 매립지에 대해 잘 알 거 아닙니까? 근데, 개발 추진은 하지도 않고 시세에 비하면 턱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았어요. 그나마 공시지가도 아니고 공시지가의 60%에 팔았단 말이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96년 1월 청와대 초청 30대 그룹 총수 신년회를 겸한 만찬장에 초대된 재계 대표들. 대한건설협회 회장이기도 한 최 회장에게 김영삼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이 DJ정권에서 화를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다. (왼쪽부터 김영삼 대통령, 이건희 회장, 최원석 회장, 그 외 조중훈, 정몽구, 김승연, 정인영씨 등이 보인다.)



“왜 동아만 안 된다는 것이오” 사실 김포매립지 문제는 동아의 생사가 걸린 사안이었기 때문에 매립지를 담보로 하는 융자 문제가 채권단으로서도 최대 과제였다. 용도만 변경된다면 동아는 살아나는 것이고, 당연히 숨가쁘게 진행됐던 당시 상황을 언론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목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매립지 용도 문제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묻혀버렸고 그때까지 추적했던 언론들도 무색하게 됐다. 최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3일 후인 5월 18일부터 언론들이 보도했던 내용은 동아를 살린다는 쪽으로 방향이 잡히고 있었는데 졸지에 상황이 돌변했던 것이다. 다음은 당시 필자의 취재내용 요약. <…동아건설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이 채권은행장 회의 개최예정 시간을 밝히지 않아 18일 오전부터 취재진의 추적 대상이 된 끝에 오후 6시30분 가까스로 개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이날 오전 출근길에 6대 시중은행장들과 조찬을 같이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갑자기 회의 내용에 관심 집중. 특히 조찬회의에서 시중은행장들은 정부에 대해 동아건설 김포매립지 용도변경을 또 한 차례 건의했던 것까지는 확인됐지만 정부 방침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 오후에 당정협의가 열리면서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의장이 김포매립지를 국가나 채권은행이 공시지가로 매입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고 말해 분위기는 정부·여당이 동아 살리기로 가닥을 잡았음을 시사. 신복영 서울은행장은 18일 오후 4시30분, 당정협의가 끝날 무렵 자리를 떴다가 30여 분 만에 은행으로 돌아왔으며, 홍보실장을 통해 긴급 채권은행장 회의 소집 사실을 공개. 오후 6시30분 시작된 5개 은행장 회의는 40분 만인 오후 7시10분에 끝나 회의가 큰 난항을 겪지 않았음을 시사. 이날 회의에서 신 행장이 김포매립지 처리에 대한 정부 방침을 설명하고 이를 외환·상업·신한·경남은행장이 받아들여 6000억원의 협조융자가 결정된 것으로 회의장 주변에서는 관측. 그러나 신 행장은 회의가 끝난 후 ‘정부로부터 김포매립지에 대해 어떤 언질도 받은 바 없으며 오늘 회의에서도 이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정부 쪽과의 사전 교감설을 부인. 그럼에도 신 행장이 오후 4시30분부터 30여 분간 모처를 다녀온 직후 충분한 설명 없이 갑자기 6시30분에 은행연합회에서 회의를 열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미뤄 정부 관계자와의 접촉에서 김포매립지 문제에 대해 충분한 언질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 회의 직전까지 협조융자에 반대했던 신한, 상업은행 등의 태도가 180도 바뀐 것도 주목되는 부분. 김원길 정책위의장이 김포매립지를 정부가 공시지가로 매입한 뒤 그 대금으로 금융기관 부채를 갚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채권은행장 회의가 긴급히 소집된 점으로 미뤄 동아건설을 살리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 5월 19일, 전날 주요 채권은행장 회의에서 6000억원의 협조융자를 하기로 잠정 합의한 데 대해 은행권 다음으로 여신이 많은 종금사, 리스사, 보험사 등이 대부분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이르면 20일 열릴 전체 채권금융기관 회의는 협조융자 분담액을 결정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판단. 특히 금융기관들은 정부가 김포매립지를 토지개발공사를 통해 공시지가로 인수한 뒤 대금 1조원을 동아건설 부채를 갚는 데 쓰도록 하겠다는 방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상태. 20일 개최 예정인 채권금융기관 전체회의는 주요 채권은행장회의 결정을 추인하고 여신 비율에 따른 협조융자액 분담과 지원시기를 결정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시각.> 채권단은 실시간 중계하듯이 긴박한 분위기를 전했고, 이런 상황이었음에도 갑자기 매립지 논의가 중단되고 협조융자마저 불투명해지면서 결국은 파산으로까지 치닫게 되자 최 회장이 동아의 생사여탈권을 채권단이 쥐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최 회장은 담배를 끊었다고 했는데 담배를 찾았다. 그러더니 접대용 재떨이에 눈빛만 주고는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를 썼다.

동아 자산 형편없이 낮춰 감정 “나중에 보니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김포매립지를 공시지가보다 싸게 빼앗을 작정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채권단회의에서 결정된 걸 뒤집어엎은 것 아니겠어요? 나도 듣는 통로가 있어요. 채권단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됐으면 동아도 살리고 협조융자도 매립지 가지고 다 되는 겁니다. (어디서 뒤집었다는 겁니까?) 아직은 얘기 안 해요. 얼마 전이지만 현대의 서산간척지는 공시지가가 아닌 현시가로 정부가 사줬고, 그것도 선 매입, 후 분할판매로 계약을 했습디다. 김포매립지 처분하고 너무 대조적이지 않아요? 결국은 동아 자산을 형편없이 감정했다는 자체가 파산 시나리오대로 가려고 그랬던 것 아니면 뭐겠소. 그러고 나는 지금도 동아 자산이 얼마에 어떻게 처분됐는지 통지 받은 게 없고 모르고 있어요. 이게 말이 돼요?” 동아 자산이 형편없이 평가됐다는 주장에는 앞서 살펴본 매립지 처분 내용만으로도 상당한 객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매각됐다면 어떤 절차에 의해 얼마에 매각됐는지 본인에게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는 최 회장의 주장도 억지가 아니었다. 대한통운처럼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자산도 있지만 처분된 자산들이 석연치 않다는 기분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도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내가 속을 비웠으니 명이 붙어있지 화병으로 죽었어도 몇 번 죽었을 일을 당한 거야….” 하나의 예가 되고 있지만 대한통운은 그동안 ‘리비아 리스크’ 때문에 처분 대상에서 제외돼 7년째 법정관리 상태에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대수로 공사의 최종완공증명서(FAC) 발급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기 전에는 M&A 등 매각을 허가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대수로 공사를 승계한 대한통운이 동아건설의 2억6700여만 달러 채무를 안고 있었던 만큼 대수로 공사 FAC를 리비아 정부로부터 발급받아야만 본격적인 매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것이 이른바 ‘리비아 리스크’였다. 그렇다면 국내 자산이 해외 발주처의 제동으로 동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 동아건설은 왜 그런 방법을 적용할 수 없었던가 하는 것은 의문이다. 이것은 동아건설의 기업 가치와 직결되는 문제도 되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죽여야겠다고 작정한 사람한테는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결국 대한통운은 최근 리비아 정부의 FAC 발급에 문제가 없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지난 9월 3일 법원 파산부로부터 ‘M&A 재추진 계획 및 주간사 선정계획(안)’을 허가 받아 매각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됐다. 여기서 보듯이 동아건설도 같은 방법으로 처리됐다면 기업 가치의 제고는 물론 파산까지 갔겠느냐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된다는 얘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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