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좀 주세요, 주방 아줌마”
|
▶광면 화정로데오점의 외부 모습. 녹슨 쇠 소재 간판으로 자연스러움을 살렸다. |
“좋습니다. 배관을 열어봅시다.” 하수도가 막힌 것을 발견한 지 열흘이 더 지나서야 땅을 팔 수 있었다. 전문가가 작업해야 나중에 문제가 없다는 충고 때문이다. 더 이상 인테리어 작업을 늦출 수 없을 때쯤 건물 설계도면을 잘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틀 작업에 120만원. 시간이 없었다. 하루 만에 일을 마무리하려고 40만원을 더 들여 굴착기까지 동원했다. 돈보다 원인을 아는 것이 급했다. 설마 했는데 배관을 열어보니 만두 찌꺼기가 가득 막혀 있었다. 이런 경우 일반 가정집이라면 집주인에게 비용을 청구하겠지만 상가는 다르다. 시간을 늦출수록 나만 손해다. 목 마른 놈이 우물 파듯 서둘러 보수공사를 마쳤다. 보수 비용 160만원은 나중에 건물주가 오면 협의키로 관리소장과 얘기하고 사건을 일단락했다. 하수도 공사가 끝나고 전기·냉난방 설비까지 마쳤다. 냉장고, 싱크대, 식기세척기에 육수통, 냄비, 반찬그릇까지 들여오자 라면집 분위기가 제대로 났다. 기존의 분식집과 달리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특히 김원석 대표가 일본에서 사 온 아기자기한 반찬그릇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광면은 훈제삼겹살, 만두, 치즈, 콩나물 등 라면뿐 아니라 라면 위에 얹어내는 토핑 재료까지 본사에서 모두 공급해준다. 사업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왜 가맹점을 찾는지 알 것 같았다.
| ▶내부 모습. 언뜻 좁아 보이지만 손님들의 드나듦과 작업 동선에 최대한 신경 썼다. | |
물론 “사장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김 대표의 충고도 잊지 않을 생각이다. 음식 재료값의 경우 첫 달은 설비값에 포함되고 둘째 달부터 매달 따로 결제한다. 바(Bar)형 테이블에 등받이 없는 고정식 의자가 열 개. 라면 먹는 시간을 계산해 하루 200그릇 정도 팔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광면 1호점 매출을 기준으로 목표 매출은 하루 70만원. 돈 버는 상상에 즐거운 것도 잠시 아직 현실에서는 돈 쓸 일이 더 많다. 1020세대를 타깃으로 한 만큼 음악은 영업에 중요한 요소다. 용산에서 오디오를 알아보니 비싼 것이 200만원 정도였다. 무리다. 본사 인테리어 팀장의 도움으로 음질 좋은 오디오를 인터넷에서 25만원에 살 수 있었다. 보안시스템과 포스시스템(컴퓨터로 판매 품목, 가격, 수량 등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설치하는 데 각각 500만원이 들었다. 개점 D-8일. 겉모습을 다 갖췄으니 이제 속을 채울 차례다. 아내와 의논해 파트타임 직원 두 명과 참모 격으로 주방 아주머니 한 명을 뽑기로 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아내가 “식당 파트타임 직원은 자주 바뀌기 때문에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줬다. 벼룩신문과 웹사이트에 구인광고를 냈다. 다음날 일곱 명이 면접을 보러 왔는데 세 명은 친구들끼리 우르르 몰려와 안 되겠다 싶었다. 라면 끓이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일이라 첫인상이 성실해 보이는 20대 초반 남학생 세 명을 뽑았다. 가게와 집이 가까운 사람을 우선으로 했다. 그런데 주방 아주머니가 문제였다. 오픈에서 마감까지 전체 일을 맡아줘야 하는데 면접 보러 온 사람이 겨우 한 명. 그마저도 30대 미혼이라 썩 내키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채용하기로 했다. 직원을 뽑고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소상공인 창업박람회에 참석했다. 본사의 배려다.
| ▶창업박람회에서 구입한 와플 판매대. 앞으로 앤트스텔라 매장에서도 와플을 판매할 계획이다. | |
박람회에서 커피와 ‘벨기에식 와플’을 파는 ‘앤트스텔라(커피전문점 브랜드)’ 판매대를 봤다. 그렇지 않아도 김밥을 팔지 못하게 돼 고민 중이었는데 또 한번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 대표와 의논해 박람회에 전시한 판매대를 싼값에 사기로 하고 건물주에게도 가게 앞에 설치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벨기에식 와플은 그냥 틀에 찍어 파는 아메리카식 와플과 다르게 반죽을 숙성시켜 훨씬 쫄깃쫄깃하고 맛있다. 520만원에 판매대와 오븐, 발효기 등을 들였다. 개점 D-3. 본사 직원으로부터 라면 맛있게 끓이는 비법을 전수 받았다. 노하우를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만(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말이다) 화력에서 시간차, 물 조절까지 라면마다 비법이 모두 달랐다. 이제 개점해도 손색이 없겠다고 생각한 순간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아, 또 간판을 잊고 있었다. 라면집 특색이 잘 드러나도록 맞춤 간판을 제작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개점 D-1. 드디어 내일이면 개점이다. 친척 어른이 용하다는 곳에서 받아 온 길일(吉日)로 개점일을 정했다. 대박의 꿈에 젖어있는데 간판업자가 도착했다. 간판을 다는 동안 직원들에게 연락했다. 이미 확답을 받았지만 다시 한번 출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전화기가 꺼져 있으니….’ 이게 웬일일까. 주방 아주머니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몇 번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역시 내키지 않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니었나보다. 초조한 마음으로 밖에 나가 간판 설치하는 주변을 맴돌았다. 생각보다 일이 쉽지 않은 듯했다. “이대로는 설치하기 어렵겠는데요.” 고개를 저으며 내려온 업자의 한마디. 눈앞이 캄캄했다. 가게가 코너에 있어 간판도 ‘ㄱ’자 모양으로 특수 제작했는데 건물 모서리 각과 간판 각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서리 각이 90도가 아닌 85도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설상가상이다. 사라져 버린 주방 아주머니는 어디서 구해야 하나. 개점을 하루 앞두고 연락이 안 되는 직원, 간판은 설치 불가. 광면은 무사히 개점할 수 있을까요? 다음 호에서는 예비창업자 분들의 고민도 함께 해결해 드립니다. 궁금한 점을 e-메일로 보내주세요.
●윤 사장의 ‘광면’ 창업 일지
▶인테리어 작업 11월 13~15일=하수도 수리 후 전기·냉난방·가스 설비 마침 11월 16일=냉장고·싱크대·식기세척기·압력밥솥 등 각종 식기류 구비 11월 27일=간판을 잘못 제작해 설치 못함
▶종업원 구하기 11월 20일=벼룩시장과 웹사이트에 채용 공고 냄 11월 21일=면접 후 남학생 3명과 주방 아주머니 채용 결정 11월 25일=본사 직원에게 라면 끓이는 법 전수 받아
▶사이드 메뉴 결정 11월 27일=창업박람회에서 본 와플을 팔기로 하고 매대 설치
▶비용 하수도 공사비=160만원 와플 매대비=400만원(+비품·재료비 100만원, 오븐·냉동고·발효기 임차료 20만원) 부대 설비료=오디오 25만원, 보안 시스템 500만원, 포스 시스템 500만원 구인 비용= 벼룩시장, 웹사이트 6만원 |
김원석 신씨화로 대표의 창업 노하우 좋은 직원 뽑기 □밝고 긍정적인 사람을 뽑아라 돈은 손님이 아니라 직원이 벌어준다
□남녀 비율을 생각하라 남자(여자)만 할 수 있는 일이 꼭 생긴다
□보건증 검사는 필수다 모든 조건을 다 만족하는 알바생도 넘친다 상호·간판 잘 달기 □상호는 진지하게 지어라 지나치게 장난스러운 상호는 오래 못 간다
□간판은 가게의 첫 인상 튀는 간판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업종과 어울리게 작명하라 예쁘다고 곱창집에 영어 이름 지으면? 오픈 전날 꼭 점검할 일 □음식재료 체크할 것 첫날부터 음식재료 떨어져 우왕좌왕할 수 있다
□카드사에 등록했는지 확인할 것 요즘은 편의점에서 라면 사먹을 때도 카드 결제한다
□잔돈을 많이 준비하라 기본 중의 기본. 바쁜 점심 시간에는 빌릴 곳도 없다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