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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부동의 1위 치과장비 ‘백화점’

[파워중견기업] 부동의 1위 치과장비 ‘백화점’

“별로 내세울 게 없어서 통 인터뷰는 안 했는데….” 어렵게 만난 77세의 이영규 ㈜신흥 회장. 그는 지난 50여 년 동안 전쟁의 폐허에서 ‘치과장비업’이라는 전혀 새로운 산업 분야를 만든 ‘신화 창출의 주인공’으로 평가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연 매출 1620억원의 중견기업을 일궜다. 이 대단한 노 기업인의 첫 인상이 ‘겸손’이라는 점은 의외다.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의 창업자인데다 업계 원로이건만 “별로 내세울 게 없어 인터뷰를 한 적이 거의 없다”며 얼굴을 붉힌다. 52년 전 회사를 세워 한 우물만 파며 없던 산업을 만든 그는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0% 수입에 의존했던 국내 치과장비산업의 국산화를 일군 주역이다. 60~70년대 밤샘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치열한 연구·개발이 없었다면 이 분야의 국산화 시기는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이 회사의 올 예상 매출은 1620억원, 순익은 70억원이다. 규모나 시장점유율, 순익 등 모든 면에서 업계 1위다. 1만5000~ 2만 가지나 되는 치과장비와 재료를 모두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다. 더 중요한 것이 내실이다. 일찌감치 무차입 경영을 달성해 빚이 없는 알짜기업으로 컸다. 회사 측은 “동종업계에서 세계 5위 안에 들 수 있는 초우량 기업으로 평가 받는다”고 설명했다.


회사 개요 1955년 국내 최초 치과의료기기 전문업체 설립 1964년 신흥치과산업주식회사 출범 1970년 국내 최초 유니트 체어 개발 1976년 국내 유일의 의료기 수출업체 선정 1985년 국내 최초 치과용 X선 촬영장치 개발 1991년 국내 최초 의료기기 업체 상장 2000년 치과의료기 미국안전규격(UL) 획득 2002년 매출액 1000억원 달성 2005년 창립 50주년·치과용 합금 ‘골드니언’ 출시
단순한 수입·유통을 벗어나 제조 부문으로의 확장도 눈에 띈다. 지난해 회사 매출에서 ‘제조’가 차지하는 비중도 3분의 1이 넘는다. “치과장비 및 재료의 유통과 제조를 모두 담당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업체로 경쟁자라 할 만한 기업이 없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이 같은 알짜기업의 첫걸음이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답이 나온다. 요즘처럼 “사업이 될 것 같아서” 또는 “시장 전망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는 “이걸 열심히 하면 거짓말 안 하고, 정직하게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사업 목적인 돈보다 정직과 성실이라는 방법이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돈이야 뭘 해서든 벌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 회장은 “하지만 아무래도 거짓말은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그는 치과장비업을 시작하기 전 두 번 직장을 옮긴 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돈’ 때문이었다. 52년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그가 가진 첫 직장은 체신부였다. ‘체신부 산하 방송국 엔지니어’라는 직책이었다. 국가공무원으로 평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이었음에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때려치웠다. “공무원이라 해도 엔지니어 출신에게는 미래가 없어 보였고 그 월급 갖고는 결혼한 가장으로서 가정을 끌고 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당시 그에게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미래도 없고 돈도 못 버는 별 볼일 없던 직업이었던 것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그가 한 일이 사업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 물자도 변변치 않던 시대였다. 말이 사업이지 말 그대로 “구멍가게 하나를 운영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그가 처음 했던 사업은 라디오 수리점. 당시 라디오는 귀한 물건이었고 라디오를 수리할 수 있는 기술자는 라디오보다 드물었다. 당연히 장사도 잘됐다. 내친 김에 그는 중고 라디오 매매까지 나섰다. 하지만 이 장사도 문제가 있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돈을 벌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회장은 “조금 수리하고 많이 수리했다고 말해야 하고, 적잖은 분량의 중고 라디오는 장물이거나 미군 부대에서 흘러 나왔다”고 말했다. 돈을 버니 이번에는 ‘양심’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결국 라디오 수리점도 오래 못 갔다. “장사가 한창 잘될 때부터 딴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거짓말 안 하고도 열심히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뭘까 하는 것이었지요. 결국 그게 치과재료상을 하게 된 동기였지요.”
그의 새 사업이 치과재료상이었던 이유도 별 게 아니었다. 열심히 시장조사를 했다거나 밤잠을 설치며 다양한 신사업을 검토했다는 등의 얘기와는 거리가 멀다. “바로 옆집이 치과재료상이어서 주인과 자주 만나다 보니 그 사업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1955년 두 차례 전업 끝에 그는 라디오 수리점 옆에 있던 치과재료상을 인수해 ‘신흥 신화’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초기에는 수입상품 유통이 전부였다. 유통만으로 만족하기는 어려웠다. 제조업을 꿈꾸고 있었기에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치과재료나 장비는 생각보다 훨씬 높은 기술이 요구되는 제품”이라며 “전쟁이 막 끝난 후진국이 그런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고 밝혔다.
처음엔 라디오 수리점 열어
당시 유통 ‘구조’도 맘에 들지 않았다. 도매상 한 개에 수백 개 소매상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각 소매상은 자신의 영역이 있었다. 아무리 발로 뛰어 열심히 팔아도 매출이나 수익은 제자리 걸음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단순 유통’에서 ‘제조 및 수입’으로 길을 바꾼 이유다. “10년쯤 지났어요. 하지만 별로 신통치 않았습니다. 결국 남과 똑같이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65년께부터 이런 생각으로 준비를 조금씩 해 70년 초부터 직접 만든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한편 외국 기업과 직수입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70년대 들어 단순 소매상에서 도매와 제조를 겸한, 본격적인 ‘기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적잖은 치과장비와 재료를 만들어 냈다. 그는 “사실 만들 수 없는 것은 없었다”며 “단지 시장성과 투자의 규모가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그가 만든 장비 중 최고 효자상품은 환자를 눕히는 의자 겸용 침대와 치과의사용 의자가 한 세트로 된 ‘유니트 체어’다. 70년대 초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유니트 체어는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수입에 의존하던 유니트 체어는 해외 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하지만 그는 85년 개발한 치과용 X레이에 더 애정을 갖는다. 이 역시 국내 최초로 이 회장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는 공대 출신으로 한때 방송국 엔지니어였으며 라디오 수리점을 경영했다. 비록 초기에는 발품을 파는 영업에 전념했지만 기계, 특히 전자기계를 만들고 수리하는 데 남다른 지식이 있었다. “치과용 X레이를 여기저기 살펴보니 별로 어려울 게 없더라”는 그는 “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장비를 생산해 1년에 수십 대씩 팔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딴 데 있었어요. 만드는 것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판매 허가를 받기가 어려웠어요. 누가 만들어 봤어야지요. 공무원 중 의료기기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내용을 모르다 보니 겁이 나서 허가를 못 내줬어요.” 불모지였던 산업을 일군 이 회장은 지난 98년 둘째아들인 이용익 사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지금도 정열적으로 활동한다. 이 회장은 “지금은 보고나 받고 있다”고 말했지만 또 다른 회사 관계자는 “매일 출근하셔서 보고를 받는 것은 물론 업계 분들과 자주 만나 동향을 파악하는 데 힘을 쏟으신다”고 설명했다. 80을 눈앞에 둔 그가 지금 갖고 있는 꿈은 교육재단을 하나 만드는 것이다. “치과의사들한테 홀대를 많이 받아 돈 벌면 치과대학을 하나 만들고 싶었지만 이제 이 꿈을 접었다”는 그는 “그저 작은 교육재단을 하나 만들어 돈이 없어 치과대학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 뒷바라지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에는 이 꿈을 꼭 실천할 계획”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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