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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보다 부모를 위한 입양?

자녀보다 부모를 위한 입양?

홍콩 주재 네덜란드 외교관 라이몬트 푸테라이(55)는 한국에서 근무 중이던 2000년 생후 4개월 된 여자 아이를 입양했다. 그러나 제이드라는 이름의 이 아이를 더 이상 못 키우겠다며 지난해 5월 홍콩 사회복지국에 맡겼다. 홍콩 사회복지국과 홍콩 한인회, 대한민국 홍콩총영사관은 한인회보 등을 통해 새 부모를 찾아주려 했지만 딱 맞는 가정을 고르지 못해 애를 태웠다. 1년 이상 아이는 홍콩의 사회복지기관과 선교사 가정을 전전하는 등 사실상의 국제 미아로 떠돌았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당사자인 푸테라이에게 전후 사정을 묻는 e-메일을 보냈다. 12월 14일 푸테라이는 답장을 보내 “언론이 없는 사실에 근거해 보도했으며, 모든 언론 보도는 공정치 못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비극적인 개인 사정이 어떻게 대중 앞에 드러나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곧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어 다시 e-메일을 보냈다. 아이를 홍콩 당국에 맡길 만큼 심각했던 정황이 뭔지, 또 전문가들이 어떤 조언을 했는지 상세하게 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입양 부모가 딱 부러지는 해명을 못하자 네덜란드에서도 사회문제로 불거졌다. 국제입양인연합(UAI: United Adoptees International) 네덜란드 지부 회장 힐브란트 웨스트라(Hilbrand Westra·39)는 비난 성명을 채택하고 네덜란드 정부에 진상을 밝히라며 e-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네덜란드 외교부로부터 개인 문제이므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뉴스위크 한국판에 말했다. 힐브란트는 이런 네덜란드 외교부의 태도가 온당치 않다고 반박했다. 이번 사건은 모든 해외 입양인과 각국 입양 제도에 많은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또 자국의 외교관이 관계된 사안에 정부가 입을 다물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나 NGO들과 연계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규명토록 압력을 넣겠다”고 힐브란트는 말했다. 힐브란트는 그 자신이 4세 때 네덜란드로 입양된 한국 출신이다. 서울 약수동에서 살았고 정운석이라는 한국명도 있다. 그는 푸테라이 부부의 입양 당시 행적 일부를 밝혀냈다고 뉴스위크 한국판에 말했다. 푸테라이는 2000년 초반 제이드 입양에 앞서 네덜란드 덴하그에 있는 입양기관 ‘웨럴드 킨더런(wereld kinderen)’에 입양 중개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이 기관의 책임자인 이나 헛(Ina H. R. Hut) 박사에게 e-메일을 보내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이나 박사는 “사생활보호법 때문에 답하지 못한다”고 확인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네덜란드 입양기관은 해외에 거주하는 네덜란드 부모에게 입양을 중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런 요청이 들어와도 거절했으리라고 덧붙였다. 2000년 당시 48세였던 푸테라이가 과연 입양 자격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네덜란드 입양 관련법은 아이와 부모의 나이 차가 40세를 넘으면 입양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이나 박사는 밝혔다. 입양 시점에서 부모와 제이드의 나이 차가 40세를 넘어섰다면 입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시 한국에서는 나이 차가 50세 미만인 경우 입양이 가능했다. 지금은 60세 미만까지도 가능하다.) 제이드가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입양됐다면 푸테라이는 네덜란드 국내법상 아예 입양자격이 없다. 그의 부인 역시 41세만 됐어도 탈락이다. 푸테라이에게 이런 법적인 문제를 설명하며 입양 당시 두 사람의 나이를 물었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쩌면 제이드는 네덜란드 법률로는 불법입양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해외 입양 절차는 보호시설에 수용된 아이와 부모가 직접 키우는 아이에 따라 다르다. 보호시설 아이들은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례법)에 따라 해외에 입양된다. 궁극적으로 가정법원의 입양 인가나 보건복지부 장관의 ‘해외 이주 허가’를 받아야 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입양기관(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한국사회복지회 등 4개)만이 보호시설 아이의 해외 입양을 알선한다. 제이드는 입양 시점에서 친어머니가 직접 길렀다고 정부는 파악했다. 따라서 민법상 법정대리인인 친어머니가 네덜란드인 양부모에게 동의하고 호적법에 따라 호적을 정리했다. 다만 호적 예규와 국제사법은 입양을 원하는 외국인이 자국 법령에 따라 양친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규정한다. 제이드를 입양한 푸테라이도 규정을 따라야 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제이드 양부모는 처음부터 네덜란드법에 따라 입양이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입양은 성사됐다.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는 제출된 서류가 형식요건을 갖췄다면 실체적인 내용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보건복지부 아동복지팀 형운태 사무관은 말했다. 이런 이유로 국내외 입양인 단체들과 관계 전문가들은 아이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령, 입양이 아이의 복지와 이익에 부합하는가를 심사·허가할 권한을 법원에 줘야 한다는 말이다. 양정자 대한가정복지법률상담원장(법학박사)은 “국내 관련 법규가 당사자의 합의만으로 입양을 가능케 한 까닭은 우리 입양 제도가 ‘자녀를 위한 양자’가 아닌 ‘부모를 위한 양자’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제이드 사건 말고도 해외 입양인이 겪는 비극적 고통은 흔하다. 2005년 9월 장향숙 의원(당시 열린우리당)이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자. 고국을 찾은 해외 입양인 57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21명(37%)이 가족 내에서 인종차별을 겪었다. 5명 중 1명은 양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가족 문제나 사회부적응 등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응답자도 23명(40%)이나 됐다. 성장 과정에서 신체적 학대나 정서적 학대를 받은 이도 18명(32%)에 이르렀다. 인종적, 문화적 편견에 상처받는 아이들도 있다. 해외 입양인 타미 추(Tammy Chu)는 8세이던 1983년 쌍둥이 언니와 함께 미국 가정에 입양됐다. 양엄마는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기를 즐겨 어떤 행동이든 사전 허락을 받아야 했다. 양부모가 직접 낳은 오빠는 외모를 놀려대는 등 인종적 편견에 시달렸다. “납작한 코, 평평한 얼굴, 단추만한 눈을 가졌다며 우리더러 추하다고 놀려댔다”고 타미는 돌이켰다. 특히 양엄마는 동양에서 온 두 자매의 검고 긴 머릿결이 보기 싫다며 짧게 쳐 파마 머리로 만들었다. “입양 당시 여덟 살로 자신의 취향과 개성이 싹틀 나이”였지만 가족들은 일방적으로 무시했다고 타미는 말했다. “철저하게 미국인 흉내를 내야 했다. 부모와 오빠들은 그들이 바라는 모습을 우리에게 강요했다.” 16세 되던 해 자매는 집을 나왔다. 고학과 국고보조금, 장학금 등으로 대학을 가까스로 졸업했다. 입양제도가 비교적 잘돼 있다는 유럽 국가라고 예외는 아니다. 60, 70년대 스위스 등 유럽에는 해외 입양이 사회적으로 유행했다. 그렇다 보니 입양 후 아이를 방치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해외입양인연대’(G.O.A.’L) 김대원 사무총장은 말했다. 입양 10년이 넘게 국적을 주지 않은 스위스 가정을 보자. 이 가정은 엄청난 부자였다. 입양한 아이에게 상속권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예 국적조차 나 몰라라 한 경우다. 이 아이는 커서 스위스 여성과 결혼하면서 비로소 국적을 취득했다. 이런 해외 입양의 문제점을 잘 아는 한국정부는 점차 해외 입양을 줄이려 한다. 올 1월엔 ‘국내 입양 우선 추진제도’를 도입했다. 입양 대상 아동이 발생하면 5개월 동안 무조건 국내 입양을 우선 추진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해외 입양을 보낸다는 방식이다. 해외 입양 알선 기관도 국내 입양 실적에 따라 해외 입양 정원이 주어진다. 그 결과 지난 9월 국내 입양률(58.3%)이 처음으로 해외 입양률(41.7%)을 넘어섰다. 1980년대 한때 8000명에 달하던 해외 입양은 지난해 1899명으로까지 떨어졌다. 또 최근엔 무리한 해외 입양에 따른 후유증이 거의 없다고 홀트아동복지회의 김은희 홍보담당은 말했다. 그러나 입양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정부 집계를 시작한 1958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로 입양된 사람은 대략 16만 명이다. 공식 집계 이전에 입양되거나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입양까지 더하면 20만 명에 이른다고 해외입양인연대의 김대원 총장은 추정했다. 이들의 부모와 조부모, 외조부모까지 해외 입양에 얽혀있는 인구가 적어도 100만 명은 된다는 말이다. 덴마크 국적의 한인 입양인 한분영과 미국 국적의 한인 입양인 제인 정 트렌카(Jane Jung Trenka) 등 몇몇 해외 입양인은 최근 ‘해외 입양에 관한 진실과 화해’(TRACK·Truth and Reconciliation for the Adoption Community of Korea)’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해외 입양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정부가 제대로 파악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해외 입양정책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2004년, 2005년 국정감사에서도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 등이 “해외 입양아 사후관리가 안 된다”며 실태 파악을 요청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비용이나 시간 때문에 아직 검토를 못한다”고 답했다. 지금 한국을 찾는 해외 입양인들은 국가로부터 이런저런 도움을 받는다. 국내 취업알선, 쉼터 제공, 한국어 연수비 지원 등 여러 가지 편의가 제공된다. 하지만 해외 체류 입양인들에게 눈 돌릴 겨를은 없다고 정부는 말한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실태조사의 필요성에도 회의적이다. “해외 입양인마다 사정이 제각각이라 표본조사가 별 의미가 없다”고 노연홍 보건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말했다. 현재로선 제2, 제3의 제이드가 등장하는 상황을 막을 길이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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