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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이야기] 한국 미술시장 그래도 밝다

[미술시장 이야기] 한국 미술시장 그래도 밝다

▶(좌) 차이궈창의 〈AIpec projec〉는 950만 달러에 팔려 중국 생존 작가 중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우) 강형구의 〈푸른색의 고흐〉도 5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려 한국 작품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상승기류를 타던 한국 미술시장에 제동이 걸렸다. 잇딴 위작사건과 큐레이터 신정아 씨의 가짜 학위 사건 등 악재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출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미술시장의 대세는 살아있다.
호사다마(好事多魔)였을까? 2007년 국내 미술시장은 호황기였던 만큼 이를 시샘하듯 마(摩)도 많이 낀 해였다. 연초에 터진 이중섭·박수근의 위작사건, 큐레이터 신정아 씨의 가짜 학위 사건은 미술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것처럼 보였다. 우리 미술시장은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계 미술시장 호황과 더불어 무난히 상승기류를 탔다. 잘 나갈 무렵 600억원대 삼성 비자금 미술품 구입 의혹사건이 터졌다. 지난 1년간의 가파른 상승 후에 숨 고르기가 필요했을 즈음 벌어진 일이다. 미술시장의 발목이 잡힌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주요 경매회사의 낙찰률이 하향 곡선을 그렸다. 시장을 주도하던 작가들의 작품이 유찰되거나 추정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격에 낙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듯이 이런 악재는 길게 보면 국내 미술시장의 합리화와 시장 참여자들의 안목을 높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열 양상이 진정되고 가격이 조정되면서 새롭게 컬렉션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좋은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시장의 저변이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작품 값이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로 좋은 작품이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수작이 간혹 나오기는 했지만 희소성에 힘입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곤 했다. 작품을 파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우위에 선 전형적인 ‘판매자 시장(Sellers’ Market)’이었다. 이번 조정기를 거치면서 수요와 공급,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균형이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결과적으로 시장이 건강해질 것이란 얘기다. 이런 냉각기에도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에는 가격 하락이 없다. 반면 거품이 낀 작가나 질이 떨어지는 작품은 가격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팔기도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컬렉터는 더 신중해지고 작품을 보는 눈을 키워 나가게 된다. 작은 출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미술시장의 대세는 살아 있다. 세계 미술시장의 추세나 우리나라의 경제·문화 수준, 작가들의 역량에 비춰 보면 충분히 상승할 만한 여력이 있다. 지난 11월 중순 한 중국인 컬렉터가 필자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남미에서 크게 성공해 세계적 컬렉터가 된 사람이다. 그의 컬렉션으로 소더비나 크리스티가 단독 경매를 열어 줄 정도로 그는 미술시장에서 큰손이다. 그는 3~4년 전부터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해왔다. 그가 한국 작가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다양성과 독창성 면에서 뛰어나며, 기교 면에서도 서양 작가들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지난 크리스티 경매에서 오치균의 〈사북의 가을〉과 백남준의 〈라이트 형제〉는 각각 6억원에 낙찰됐다.

요즘 세계 미술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는 중국 작가들은 ‘냉소적 사실주의’나 ‘정치적 팝아트(이런 개념으로 중국의 컨템퍼러리 미술을 규정한 사람은 중국 전위미술의 대부로 불리는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리시엔팅(栗憲庭)이다)’에 쏠려 있는 양상을 보인다. 일본 미술은 그래픽이나 만화적 경향이 주류를 이룬다. 그는 “이에 비해 한국 미술은 지역성과 세계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작가의 작품 값이 최근 많이 오르긴 했지만 세계시장에서 아직 저평가돼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일고 있는 미술시장의 거품론이나 과대평가론 혹은 국제 경쟁력 미달론 등에 대해 반성케 하는 대목이다. 국내의 이런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지난 11월 25일 열린 홍콩의 크리스티 경매는 한국 작품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더욱 뜨거워졌음을 보여줬다. 한국 작품 낙찰 총액은 지난해 봄 경매에 비해 1.7배 늘어난 50억원을 기록했다. 백남준의 <라이트 형제> 와 오치균의 <사북의 가을> 은 각각 6억원에 낙찰됐다. 강형구의 <푸른 색의 고흐> 와 김동유의 <마릴린 먼로> 도 5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다. 모두 국내 시가보다 월등히 높았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는 아시아 시장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번 홍콩 경매에서 팔린 아시아 미술품 총액은 2억7,000만 달러(약 2,500억원)로 소더비가 세운 역사상 최고의 단일 경매 기록인 3억1,590만 달러(지난 11월 15일)에 크게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홍콩 경매 시장의 성장 속도는 놀랍다. 크리스티는 지난해 봄·가을에 걸친 두 차례의 홍콩 경매에서 4억6,600만 달러어치의 미술품을 팔았다. 이는 2006년 2억1,100만 달러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지난해 홍콩에서 크리스티에 비해 열세를 보인 소더비도 3억3,000말 달러를 팔아 전년도의 2억4,500만 달러에 비해 35% 증가했다. 이번 홍콩 경매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중국의 생존 작가 최고 기록도 갈아 치웠다. 차이궈창(蔡國强)의 14점 드로잉 가 950만 달러(88억원)에 팔린 것이다. 종전 최고 기록은 위에민준(岳敏君)의 작품 <처형> 으로 10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590만 달러(55억원)에 낙찰됐다. 중국 작가들의 작품가격 상승률은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다. 위에민준의 <처형> 은 1995년 홍콩에서 5,000달러에 거래됐으니 12년 만에 무려 1,000배가 넘게 오른 것이다. 중국뿐 아니라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인도나 러시아의 작가 중에도 비슷한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일부 인기 작가의 작품값 상승률 10배쯤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에드워드 돌먼(Edward Dolman) 크리스티 회장은 이번 홍콩 경매에 대해 “아시아 컨템퍼러리 미술시장이 급속하게 팽창하며 작품 값도 크게 오르고 있다”며 “뉴욕과 런던에 근거를 둔 구매자들에게 의존했던 세계 미술시장이 중국·인도 등 신흥지역이 급성장하면서 구조적으로 크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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