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정부의 일과 정책에 참견하면 월권 행위

정부의 일과 정책에 참견하면 월권 행위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은 지난해 말 청와대에서 만찬 회동을 가졌다.


정부의 일과 정책에 참견하면 월권 행위

이 종 찬 전 국정원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Transition Committee 또는 Transition Team)란 대통령제 국가, 특히 미국과 한국처럼 대통령 당선일과 취임일 간 60여 일의 준비기간이 보장된 나라에만 있는 주목받는 기구다. 프랑스처럼 대통령 당선과 취임이 곧 이어지는 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수위원회는 현직 대통령(incumbent President)의 정부가 엄연히 현존하므로 활동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조심스럽다. 그러므로 미국의 경우는 대개 지방에서 은밀하게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경험 부족으로 인수위의 활동 범위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확실한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일부 혼란도 여기서 비롯된다. 엄밀히 말해 인수위란 현 정부와 앞으로의 정부를 잇는 교량적인 기구다. 그래서 미국은 전환, 이행 (transition)이란 말을 쓴다. 그러므로 인수위는 이런 업무 범위를 넘어서 차기 정부의 할 일이나 정책까지 모두 손을 댄다면 자칫 월권이 될 수 있다. 이는 현직 정부를 상대로 월권일 뿐아니라 장차 각부 장관이 들어설 경우 그 장관의 할 일을 제약하게 된다. 이를테면 요즘 논란이 되는 ‘몰입식 영어교육’으로 제도를 바꾼다면 이는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새로 임명되는 담당 장관이 할 일이다. 인수위는 현 정부의 정책이나 시책을 모두 인수받으면서 새 정부에서 긴급히 챙겨야 할 과제, 새 정부 출범 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들을 종합해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고하고, 새 정부에 그 과제를 넘겨야 한다. 설령 인수위원이 해당 분야의 신임장관으로 임명되는 경우에도 그 정책의 집행은 새 정부 출범 후에 할 일이다. 정부기구 개편은 인수위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또 현직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온당치 않다. 왜냐하면 현정부에 개편된 정부기구를 따르라는 얘기가 아니라 장차 신임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의 정부기구가 개편된다는 말이다. 개편안을 국회가 동의한다면 현직대통령은 공포해주는 서비스를 할 뿐이지 이를 두고 권한을 찾는다면 어불성설이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앞둔 서울 세종로의 정부중앙청사.


시시비비를 떠나 새정부 국정운영 도와야

이 홍 규 한국정보통신대 교수 사람이란 새 일을 계획하면서 언제나 의욕이 앞서게 마련이다. 에너지가 충만해야 일을 제대로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인수위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국정의 미래를 계획하는 데는 언제나 고도의 신중성이 요구된다. 향후 5년을 끌어갈 비전과 목표를 국민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큰 그림은 잘 안 보이고 지엽적인 현상만 나타난다. 휴대전화 요금 인하, 금산분리 폐지, 영어수업 논란 등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는지 혼란스럽다. 국민은 아직 이러한 현안들을 이해할 준비가 안 됐다. 특히 지난 선거가 정책 이슈들이 실종된 선거였다는 점에서 국민은 더더욱 준비가 안 됐다. 집권 5년은 길다면 긴 기간이다. 단기 정책과 장기 정책은 언제나 이율배반의 긴장관계를 갖기 쉽고, 지금 달다고 느끼는 정책이 나중에는 독이 되기도 한다. 정책에는 숨겨진 비용이 있게 마련이고, 국지적으로는 옳아도 전체적으로 틀릴 수 있다. 그래서 정책에는 항상 긴 호흡, 큰 호흡이 필요하다. 그 호흡을 위해 제대로 된 비전이 필요하고, 그 비전에 담길 ‘실용을 뛰어넘는 가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인수위는 지금이라도 자신의 큰 그림을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그래야 내부적으로도 정책적 일관성이 유지된다. 의욕은 바람직하지만 의욕에 앞서 정부는 언제나 전문가여야 하는 법이고, 그래야 국민은 정부를 신뢰한다.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싸고 인수위와 현 정부의 관계가 불편해 보인다. 법적으로는 현 대통령이 모두 결정하나, 도의적으로 현 대통령은 당선인이 하려는 일에 협조해야 한다. 품격 있는 사회라면 법을 최소화하고 도의를 먼저 따져보는 법이다. 정부조직 개편방안이 설혹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하더라도 그 시시비비보다는 차기 정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도와야 대의다. 더구나 우리의 법질서는 그 판단을 국회에다 맡겼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이 상황에서 국회의 결정을 뛰어넘는 결정을 한다면 국민 다수가 실로 민망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미래·NH證 6개사 ‘랩·신탁’ 중징계 쓰나미...업계 미칠 파장은?

2애플의 中 사랑?…팀 쿡, 올해만 세 번 방중

3 “네타냐후, 헤즈볼라와 휴전 ‘원칙적’ 승인”

4“무죄판결에도 무거운 책임감”…떨리는 목소리로 전한 이재용 최후진술은

5中 “엔비디아 중국에서 뿌리내리길”…美 반도체 규제 속 협력 강조

6충격의 중국 증시…‘5대 빅테크’ 시총 한 주 만에 57조원 증발

7이재용 ‘부당합병’ 2심도 징역 5년 구형…삼성 공식입장 ‘無’

8격화하는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갈등…예화랑 계약 두고 형제·모녀 충돌

9“이번엔 진짜다”…24년 만에 예금자보호 1억원 상향 가닥

실시간 뉴스

1미래·NH證 6개사 ‘랩·신탁’ 중징계 쓰나미...업계 미칠 파장은?

2애플의 中 사랑?…팀 쿡, 올해만 세 번 방중

3 “네타냐후, 헤즈볼라와 휴전 ‘원칙적’ 승인”

4“무죄판결에도 무거운 책임감”…떨리는 목소리로 전한 이재용 최후진술은

5中 “엔비디아 중국에서 뿌리내리길”…美 반도체 규제 속 협력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