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MENT GUIDE] 상반기 최악 거쳐 차차 회복 예상
[INVESTMENT GUIDE] 상반기 최악 거쳐 차차 회복 예상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론) 사태의 위험성은 바퀴벌레로 비유된다. 부엌에서 발견된 한 마리의 바퀴는 찬장이나 벽장에 숨어있는 떼의 무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가장 어려울 때가 가장 놓치기 아까운 기회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파장이 왜 이토록 커져서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으로 곤두박질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을 정도가 됐을까? 서브프라임 사태의 충격이 얼마나 지속될지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먼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시장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금융 거래가 많고 신용도가 높은 사람에게 제공되는 프라임 모기지, 그리고 그 중간 성격의 알트-에이(Alt-A·Alternative-A) 모기지 시장으로 구분된다.
서브프라임 부실이 불거진 근본적인 요인은 금리를 너무 오랫동안 낮게 유지한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벤처 거품 붕괴를 수습하기 위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줄기차게 금리를 내렸다.
연 6.5%였던 연방기금금리, 즉 은행 간 단기차입 금리를 1.0%로 떨어뜨렸다. 이에 따라 자기 주택 소유 욕구에 투기심리까지 가세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통한 주택 구입이 급증했다.
당연히 주택을 비롯한 미국 자산시장에 거품이 계속 부풀어올랐다. 애꿎은 버냉키 현 FRB 의장에게 불똥이 튀었지만, 결국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까닭이다.
뒤늦게 거품 발생의 심각성을 인식한 그린스펀 전 의장은 불과 2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연방기금금리를 5.25%로 올리면서 모기지 대출의 연체자가 크게 늘어났다. 연체된 끝에 경매시장에 나오는 주택이 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발생했다.
모기지 담보채권 잇따른 발행으로 이중고
|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A’라는 사람이 미국 은행으로부터 50만 달러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았다고 하자. 미국 은행은 돈을 한번 더 굴리기 위해 대출 상환을 기다리지 않고 대출자산을 토대로 50만 달러의 주택저당채권(MBS)을 발행해 다른 기관투자자에게 판다.
이 채권을 산 기관투자자는 MBS를 바탕으로 부채담보증권(CDO)을 발행해 시장에 내다 팔고, 이를 매입한 또 다른 기관은 2차 CDO를 발행해 다수 투자자들에게 분할 매각한다.
채권발행인들은 투자 등급이 떨어지는 것을 둔갑하기 위해 기초자산(모기지 대출)에 우량 회사채 등을 섞는다. 이런 과정을 두세 차례 거치다 보면 본래 기초자산이 어디에 섞여 있는지 파악하기조차 힘들어진다. 이때 부동산값이 하락하면 채권의 담보가치가 동반 떨어지면서 채권거래가 갑자기 중단되고 모기지의 부실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주요 예측기관들은 모기지 사태로 발생한 잠재부실 규모가 약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까지 부실을 털어낸 상각 규모가 1000억 달러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까지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설명한 비유 가운데 ‘바퀴벌레 이론’이 있다. 부엌 싱크대에서 발견된 바퀴벌레는 벽이나 바닥에 숨어있는 무리 가운데 한 마리에 불과한 것처럼 앞으로 상황은 얼마든지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실물경기 침체로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각종 위기는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모기지 부실과 같은 사건을 계기로 발생한 유동성 위기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을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 번지게 된다. 한 나라의 경제의 동맥 역할을 하는 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실물경기가 침체된다.
아직까지 미국 경기기 침체국면에 빠졌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으나 일상생활에서 경기를 쉽게 파악하는 방법으로 ‘R 단어지수(R-word index)’란 것이 있다.
이 지수는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경기 침체(recession)의 빈도수를 추적해 만든 것으로 1981년, 90년, 2001년의 경기전환점을 정확하게 예측해 유명해진 경기진단 지표다. 최근 이 지수는 지난해 10월 초 이후 부쩍 높아졌다.
특히 올 1분기 들어 두 개 신문에 ‘R’ 단어가 사용된 기사 수는 지금까지 670여 개에 달한다. 비록 81, 90년 때에 미치지 못하지만 지난해 10월 이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올 1분기에는 최소한 미국민들의 일상생활에서는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정책당국은 쓸 수 있는 대책은 모두 동원하고 있다. FRB는 그동안 긴급 유동성을 공급한 데 이어 금리를 2.25%포인트 대폭 인하했다. 단기간에 이렇게 큰 폭으로 내리기는 FRB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앞으로 모기지 사태와 경기 상황을 봐가면서 금리를 2%대까지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시장 참여자들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경기 침체되나
뒤늦게 경기 침체를 인정한 부시 행정부도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현재 시장에서는 모기지 부실에 따른 피해 계층의 상환능력을 높이면서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이들 계층의 고용을 늘리기 위한 ‘제2의 뉴딜정책’이 추가적으로 나올 것인가에 이목이 쏠려있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대책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모든 정책에는 시차가 있다. 이론적으로 정책을입안하고 확정하기까지 내부(행정) 시차와 확정된 정책이 추진돼서 효과를 보기까지 외부(집행) 시차로 구분한다.
이른바 정책 수명으로 대체로 2년 정도로 본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의도했던 효과를 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또 외부 시차도 초기에는 상황이 더 나빠지는 ‘J커브’ 효과가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리더라도 초기에는 무역수지가 더 악화되다가 일정 기간이 경과된 뒤에나 개선된다.
환율 정책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정책에는 ‘J커브’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병을 치유하려던 대처리즘을 들 수 있다.
79년에 집권한 대처 총리는 대대적인 공공부문 축소와 규제 완화, 성장 우선의 획기적인 정책을 추진했지만, 초기 2년 동안은 오히려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등 부작용을 심하게 치렀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계속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대책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가가 하락하고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도 ‘J커브’ 효과의 또 다른 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기 침체 하에 물가가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최악의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다. 이미 미국 경제 내에서는 이런 징후가 부분적으로 감지됐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0.6%로 크게 떨어진 반면 물가는 3%에 근접해 FRB의 인플레 억제선을 벗어났다. 미국 경제에서 이런 징후가 나타나면 그 다음 2분기 동안은 더 악화되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다른 국가로까지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지난해 말까지 유동성 위기에 따른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미국 내 투자국이 주로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80년대 후반 이후 미국 내 최대 투자국인 일본을 비롯해 주로 선진국들이 영향을 받았다.
▶미국 곳곳에서 주택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
증시 살아나도 ‘U’자형 될듯
IMF가 내놓은 올해 세계 경제 전망보고서를 보면, 80년 초 당시처럼 악성은 아니지만 미국 이외의 다른 선진국들도 스태그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평균 1%포인트 둔화되는 반면 물가는 고유가와 같은 공급 측 요인으로 1.5%포인트 정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실물경기가 침체됨에 따라 대미 수출국까지 영향권 하에 속속 편입되고 있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경기 침체로 수출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어 벌써부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까지 대두될 정도다.
국내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미국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한국 내 투자한 자금 회수로 주가가 크게 떨어짐에 따라 투자자들의 재산 손실이 크게 났다. 지난해 10월 이후 외국인 자금의 이탈 규모가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들어서는 제2의 수출국인 미국 경기까지 침체됨에 따라 대미 수출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해외 부동산 투자가 자유화되면서 미국 내 투자한 사람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들은 투자금액이 큰데다 70% 이상을 교토은행으로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했다. 주택 구입 시 대부분 미국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생각하나 위기관리 인식이 약한 우리 투자자들은 보험에 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값이 떨어지고 우리 국민들이 많이 투자했던 캘리포니아 지역의 대형 화재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대출금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매입한 주택이 사라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또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오던 교포은행들도 연쇄적으로 도산하는 사태가 잇따랐다.
따라서 세계 경기와 국제 금융시장은 최소한 올 상반기까지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기대대로 올 하반기 이후 세계 경기와 증시가 살아난다 하더라도 종전처럼 ‘V’자형의 빠른 회복보다는 ‘U’자형의 점진적인 회복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이번 모기지 사태는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정책당국과 기업, 투자자, 일반 국민 등은 현금흐름을 좋게 가져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전략이다.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순히 현금흐름만 좋게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경기와 증시가 좋아질 것에 대비해 최근과 같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기업의 흥망사와 슈퍼 리치들의 재산증식 과정을 보면 경기가 좋을 때보다 어려울 때 어떻게 대응했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돼 왔다.
워런 버핏과 같은 세계적인 슈퍼 리치들은 재산이 항상 늘어왔다기보다는 87년 블랙 먼데이,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9·11테러 당시에 ‘위기를 기회’로 역발상 투자했던 것이 오늘날의 부(富)을 일구는 데 가장 큰 힘이 됐다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하나금융, 9개 관계사 CEO 후보 추천...하나캐피탈 신임 대표에 김용석
2부동산 PF에 애 먹는 iM증권…실적 압박 지속
3이창용 한은 총재 “尹비상계엄 영상, 딥페이크인줄 알았다”
4강성묵 하나증권 사장, 외형·내실 다 잡고 경영 능력 입증
5 검찰, 조국 형집행 연기요청 허가…16일 서울구치소 수감
6차바이오텍 美 자회사 마티카, 수주 확대 속력
7스페르미딘, 치매 예방 및 뇌 건강 유지에 기여 가능성 보여...
8양혁 마이허브 대표 “AI 솔루션 모은 ‘마이링크’, 美 FDA 허가 추진”
9아마존, 메타 이어 트럼프 취임식에 14억 기부...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