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 승계 (下)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 승계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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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신문로1가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맞은편에 지상 27층의 새 건물이 세워졌다.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적인 이 건물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새 본사다. 10월에 완공 예정으로, 1층을 빼고는 외관 공사를 거의 마무리 짓고 인테리어를 꾸미는 중이다.
새 건물은 ‘금호아시아나 본관’, 현재 사옥은 ‘금호아시아나 1관’으로 명명했다. 금호아시아나는 두 건물을 그룹의 양대 축으로 삼아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포부를 밝혔다.
10월 말에서 11월 초 본관에는 대우건설, 그룹의 전략경영본부, 금호타이어 등이 들어온다. 1관에는 금호생명과 금호석유화학 등이 남는다. 아시아나항공의 김포 본사와 대한통운의 서울 본사는 지금처럼 쓰기로 했다.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까지 인수하면서 자금 부담을 덜기 위해 현재 사옥을 팔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었지만, 이는 낭설에 불과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두 건물을 모두 써도 사무실이 모자라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노무현정부 들어 가장 주목받으며 재계 6위를 넘보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요즘 사세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특히 새 사옥을 광화문의 랜드 마크로 꾸미려고 한다. 최첨단 조명 시설을 설치하는 한편 덕수궁 방면인 건물의 뒤편은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전광판처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새 사옥은 박삼구(64) 회장이 기치로 내건 ‘500년 영속 기업’의 출발지다.
박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강점이 있는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기업 인수곀擥?M&A)에 나서고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해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새 본사에서 그룹의 또 다른 역사를 써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박삼구 회장의 외아들인 박세창(33) 전략경영본부 상무도 새 사옥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건물 디자인은 물론 사무실 배치와 내부 인테리어 등까지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로선 남다른 의미가 담긴 건물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금호가(家) 3세 가운데 유일하게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박 상무의 업무는 뭐라고 딱히 정해져 있진 않다. 전략경영본부 소속이지만 특정 팀의 임원도 아니다.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며 그룹 경영 전반을 배우는 과정이다.
튀지 않는 스타일로 조용하게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그는 박삼구 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대한통운 인수 때도 나름의 몫을 하면서 인수전을 지켜봤다.
당시 그룹 측은 일찌감치 오남수 사장을 주축으로 전략경영본부에 대한통운 인수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박세창 상무는 팀원은 아니었지만 TF에 가세해 M&A, 금융 전문가 등 자문사 사람들과 인수 전략을 세우고 의견을 나누며 전반적인 사항을 챙겼다. 피 튀기는 M&A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한 셈이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들어선 금호아시아나의 새 본사(오른쪽)와 현재 본사 건물(맞은편). |
박 상무는 책상 앞에 앉아 글공부만 해서 세상일을 잘 모르는 ‘책상물림’은 아니다. 휘문고와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박 상무는 미국 MIT 공과대 MBA 과정을 마친 후 컨설팅회사인 AT커니에서 2000~2003년까지 4년 동안 컨설턴트로 일한 경력이 있다.
2005년 금호타이어에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한 뒤에도 그룹의 현안을 많이 챙겼다. 2006년 금호산업 부장 시절에는 금호타이어의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 도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지난해에는 금호타이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단을 후원하는 계약을 하는 데도 한몫 했다.
박 상무와 달리 그의 사촌들은 그룹 경영에 관심이 없거나 유학을 떠났다. 금호가의 2세 5형제 가운데 공직에 나간 5남 종구 씨를 제외하고 경영에 참여한 4형제는 공교롭게도 모두 아들은 1명씩만 뒀다.
고(故) 박성용 명예회장의 아들 재영(38)씨,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 철완(30)씨, 박삼구 회장 아들 세창 씨,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의 아들 준경(30)씨다. 이들 가운데 박세창 상무만 그룹에 몸담고 있다.
그룹의 ‘형제 경영’ 전통이 계속 이어진다면 박찬구(60) 화학부문 회장에서 2세 경영은 끝난다. 가구별로 지분을 똑같이 나눠 갖기 때문에 차기 대권의 1순위 후보는 금호가의 3세 가운데 맏이인 재영 씨다. 그러나 재영 씨는 그룹 경영권에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미국에서 영화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2007년 4월에 금호석유화학 주식 136만 주를 처분해 지분이 10.01%에서 4.1%로 줄었다. 그룹 관계자는 “(지분 매각은) 상속세를 납부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영 씨는 다른 3세들이 지주회사로 전환되는 금호산업의 지분을 6만 주씩 살 때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았다. 본인이 주식을 사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룹 관계자는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나 재영 씨 모두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뭘 강요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며 “재영 씨가 영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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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박삼구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을 맡을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박찬구 회장이다. 그는 조용한 성격이라 소리 없이 꾸려가는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수치에 밝고 경제의 맥을 잘 짚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공(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통계학과)을 살려 회사의 재무 상황을 꼼꼼히 챙기고 재무구조 개선에 앞장서 왔다. 박찬구 회장은 92년부터 2003년까지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는 비전경영실의 사장을 겸직하며 안방 살림을 챙겼다.
그는 유연한 조직 체계와 관리 체계를 구축해 금호석유화학을 합성고무 부문에서 국내 점유율 1위, 세계 3위의 생산 능력을 보유한 기업으로 키웠다.
박찬구 회장은 특히 박삼구 회장을 뒤에서 묵묵히 뒷받침하고 있다. 혹시라도 경영 문제로 불협화음이 빚어질까 조심 또 조심한다. 대한통운 인수에 이어 저가 항공 진출 등 새해에도 거침없는 경영을 펼치고 있는 박삼구 회장을 그림자처럼 돕고 있다.
박삼구 회장 역시 형들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박찬구 회장을 후계자 수업하듯 중요한 행사나 모임에 웬만하면 같이 다닌다. 지난해 말 송년회 성격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빛낸 임직원 초청 만찬’에 동반 참석했다. 3월에 베트남 금호타이어 공장 준공식에도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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