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 중독치료 쉬워진다
술·담배 중독치료 쉬워진다
애니 풀러는 1년 전 덩치가 자신보다 두 배나 되는 남자 직원과 술을 마셨다. 그 직원은 몇 시간 만에 술을 못 이겨 고꾸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말짱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녀는 그때까지 살아온 자기 인생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술을 마셨다. 47세의 나이에 52㎏ 체격인데도 매일 버번위스키 0.5ℓ, 맥주 12캔, 포도주 두 병을 마셨다. 음식, 섹스, 친구, 가족보다 술을 더 좋아한다. 그러면서 남편도 곁을 떠났다. 출근할 때와 술 마시러 갈 때를 제외하곤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동안 금주 결심이 실패로 끝난 경험이 많아 자력으론 술을 못 끊는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마지막으로 금주를 시도했을 땐 몸이 격렬한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술을 끊는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금단 현상이었다. 혼자 몸으로 애를 키우며 주택담보대출회사 부사장으로 일하는 그녀는 그렇다고 재활센터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여기는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 문제로 병원에 들락거리면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고 풀러는 말했다. 그래서 의사가 ‘비비트롤’ 주사 치료를 권유하자 동의했다. 한 달에 한 차례 주사를 맞으면 취할 수 있는 능력을 없애 술을 멀리하게 된다. 풀러는 직장에 휴가계를 내고 열다섯 살 딸은 친척 집에 맡긴 뒤 거실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해독의 무서운 고통과 맞섰다. 사람들은 왜 술이나 약물에 중독될까? 풀러 같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그 대답은 “의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통념적인 인식은 치료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즘의 중독 치료에 사용되는 전문 용어로 바꿔 말하면 알코올·마약·니코틴 중독은 “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정신적 장애”다. 이 용어는 그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많은 자금 지원이 필요한지를 강조하려고 치료업계가 만들어낸 듯하다. 사실 중독자(addict)란 단어는 본래 라틴어 아딕투스(addictus)에서 나왔다.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노예계약을 맺는 채무자를 가리킨다. 술이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도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똑같은 처지다. 다만 중독자의 경우는 평생 애써도 채무를 다 갚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 무섭다. 풀러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고통보다는 음주의 즐거움이 더 컸다. 그렇게 본다면 풀러가 가진 문제는 생물학적 측면이 “사회적-정신적” 측면보다 훨씬 큰 요인이다. 게다가 지난 수십 년간 이뤄진 신경과학의 발전은 사회적-정신적 발전보다 훨씬 앞섰다. 따라서 어디서 획기적인 치료법이 나올지는 명확하다. 사실 중독은 수많은 요인이 뒤엉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겐 늘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독이 단지 의지력 부족 탓이란 인식은 이미 수십 년 전의 한물간 가설이다. 미국의학협회는 이미 1956년 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했다. 그런데도 이제서야 비로소 중독이라는 질병의 생화학적 측면을 겨냥한 치료법이 개발되는 중이다. 요즘은 중독증이 모든 의학적 수단을 동원해 관리해야 할 재발성 만성 뇌 질환으로 간주된다. 중독자는 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당뇨환자의 경우 췌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경우 모두 “생활 습관”이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당뇨환자에게 인슐린 주사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중독의 생물학적 이해에 전례 없는 발전이 이뤄졌다”고 보스턴대학 보건학 교수이자 중독 전문가인 데이비드 로젠블럼이 말했다. “따라서 중독이 ‘도덕적 타락’에서 ‘정당한 질병’으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가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여러 연구소에서 실시하는 뇌기능자기공명영상(fMRI)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덕택에 중독된 뇌라는 인체기관의 비밀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또 유전학자들은 쉽게 중독증에 걸리게 하는 유전자 변이 중 일부(여러 개일 가능성이 있다)를 찾아냈다. 이런 쾌거는 중독성 약물을 복용하는 열 명 중 한 명 정도만 실제 중독증에 걸리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아울러 신경과학자들은 맥주나 담배의 맛에 의해 (혹은 그것을 보거나 생각만 해도) 발동되는 중독 과정의 정교한 원리를 밝혀내는 중이다. 그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자신도 모르게 술을 마시고 싶어 할 때 무엇이 그런 충동을 일으키는지 알게 되면서, 그 충동의 근원을 뇌의 원시적인 중간 부분까지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경로를 따라 여러 지점에서 그 과정을 차단하고 제어하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NIDA가 개발하거나 시험 중인 200개 이상의 합성물 중에는 중독성 약물의 효과를 차단하는 것도 있다. 거기에는 인체의 면역체계를 단련시켜 약물이 뇌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백신도 포함된다. 술잔에 손이 가는 충동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찰나에 대뇌피질에서 그 충동을 막는 합성물도 있다. “의지력”이란 말에 실제적인 의미가 있다면 이제는 알약에 담긴 의지력의 시대가 그리 멀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IDA의 노라 볼코 소장은 “미래는 명확하다”고 말했다. “10년 뒤에는 중독을 질병으로 다스릴 수 있다. 약으로 치료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제약업계에선 중독증 치료제 개발에 소극적이다. 유수의 제약회사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인식해 약물 중독자들과 관련된 약품을 개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게다가 중독자 재활 단체의 반발도 만만찮다. 이들은 1935년 알코올 중독자 재활단체 ‘알코홀릭스 어노니머스’(AA)가 개발한 12단계 중독 차단 프로그램을 철석같이 믿는다. 12단계 프로그램은 통상적으로 중독자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약의 복용을 꺼린다. 중독의 의존대상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데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논리에는 불행한 역사가 있다.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선 알코올 중독 치료제로 아편과 코카인이 도입됐지만 그 약물의 중독성은 더 강했다. 그 다음에는 메타돈과 앤타뷰스가 중독 치료제로 사용됐다. 하지만 합성 헤로인인 메타돈은 자체 중독성이 있음이 밝혀졌다. 앤타뷰스는 술을 마시면 구토를 일으키는 약물이지만 중독자가 술을 마시겠다고 작심하고는 그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단점이 있다. 코카인과 헤로인 같은 마약은 뇌를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으로 가득 채운다. 도파민은 우리 뇌에서 쾌감을 일으킬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쾌감을 얻게 되는지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코카인과 헤로인은 알코올·니코틴·암페타민과 함께 가장 끊기 어려운 5대 약물로 꼽힌다. 현재 미국인 약 2200만 명이 적어도 그중 하나에 중독된 상태다. 이 다섯 가지 약물은 각각 다른 형태의 도취감을 일으키고, 부작용과 건강에 끼치는 해악의 범위가 다르긴 하지만 모두 뇌의 같은 신경회로에 작용한다. 먹고, 섹스하고, 애정을 품고, 생존에 필수적인 행동을 수행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바로 그 회로다. 게다가 중독성 약물은 그런 자연적 도취감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예컨대 코카인은 한 번만 복용해도 우리가 가장 즐기는 음식이나 사람, 노래, 광경에서 얻는 도파민보다 2~10배 많은 양의 도파민을 만들어낸다. 그런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뇌와 신체가 그것에 의존하게 된다. 처음에는 행복감을 느끼려고 복용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으려고 그런 약물을 복용하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인간이 굶주리면 물불을 안 가리고 음식을 찾듯 그런 약물을 복용하려는 충동이 본능으로 자리 잡는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약물이 음식과 달리 우리 몸을 완전히 망가뜨린다는 점이다. 도파민에 대한 감수성은 개인별로 다르다. 중독증이 유전되는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그 때문이다. D2(지금까지 파악된 다섯 가지의 도파민 수용체 중 하나)라 명명된 도파민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는 형태가 다양하며, 각각 생산해내는 수용체의 양이 다르다. 수용체가 적은 사람일수록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도파민에서 받는 자극의 수준이 낮다. 따라서 약물에서 인공적 도취감을 추구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도파민 분비 체계에 직접 개입해 중독을 막으려는 시도는 성과가 좋지 않았다. 도파민은 인체의 수의운동(隨意運動·반사운동과 구별된다)에 필수적인 신경전달물질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위적으로 건드리면 파킨슨 병 비슷한 증세가 일어나기도 한다. 지금까지 중독증에 작용하는 다른 신경전달물질들은 다루기가 좀 더 쉬웠다.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은 신경세포를 억제해 중독성 약물의 유입을 거부한다. 중독자의 뇌에는 GABA가 부족하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그 생산을 촉진하는 비가바트린이라는 약품을 개발 중이다. 이 약은 지난해 12월 첫 이중맹검 시험과 위약대조군 시험을 통과했다. 비가바트린을 복용한 환자의 30%는 시험 기간 9주 동안 코카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시험 대조군의 경우는 5%에 불과했다. “코카인 치료의 임상시험에서 나타난 최선의 효능 신호”라고 NIDA의 약물치료과장 프랭크 보치가 말했다. “많은 사람이 치료 불가라고 선언한 환자들, 다시 말해 고질적인 장기 코카인 중독자들에게서 거둔 효과다.” 알코올 중독 치료제로 이미 시중에 나온 캄파랄이라는 약은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에 작용한다. 중독증은 처음에는 쾌락 추구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도파민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중에는 금단 증세의 고통을 피하는 쪽으로 바뀐다. 그 단계에서 약물을 복용하려는 충동을 자극하는 물질이 바로 글루타메이트다. 캄파랄은 이 신경전달물질을 억제함으로써 욕구를 줄여주고, 회복과정에서 재발을 막아줄 수 있다. 과학자들은 비가바트린과 캄파랄의 전망이 매우 밝다고 생각한다. “세로토닌 농도를 조절하는 약품(프로작 계열)이 개발되면서 우울증 치료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NIDA의 전직 소장 앨런 레시너가 말했다. “GABA와 글루타메이트에 작용하는 약품은 중독증 치료에서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술을 끊으려면 술집에 가지 말고, 담배를 끊으려면 1950년대의 프랑스 영화를 봐선 안 된다는 게 통설이다.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그토록 어려운 한 가지 이유는 약물 복용의 즐거움에 더해 그것과 관련된 온갖 정황과 활동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재발을 부른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원들은 코카인 중독자에게 마약이나 코카인 파이프의 사진을 0.033초(의식적 인식영역 밖이다)만 보여줘도 욕구를 촉발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알코올 중독자인 베벌리 다이에스(58)는 지난해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6개월 동안 금주한 상태(15년 동안 가장 오래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버틴 기간이다)였다. 어느 날 수퍼마켓에 가니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 브랜드가 세일 중이었다. 매일같이 상담 치료를 받는 중이었지만 “상표를 보는 순간 모든 게 날아갔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 뒤로 두 달 동안 미친 듯이 술을 마시면서 엄청난 죄의식에 시달렸다. 어떤 날에는 저녁 때 맨정신으로 상담 치료사를 만나러 가려고 아침 일찍부터 술을 마시고는 했다. 또 어떤 날에는 가게로 달려가 위스키 한 병을 산 다음 희한하게도 결연한 각오를 되찾아 집에 와서 술을 싱크대에 쏟아버리고는 했다. 캄파랄 같은 약은 다이에스 같은 사람이 수퍼마켓의 위스키 판매대로 발길을 옮기도록 부추기는 글루타메이트의 증가를 억제해 금단 증세의 고통을 덜어주고 상담치료와 행동요법이 효과를 발휘하게 한다. 물론 술이나 헤로인, 코카인, 암페타민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완벽하게 막을 방법은 없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다이에스의 금주 실패를 가져온 그 연상을 깨뜨릴 방법을 연구한다. 디사이클로세린(DCS)이라는 약은 우리 뇌가 이미 체득한 공포반응을 지우는 효과가 뛰어나다. 동물의 경우 특정 지점에서 전기충격을 연상하는 것이 좋은 예다. 전기충격을 중지하면 동물은 결국 반응을 “학습 해지”하고 더 이상 겁내지 않는다. DCS는 그 현상을 촉진한다. 이미 고소공포증을 가진 사람의 치료 시험에 성공한 바 있다. 이제 과학자들은 그 약이 중독 재발의 충동과 시각적·사회적 신호 사이의 연상을 지우는 데 이용될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지금까지는 코카인에 대한 시험만 하고 있다. 거기에서 성공하면 다른 중독에도 통할지 모른다. 신경과학자들은 철학적 관념인 “의지력”을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도 행동에 합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능력인 자기통제와 관련된 뇌 부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통제를 세 부류로 구분한다. 당연하지만 중독자는 그 세 가지 모두에서 수준이 형편없다. 그러나 약물 복용이 그 같은 부진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불분명하다. 또 세 가지 유형 중 어느 것이 중독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아직 모른다.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욕구 억제. 더욱 큰 장기적 보상을 위해 당장의 만족을 뒤로 미루는 용의. 중독자는 늘 즉각적 보상을 원한다. ■반사작용 충동.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량의 척도. 중독자는 통상적으로 모든 가용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 행동한다. ■의도적 행동. 자동적으로 몸에 밴 행동을 의식적으로 중지하는 능력. NIDA 연구원들은 이것을 측정하려고 중독자들에게 화면을 보면서 불빛이 좌우 어느 쪽에서 번쩍이느냐에 따라 두 버튼 중 하나를 누르게 했다. 다만 불빛과 함께 소리가 나면 누르지 말게 했다. 몇 차례 연습하자 버튼 누르기는 자동반응으로 변해 의식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일쑤였다. 중독자는 정상인보다 이 통제 능력이 떨어졌다. 동작을 관장하는 신경세포가 우리의 의도를 인식하기도 전부터 활성화된다는 사실은 1980년대부터 알려졌다. 이제 과학자들은 사람이 그런 자동반응을 제어할 때 뇌의 전두중앙피질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의지력이 나오는 곳이 대충 그 부위라는 얘기다. 중독자의 뇌기능자기공명영상을 보면 전두중앙피질의 활동이 둔하다. 보통 기면발작 치료에 쓰는 프로비길이라는 약은 뇌의 그 부위를 자극하기 때문에 현재 암페타민 중독 치료제로의 성능을 시험 중이다. “약품을 통해 ‘자기통제’나 ‘자유의지’를 회복한다는 발상은 정말 멋지다”고 NIDA의 보치가 말했다.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하다. 단지 그것이 회복에 어느 정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면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 신중함이 매우 중요하다. 새로 개발된 약들이어서 작용 원리가 일부만 알려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뇌는 자체적인 화학작용을 방해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성향이 있다. 1960년 파킨슨증이 도파민 결핍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곧 엘도파 같은 합성 도파민 전구체가 치료제로 이용됐다. 그러나 효과는 실망적이었다. 엘도파가 처음에는 증세를 완화시켰지만 환자들이 바란 장기적 치료법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 더 직선적인 중독증 치료나 예방법은 약물의 작용을 직접 차단하는 것이다. 사람은 특정 행동에 대한 느낌이 좋지 않으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논리가 바탕이다. 10년 전 개발된 날트렉손은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바로 그런 효과를 보인다. 하지만 술에 취하고 말겠다고 작심한 사람이라면 약을 안 먹으면 그만이다. 그 문제의 해결책이 2006년 시장에 나온 비비트롤이다. 날트렉손을 주사약으로 바꿔 효력이 오래가게 만들었다. 애니 풀러가 맞은 비비트롤 주사는 자기통제력을 높이거나 음주 욕구를 억제하지 않지만 술의 효능을 차단한다. 풀러가 그 주사를 맞은 날 다리가 두 배 크기로 퉁퉁 부었다. 부기는 하루이틀 뒤 빠졌지만 다음 몇 주 동안 발한·오한·구토·눈물 등 괴로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비비트롤과 알코올 금단 증세가 겹친 부작용이었다. 때로는 걷기도 힘들고 화장실에 갈 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도 그녀가 술을 참은 유일한 이유는 주사를 맞은 탓에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술을 다시 입에 대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고 풀러는 말했다. 그해 내내 다달이 주사를 맞고 고통이 약간씩 줄어들면서 이제는 약도 끊고 술도 끊었다. 중독증을 막는 최상의 무기는 백신일지 모른다. 중독성 약물에 대한 면역체계를 강화하고 그 약물이 이용자를 취하지 못하게 하는 백신이다. 코카인 백신은 올해 인간을 대상으로 최초의 대규모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니코틴 백신, 헤로인 백신, 메탐페타민 백신도 개발 중이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중독 백신은 홍역이나 뇌막염 같은 전염병의 치료에 쓰는 전통적 백신과 같은 원리로 작용한다. 다만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대신 중독성 화학물질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개발 중인 각각의 백신은 박테리아 단백질에 주입한 약물 분자로 만들어진다. 바로 그 박테리아 단백질이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이 백신을 맞은 사람이 해당 약물을 섭취하는 순간 거기에 항체가 달라붙어 혈류를 건너 뇌로 전달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메릴랜드주의 소규모 바이오테크 회사인 나비 바이오파머슈티컬스가 개발한 니코틴 백신은 이미 임상시험의 후기 단계에 들어섰다. 초기 연구에서는 금연 효과가 위약(僞藥)의 두 배였다. 베일리 의대의 토머스 코스텐이 개발한 코카인 백신은 이르면 2010년 시장에 나온다. 한 해에 서너 번 맞아야 하지만 아마 평생 맞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코스텐이 말했다. 그 백신은 이미 코카인에 중독된 사람을 대상으로 시험 중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코카인에 아직 손대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쓰일 수 있다. “코카인을 복용할 가능성이 큰 청소년들이 제대로 철이 들 때까지 백신을 맞게 하는 쪽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코스텐이 말했다. 물론 거기에는 인권과 자유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그도 인정한다. “변호사들이 그 문제의 도덕성을 놓고 우리와 논쟁을 하려고 하지만 학부모 집단이나 소아과 의사들은 이 발상에 호의적이다.” 이런 신약이 가져올 혁명은 중독치료 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도시 병원의 정신과 병동에서부터 캘리포니아 말리부 힐스의 고급 스파까지 다양한 치료기관이 영향권 안에 든다. 그들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지금까지 별의별 치료법이 등장했지만 중독자들은 똑같은 문제를 다시 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체 프로그램에 대대적 투자를 했다는 이유도 있다. 12단계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집중치료와 상담 치료를 말한다. “비비트롤의 효과를 알려면 앞으로 4~5년은 걸린다”고 베티 포드 센터(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 소재)의 정신과 전문의 개럿 오코너가 말했다. “게다가 치료에 실패하면 환자가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포드 센터와 헤이즐든 재단(미네소타주 소재)은 약을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며, 그것도 치료 개시 첫 몇 날이나 몇 주(“해독” 단계라고 부른다)에 한정한다. “헤이즐든은 약리적 해법을 외면할 생각이 없지만 알약 그 자체는 치료법이 못 된다”고 헤이즐든의 대외업무 담당 부사장 윌리엄 모이어스가 말했다. “환자들이 치료가 시작이 아니라 끝이라고 주장하는 의학적인 해결책을 찾아다니지 않을까 걱정된다.” AA와 유사단체들의 경우는 약을 투여하는 화학요법을 금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말할 생각은 없으나 비비트롤이나 캄파랄 같은 약은 진정한 재활이 아니라 임시 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AA의 한 장기회원이 말했다. 하지만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리사 토레스는 생각이 다르다. 그는 20년 가까이 헤로인 중독 치료를 받으며 계속 메타돈을 복용해왔다. 토레스는 이것이 혈압 약이나 콜레스테롤 약처럼 만성 질환의 치료약이라고 생각한다. “중독자의 권익을 가장 옹호하는 일부 인사가 신치료법에 앞장서서 반대하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개중에는 본인의 중독을 치료한 뒤 그 분야에 뛰어든 사람이 많다. 따라서 무엇이 되고 무엇은 안 되는지 고집을 부리기 쉽다.” 더 큰 문제는 “어떤 사람은 중독의 치료과정이 쉽거나 편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뿌리를 내리려면 여러 가지 오랜 편견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의사들과 보험회사들이 중독 환자에게 AA 안내책자를 건네기보다 약으로 치료한다는 발상에 익숙해져야 한다. 2005년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AA 프로그램 소개가 의사들이 권하는 보편적 “치료법”이었다. “고혈압 환자가 증세가 심해지면 전문가를 찾아가게 마련”이라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토머스 맥렐런이 말했다. “전문가라면 그 환자를 교회 지하실로 내려 보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의료 과실이 된다.” 중독증만이 재발 성향이 강한 게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알코올·마약 중독자를 당뇨·천식·고혈압 환자와 비교한 연구에서 맥렐런은 지시 불복종과 재발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양 집단의 30~40%가 의사의 지시를 절반도 따르지 않았다. 제약업계는 의사들이 추구하는 방향대로 따를 가능성이 크다. 중독 치료에 관한 대다수 연구는 NIDA(2007년 총예산: 9억9400만 달러)나 중소 제약사들이 맡아왔다. “큰 제약사들에 이 연구를 맡아달라고 하소연을 했다”고 NIDA의 볼코가 말했다. “연구원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만 경영진을 설득하기가 어렵다.” 골다공증이나 콜레스테롤 치료제 판매로 수십억 달러를 버는 제약회사들은 헤로인 중독자가 복용하는 약에 자사 이름이 등장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레스너가 말했다. 비교적 무명의 회사인 나비 바이오파머슈티컬스의 경우도 니코틴 백신에 진력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일단 불법이 아니고, 또 과다 복용할 일이 없기(그리고 그 뒤 약을 만든 회사를 상대로 복용을 말리지 않았다고 소송을 걸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CEO 라파트 파힘이 말했다. 그러나 엘리릴리의 연구실장 스티븐 폴은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울증도 과거엔 부끄러운 질병으로 생각됐지만 프로작의 개발로 그런 인식이 사라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독자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근 75년 동안 그 사고방식은 AA 창립자 빌 W가 정한 원칙이 지배했다. 물론 AA는 중독 치료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단체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람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1935년 당시에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해결책이 AA 프로그램이었다. ‘염화금’ 주사제를 비롯한 사이비 “중독증 치료법”이 많았지만 신경과학이나 정신약리학적 치료책은 사실상 없었다. 당시라면 정신병원에 감금됐을 정신분열증이나 양극성 장애 따위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도 지금은 일반인들과 함께 사회생활을 한다. 다이에스의 경우 자신의 상태가 치료 가능한 만성 재발성 질환이라고 인식한 뒤에야 술을 끊을 수 있었다. “과거에는 내 음주벽이 도지면 12단계 프로그램 운영자나 우리 식구들은 나를 구제불능으로 생각했다”고 다이에스가 말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 그러려니 생각하고, 몸을 추스른다. 기왕 버렸으니 때려치우고 술이나 마시자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12단계 프로그램은 중독을 이기지 못하는 무력감을 고백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머지않아 과학이 그 무력감을 극복하게 해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중독환자들은 재활 전쟁이 끝이 안 보인다 해도 싸울 가치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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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RAINA K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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