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세계를 쥐락펴락 SUPERCLASS

세계를 쥐락펴락 SUPERCLASS

지금처럼 세계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세계의 엘리트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그들의 대처 방식을 알려면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연방준비은행장 같은 사람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된다. 가이스너는 최근 미국의 신용붕괴 확산을 막아냈고, 베어스턴스를 무너뜨린 예금인출 사태를 관리했을 뿐 아니라 이전의 여러 위기를 막은 데서도 핵심적인 막후 역할을 해냈다. 날렵하고 젊음이 넘치는 가이스너가 거대한 납골당 같은 연방 청사 안에서 전화를 돌리는 모습을 보면 그 일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그가 현대 세계 금융계의 가장 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임시변통에 강하고 능숙하게 상대를 설득하는 그의 수완 덕분이다. 요즘은 금리 조정과 현금 유입이 시장에 미치는 약효가 과거보다는 짧아진 탓에 중앙은행의 힘도 줄어들었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어떤 기구도, 심지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조차도 위기를 해결할 힘이 없다. 현 시대에 중앙은행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필요하다. 그런 힘은 연방 기관들의 공식적인 권위와는 다르며 아주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가이스너는 말했다. 최근 필자는 신저 ‘수퍼클래스(Superclass)’를 쓰려고 기초 자료를 수집하면서 가이스너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그는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세계의 엘리트들이 어떻게 힘을 합했는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가이스너는 이번의 신용위기 이전에 세계 증시가 난관에 처했을 당시를 돌이키며 FRB가 5개국으로부터 14개 금융기관 책임자들을 불러모았다고 말했다. 그 기관들은 세계 시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의 95%를 담당한다. 스위스, 독일, 영국인들이 참석했다. 흥미롭게도 일본인이나 다른 아시아인은 없었다. 골드먼삭스의 회장 겸 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그들을 영화 ‘대부’에서처럼 ‘14패밀리’라고 농담 조로 일컬었다”고 가이스너가 말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결할지 방법을 말하자면 결정사항을 따르지 않고도 혜택을 받는 금융기관들이 생기지 않도록 기본적인 체제는 우리가 만들겠습니다. 여러분이 움직이는 대로 나머지 금융기관들도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 모임에는 공식 문서도, 규칙도, 진행 절차도 없었다. 또 아무도 FRB에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지만 시장의 모든 사람이 FRB가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 방식의 미덕은 효율성의 극대화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금융기관장 몇 명이 힘을 합치면 금세 어떤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4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가 위기가 끝날 때까지 매주 한 차례씩 전화 회의를 했을 뿐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할 공식적인 장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내야 했다. 전제는 국경을 초월하는 협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모든 국가와 모든 기관을 포함하는 범세계적인 기구가 될 필요는 없다. 적합한 사람들이 일을 해낼 수 있을 정도로만 모이면 된다. 세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압축돼 있다.”


수퍼클래스 톱 20은?

1.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2.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5월 퇴임)

4. 번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5. 저우샤오촨 중국 중앙은행 총재

6.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

7.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8. 루퍼트 머독 뉴스코프 회장 겸 CEO

9.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먼삭스 그룹 회장 겸 CEO

10.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

11.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CEO

12.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 회장

13.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14.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 회장

15. 테러리스트 X (앞으로 있을 대량살상무기 공격 기획자)

16.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회장 겸 CEO

17. 칼리파 모하메드 알킨디 아부다비투자청(ADIA) 청장

18. 교황 베네딕토 16세

19/20.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
물론 가이스너의 이 이야기는 최근 베어스턴스의 붕괴가 있기 수개월 전에 나왔다. 그런데도 베이스턴스 사태가 터졌을 때 헨리 폴슨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FRB 의장, 제임스 디아먼 JP모건 회장 및 다른 은행장들이 주말에 모여 베어스턴스가 거부할 수 없고 시장을 떠받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과정은 그가 설명한 그대로였다. 대화는 핵심 인사들끼리로 제한됐다. 월가와 세계 전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세들을 말한다. 신속한 조치가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제대로 된 조치가 나왔다. FRB의 위기관리 과정은 대규모 세계 문제에서 공공-민간 협조가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아주 선별적인 몇몇 핵심 인사에게 힘이 집중돼 있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이런 금융위기의 경우는 버냉키와 폴슨 같은 ‘문지기’에다가 세계 최대 금융기관을 움직이는 사람 몇 명이 모이면 해결책이 나온다는 얘기다. 이런 인사들을 포함해 업계와 금융권만이 아니라 정계, 예술계, 비영리 부문 등에서 그 비슷한 영향력을 가진 인사 수천 명이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등장한 새로운 세계 엘리트 계층이다. 필자는 그들을 ‘수퍼클래스’라고 부른다. 그들은 지구상의 어떤 집단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백만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 이 힘을 적극 사용하며 다른 수퍼클래스에 속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 그 힘을 더욱 키운다. 이 새 엘리트층은 과거의 엘리트에 비해 좀 더 많이 열려 있고 변화 또한 심하다. 평생의 권세를 타고나던 시대는 이제 거의 지나갔다. 수퍼클래스의 일원이 되려면 혁명을 이끌든 혁신적인 웹사이트를 만들든 세계에 충격을 줄 만큼의 영향력만 가지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퍼클래스에 들 수 있을까? 늘 그렇듯 재산이 분명히 도움이 된다. 수퍼클래스의 많은 구성원이 부자다. 지금까지의 어떤 엘리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재산이 많다. 예를 들어 지구상 인구의 상위 10%가 세계 전체 부의 85%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부는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다. 진정한 엘리트의 또 다른 수단은 권력이다. 국경을 초월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수퍼클래스다. 그것이 과거의 엘리트들과 다르다. 과거에는 엘리트라고 해도 그 힘이 한 국가나 한 지방에 국한됐다. 예를 들어 엑손모빌의 CEO 렉스 틸러슨은 세계 180개국에서 사업을 한다. 그 회사를 창립하고 현대 다국적기업의 길을 연 존 D 록펠러는 생전에 겨우 펜실베이니아주의 유전과 미국 등유 시장만 호령했을 뿐이다. 지금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퍼클래스의 존재는 명백한 사실이다. 골드먼삭스의 블랭크페인이 농담 삼아 말한 ‘14패밀리’ 같은 세계 최대의 금융기관을 비롯해 약 50조 달러의 자산을 움직이는 세계 50대 금융기관의 책임자들이 거기에 속한다. 세계 최대 기업을 이끄는 CEO들도 수퍼클래스에 든다. 기업가 상위 2000명이 약 5억 명을 고용하고, 약 30조 달러 매출을 올리며 100조 달러 이상의 자산을 소유한다. 또 국경 너머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부 최고위 관리들도 수퍼클래스다. 국가 수반은 물론 외무장관과 군 총사령관 등이 포함된다. 거기다가 가이스너와 버냉키 같은 중앙은행 관리들, 이번 주 중국 중앙은행 총재로 재임명된 저우샤오촨(周小川),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경제와 약 1조50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책임진 중국의 고위 경제관리들도 거기에 속한다. 루퍼트 머독 같은 미디어 거물도 있다. 머독은 전 세계에 신문사, 인터넷 사이트, 영화 제작사, TV 방송사 네트워크를 통해 매일 수억 명에게 미디어 콘텐트를 제공한다. 또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23세) 같은 IT 기업가들도 있다. 인터넷 사교 사이트 페이스북은 세계 공동체의 의미를 재규정한다. 수퍼클래스에는 그와는 다른 형태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교황이나 오늘날 중동의 가장 막강한 실력자로 부상한 이란의 아야톨라 하메네이 같은 세계의 종교 지도자, 라틴 아메리카의 루이스 팔라우나 이집트의 ‘텔레-이맘’(회계사에서 TV 이슬람 전도사 스타로 변신한 아므르 할레드)처럼 미디어를 통해 매일 세계 수백만 명에게 전도하는 성직자들도 수퍼클래스의 구성원이다. 게다가 보노와 앤절리나 졸리처럼 대중적 인기를 이용해 사회운동을 하는 문화계 스타들도 당연히 속한다. 테러단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나 최근 체포된 러시아인 무기상 빅토르 보트처럼 ‘암흑가 엘리트’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인도의 자동차 재벌 라탄 타타, 러시아의 신흥거부 로만 아브라모비치, 사우디의 석유갑부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 그리고 중국의 부동산 거부 양후이옌(楊惠姸) 등 신흥시장의 거부들도 수퍼클래스에서 빼놓을 수 없다. 수퍼클래스에 누가 속하고 누가 들지 않는다는 논란은 끝이 없을지 모른다. 요즘은 너무도 많은 권력이 특정 조직이나 직업과 관련돼 영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명단은 만들어지자마자 곧바로 수정돼야 하는 경우가 많다(예를 들어 올 초부터 현재까지만 놓고 볼 때 서브프라임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시티뱅크, 메릴린치, UBS의 전임 회장들은 수퍼클래스 명단에서 빠져야 한다). 이처럼 수퍼클래스는 유동성이 아주 높은 집단이다. 하지만 오늘날 최고 글로벌 엘리트의 성격을 이해하려는 취지에서 위에서 언급한 척도를 기준으로 필자는 그 핵심 구성원을 6000∼7000명 선으로 압축했다. 다시 말해 “세계 인구 100만 명 중 한 명꼴”이다. 이런 막강한 계층은 겉으로 얼핏 봐도 몇 가지 중요한 추세가 드러난다. 예컨대 정부가 지배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곳에서는 정치 엘리트들이 가장 큰 힘을 갖는다. 중국, 러시아 그리고 중동 대부분 지역에서 그렇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확연한 추세는 공공부문에서 민간부문으로의 권력 이동이다. 세계화 그리고 좀 더 넓은 의미의 민영화가 수퍼클래스의 힘을 키워준다. 또 수퍼클래스는 그런 세계화와 민영화를 가속화한다. 1960년대엔 평균적인 다국적기업이 약 100개의 지사를 거느렸다. 지금은 지사 1만 개 이상을 헤아리는 다국적기업도 많다. 또 1950년대 미국에서는 국방예산이 모든 주요 미국 기업의 매출을 모두 합한 액수보다 컸다(제2차 세계대전 직후 비대해진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지금은 미국의 양대 다국적기업인 엑손모빌과 월마트의 매출을 합치면 미국의 국방예산보다 50% 이상 많다(물론 실제 달러 가치로 따지면 미국의 국방예산은 당시보다 더 많다). 이런 부와 경제적 영향력의 집중은 힘의 집중으로 이어진다. 이런 추세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정부의 힘이 줄어들면서 더욱 가속화한다.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에서 초국가적인 활동이 증가하고, 자국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더욱 어려워지고 현대전의 막대한 비용으로 국가가 무력을 동원할 능력이 사실상 줄어들어 개별 국가의 힘은 더 약해졌다. 그에 따라 다국적기업이나 국제기구(혹은 테러단 네트워크나 비정부기구들)처럼 세계적인 활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개별 정부나 국가기관보다 더욱 유리한 입장에 섰다. 빌 게이츠의 자선단체인 게이츠재단이 세계인의 보건 증진을 위해 연간 약 15억 달러를 쾌척하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보라.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간 예산과 거의 맞먹는다. 맨 꼭대기에선 세계가 아주 작아 보이게 마련이다. 운송과 통신 기술의 혁명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이 더욱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맨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 밀착돼 있는 집단은 없다. 수퍼클래스의 상징은 걸프스트림사의 개인용 제트기다. 예를 들면 어떤 행사가 열리는 장소의 인근 공항에 대기하는 개인용 제트기의 수를 세 보면 그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걸프스트림은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경우 다른 어떤 모임보다 자사의 비행기가 더 많이 동원된다고 밝혔다. 걸프스트림이 보유한 1500대 비행기 중 10% 정도가 취리히 공항에 집결한다. 그러나 올해 8월의 베이징 올림픽이 다보스에 도전장을 내밀 전망이다. 모나코 그랑프리(F1 자동차 경주대회), 보아오포럼(아시아 역내 국가간 협력과 교류를 통한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창설된 지역경제 포럼으로 중국 하이난다오 보아오시에서 열린다), 제네바 오토쇼(최신형 명품 자동차 전시회), 앨런 앤 코 미디어 콘퍼런스(투자금융가 허버트 앨런이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주최하는 언론 및 인터넷 거물들의 연례 모임)도 마찬가지다. 비행기 조종사에게 직접 언제, 어디로 가자고 지시하고 외국으로 나갈 때 보안검색대 앞에서 줄을 서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세계화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 보이게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지구촌을 마음대로 오가는 사람들은 자기 나라 사람들보다는 같은 부류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더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된다. “내가 사는 동네의 공원을 거닐 때보다 다보스 파티장에 갔을 때 아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전 유엔 사무차장이며 지금은 영국 외무부의 고위 관리인 마크 맬럭-브라운이 말했다. 실제로 다보스는 수퍼클래스를 위한 동네 공원이다. 바로 그런 모임에서 세계의 지도자들은 서로 친분을 쌓고 거래한다. 또 그런 곳에서 수퍼클래스가 집단으로 갖는 거대한 힘을 행사한다. 다시 말해 세계의 여론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이런 모임의 주안점은 출신 국가만이 아니라 지역 전체와 세계에까지 확장된다. 라틴 아메리카의 최고급 모임은 세계 최고 부자이며 멕시코의 이동통신 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이 매년 주최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회합’이라고 할 수 있다. 슬림은 그 행사에 라틴 아메리카의 대기업 총수와 2세들을 불러모아 모든 비용을 혼자서 대며 일정도 직접 짠다. 최근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 따르면 일정은 거의 “실무 중심적”이다. 하지만 테니스와 골프를 즐기는 시간도 조금씩 있고 마지막에는 음악에 맞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춤추는 시간도 마련된다(물론 여자들은 없다). 재벌 2세들에게 국경을 넘어 상호 교류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인 엘리트 문화를 가르치는 것이 그 행사의 목적이다. 또 서로 가장 공통점이 많은 세계적인 수퍼클래스 내부에서 유대감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일깨운다. 이런 사교 행사 덕분에 세계 수퍼클래스의 대다수 구성원은 서로를 잘 안다. 월가의 투자은행 블랙스톤 그룹의 CEO 스티븐 슈워츠먼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아주 좁다. 세계의 특정 업종이나 특정 산업을 움직이는 사람은 20, 30 또는 50명에 불과하다.” 수치를 봐도 그렇다. 세계 5대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이사진에 있는 사람을 살펴보면 그들은 다른 대기업 140개, 대학 22개의 이사진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슈워츠먼에게 수퍼클래스의 일원이 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는 “세계의 누구와도 전화 한 통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맥은 물론 위기에 처한 세계를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한번은 저명한 항공기 제조사의 CEO와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의 한 고위 인사 사이의 만찬 도중 대화를 엿들었다.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고 그 CEO가 말했다.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에게 비행기를 한 대 팔고 싶고, 그도 사기를 원한다. 하지만 금수조치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 없다. 미국은 카다피가 사라지기 원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그에게 비행기를 팔 수 있게 해 주면 비행기 동체와 날개를 연결하는 볼트를 폭탄으로 만들겠다. 그래서 그가 지중해 상공을 날 때 우리가 버튼을 누르는 거다. 그러면 그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나도 비행기를 팔게 되니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 아닌가.” 다행히도 이 대화가 이뤄진 시기는 미국의 외교정책 입안자들이 국가안보를 위해 국제법을 무시하기 시작하기 전인 1990년대다. 물론 그 의원은 항공기 제조사 CEO의 제의를 거절했다. 앞으로도 엘리트 모임에 참석하는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백인 남성이며, 미국 아니면 유럽 출신일 것이다(도표 참조). 그러나 현재 그들은 이전 세기의 엘리트들보다 좀 더 개방적이고 또 세계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부와 권력을 물려받는 사람들은 더욱 줄게 된다. 수퍼클래스에 속한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자신들이 그 집단에 속하게 된 데는 행운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했는지 스스로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에 대한 반발도 커진다. 이미 올 들어 수퍼클래스가 주도하는 아이디어와 제도가 상당한 도전에 직면했다. 시장이 폭락하고, 에너지가 다시 국유화하고, 보호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마이크 허커비, 존 에드워즈 같은 미국 대선 주자들은 유세에서 한결같이 더욱 벌어지는 사회 격차를 비판했다. 그러나 수퍼클래스가 급속히 늘어나는 지역인 중국 같은 곳의 소득 격차는 훨씬 크다. 주요 다국적기업 CEO의 평균 연봉이 일반 근로자의 350배나 된다(1970년대 격차보다 10배나 더 벌어졌다). 따라서 힘 있는 사람들이 사복을 채우는 데 그 힘을 사용한다는 분노가 커져간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또 다른 예다. 수퍼클래스의 영향력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세계의 엘리트 중에서 지난 10년 동안 투자은행가만큼 세계 무대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 사람은 없다. 돈의 지배자인 그들은 세계 시장을 만들어냈다. 또 규제당국이 손을 쓸 수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계속 진화하는 투자 수단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만들어낸 그 복잡한 투자 수단 중 일부 가치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 결과 세계경제는 현재 실체를 드러내면서 위기를 향해 돌진한다. 이 체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세계적인 규제기구도 없고, 일반 대중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목소리도 없다. 이 주요 시장을 이끄는 실세 중 하나가 붕괴하자 FRB가 개입했다. 그러나 그들은 투자은행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 또 구제금융이나 인수를 지지한 사람 중 다수는 “자율규제”를 오랫동안 외치던 바로 그들이었다. 아울러 어려움에 처한 주택소유자들을 구제하면 나쁜 습관만 들게 된다며 도덕적 해이를 주창하던 바로 그들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금융계 지도층은 세계적으로 투자은행가들을 구제하면서도 자국의 주택보유자들은 구제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그 지도층 일부는 새로운 규제안을 수용한다. 버냉키 FRB 의장과 폴슨 재무장관(근년 들어 가장 특이한 수퍼클래스 회원들을 만들어낸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CEO를 지냈다)이 급조한 안전망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할 대가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판자들은 이번 사태가 엘리트층의 과도한 영향력 때문에 발생하는 위기의 전형적인 예라고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부터 미국 남북전쟁 후까지 역사적으로 볼 때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탐욕과 야망 때문에 무너졌다. 지금 많은 사람은 바로 이것이 수퍼클래스 종말의 서곡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의 솔론과 클레이스테네스 같은 정치 개혁가, 테디 루스벨트 대통령 같은 독점규제자의 등장으로 엘리트층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가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가기관들은 국경을 넘어서면 아무런 힘이 없고 국제기구들은 세계시장만큼 급속히 진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다수는 1940년대 후반의 운영 구조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고, 세계적인 문제를 다루기엔 자원이 부족하다(물론 폴슨 재무장관과 영국 정부는 바로 그런 면을 바꾸는 제안을 내놓았다). 국제시장에서 민간의 투자자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런 기구들을 무력화하면서 세계 엘리트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따라서 어떤 국제적인 장치를 만들더라도 세계 엘리트들을 제어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단기적으로 가능한 변화는 수퍼클래스 집단의 세계적인 확산과 그를 둘러싼 긴장의 고조다. 철강 재벌 락시미 미탈, 릴라이언스 그룹의 소유권을 두고 형제의 난을 벌이는 무케시와 아닐 암바니 형제, 세계적인 자동차 재벌 라탄 타타 같은 인도인들뿐 아니라 러시아(최근 포브스 부자 순위에 새로운 억만장자를 가장 많이 진출시켰다)와 중국(국내 톱25 부자 중 절반이 40세 미만이다)의 억만장자도 수백 명에 이른다. 이들이 새로운 수퍼클래스를 형성한다. 동시에 아시아 국가들의 정부와 군의 상대적인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중국의 국방비 지출은 세계 2위이고 인도는 지난 5년 사이 국방비 지출을 40% 이상 늘려 구매력을 감안한다면 세계 3위 수준이다. 따라서 수퍼클래스가 억제되기보단 자체적으로 변신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앞으로는 유럽이나 미국보다는 아시아에서 엘리트들의 모임이 더 많이 열릴 전망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수퍼클래스가 세계 여론을 형성하면 국제사회의 가치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국가와 개인의 역할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또 그들은 과거 서양의 제국주의나 개종주의보다 더 좁은 자국의 이익을 기준으로 그런 역할을 규정하려 들지 모른다. 석유 정치인들의 부상은 화석연료에 의한 지구온난화 현상을 막으려는 국제적인 노력에 걸림돌이 될지 모른다. 신흥시장 CEO들의 영향력이 커지면, 기업들을 사회적, 환경적으로 더욱 책임감 있는 ‘지구촌 시민’으로 만들려는 운동이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 개도국의 많은 사람은 기업의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고양하려는 운동을 부자 회사, 부자 국가의 사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인 조건을 무시하는 나라들을 보고 ‘으레 그러려니’하고 눈감아 주는 수퍼클래스가 늘어나면 그들 스스로의 개혁도 더욱 어려워진다. 필자의 결론은 이렇다. 앞으로 지금과는 다소 다른 모습의 수퍼클래스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지구촌 시민들이 보다 강력한 세계적인 관리 장치를 만드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문제와 관련해 그 6000명의 수퍼클래스가 이 지구상의 어떤 집단보다 더 막강한 역할을 계속 떠맡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위기의 한국 증시, 용기 내고 미국 증시 두려움 가질 때”

2부동산 PF 자기자본 현행 3%서 20%로 높인다

3'김가네' 회장, 성범죄 이어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

4'이것'하면 돈 날린다...전문의도 비추하는 '건강검진' 항목은?

5나라살림 이대로 괜찮아?...연간 적자 91조 넘었다

6"노사 화합의 계기"...삼성전자 노사, 임협 잠정합의안 마련

7프라우드넷, 네이버클라우드와 솔루션 사업협력을 위한 파트너십 계약 체결

8SOOP, 지스타 2024에서 ‘SOOP AI’ 신기술 공개

9"목 빠지게 기다린다"...美 유력지, 아이오닉9·EV9 GT 콕 집었다

실시간 뉴스

1“위기의 한국 증시, 용기 내고 미국 증시 두려움 가질 때”

2부동산 PF 자기자본 현행 3%서 20%로 높인다

3'김가네' 회장, 성범죄 이어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

4'이것'하면 돈 날린다...전문의도 비추하는 '건강검진' 항목은?

5나라살림 이대로 괜찮아?...연간 적자 91조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