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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은 언제나 안으로 굽는다?

팔은 언제나 안으로 굽는다?

한국전력 퇴직자 모임인 ‘전우실업’과 출자회사 ‘한전산업개발’에 대한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 한전의 전기검침 용역을 이 두 회사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끼리끼리 해먹기’는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가 됐다. 이코노미스트가 한전의 전기검침 용역 독점의 실상을 집중 취재했다.
한국전력 ‘전기검침(檢針) 용역계약’을 둘러싼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공개경쟁입찰로 계약되는 전기검침 용역 업무를 한전 관련 회사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전기검침을 시행하는 1700만 가구 가운데 약 20%는 경쟁입찰로, 나머지 80%는 수의계약으로 용역업체를 결정하고 있다. 수의계약 비중이 턱없이 높은 것도 문제인데, 경쟁입찰로 계약되는 용역도 객관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총점 2등 하고도 수주는 꼴찌
이코노미스트 취재 결과 2007년 한전 15개 지역본부에서 실시된 경쟁입찰에서 한전산업개발과 전우실업이 11개 본부의 검침용역을 수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전산업개발은 한전의 출자회사(지분율 49%)로, 최대주주는 한국자유총연맹이다. 87년 8월 설립된 전우실업은 한전 퇴직자들이 모여 만든 기업이다. 전기사업 및 설비운용 수탁을 주요 업무로 하고, 지분 100%를 ‘한국전력 전우회’가 갖고 있다. 이들은 용역 수주만 독점한 게 아니라 전기검침 용역비도 그야말로 싹쓸이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전기검침 경쟁입찰의 총 용역비(연간)는 대략 240여억원. 이 가운데 한전산업개발은 절반에 가까운 119여억원을 챙겼다. 전우실업은 총 용역비용의 37%에 해당하는 85여억원을 챙겼다. ‘한전 식구’들이 연 용역비의 90%가량을 차지한 셈이다. 한전은 2006년부터 전기검침 용역 분야에 경쟁입찰을 도입했다. 매년 검침업체 선정 때마다 특혜 논란이 일자 이를 도입했던 것. 이 때문에 사상 최초로 실시된 2006년 전기검침 경쟁입찰은 비교적 공정하게 치러졌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당시 95만 가구를 대상으로 경쟁입찰을 실시한 결과, 한전산업개발은 30%의 용역을 수주했다. 2~4위를 기록한 중소검침업체 신일종합㈜, 상이군경회, 새서울㈜은 각각 24%, 18%, 14%를 차지했다. 반면 전우실업은 단 7%의 용역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한전 관계사’의 2006년 전기검침 용역 수주비율은 37%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7년 경쟁입찰에서는 이들이 80%에 육박하는 용역을 수주했다. 업계 관계자는 “2007년 입찰 결과 검침 용역 분야는 한전 관계사들이 사실상 싹쓸이했다”며 입찰 과정에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2006년과 2007년에 실시된 전기검침 용역 경쟁입찰이 어떻게 달랐으며, 이에 따라 제기되는 의문은 무엇인가. 두 입찰의 가장 큰 차이는 용역업체 선정방식이다. 2006년 경쟁입찰은 총점으로 순위를 결정, 용역업체를 결정했다. 종합점수에서 1위를 차지한 업체가 가장 많은 용역을 가져가는 방식이었던 것. 반면 2007년엔 각 사업본부의 1위 업체에만 용역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령 한전 서울본부에서는 A업체, 경기본부에서는 B업체가 1위를 차지했다고 가정할 때, 해당 지역 용역을 각각 A(서울), B(경기) 업체가 맡는 식이다. 이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나왔다. 총점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음에도 정작 용역은 수주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했던 것. 실제 총점에서 2위를 차지한 상이군경회는 단 1곳을 수주하는 데 그쳤고, 총점 1위를 한 한전산업개발은 무려 7곳의 용역을 따냈다. 본지가 입수한 회사별 종합점수표에 따르면 상이군경회의 총점은 1355.07점으로, 1355.80점을 기록한 한전산업개발보다 불과 0.73점 뒤졌다. 반대 사례도 있다. 전우실업은 15개 사업본부 가운데 6곳에서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무려 4곳의 용역을 수주했다. 서울·인천·경남·경기북부 등 4개 사업본부 입찰에서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 주관적 판단했나
업계 관계자는 “전기검침 업무가 지역별로 다른 것이 뭐가 있다고, 본부마다 평가를 다르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결국 상이군경회처럼 종합점수에서는 이기고도 수주하지 못하고, 전우실업처럼 꼴찌를 많이 하고도 용역 수주는 많이 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검침 업무는 지역이 다르다고 평가 기준이 달라질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전 영업처 영업운영팀 측은 “계약업무는 각 사업본부에서 수행하는 통상적 업무”라며 “2006년 검침용역 계약은 시범도입됐던 탓에 입찰절차에 대한 경험이 전무해 본사에서 수행했지만 2007년엔 별 무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각 사업소에 넘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두 입찰의 차이점은 또 있다. 2006년 입찰은 한전 본사에서 주관, 실시됐다. 반면 2007년 입찰은 앞서 언급했듯 한전 본사가 아닌 15개 본부에서 각각 다른 날 진행됐다. 예를 들어 한전 서울본부 입찰은 8월 8일, 충북지사는 8월 9일, 대구본부는 8월 13일 실시됐던 것. 주목해야 할 대목은 입찰 참여 업체들이 15개 지역본부에 제출한 입찰제안서와 설명자료(PT)가 표지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A업체가 한전 서울본부와 충남지사에 입찰제안서 및 PT자료를 제출했다고 가정했을 때, 표지만 ‘서울본부’ 혹은 ‘충남지사’로 바꿨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15개 본부 경쟁입찰의 차이점은 설명회가 열린 날짜와 심사위원 등 단 두 부분뿐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2007년 공개입찰의 점수 배분은 기술능력평가 90점, 가격평가 10점이었다”며 “따라서 당락의 주요변수는 가격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심사하는) 기술능력 평가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각 15개 본부에서 똑같은 근거를 가지고 (심사위원들이) 평가했는데, 점수 차이가 크게 달랐다는 점은 의문”이라며 “가령 전우실업은 4곳에서 1등을 한 반면 6곳에서 최하위를 기록했고, 모 업체는 남서울본부에선 90.90점을 받아 2등을 했지만 서울본부·인천본부에선 각각 89.45점, 83.97점을 얻는 데 그쳐 꼴찌를 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각 본부의 1등 업체가 결정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실제 2007년 경쟁입찰에 참여했던 총 심사위원 107명 가운데 46명이 한전 내부 관계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업계 관계자는 “2007년 입찰은 결국 한전 내부 관계자가 한전 퇴직자들이 만든 업체를 심사한 것”이라며 “한전 내부 인사의 심사위원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한전 ‘후배’가 한전 ‘선배’를 심사한 것은 문제라는 말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는 심사 과정의 중대한 제도적 허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심사위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입찰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은가”라며 “그렇다고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한전 내부인사들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절대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는 “2006년 공개경쟁입찰에서도 심사위원 비율은 사외 7명, 사내 5명으로 비슷했다”며 “적정한 검침용역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선 이 분야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되기 때문에 한전 사내인사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2006년, 2007년 입찰방식 가운데 또 하나의 다른 점은 ‘사명 표기’ 여부다. 2006년 입찰에서 한전은 ‘입찰제안서에 사명 표기 불가’를 명문화했다. 특혜의혹 방지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2007년 입찰에선 이 명문규정을 삭제했다.

‘사명 표기 불가’ 문구 왜 삭제했나
입찰제안서를 보고 어느 업체 것인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심사가 진행됐다는 의미다. 이는 객관성을 위해 입찰업체에 대한 비공개 심사를 해야 하는 공개경쟁입찰 원칙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2006년 입찰이 커튼을 내린 상태에서 진행했다면, 2007년은 얼굴을 공개한 채 실시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한전 관계사들을 밀어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입찰방식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많은 공공기관이 유착의혹을 근절하기 위해 입찰제안서에 ‘사명 기재 불가 방침’을 세우고 있다. 가장 많은 공개경쟁입찰을 실시하는 조달청이 내부지침에 ‘업체명 기재불가’를 명문화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조달청 관계자는 “입찰제안서에 업체명을 기재하는 것은 해당 기관의 자유”라면서도 “하지만 각종 의혹을 없애기 위해선 사명을 명기하지 않는 게 옳은 방법이고, 조달청은 이 같은 조치를 강력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전 관계자는 “2006년 입찰 당시 업체명을 표기하지 말도록 명문화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제안서 분량이 수백 쪽에 달해 업체명을 표기하지 않아도 내용을 살펴보면 어떤 업체인지 짐작할 수 있어 이번엔 공개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2007년 공개경쟁입찰은 공정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많은 용역을 수주하지 못한 업체엔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법”이라고 반박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전우실업 측도 “1년간 열심히 노하우를 쌓고 가격경쟁력 등을 갖췄던 게 주효한 것 같다”며 “업체들의 반발은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배경’이 아닌 ‘실력’으로 검침용역을 따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관계사, 퇴직자 모임에 대한 특혜논란은 새삼스럽지 않다. 코레일 퇴직자 모임 철우회, 관세청 퇴직자 모임 한국관세무역개발원이 수의계약 파동으로 여론의 질타를 맞은 게 지난해의 일이다. 한결같이 ‘제 식구 밀어주기’ 때문이었다. 한전도 스스로 검침용역 분야에 적용하고 있는 공개경쟁입찰 방식에 문제는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숨은 노다지 사업 전기검침 용역


권력층이 탐내던 알짜 사업
한전 전기검침 사업을 둘러싸고 파열음이 새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특혜설, 권력층과 유착관계 의혹 등 루머가 끊이지 않고 양산됐다. 일례로 5공 시절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중 한 명이 전기검침 업무에 뛰어들어 돈맛을 봤다. YS정부 시절 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전기검침 업체를 설립하려다 좌절된 사례가 있다. 전기검침 사업이 이처럼 권력층의 인기사업으로 각광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권사업이라는 이야기다. 검침업체는 기본적으로 검침수수료를 챙긴다. 단가는 호당 평균 600원. 100만 호의 검침용역만 수행해도 6억원의 수수료가 떨어진다. 요금고지서, 단전 등으로 얻는 성과도 만만찮다. 검침업체는 요금고지서를 인편으로 송달한다. 이에 따라 한 번 발생할 때마다 400원대의 수수료를 받는다. 단전은 한 번 시행할 때마다 대략 9000원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가령 300만 호에 요금고지서를 보내고, 단전까지 수행했을 때, 해당 검침업체는 각각 13억5000만원, 270억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월 수억원은 남길 수 있는 사업 분야가 바로 전기검침 용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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