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거꾸로 747’로 가고 있잖아
[양재찬의 프리즘] ‘거꾸로 747’로 가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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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란 숫자가 기분 나쁘게 다가오기는 비단 한국만이 아닌가 보다. 끝내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이 갤런 당 4달러를 돌파한 미국도 난리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미국에서 휘발유 값 급등은 곧 이동수단의 제약을 의미한다. 오하이오·뉴욕 등 일부 주정부는 하루 8시간-주 5일 근무 대신 하루 10시간-주 4일 근무제를 채택했다. 휘발유 가격의 거듭된 기록 경신은 집값 하락과 고용 불안으로 이미 상처가 깊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더 큰 손상을 입혔다. 5월 소비자신뢰지수는 16년래 최저로 곤두박질쳤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 위축이 현실화할 경우 6년간 이어져온 경제 성장세도 꺾일 수밖에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혼이 난 부시 정부는 올 1월 세금환급 정책을 발표했다. 7월까지 1억3000만 명에게 1600억 달러를 뿌린다. 1인당 600달러에서 최대 1800달러까지. 하지만 의도한 경기부양 효과는 별로다. 블룸버그 통신과 LA타임스가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8%만 환급금으로 구매에 나서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3분의 1은 빚 갚는 데 쓰고, 나머지는 저축하겠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소비를 늘리는 효과는 있겠지만 당장 추가 수요와 경기부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세금환급 개시 이후 5월 말까지 6주 동안 소매판매 지표는 딱 한 차례 늘어나는 데 그쳤다. MB정부가 이를 벤치마킹해 한국에서도 처음으로 세금환급을 시행하기로 했다. 1380만 명에게 10조 5000억원을 푼다. 지금 1인당 최고 24만원의 ‘공돈’이 생긴다고 웃을 일이 아니다. 그래 봤자 한 달에 2만원꼴이다. 상반기 중 배럴당 150달러 돌파에 대한 우려가 큰 판에 기름값이 더 뛰면 말짱 도루묵이다. 한 달도 넘게 꺼질 줄 모르는 촛불집회를 의식해 국민 불만을 누그러뜨리자는 계산에서인지 연봉 3600만원 이하 봉급생활자와 종합소득 2400만원 이하 자영업자 등 혜택 계층을 너무 넓게 잡았다. 대상을 좁혀 두텁게 지원해야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보탬이 될 텐데 대상을 넓혀 얇게 지원하기로 해 재정만 축내고 언 발에 오줌 누기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대책에 불만을 품은 화물연대는 결국 6월 13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더구나 고유가·고환율·고물가 등 ‘3고(高)’ 파도에 소비심리는 냉각되는 모습이다. 6개월 뒤의 경기·생활형편·소비지출에 대한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기대지수가 5월 조사에서 92.2에 그쳤다. 한 달 사이 8.2포인트 급락했다. 지수 하락폭이 7년6개월 만에 가장 크다. 특히 경기에 대한 기대지수는 4월 93.8에서 5월 77.9로 15.9포인트나 추락했다. 정부 출범 100여 일 만에 국정운영 지지도가 10%대 중반으로 급락하자 ‘강부자’(서울 강남 부동산 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내각이란 지적에 일만 잘하면 된다던 청와대가 인적 쇄신 카드를 꺼냈다. 대통령 인사팀이 ‘비(非)영남·비(非)고려대·재산 30억원 이하’라는 인선 기준을 제시하자 인터넷에 ‘명세빈’ 내각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명확하게 세 가지가 빈약한 인물’이란 뜻으로 세 가지란 돈과 지연(영남), (소망)교회 출신을 말한다. 재산 30억원 이하 기준은 이 정부 첫 내각의 평균 재산 31억4000만원, 청와대 수석의 평균 재산 35억5000만원을 염두에 둔 모양이다. 6·8 고유가 극복대책이나 거론되는 인적 쇄신 대상을 보면 쇠고기 파동에 대한 땜질 처방 성격이 강하다. 그동안 고환율 정책 등을 통해 성장 위주 정책을 고집하던 정부가 뒤늦게나마 물가상승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습이다. 그러나 ‘신(新)3고3저’(고유가·고환율·고물가·저소비·저성장·저고용) 현상을 초래한 근본 원인에 대한 수술이 없다. 시중에는 MB 진영이 내세운 대선 공약의 대명사 747(연 7%대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실현, 7대 경제강국 진입)과 정반대의 ‘747’(MB물가지수 7% 상승, 4%대 성장, 국가경쟁력 7단계 하락)을 초래할 것이란 말까지 나돈다. 조금 늦더라도 원하는 747을 이룰지, 시장이 걱정하는 ‘부(負)의 747’로 결론 날지는 MB정부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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