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원리 모르고 뭘 하겠나” - 딸 “수리경제가 월가 주름잡아”
아버지 “원리 모르고 뭘 하겠나” - 딸 “수리경제가 월가 주름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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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교수가 딸의 반주에 맞춰 이탈리아 가곡을 부르고 있다. |
“눈물로 밤 새우며 경제학 공부”
기자: 따님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국제기구의 이코노미스트가 됐으니 부러울 게 없겠어요. 원래 따님께서 경제학자가 되길 원하셨나요?
김필규: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전 원래 우리 딸이 저처럼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되길 바랐습니다. 우리가 돈 많은 사업가 집안도 아니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집안도 아니니 전문가의 길을 걷는 게 가장 속 편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거죠. 근데 제가 젊었을 때부터 공부한다고 이곳저곳 다니고 또 3년간 빈 과학관으로 가 있어 애들이 어릴 때 수학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어요. 나라별 언어 습득하는 것이 급한 나머지 수학이 헷갈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공계 공부를 시키기엔 갈팡질팡 너무 기초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딸애가 엄마(연세대 음대 졸) 영향으로 처음에 피아노를 배우게 된 거죠. 근데 어느 순간 본인이 경영·경제를 파고들더라고요.
김정연: 아버지 말씀대로 수학이 너무 어려웠어요. 기초수학에 자신이 없으니 물리도 화학도 체계적으로 다지기가 어려웠어요. 아버지께서 빈 한국 주재 과학관으로 계실 때 피아노를 공부했는데 솔직히 좀 답답했어요. 한국에 와서는 전혀 다른 길로 서강대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된 거죠.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IAEA도 가보고 유엔도 가보면서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 맘이 들었어요. 그런데 결국엔 경영학이 아닌 경제학을 파게 됐어요. 아버지 피를 물려받았는지(웃음) 경영학보다는 좀 더 체계적인 경제학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기자: 어릴 때 여러 곳을 떠돌아 수학 원리가 약하다고 말씀했는데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할 때는 힘들지 않았나요?
김정연: 말도 마세요. 만날 눈물로 밤을 지새웠어요. 울면서 서울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죠. 다른 학문은 몰라도 경제학은 수학 원리를 모르면 깊이 파고들기 힘들었어요. 요즘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다는 월가의 프로들도 수리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인정 받는 추세잖아요. 파생상품 개발과 경제의 수익구조 연구가 모두 수리력이 밑바탕이니까요.
김필규: 요즘 학생들을 보면 참 걱정스러울 때가 많아요. 저도 대학에서 애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학생들이 연구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없어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라 전체에 아카데미 분위기가 없어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예요. 국민이 수학을 싫어하고 과학을 싫어하니 정부든 국민이든 비논리가 판치고 중심을 못 잡는 겁니다. 유럽에서도 살아 봤지만 선진국 국민은 굳이 과학자가 아니라도 과학자 이상으로 논리적이고 과학적 사고가 몸에 배어 있어요. 우리나라 과학 기술이 경제 안에서 크지 못하고 겉도는 것도 과학을 홀대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봅니다. 원리를 모르고 배운 암기식 경제이론으로 만든 정책이 무슨 힘을 받겠습니까.
김정연: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저와 제 동생(현 P&G 싱가포르지사 마케팅 매니저)에게 매일 수학 문제를 풀게 하고 원리를 가르쳐 주셨어요. 저나 동생이 방을 어질러도 절대 치우라고 하지 않으셨죠. 본인이 어질러 놓은 데는 그 나름의 일하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실 정도로 자식들이 합리적이고 논리적 사고를 하도록 애쓰셨죠.
기자: 교수님은 노태우 정부 때 과학경제 비서관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청와대에 계실 때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요.
김필규: 제가 청와대에 들어갔던 것도 어떤 인맥이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었어요. 89년 빈에서 IAEA 담당 과학관으로 한창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제가 담당하는 일이 과학기술처와 체신부, 국방부에 있는 연구기관과 대통령 사이의 코디네이터를 해주는 일이었죠. 문희갑 경제수석의 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문 수석은 과학정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 제가 제안하는 일에는 무조건 적극적으로 믿고 맡겨 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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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기억에 남는 과학 연구정책을 코디하신 것이 있습니까.
김필규: 세제잉여금에서 약 30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기술개발 자금을 확보해 정부 출연연구소와 중소기업 간 부품소재개발 사업을 합동 연구하게 했죠. 무역수지 개선에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당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여건이 빈약해 부품 소재 개발이 국가적 우선 과제로 떠올랐거든요. 제게 청탁도 많이 들어왔어요. 그 전까지는 아부하고 청탁하는 연구소에 자금을 주던 것을 제가 공평하게 자금이 가야 하는 곳으로 배분해 줬으니 제 앞으로 줄을 서려고 하더라고요.(웃음) 이기호 당시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이 저에게 ‘김필규는 누구 오른팔’이라는 별명까지 붙여 줬을 정도였죠. 그런데 저는 일절 청탁을 받지 않았습니다.
“석유 고갈되면 뭘 먹고 삽니까”
김정연: 제가 어릴 때였는데 지금도 기억나요. 명절 때뿐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사과 상자며 박스들이 배달됐는데 아버지는 아파트 관리실에 배달된 것들을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받아 놓은 걸 보면 불호령을 내리며 돌려보내라고 하시더라고요. 원리 원칙에 강하고 타협을 모르는 아버지를 보면서 더 존경하게 됐죠.
김필규: 결국 정치력 없는 제 옹고집이 청와대에서 밀려난 원인이 됐던 것도 같은데….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진짜 열심히 일했거든요. 문희갑 수석이 물러나고 김종인 수석이 그 자리에 왔는데 ‘왜 과학자가 경제비서관 자리에 있느냐’고 문제제기를 해 물러나게 됐죠. 과학 마인드가 있었던 경제수석은 아마 문 수석 이후에 없었을 겁니다. 이후에도 과학수석은 이리저리 교육부로, 총리 직속으로 옮겨 다니면서 경제 라인과 시너지를 내지 못했죠. 이번 정부에서 과학기술부가 폐지되고 교육부로 합쳐진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기자: 교수님은 처음에 전기공학, 다음엔 원자력공학과 기계공학을 전공하더니 지금은 정보통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같은 과학이라도 분야가 다른데…. 경계를 넘나들 때 힘든 점은 없었나요.
김필규: 왜 힘든 점이 없었겠어요. 사선을 넘는 것처럼 당연히 힘들었죠. 하지만 평소 원리를 가르치는 수학과 물리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 큰 힘이 됐어요.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열정은 새로운 원리를 파고드는 열정이에요. 제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 성악을 시작한 것도 이 열정에 기인한 겁니다. 성악도 과학 마인드로 접근했죠. 무슨 일이든 탐구하는 정신이 살아있으면 극과 극을 넘나들지 못할 게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원리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죠. 성악도 혼자 집에서 연구했어요. 배에서 나오는 소리,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 광대뼈에서 울리는 공명이 어떻게 다른지…. 인체와 소리 공명의 연관성을 생각한 거죠.
김정연: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저희 남매도 감정보다는 논리가 앞서게 되더라고요. 제가 지금 IMF에서 정책개발 및 국제수지를 담당하고 있지만 이 일은 정답이 없는 일입니다. 한 나라의 국제수지 환경도 시대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정책 개발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요즘 경제는 예전에 비해 변수가 더 많고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럴 때 논리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해답이 안 나오는 문제와 마주할 때마다 제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웁니다. 가장 합리적인 길을 찾자고요.
김필규: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정도 되면 경제를 과학 마인드로 끌고 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과학인재 육성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이죠. 그럼에도 왜 정부는 영어 공부에만 집착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나라가 강해지려면 우수한 과학 인재가 많이 배출돼야 합니다. 모든 상황을 과학적 논리로 접근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쉽게 풀릴 수 있어요. 석유가 고갈되면 뭘 먹고 삽니까. 우리 힘으로 수소자동차 만들고 태양력 에너지 개발해야 하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선거공약의 하나로 과학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조9300억원에 달하는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신정부의 메가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프로젝트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국가경쟁력강화특위에 소속됐던 과학자들도 학계로 돌아왔다. 지금 경제가 너무 어려워 과학정책을 계획할 여유가 없다는 이유였다. 과학은 이번 정부에서 또 뒤로 밀린 셈이다. 김 교수는 “당장 임기 내에 닥친 발등의 불만 끄려 하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답은 과학 인재 육성이다. 과학은 거창한 프로젝트에 의해 육성되는 것이 아니라 초기 교육부터 학습 분위기, 과학자가 우대받는 사회 분위기를 먼저 만드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당장 눈앞의 현실만 보고 과학교육을 홀대하면 자원도 없고 인구도 적은 이 나라에서 먹고살 대안은 영영 없게 된다. 이들 부녀처럼 예술과 과학, 경제가 서로 넘나들 수 있는 자유로움은 원리를 파고드는 탐구정신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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