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氣 보좌부터 황태자형까지
心氣 보좌부터 황태자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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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생리상 최고 권력자는 사적 보좌를 원한다. 권력의 중심부에 가면 아첨꾼이 들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 권력이 일순간 강화되기 때문에 참모들은 직언을 못하고 심기만 살피게 된다. 역대 대통령 참모들은 이런 사적 참모가 다수였다.” 『대통령 리더십 총론』의 저자인 한국리더십개발원 최진 소장의 설명이다. 사적 보좌는 오직 보스만을 위해 모든 것을 실행하는 ‘심기 보좌’를 하기 때문에 과잉 충성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공적 보좌는 대통령에게 정책적 제안을 하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주로 지도자 개인보다는 국가정책이나 국민정서를 고려하는 보좌를 하게 된다. 사적 보좌의 대표적 사례가 김대중(DJ) 정부의 박지원 전 비서실장(현 국회의원)이다. 박 전 실장은 정책 보좌보다는 대통령 개인을 위한 1인 보좌를 충실히 한 인물로 꼽힌다. 야당 대변인 시절 4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김 대통령 자택을 찾아가 보고해 김 대통령을 감동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박 전 실장은 대통령이 가장 힘들어 할 권력 후반기에 보스의 마음을 헤아리며 옆을 지켰다. 덕분에 그는 DJ 정부 5년 동안 청와대 공보수석부터 문화관광부 장관, 정책기획수석, 정책 특보,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지나친 사적 보좌는 무리수가 따르게 마련이다. 자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과잉 충성을 하기 때문이다. DJ 정부 임기 말에 나타난 ‘홍삼트리오 사건’(김대중 대통령 아들 3형제 비리)은 대표적인 사적 보좌 폐해 사례다.
박정희는 사적·공적 보좌 분리 객관적 평가가 어떻든 박 전 실장은 김대중 대통령 개인에겐 최고의 참모였을 것이다. 그가 지난해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이란 주제로 강연했다는 내용이 의미심장하다. “비서실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대통령께 바른 말씀을 하는 분들을 만나게 해 드리는 일이다. 고 강원룡 목사나 박권상 전 KBS 사장 같은 분은 직언을 많이 하신 분으로 기억한다. 때로 그들은 비서실장인 나에 대한 아픈 이야기도 서슴지 않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대통령께 그분들을 만나시도록 권했다. 모두 대통령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적 보좌와 공적 보좌를 철저하게 분리한 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이 독재권력이라는 비판과 저항을 받으면서도 경제 부흥이란 과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면엔 김정렴이라는 참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정렴 비서실장은 69년부터 78년까지 약 9년 3개월간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정치 리더십이 강한 박 대통령에게 경제 리더십을 보완해 줬다. 덕분에 그가 얻은 별명은 ‘경제 부통령’. 이후락이나 차지철 같은 돌격대형 정치 참모들이 박 대통령의 개인 보좌뿐 아니라 공적 보좌까지 하게 했다면 나라는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중간 보스를 여러 명 두고 이들 간의 역학 관계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보스 기질이 강하고 월권이나 직언을 좋아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강경식 비서실장은 당시 자신의 전공 분야인 경제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가 전 대통령에게 “비서실장이나 잘하라”는 꾸중을 들었을 정도다. 이런 전 대통령도 경제만큼은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전권을 넘겼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는 전 대통령이 김재익 전 경제수석에게 남겼다는 유명한 말이다. 참모의 권한이 너무 비대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6공 황태자’로 불렸던 노태우 정부의 박철언 정책보좌관의 경우 외교안보 부문에서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정치적 역할이 비대해지면서 본인이 야심을 갖게 된 사례다. 대권 구도를 둘러싸고 YS와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결국 국정 전반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게 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참모 가운데 둘째아들 김현철씨를 빼놓을 수 없다. 김씨는 아들이기 전에 가장 믿음직한 정치 참모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집권 초기 외곽 사조직을 가동해 YS를 정무적으로 보좌했다. 그러나 힘이 과도하게 쏠리다 보니 여러 비리 사건으로 침몰, YS는 결국 정치적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된다. 집권 초기부터 정무 능력이 뛰어난 이원종 정무수석이 YS를 4년 가까이 보좌했지만 대통령 아들 문제였던 만큼 역부족이었다. 말이 많고 감성적인 노무현 대통령은 유독 내향적이고 논리적인 참모들을 선호했다. 문재인·이광재·안희정이 대표적인 노 대통령의 참모다. 80년대 초반 신참 변호사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온 문재인 전 비서실장에 대해 노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냉정하고 신중하며, 권세나 명예로부터 초연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용의주도하고 냉철한 기획가형으로 알려진 386 운동권 출신 이광재 의원, 결정적 고비마다 노 대통령의 의논 상대로 꼽히는 안희정씨 모두 튀지 않는 이론가형이라 노 대통령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었다. 역대 대통령의 참모 인선엔 공통된 스타일이 있다. 집권 초기 개혁을 위해 관료를 배제하고 학자 출신 참모들을 중용한다는 점이다. YS 이후 정권의 청와대 첫 경제수석은 예외 없이 교수 출신이었다. 김영삼 정부의 박재윤 경제수석(서울대 교수 출신), 김대중 정부의 김태동 경제수석(성균관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이정우 정책실장(경북대 교수)이 대표적이다. 학자 출신 정책 참모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정책을 제시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정치적 사안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엔 익숙지 않다. 이런 어설픈 정무 능력으로 학자 출신 참모들은 얼마 못 가 관료 그룹에 밀려 퇴진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반면 정치 참모들은 대안 없는 비판이나 추상적인 문제를 물고 늘어질 위험이 있다. 최진 소장은 “대통령 참모진은 정무와 정책 기능이 마차의 네 바퀴처럼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노태우 대통령 말기의 김종인 경제수석은 정책가형 참모면서 고도의 정무적 감각까지 갖춘 참모로 평가 받고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 1기 참모진의 실패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정무 기능이 약한 학자 출신이 많다는 점이었다. 청와대 2기 참모진은 1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장 경험이 많은 정치가형 참모와 경험이 풍부한 관료층이 포진해 있다. 이들이 정무와 정책 기능의 균형을 맞추지 못했던 1기 참모진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대통령 참모 스타일 |
장세동·이원종·문재인은 ‘그림자형’ 최진 소장은 저서인 『대통령 리더십 총론』에서 플러스형 지도자는 마이너스형 참모를, 마이너스형 지도자는 플러스형 참모를 원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도자는 본인의 성격적 단점을 보완해 줄 참모를 가장 가까이에 두고 싶어 한다는 것. 플러스형 지도자는 외향적 대중 연설가, 적극적 승부사, 감성적 명분주의, 낙관적 모험주의 특징을 갖고 있다. 반면 마이너스 지도자들은 내성적 토론주의와 소극적 협상주의, 이론적 실리주의, 비판적 안정주의자가 많다. 대표적인 플러스형 지도자는 전두환·김영삼·노무현 대통령이다. 이들은 호탕하고 외향적이라 내향적이고 그림자형 참모를 원한다.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장세동, 김영삼 대통령에겐 아들인 김현철과 이원종, 노무현 대통령에겐 문재인·이광재·안희정이 있었다. 이들 참모는 자신을 밖으로 내세우지 않고 보스(Boss)를 위해 우직하게 헌신하는 스타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표적인 마이너스형 지도자다. 호탕하고 화끈한 모습보다 항상 엄격하고 절도 있는 자세를 보였다. 타고난 내향적 성격과 오랜 군대생활을 통해 체득한 경직된 사고방식 때문이다. 자연히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 줄 플러스형 강경파 참모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참모가 다혈질로 유명한 차지철 경호실장이다. 차 실장은 보스인 박 대통령을 대신해 돌격대를 자청했고 박 대통령은 그런 차 실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도 마이너스형 통치자다. 노태우 대통령에겐 박철언, 김대중 대통령에겐 박지원이 있었다. 이들은 정열적이고 언변이 좋으며 자기 현시욕이 강한 플러스형 참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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