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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서편제 고장에 명작 전시

녹차·서편제 고장에 명작 전시

예술품 수집이 취미인 박용하(60) 회장. 일본에서 사 온 고려청자부터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하는 박수근 화백과 대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 등 박 회장의 컬렉션은 동서고금을 아우른다. 그가 개인 미술관을 세워 30년간 집과 창고에 가득 채워뒀던 1000여 점을 공개했다.
녹차와 서편제 판소리의 고장 보성에 처음으로 미술관이 들어섰다. 바로 6월 21일에 문을 연 ‘와이엔텍 미술관’이다. 미술관 옆엔 보성컨트리클럽의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고, 뒤로는 경치가 좋아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자주 찾는 주월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미술관은 마치 산 속의 고급 별장 같다. 유럽의 성에서나 봄직한 커다란 철문 안으로 들어서자 3층 규모의 전시실이 나타났다. 1층은 동양화 전시실. 20세기 호남 화단의 양대 기둥으로 불렸던 의제 허백련과 남동 허건은 물론, 정몽준 의원이 소장해 더 유명해진 청전 이상범의 작품이 눈에 띈다. 서양화가 전시된 2층엔 값비싼 작품들이 많다. 미술시장 블루칩인 이우환 화백을 비롯 국내 대표적인 여류화가 중 하나인 천경자 화백, 한국 인상파 화풍을 일으킨 오지호 화백 등의 작품들이 있다. 3층은 미술품이 아닌 공예품과 도자기 전시장이다. 공예품은 나전칠기와 옛날 문신들이 관모를 보관한 관모함 등이 있고, 도자기는 고려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이 시대 순으로 진열돼 있다. 미술관 소장품은 모두 1000여 점. 놀라운 사실은 모두 개인이 모았다는 것이다. 컬렉터는 이 미술관 설립자이자 보성컨트리클럽의 회장인 박용하 와이엔텍 회장이다. 미술관 개장 준비가 한창인 5월 초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있는 회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박 회장은 호리호리한 체형에 슈트가 잘 어울리는 노신사였다. 넥타이 대신 검은 스카프를 맵시 있게 맨 모습이 돋보였다. 그는 “지방에서 보기 힘든 서양화 위주로 전시해 미술관을 지역 사람들과 보성을 찾는 관광객들의 문화공간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와이엔텍 미술관은 전남의 개인 미술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전남엔 모두 4개의 미술관이 있는데, 광주시립미술관을 제외한 나머지 개인 미술관은 200~300여 점가량을 전시한 소규모 미술관이다. 회장실엔 두 점의 작품이 걸려 있다. 고흐와 샤갈의 작품이다. 그는 특히 샤갈의 작품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색채의 시인으로 불린 샤갈은 꿈을 꾸는 듯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엔 연인이 하늘을 나는 모습이 여러 번 등장하죠. 남자는 샤갈 자신이고 여인은 그가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 벨라였습니다.” 그림 얘기를 시작하자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좋은 그림을 감상하고 수집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예술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 회장의 부친은 여수에서 손꼽힌 예술 후원자였다. 사랑채엔 언제나 지역에서 내로라 하는 예술인이 모였다고 한다. 박 회장이 소장한 허백련과 허건의 작품은 대부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부친에 이어 그가 직접 예술품 수집에 나선 것은 고향 여수로 내려와 사업을 시작한 30세 때. 그는 사업으로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작품 수집에 썼다. 그러면서 틈틈이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했다. 세계 경매시장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김환기의 <모닝스타> 와 천경자의 <정원> 이 전시된 미술관 내부

요즘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 서양 경매시장과 신와(親和) 아트 옥션, 에스트웨스트 옥션 등 일본 경매시장에 참가한다. 지난 4월 말엔 일주일간 도쿄(東京)에 머물며 경매시장을 둘러봤다. K옥션의 김순응 대표는 “박 회장은 국내는 물론 일본 경매시장의 큰손”이라고 귀띔했다. K옥션에서 경매 행사가 열리면 김 대표가 직접 안내를 맡는다. 김 대표는 VIP 고객 이전에 그의 미술에 대한 열정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에 박 회장 집을 방문해 그가 소장한 작품들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컬렉션 범위나 작품 수준에 깜짝 놀랐습니다. 고려청자부터 박수근 화백, 대미언 허스트, 고흐 등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고 계시더군요. 상당수가 국내외 경매시장에서 수십억 원에 팔리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 박 회장은 요즘 추상화 작품에 관심이 많다. “모든 구도나 사물을 눈에 보이는 사실대로 표현하는 구상미술은 자주 보면 싫증이 납니다. 동양화라고 하면 으레 꽃, 화병, 연인이 등장하듯 말이죠. 이에 비해 비구상은 상상하기 나름이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는 이 분야의 화가 중 영국의 대미언 허스트와 일본의 요시하라 지로(吉原治良)를 좋아한다. ‘현대미술의 악동’으로 불리는 대미언 허스트는 삶과 죽음이란 소재로 엽기적인 설치미술을 자주 선보였다. 요시하라 지로는 1950년대 일본에서 혁신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을 이끈 화가다. 그가 최근 관심 있게 보는 국내 화가로는 오치균을 꼽았다. “그의 작품을 보면 박수근 화백이 떠오릅니다. 물감을 붓이 아닌 손으로 이겨 발라 두터우면서 거친 질감을 표현해 삶의 그늘이 느껴지죠.” 오치균 작품의 상당수는 요즘 경매시장에서 1억원 이상에 팔린다. 박 회장은 폐기물 처리 회사인 와이엔텍을 경영한다. 그래서 미술관 이름도 ‘와이엔텍 미술관’으로 지었다. 그는 90년에 여수에 와이엔텍(당시 여천환경주식회사)을 세웠다. “환경 관련 분야가 점차 유망해질 것으로 봤어요. 또 여수는 폐기물 처리 사업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점에 주목했지요.” 여수엔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있어 매일 막대한 양의 산업 폐기물이 쏟아져 나온다. 와이엔텍은 6월부터는 산업 폐기물을 태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폐열 스팀을 판매한다. 박 회장은 “폐열 스팀은 쓰지 않고 버리는 열기를 재활용하므로 투자 비용 없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알짜 사업”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폐기물 처리 이외의 영역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95년에 골재제조, 96년에는 포장공사와 건설업에 진출했다. 올해엔 보성 최초의 대중 골프장인 보성컨트리클럽을 세웠고 콘크리트 제조업체 호남레미콘을 인수했다. 호남레미콘은 지난해 매출 130억원을 기록했다. 와이엔텍의 지난해 매출은 189억원. 박 회장은 “좋은 작품을 사려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며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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