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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맞교환

이상한 맞교환

▶쿤타르는 레바논에서 영웅으로 간주된다.

죄수는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룬 모습이었다. 전에 없이 긴장한 기색마저 엿보였다. 갈색 죄수복을 입은 사미르 쿤타르는 유리 칸막이 앞으로 다가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스라엘 방송은 몇 주 전부터 쿤타르가 두 이스라엘 병사의 시신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석방될 것이라고 추측해 왔다. 쿤타르는 1979년 세 건의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레바논 전사다. 감옥에서 헤브라이어를 배워 이스라엘 신문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몇 주간 석방 소식을 학수 고대했다. 일요일 오후 늦게 이스라엘 내각은 포로교환의 승인 여부를 표결에 부칠 예정이었다. 쿤타르는 30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해 온 터라 냉소적이고 의기소침해 보이기도 했다. 줄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계속 마셔댔다. 오늘 그의 얼굴은 수척해 보였지만 눈망울은 커 보였다. 빨리 자기 방에 돌아가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변호사에게 짜증을 냈다. 쿤타르는 변호사에게 회의 결과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스라엘 각료들의 이름을 하나씩 꼽으면서 표결 결과를 예상해 보기도 했다. 마침내 그가 고대하던 소식이 전해졌다. 이스라엘 내각은 2006년 7월 납치된 이스라엘 병사 두 명(엘다드 레게브, 에후드 골드와세르)의 유해를 받고 쿤타르와 다른 헤즈볼라 죄수 네 명을 풀어주기로 결정했다(표결 결과는 22대 3). 당시 두 병사의 피랍을 계기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에 복수전을 펴면서 2차 레바논 전쟁으로 불렀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레게브와 골드와세르가 죽었다고 선언한 뒤 맞교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보기관 수장들은 쿤타르를 계속 잡아 두려고 압력을 넣었다. 이스라엘 국민에게 쿤타르 사건은 범죄행위를 떠나 하나의 상징이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오래전부터 그의 석방을 요구해 왔다. 이스라엘인 입장에서 쿤타르는 “손에 피를 묻힌” 죄수의 원형이다. 이스라엘의 매파는 물론 비둘기파 상당수가 그런 자들은 결코 풀어줄 수 없다고 다짐했다. 쿤타르의 행위가 워낙 잔인했기 때문이다. 1979년 4월의 어느 날 한밤중 당시 16세 소년 쿤타르와 세 전사는 레바논 남부 해안에서 소형 고무보트에 올라탔다. 쿤타르의 변호사에 따르면 해변을 따라 내려가다가 이스라엘 사람을 납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스라엘 국경 마을 나하리야 해안에 내린 그들은 한 이스라엘 경찰관을 쏴 죽인 뒤 하란의 집에 쳐들어가 당시 28세의 다니 하란과 네 살배기 딸 에이나트를 납치했다. 이어 경찰과 총격전이 벌어지자 쿤타르는 딸이 보는 앞에서 아빠에게 총을 쏘고는 소총 개머리판으로 아이의 머리를 강타했다. 한편 다니의 부인 스마다르는 두 살배기 딸 야엘을 데리고 침실 천장 안쪽의 좁은 공간에 숨었다. 엄마는 아이가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막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딸을 질식사시키고 말았다. 스마다르 하란은 살아났지만 여전히 악몽에 시달린다. “그들이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면서 우리를 찾으려고 돌아다니는 동안 희희낙락하면서 드러낸 증오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그녀가 2003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 썼다. “만일 야엘이 비명을 지르면 테러리스트들이 우리가 숨은 공간에 수류탄을 던져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의 입을 막으면서 숨을 쉬기만 바랐다. 그곳에 누워있는 동안 어머니께서 홀로코스트 때 나치를 피해 숨었던 이야기를 해 준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도 바로 이런 일을 겪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스마다르는 지난 30년 동안 이스라엘 정부를 상대로 쿤타르를 계속 가둬 두라는 로비를 벌였다. 그러나 그녀는 일요일 내각의 표결 뉴스를 들은 뒤 체념한 표정이었다. “사미르 쿤타르는 내 개인의 죄수도 아니고 그랬던 적도 없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제 그의 운명은 이스라엘의 사정과 윤리적 잣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이스라엘의 사정과 윤리적 잣대는 늘 간단한 방정식이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작 한두 명의 국민(생존자든 사망자든)과 팔레스타인 죄수 수백 명을 교환하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쿤타르의 경우는 그 계산이 얼마나 실망스럽고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그런 거래를 자주 해 왔다. 1985년엔 79년 기습작전에 개입한 쿤타르 부대의 또 다른 전사 아마드 알아브라스가 이스라엘 사람 세 명을 구하는 대가로 아랍인 죄수 1000명 이상을 풀어줄 때 함께 나왔다. 하란 가족 살해사건처럼 잔혹한 민간인 살인은 별도로 존재하는 사건이 아니라고 팔레스타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공히 인정했다. 진행형인 지역갈등의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 “쿤타르는 자신을 이-팔 갈등의 한 참여자로 간주한다”고 그의 변호인 엘리아스 사바그가 말했다. 심지어 일부 이스라엘 사람도 자국 군대가 민간인을 무시무시하게 죽이는 짓을 자주 저지른다고 지적한다. “그들 못지않게 피비린내를 풍기는 이스라엘 사람이 너무 많다”고 예루살렘에 있는 헤브루 대학의 정치학자 야론 에즈라히가 말했다. 맞교환이 진행되면 쿤타르는 레바논에서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사바그는 쿤타르가 1~2주 내로 석방되리라고 예상했다. 레바논에선 이미 쿤타르의 금의환향을 반길 준비가 시작됐다. 그의 변호사는 이 왕년의 전사가 책을 쓸 생각이라고 전했다. 자유의 몸이 되는 쿤타르로서는 레바논에서 환영 열기가 가라앉은 뒤 비로소 진짜 힘든 날들이 시작될 것이다. 근 30년을 감옥에서 보내 이제 45세가 된 그는 “친구가 없다”고 사바그가 말했다. “그는 신앙심이 전혀 없다. 가족도, 부인도 없다.” 모든 점에 비쳐볼 때 그에겐 후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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