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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장만한 집 팔아 이자 내”

“어렵게 장만한 집 팔아 이자 내”

한여름 밤의 ‘이자 공포’. 최근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서민들이 이자 공포에 떨고 있다. 금리 급등에 물가 상승과 이로 인한 자산 감소까지 겹치면서 고통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해 집을 팔고 사글세를 전전하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다.
“집이 아니라 애물단지입니다. 부동산이 오를 거란 말만 믿고 무턱대고 집을 장만한 것이 정말 후회됩니다.”

지난해 2월 2억원을 대출받아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3억8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장만한 최영국(41)씨. 동네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그는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여름 열대야 때문이 아니다. 자고 나면 오르는 주택담보대출 금리 탓이다.

최씨가 대출받을 당시 금리는 6.35%. 매월 105만원가량을 이자로 지급하면 됐다. 하지만 최근 금리는 7.03%로 껑충 뛰었다. 이에 따라 매월 지급해야 하는 이자는 117만원으로 12만원이나 늘었다.

“물가 상승으로 손님은 줄고 재료비는 올라 한 달 손에 쥐는 돈이 250만원이 채 안 됩니다. 은행 이자 내고 가게 임차료, 생활비 쓰다 보면 남는 게 없어요. 아낀다고 해도 저축은 꿈도 못 꾸는 형편이죠.”

이자 부담이 커져 최씨는 최근 자녀의 학원비도 줄였다. 초등학교 4학년인 최씨의 딸은 지난달까지 영어학원과 피아노학원 두 군데를 다녔다. 하지만 이달에는 영어학원 한 군데만 등록했다고 한다.

“12만원이면 우리 애 학원 두 군데는 더 보낼 수 있는 돈입니다. 학원비 줄여야 하는 부모 심정 아세요? 그깟 학원 하나 안 보내는 것이 무슨 큰일이냐 할지 모르지만 피아노학원 안 보내기로 결정한 날, 가게에서 처음 울어봤습니다.”

한여름 밤, 최씨를 잠 못 들게 하는 것은 단순히 이자 부담만이 아니다. 거치기간이 끝나는 내년 2월 이후가 더 막막하다. ‘2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으로 대출받은 최씨가 내년 2월부터 은행에 내야 하는 돈은 매달 200만원이 넘는다. 현재 한 달 소득과 맞먹는 수준인 것이다. 최씨는 고민 끝에 집을 내놓고 다시 전세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집을 내놓는 것밖에 뾰족한 수가 없더라고요. 생계인 가게를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집도 중요하지만 일단 살고 봐야죠. 더구나 요새는 부동산 경기마저 꺾여 집이 안 나갈까 걱정입니다.”

치솟는 고금리에 서민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최근 고금리 상황은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에서 벌어지고 있어 서민들이 느끼는 이자 고통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하다. 최씨의 경우처럼 고통을 견디다 못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눈물을 머금고 내놓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가계 여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근 6개월 만에 8%선을 돌파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0.5%포인트가량 오른 수치다. 6월 말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228조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1년 사이 전체 대출자들의 이자부담은 1조원 이상 늘어난 셈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짧은 기간에 가파르게 오른 이유는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경쟁적으로 CD를 발행하면서 CD금리는 단기 급등했다.

실제로 7월 초 5.36%였던 CD금리는 최근 5.67%(7월 30일 기준)까지 치솟았다. CD금리가 급등하면서 시중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미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최고 연 8.02%까지 올렸고, 국민·우리·하나은행 등 여타 은행도 8% 이상으로 조정할 예정이다.


이자 고통 상당기간 계속될 듯


시중은행 여신담당자는 “CD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어 시중은행 전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8%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9%를 넘어선 상태라 서민들의 주택마련을 위한 금융비용 부담이 커졌다”고 전했다.

오른 건 주택담보대출 금리만이 아니다. 학자금대출, 신용대출 등 여타 생계형 가계대출 금리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지난 1학기 7.65%였던 학자금대출 금리를 2학기 7.8%로 0.15%포인트 올렸다. 당초 시장금리 상승으로 학자금대출 금리는 8%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교과부가 은행수수료 인하 등 금융비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7%대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내년에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학자금대출 금리는 5년물 국고채 금리에 가산금리, 유동화 비용 등을 더해 결정되는데 최근 국고채 금리 역시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5% 초반에 머물렀지만 최근 5.8%까지 오른 상태다.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가계 부실화 우려가 커지면서 신용대출 금리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실제로 우리은행의 일반 신용대출 금리는 연 6.54∼11.87%로 4월보다 평균 0.23%포인트 올랐다. 기업은행도 4월 7.17∼13.17%였던 신용대출 금리를 7.32∼13.32%로 0.15%포인트 인상했다.

고금리 기조는 가계 부실을 부추기고 있다. 물가 상승에 이자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가계 소득이 급감하고, 이는 다시 서민들의 이자 고통을 키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물가와 고금리로 올 1분기 국내 전체 가구 중 적자가구는 전년 대비 무려 4%포인트 증가한 31.8%에 달했다. 10가구 중 3가구 이상은 적자 가계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분기 민간소비가 4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구본성 금융연구원 연구원은 “금리 상승 기조로 가계의 대출 상환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가계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권은 채무재조정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향후 금리 전망도 우울하다. 금융전문가들은 경제 여건상 현재의 고금리 기조가 쉽게 깨지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시장금리의 바로미터인 기준금리 인상을 준비하고 있어 서민들의 이자 고통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그만큼 물가 상승 압박이 줄어들면 금리 상승 기조도 한풀 꺾일 것으로 금융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했던 국제 유가는 최근 15% 이상 급락, 120달러 선에 머무르고 있다.

김형호 아이투신운용 상무는 “최근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면서 금리 인상 압박도 줄어들고 있다”며 “하지만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경우 CD금리가 중장기채권 금리에 비해 아직도 낮게 형성되고 있어 하반기엔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승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이코노미스트도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물가 상승 등 금리 인상 압박이 어느 정도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차효과로 인한 물가 상승 요인과 공공요금 및 임금 인상 가능성 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우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고금리 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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