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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Market View] 안도하는 미국 한숨 쉬는 한국

[World Market View] 안도하는 미국 한숨 쉬는 한국

기업 실적 발표가 한창이다. 한국에선 500개 주요 기업 중 20%가량인 93개가 2분기 성적표를 내놓았다. 미국에서도 세계 최대 기업인 GE를 시작으로 S&P500지수를 구성하는 500대 기업 중 절반가량이 실적을 공개했다. 실적 발표 시즌 전 양국 증시의 전망은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국내 기업은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모두 10% 이상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팽배했다. 특히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영업이익은 20%를 상회하는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은 정반대였다. 월가는 500대 기업의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고 난 뒤의 상황은 딴판이 됐다. 걱정했던 미국 증시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실적 발표 뒤 주가가 내리는 기업보다 오르는 기업이 많다. 실적은 나빠졌지만 생각보다는 덜하기 때문이다. 어닝시즌의 초반을 장식한 GE는 순이익 감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에 부응한 주당 순이익을 기록했다. 존슨앤드존슨, 코카콜라, 노키아의 사정도 비슷했다.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도 아메리칸 항공이 14억5000만 달러, 델타가 10억4000만 달러의 적자를 내는 등 고전했지만 월가 예상치보다는 수치가 나쁘지 않았다. 인텔(15%)과 이베이(22%)처럼 절대 순이익 규모를 크게 늘린 기업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금융주도 효자로 취급되는 분위기다. 웰스파고은행이 16일 순이익과 배당금 모두 양호한 실적을 보여줬고 JP모건체이스는 17일 월가 예상을 웃도는 20억 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시티그룹은 18일 예상보다는 훨씬 적은 25억 달러 손실을 발표했다. 반면 한국 증시는 대표기업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며 실망감이 쌓이고 있다. 오랜만에 잔칫집 분위기를 즐기던 국내 증시에 찬물을 끼얹은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실적을 발표한 25일 6.19% 떨어지며 4년여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나흘 만에 100포인트 이상 급등했던 코스피지수도 덩달아 28.21포인트(1.73%) 빠졌다. 삼성전자는 2분기에 18조14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순이익도 2조1400억원으로 적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수준에 한참 못 미친 영업이익이 문제가 됐다. 2분기 영업이익이 1조8900억원으로 시장 예측치인 2조1000억원보다 2000억원 이상 적었다. 올 1분기보다 두 자릿수나 쪼그라들었다. 덩치가 커졌지만 실속이 없어진 것이다. 지난 4월 ‘왕의 귀환’으로 비유되던 삼성전자의 화려한 부활은 ‘석 달 천하’로 끝났다. 앞다퉈 실적 전망과 목표 주가를 올렸던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이를 다시 끌어내리느라 분주하다. 주목할 것은 시장이 예측해 온 실적치도 점점 낮아져 왔다는 점이다. 5월만 해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각각 2조2000억원과 2조5000억원 이상으로 보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둔화하고 환율 상승이 멈추면서 이 숫자는 각각 1000억원가량 줄었다. 낮아진 눈높이에도 맞추지 못한 실적에 실망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하반기 실적이다. “성수기인 하반기에도 이익이 크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듯하다”는 게 삼성전자 IR담당자의 얘기다. 주력 품목인 LCD의 가격 하락과 본업인 반도체 부문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 기업들과의 가격 전쟁도 끝이 안 보인다. 미국 등 세계 경제의 침체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정보기술(IT)을 필두로 한 수출주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게 됐다. 대표적인 환율 수혜주로 꼽히던 현대차 실적도 비슷하다. 매출(9조1067억원)은 기대를 웃돌았지만 순이익(5469억원)은 예상치를 20% 가까이 밑돌았다. 수출이 늘었지만 기름을 적게 먹는 중·소형차가 주력이다 보니 생각보다 이익이 줄었다고 한다. 환율 효과보다 세계 경제의 어려움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4월 말∼5월 초에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뒤 떨어지고 있는 주가 그래프도 삼성전자와 판박이다. 현대차와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내수주의 대표주자 SK텔레콤도 매한가지였다. 매출(2조9313억원)은 기대에 부응했지만 순이익(2980억원)이 기대보다 19%나 밑돌았다. 내수가 생각보다 나쁘고, 앞으로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행복 방정식이란 게 있다. 기대를 분모로 하고 성취를 분자로 하는 방정식이다. 똑같은 성취라도 기대가 크면 행복도가 낮고 작으면 높아진다. 국내외 대표기업들의 실적 발표를 전후한 주가는 증시 역시 똑같은 방정식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해외나 국내 모두 경기나 실적에 대한 불투명성이 다시 커진 지금, 투자 심리의 작은 변화로 주가가 출렁일 가능성이 더 커진 것 같다. [필자는 중앙일보를 거쳐 현재 ‘중앙SUNDAY’에서 경제·산업·금융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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