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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새로운 ‘사령관’

월가의 새로운 ‘사령관’

1907년 10월 23일 오후, J P 모건은 “이 위기를 끝낼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다”고 말했다. 이미 여러 개의 신탁회사(규제를 받지 않는 은행의 일종. 오늘날의 서브프라임 대출 업체와 비슷하다)가 파산했다. 은행가인 모건은 트러스트 컴퍼니 오브 아메리카(TCA)가 도산하면 미국의 취약한 금융 시스템이 치명적인 피해를 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TCA를 회생시키기 위해 주요 은행가들을 규합해 자금을 모았다. 심각한 금융위기가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을 휩쓸던 2주 동안 모건은 동분서주하며 증권회사들을 구했다. 불과 20분 만에 2500만 달러를 모아 뉴욕 증권거래소가 폐장되지 않도록 하기도 했다. 또 뉴욕 시티를 위해 시청 발행 채권을 인수했다. 유럽으로부터 금을 들여와 달러 가치를 지탱하고 워싱턴의 국고를 다시 채웠다.

‘1907년의 공황(The Panic of 1907)’의 공동 저자인 숀 카는 “사실상 모건 혼자서 뉴욕시를 파산 위기에서 구했다”고 말한다. 요즘의 월스트리트 금융위기에서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모건 같은 탁월한 해결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부시 대통령은 사실상 무단결근 상태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세계 시장에서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 같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하지만 그린스펀이 이번 사태 발생에 일조했다는 점은 이제 분명해졌다). 모건의 전기인 ‘위대한 금융가(American Financier)’의 저자 진 스트로스는 “오늘날의 거대하고 복잡한 금융시장에서 단 한 사람이 1907년의 모건 같은 역할을 하기란 어렵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가 기대는 최선책은 서로 관련이 없는 세 사람이 모건의 역사적 역할을 나눠 수행하는 트로이카 체제뿐이다. 모건은 올챙이배와 거만한 아래턱, 그리고 기괴한 딸기코 때문에 수많은 풍자 만화의 소재가 됐다. 하지만 그는 미숙했던 미국 금융계 초창기에 가장 막강한 은행가였다. 오늘날 뉴욕에서 가장 막강한 은행가는 제이미 다이먼이다.

역사적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그는 모건 제국의 후신인 JP 모건 체이스 은행의 CEO다. 다이먼 역시 모건처럼 냉정하고 악착스러운 사람이다. JP 모건 체이스는 지난 3월 파산한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9월엔 워싱턴 뮤추얼의 은행사업부를 헐값에 사들였다. 그 결과, 다이먼은 이제 2조 달러를 넘는 자산에 5400개의 지점과 9000억 달러의 예금을 보유한 거대 은행의 총수가 됐다.

모건은 본질적으로 투자은행가였다. 원칙과 체계를 중시하는 거간꾼이자 조언자였다. 오늘날 투자은행계의 총사령관은 골드먼삭스 CEO 출신인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다. 모건은 서로 반목하는 철도회사 경영자들을 자신의 요트인 코세어(‘해적선’이란 뜻)에 태워 그들이 타협할 때까지 뉴욕항 주변을 항해했다고 한다.

폴슨은 월스트리트의 중역들과 정치 지도자들을 뉴욕 연방준비은행과 재무부 사무실에 불러모아 여러 번 마라톤 회의를 했다. 폴슨의 뒤에는 FRB의 재무제표와 납세자가 있다. 모건은 자신의 이름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엔 모건의 이름이 연방정부의 보증보다 더 신뢰를 받았다. 요즘엔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인 워런 버핏의 이름이 그런 존경을 받는다.

버핏은 격의 없는 태도와 자신의 재산·지혜를 일반 대중과 공유하는 활동으로 유명하다. 이런 면에선 모건과 정반대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앨리스 슈로더가 집필한 버핏 전기 ‘스노볼: 워런 버핏과 인생경영(The Snowball: Warren Buffett and the Business of Life)’에 나오는 한 문장은 모건을 정확하게 묘사한 부분으로 보일 만큼 두 사람에겐 닮은 점도 있다.

“그(버핏)는 돈을 사랑하는 남자였고, 돈 버는 일은 그의 생명이었다”는 문장이다. 최근 몇 주간 버핏은 골드먼삭스의 예금 인출 사태와 제너럴 일렉트릭의 주식 투매를 막으려고 자신의 돈과 명성을 투입했다(그는 뉴스위크의 모회사인 워싱턴 포스트의 이사이기도 하다). 물론 모건이 1907년 금융 시스템을 구하면서 이익을 챙겼듯 버핏 역시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모건과 오늘날의 계승자 3명 사이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모건은 정부의 도움 없이도 금융계를 구할 생각이었다. 다이먼과 버핏은 연방정부의 지원을 전제로만 투자했다. 또 모건과 달리 세 사람에게는 제왕다운 위엄이 없다. 예컨대 모건은 결코 주주들의 비위를 맞추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버핏은 그렇게 한다.

모건은 의회 지도자에게 지원을 애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폴슨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그렇게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금융계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9월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폴슨은 이렇게 말했다. “금융 시스템의 복잡성과 금융기관들의 상호 연관성 및 엄청난 규모 때문에 사태 해결이 쉽지 않다.”

모건은 월스트리트와 브로드 스트리트의 교차점에 있는 자신의 요새 같은 집무실에 앉아 미국 금융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오늘날 무질서하게 서로 연결된 글로벌 경제에서 그의 모방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가 돌출하는 ‘두더지 게임’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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