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Market View] GM 파산신청은 한국 車에도 불행
[World Market View] GM 파산신청은 한국 車에도 불행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생사의 기로에 섰다. 이번 주 미 의회가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예산 가운데 250억 달러를 GM에 제공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구제금융이 선뜻 제공될 것처럼 보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후 연 첫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산업은 미 경제의 중추로 업계 지원이 빠를수록 좋다”고 언급했다.
민주당 출신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의원도 오바마의 요구에 부응하듯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통령까지 발 벗고 나섰기에 자동차 업계 구제금융 문제는 쉽게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주 상황이 급변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GM이 파산보호 절차를 밟도록 하는 게 오히려 합리적이고 미국 경제에도 이익이라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미 의회 일부 의원과 금융 전문가들은 250억 달러를 지원해도 GM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GM이 파산보호 절차를 통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특정 기업에 납세자의 돈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런 논쟁을 지켜보면서 국내 일부 전문가는 세계무역기구(WTO) 정신을 들어 GM에 대한 구제금융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추상적인 경제 논리로 보면 그들의 지적은 매우 합리적이라고 여겨진다. 더욱이 현대·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 산업을 고려하면 GM의 추락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경제 상황과 글로벌 분석기관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GM 파산이 국내 자동차 업계의 행복’이라고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세계 최대 민간 경제 분석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Global Insight)는 얼마 전 GM이 파산보호 절차를 밟게 될 경우 미국 경제가 보게 될 피해액이 2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부품업체와 자동차 판매업체 등을 포함한 손해액을 말한다. 실직자 250만 명이 새로 추가될 수 있다. 여기에는 자동차 산업과는 무관하지만 그 여파에 따른 경기침체로 발생할 실업자 140만 명이 포함돼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미국의 내년 실업률은 기존 예상치인 8.5%보다 1%포인트 높은 9.5%까지 뛰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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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와 긴급자금 지원으로 그런대로 통제되던 신용경색이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전형적인 금융패닉으로 비화했다. 금융정책 전문가인 찰스 굿하트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이와 관련, “리먼의 파산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은행에 맡겨 둔 돈의 안전성마저 의심하게 됐다”며 “미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리먼의 파산을 방치한 것은 중대한 실수였다”고 말했다.
GM이 파산보호를 신청하면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리먼과는 달리 이번엔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말 그대로 실물경제에 공황이 오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부정적 전망의 이면에는 미국 정부에 구제금융을 촉구하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한다면 억측으로 평가절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자동차 산업은 단일 업종으로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산업이 GM 사태로 흔들린다면 미국 경제는 침체 수준을 넘어 공황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제조업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지만 미국은 여전히 글로벌 경제의 주요 엔진이다.
이런 미국 경제가 공황 상태에 빠진다면 글로벌 경제도 현재까지의 예측을 뛰어넘는 상황을 맞을 게 뻔하다. 그 파장은 국내 자동차 산업으로 고스란히 전달될 수밖에 없다. 국내 자동차 수출 증가율은 지난 5월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GM 파산보호 신청으로 미국 경제를 비롯한 글로벌 경제가 더욱 악화된다면 국내 자동차 업계는 짧게 잡아도 3~5년간 ‘죽음의 골짜기’를 벗어나기 어렵다.
GM의 파산보호 신청은 실물경제 위기 말고도 또 다른 채널을 통해 국내 자동차 업계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 바로 그림자(Shadow) 금융채널이다. 이는 은행과 보험 이면에서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하는 카드회사, 할부금융, 모기지회사들을 일컫는다. GM이 파산보호를 신청하면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건전성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면서 국내외 할부금융사들이 자금난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할부 구매의 한 축이 위기를 맞게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 오면 손에 현금을 쥔 사람만이 자동차를 살 수 있다.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세계 경제와 금융 시스템이 위기 상황에 놓인 시점에서는 ‘그들의 불행이 곧 우리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단편적인 생각이다.
[필자는 ‘중앙SUNDAY’에서 국제경제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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