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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주류 업계 ‘해결사’

수입 주류 업계 ‘해결사’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 두자릿수의 매출 성장률을 바라보는 회사가 있다. 스코틀랜드 싱글 몰트 위스키인 글렌피딕을 수입하는 BLK무역이다. 이 회사 김용민 대표를 만나 성공 비결을 들었다.

“지금까지 단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젠 장기 전략으로 싱글 몰트 위스키의 시장을 넓혀갈 생각입니다.”

2009년 1월 1일부터 김용민(45) BLK무역 대표는 글렌피딕 본사인 윌리엄그랜트앤선(WGAS)의 한국 지사장으로 소속과 직함이 바뀐다. “주류를 수입하는 입장에선 장사가 안 돼도 문제지만 너무 잘 돼도 고민입니다. 계약이 끝나면 본사가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부분 짧은 기간에 최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전략에 치중합니다. 하지만 이젠 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됐죠.”

WGAS는 세계 최대 싱글 몰트 위스키인 글렌피딕을 비롯해 발베니(Balvenie), 그랜츠(Grant’s) 등을 생산하는 세계 3위의 주류 회사다. 김 대표는 내년부터 이 회사의 월급쟁이 지사장이 아닌 한국 지사의 대주주로 경영에 참여한다. 이 회사가 해외에서 개인과 합작 형태로 지사를 설립하기는 처음이다.

김 대표는 “운이 좋았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주변의 시각은 다르다. WGAS 본사 관계자는 “김 대표가 글렌피딕을 통해 국내에서 남다른 성과를 올렸을 뿐 아니라 그동안 주류 업계에서 이뤄낸 경력을 높이 샀다”고 말했다. 미국 사우스일리노이대를 졸업한 김 대표는 위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은 후 1991년 두산주류에 입사했다.

버드와이저의 브랜드 매니저로 주류 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95년 신제품 개발팀장으로 카프리 맥주를 시장에 내놨다. 20, 30대 젊은 층을 타깃으로 개발한 카프리는 ‘눈으로 마시는 맥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속이 비치는 투명 유리병과 손으로 돌려 따는 병뚜껑은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다.

맥주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그는 96년 미국의 밀러 맥주가 한국에 진출할 때 지사장으로 스카우트됐다. 밀러는 그 해 처음으로 국내 수입 맥주 중 매출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성공도 잠시, 곧바로 시련이 찾아왔다. 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밀러의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수입산 브랜드 불매 운동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한 달에 6만 상자까지 기록하던 밀러의 판매량이 3000상자로 격감했다.

재고가 쌓여갈 무렵 구세주로 등장한 사람이 가수 구창모 씨다. “당시 카자흐스탄에서 사업을 하던 구창모 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밀러 맥주를 카자흐스탄에서 팔고 싶다더군요. 재고를 한꺼번에 덜어낼 수 있었죠.”그는 90년대 말 밀러 본사로부터 무알콜 맥주를 수입해 노래방에 팔면서 지지부진하던 매출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매출은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0년에 ‘대형 사고’를 쳤다. 매출을 올릴 묘책으로 밀러의 생맥주를 수입한 것. 밀러타임이라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개해 수입한 생맥주를 유통했다. “처음 생맥주를 수입해서 팔겠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믿지 않았죠. 실제로 보관 방법이나 주류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어요. 하지만 불가능은 없더군요.”

밀러 생맥주는 기존 맥줏집의 메뉴판도 바꿔 놓았다. 당시 대부분의 맥줏집에서 생맥주는 브랜드 없이 단일 메뉴로 팔렸다. 하지만 밀러 생맥주가 등장하면서 생맥주에도 브랜드가 생겼다. 국산 맥주회사들도 생맥주의 브랜드화를 선언하면서 병 맥주 못지않은 다양한 생맥주가 시장에 쏟아졌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생맥주가 다양해진 변화만큼은 내가 기여한 바가 크다”며 활짝 웃었다. 밀러타임도 꾸준히 인기를 끌어 지금은 전국에 100곳이 넘는 가맹점을 자랑한다. 김 대표는 2006년에 아예 밀러타임을 운영하는 씨앤에프(C&F)를 떼어내 독립했다. 그는 “당시 국내 주류업체에서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내 사업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WGAS에서 글렌피딕의 독점 판매권을 따낸 것도 이 무렵이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힐 목적으로 수입할 주류를 찾던 중 대학 후배인 박준호 지사장에게서 글렌피딕을 소개받았다. 김 대표는 “글렌피딕은 주류 업계에서 명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품질도 좋았기에 가능성이 보였다”고 말했다.

글렌피딕은 김 대표가 맡은 2006년 이후 매년 20~30%씩 성장했다.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 상반기 대비 1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위스키 시장은 6%가량 성장하는 데 그쳤다. 김 대표는 “와인처럼 맛과 향을 음미하는 음주 문화가 각광받으면서 싱글 몰트 위스키가 더 인기를 누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격주 토요일마다 모든 임직원과 산에 오른다. 서울보다는 지방의 명산을 찾아 다닌다. 10월 말엔 지리산에 다녀왔다. 새벽 4시에 출발해 밤 10시에 돌아오는 고된 산행이었지만 여직원까지 모두 완주했다. 등산은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 김 대표는 “힘들게 산을 오르면서 직원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낀다.

직원들은 등산을 하며 평소 말하지 않던 속사정을 토로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교육 방식을 남다른 가정 교육에서 꼽았다. 김 대표의 부친은 ‘CEO 단체장’으로 유명한 김흥식 전 전남 장성군수. 김 전 군수는 김 대표가 미국 유학을 떠날 때 생활비로 1700달러만 주고 “다음부터는 알아서 하라”고 했을 정도로 자식 교육을 호되게 했다.

김 대표의 꿈은 디아지오와 같은 종합 주류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진과 보드카 등 WGAS의 더 많은 주류 브랜드를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에 싱글 몰트 위스키 시장을 넓히는 것도 급선무다. 김 대표는 “전체 위스키 시장에서 싱글 몰트 위스키가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사 설립 이후 싱글 몰트 위스키 시장을 5%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싱글 몰트 위스키는 일반 위스키와는 재료부터 맛까지 전혀 다르다. 위스키는 제조 과정과 원료에 따라 몰트(Malt), 그레인(Grain), 블렌디드(Blended)로 나뉜다. 몰트 위스키는 별도의 블렌딩 없이 100% 맥아로 만든다. 그레인 위스키는 몰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옥수수, 호밀 등의 곡물을 섞어서 생산한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몰트 30%와 그레인 70% 등을 혼합한다. 위스키 중에선 맥아로 증류한 순수 몰트 원액이 가장 비싸고 품질과 맛도 몰트 위스키를 으뜸으로 친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몰트 위스키 중에서도 단일 증류소에서만 생산되는 위스키를 말한다. 글렌피딕은 국내 싱글 몰트 위스키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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