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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가 쌓고 사위가 키운 삼성家 ‘스포츠 자산’…파리 올림픽서 꽃 피운다

[이건희와 삼성 그리고 스포츠]①
이건희 선대회장 1996년에 “브랜드 가치 제고” 주문…스포츠 마케팅 본격화
‘삼성家 사위’ 김재열 사장, 장인에 이어 IOC 위원 등극…스포츠 외교 전념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 914억 달러, 세계 5위…“스포츠로 긍정 이미지 확산”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를 통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발표되는 순간 감격해 하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손을 사위인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이 붙잡고 있다. 사진 왼쪽은 정병국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진 삼성전자]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기업 무형자산의 핵심이자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전략을 구상하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1996년에 내린 지시다. 삼성그룹은 이때부터 매년 자사 브랜드 이미지를 조사하고 무형자산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이 올림픽·월드컵·아시안게임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후원의 폭을 늘린 것도 이때를 기점으로 한다. 삼성그룹은 사회 공헌 측면에서 종종 후원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곤 했지만, 스포츠 마케팅 전략의 본격화는 이 선대회장의 ‘브랜드 가치 제고’ 주문에 따른 변화다.

28년이 지났다. ‘삼성’이란 브랜드는 그간 회사가 세계 시장에서 거둔 숱한 사업적 성과만큼이나 많은 이들에게 각인됐다. 실제로 세계 최대 브랜드컨설팅 전문업체인 인터브랜드는 2023년 기준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가 전년 대비 4% 오른 914억 달러에 달한다고 봤다. 삼성전자란 이름에 담긴 가치는 세계 브랜드 중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외 기업으로 유일하게 2020년부터 4년 연속 세계 5대 브랜드로 꼽히고 있다. 이 선대회장의 ‘세계적 수준의 브랜드 가치’란 주문이 이뤄진 셈이다.

선대회장이 직접 다진 ‘스포츠 마케팅’

삼성전자가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오랜 기간 추진해 온 스포츠 마케팅 전략이 꼽힌다. 세계인의 이목이 쏠린 공간에는 늘 빠짐없이 회사의 이름과 제품이 등장하곤 했다. 특히 이런 삼성그룹의 접근법은 스포츠에 각별한 애정을 나타내왔던 이 선대회장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기반을 다진 전략으로도 유명하다. 이 선대회장은 ‘브랜드 가치 제고’란 특명을 내린 뒤 스스로 세계 스포츠 시장에 뛰어들어 세계에 삼성을 알렸다.

1996년부터 2017년까지 21년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약했다는 점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지역 후원사로 IOC와 연을 맺은 삼성전자는 이 선대회장이 위원으로 선출된 이듬해인 1997년 올림픽 글로벌 후원사를 의미하는 ‘톱’(TOP·The Olympic Partner) 계약을 체결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는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사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IOC와의 연결고리를 자처한 이 선대회장은 스포츠를 통한 외교에도 남다른 역할을 했다. 특히 2018년 동계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될 수 있도록 하는데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이 선대회장은 2009년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무려 11차례, 170일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IOC 위원들을 만났다. 이 기간 이 선대회장이 세계를 누빈 거리는 지구를 다섯 바퀴 돌고도 남을 정도다. 이 선대회장은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강원도 평창이 세 번의 도전 끝에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순간, 현장에서 감격의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 선대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부터 시작된다. 당시 레슬링부에 들어가 전국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당시의 연은 이 선대회장이 1982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으로 활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선대회장이 협회장을 지낸 시기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 7개·아시안게임 29개·세계선수권 4개 등 40개의 금메달을 딸 정도로 황금기를 구가했다.

이 선대회장은 이 밖에도 축구·배구·농구 등 인기종목뿐 아니라 레슬링을 포함해 탁구·육상 등 비인기종목에서도 선수 육성에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프로 야구·탁구·배드민턴 등 여러 종목에서 구단 창단·운영을 주도한 점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당시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구단주로 2001년까지 활약하기도 했다. 이 선대회장이 산업계뿐 아니라 스포츠 분야에서도 ‘거인’(巨人)으로 불렸던 이유다.
1982년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스 창단식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이수빈 당시 제일모직 사장(현 삼성글로벌리서치 상임고문)에게 단기를 수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장인의 ‘스포츠 유산’ 이어받은 사위

IOC도 이 선대회장이 타계한 2020년 10월 애도 성명을 내고 본부의 올림픽 기를 조기로 게양하는 등 슬픔을 함께했다. 이 선대회장은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중 2017년 IOC 위원직을 자진해서 사퇴했다. IOC는 그런데도 이 선대회장을 명예 위원으로 위촉할 정도로 그의 공로를 존중했다.

이 선대회장은 1997년 12월 발간된 에세이에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어떤 승리에도 결코 우연이 없다는 사실”이라며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선수라도 노력 없이 승리할 수 없다. 모든 승리는 오랜 세월 선수·코치·감독이 삼위일체가 돼 묵묵히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라고 썼다.

재개 관계자는 “이 선대회장은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했다”며 “삼성은 이런 선대회장의 기치 아래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이는 세계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이 선대회장의 스포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지금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김재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이 ‘스포츠를 통한 가치 실현’이란 장인의 뜻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김재열 사장은 김성수 전 부통령의 증손자이자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둘째 딸인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삼성복지재단 이사장·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과 2000년에 결혼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는 중학교 동창이다. 이재용 회장이 친구인 김재열 사장과 여동생인 이서연 사장의 만남을 직접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그의 매제인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이 지난 2023년 10월 경기도 수원 선영에서 치러진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3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재열 사장은 재계에서 ‘스포츠 전문 경영인’으로 통한다. 제일기획에 2002년 상무보로 입사해 제일모직·삼성엔지니어링 등을 거쳐 2014년 말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에 올랐다. 2018년 5월 삼성경제연구소(현 삼성글로벌리서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스포츠마케팅연구담당 사장을 역임했다.

김재열 사장은 이건희 선대회장이 대형 스포츠 행사에 모습을 비출 때마다 옆자리를 지키곤 했다. 장인의 스포츠 경영을 함께 챙기고 지켜본 셈이다. 실제로 김재열 사장은 이건희 선대회장이 유치 활동에 전념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 평창 개최가 확정된 직후부터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엔 제22회 소치 동계올림픽 대한민국선수단 단장으로, 2016년엔 베이징 동계올림픽 IOC 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재계에선 이 때문에 김재열 사장을 두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스포츠 후계자’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김재열 사장은 특히 2023년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IOC 141차 총회에서 위원으로 선출됐다. 한국인으로는 역대 열두 번째 IOC 위원이고, 삼성가(家)에선 이건희 선대회장에 이어 두 번째다. 삼성전자는 김재열 사장이 IOC 위원으로 데뷔전을 치른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도 공식 파트너(Worldwide Partner)로 참여했다. 삼성전자는 행사가 진행된 강릉 올림픽 파크에 ‘삼성 갤럭시 올림픽 체험관’을 마련하고 갤럭시 S24 시리즈 등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김재열 사장은 IOC 위원으로서 행사의 성공적 진행은 물론,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로서 삼성전자의 활동에 대한 조언을 건넸다는 후문이다.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은 평창 동계올림픽만큼이나 ‘한국의 위상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김재열 사장은 오는 7월 26일(현지시간) 개최되는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인 IOC 위원인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 등과 호흡을 맞춘다. 파리 올림픽은 유 의원이 임기를 마치는 자리이자, IOC 선수위원 후보로 오른 박인비 골프 선수가 선출 선거에 참여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완전히 자리 잡은 삼성式 ‘스포츠 마케팅’

장인에서 시작해 사위가 대를 이어받아 이뤄지고 있는 전폭적인 스포츠 지원은 삼성전자가 국제무대서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단 평가를 받는다. 회사는 이 선대회장 때부터 쌓은 다양한 스포츠 마케팅 역량을 이번 파리 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집대성해 보여주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번 파리 올림픽 관련 마케팅 전략 수립엔 김 사장이 전문가적 관점에서 다양한 조언을 전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삼성전자는 최근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에 자사 전자·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7만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미국 미식축구(풋볼) 소파이 경기장에 초대형 360도 원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설치하는 식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팀 ‘뉴욕 메츠’(Mets)의 홈경기장인 ‘시티 필드’에 1300개의 디스플레이와 콘텐츠 제어 솔루션을 공급한 일도 좋은 예다. 스포츠 특성을 활용해 브랜드에 긍정적 이미지를 덧붙이는 방식 역시 점차 세련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IOC 공식 파트너로서 일찍이 파리 올림픽·패럴림픽의 캠페인 메시지를 ‘열린 마음은 언제나 승리한다’(Open always wins)로 잡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브랜드 ‘갤럭시’가 ▲다름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으며 ▲모두와 협력하는 ‘개방성’을 지녔단 점을 이번 파리올리픽을 통해 전달하겠단 취지다. 회사는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7월 10일(현지시간)에 신제품 공개 행사인 언팩을 개최한다. 언팩이 프랑스에서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는 이 밖에도 이번 파리 올림픽에 맞춰 ▲서핑·스케이트보드·브레이킹 글로벌 리그와 협력해 캠페인 메시지 확산 ▲파리 샹젤리제 125번가에 ‘삼성 올림픽 체험관’ 마련 ▲갤럭시 S24 울트라를 통한 올림픽 개막식 생중계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친다. 삼성전자는 2018년 IOC와 올림픽 공식 후원 계약기간을 2028년까지 연장, LA 올림픽까지 무선·컴퓨팅 분야 공식 후원사로 참가한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이 열릴 예정인 파리 센강의 보트에 ‘갤럭시 S24 울트라’가 설치된 모습. 삼성전자는 7월 26일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 200대 이상의 ‘갤럭시 S24 울트라’를 투입해 영상을 촬영한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은 올림픽방송서비스(OBS)를 통해 세계 시청자들에게 생중계된다. [사진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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