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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사업은 결코 부도 못 낸다”

“대북사업은 결코 부도 못 낸다”

김윤규 아천세양건설 회장이 두 번째 눈물을 흘렸다. 2005년 8월 현정은 회장과 갈등으로 현대를 떠난 후 3년 만에 맛보는 패배의 쓴 잔이다. 새 대북사업 기지로 삼으려던 아천세양건설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12월 1일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대북사업에 집념을 보이고 있다. 남북경협의 전도사라는 그는 재기의 날개를 펼 수 있을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 중순 어느 날. 서울 강남 논현동에 위치한 샤인시스템 본사에서 이 회사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김윤규 아천세양건설 회장의 근황을 알아볼 참이었다.

새시 전문업체인 샤인시스템의 대표 및 최대주주는 김 회장의 아들 진오씨. 김 회장은 이사로 등재돼 있지만 엄연한 실세다. 그는 샤인시스템을 이용해 올 초 세양건설(아천세양건설의 전신) 지분 75%를 인수, 경영권을 확보했다.

독자적 대북사업을 추진하던 김 회장이 건설업체 인수를 위해 아들 소유의 샤인시스템을 징검다리로 활용한 것이다. 샤인시스템 고위 관계자는 당시 김 회장의 경영능력을 100% 믿는다고 했다.

특히 지난 8월 ‘신림역 아르비채’ 오피스텔 414실이 모두 분양된 것을 두고 ‘김윤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김 회장은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고 실력도 빼어나다. 미분양이 확실했던 신림역 아르비채가 100% 분양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지금 현대아산 시절 함께했거나 건설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를 영입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 김 회장의 입지는 굳건해질 것이다. (언론에 알려진 대로) 대북 사업계획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북측으로부터 남북한 공동법인 설립에 대한 긍정적 시그널도 받았다.”

김 회장은 8월 기자간담회에서 대북사업 계획을 밝혔다. 김 회장은 당시 “남북 긴장이 해소되면 수백 명의 북한 인력을 사우디아라비아·리비아·아랍에미리트 등에 파견하는 것을 북한 당국과 논의하고 있다”며 “향후 이를 5만 명까지 확대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샤인시스템에 ‘김윤규’는 한 자루 검을 메고 강호를 평정하고 돌아온 영웅호걸로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 그만큼 김 회장은 샤인시스템, 아천세양건설에 절대적 존재였다. 회사 안팎엔 ‘김윤규가 회사 브랜드’라는 말까지 파다했다. ‘워커 홀릭’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 회장 역시 열심히 일했다.

신림역 아르비채 100% 분양 후 그는 아천세양건설을 키우기 위해 열정적으로 전국을 돌며 자금을 마련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아천세양건설은 만기가 도래한 어음 45억원을 막지 못해 12월 1일 부도 처리됐다. 이로써 김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북사업도 일단 수포로 돌아갔다.

아천세양건설은 법정관리 또는 워크아웃 등 회생절차를 밟을 전망이다. 김 회장으로선 2005년 8월 현대에서 퇴출된 이후 두 번째 좌절을 맛보고 있는 셈이다. 김 회장의 재기는 물 건너간 것일까? 김 회장은 지난해 설립한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이라는 별도 법인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아천세양건설과 보증이나 지분관계가 없다. 완전한 독립회사다.

김 회장은 이 회사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는 듯하다. 이 회사를 발판으로 대북사업을 계속하겠다는 게 김 회장의 포부다. 전 현대아산 상무 육재희 아천글로벌 사장은 “(지금의 상황이) 아천글로벌이 진행하고 있는 대북사업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밝혔다. 김 회장 주변 사람들은 “(김 회장이) 대북사업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늘의 뜻이니 천재지변이 나도 대북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 회장은 대북사업에 대해 나름의 철학과 의지가 있다. 스스로 남북경협의 전도사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왕 회장(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도와 대북사업의 초석을 다진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고, 자신만큼 대북사업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현대아산에서 공식 퇴출된 2005년 8월. 한 순간 실업자로 전락한 그는 새로운 남북경협, 대북사업을 구상한다. 그는 2005년 7월 임명된 서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부의장 직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평통은 민주적 평화통일 달성에 필요한 제반 정책 수립에 관해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그 자문에 응하기 위해 발족된 기관이다.

평통 관계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그해 상반기 10여 차례 열린 남북경협 관련 강좌에 꼭 참석해 직접 강연도 했다. 평통 관계자는 “남북경협과 관련된 일이라면 김 회장은 늘 적극적이고 열성적이었다”며 “대북사업을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대북사업에 집착하는 게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의견도 많다. 현대아산이라는 우산을 잃은 김 회장 스스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대북사업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일정 부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대북사업 끈 놓지 않겠다”

그는 북한통이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위원장과 독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최소 다섯 번 이상 만났다. 북한 당국 역시 김 회장을 신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이 독자적으로 대북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북한은 은연중 반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와 김 회장의 갈등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겠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만약 김 회장의 사업이 순항했다면 가장 긴장했을 쪽은 공교롭게도 그를 퇴출시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었을 것이다. 현대그룹은 지금 대북사업의 존폐를 걱정할 처지에 있다. 금강산 관광(7월)에 이어 개성 관광(11월)까지 중단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사업에 집착하고 있는 김 회장의 존재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사실 현정은 회장과 김 회장은 앙금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고 정몽헌(MH) 회장이 자살한 직후 시작됐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시 대북사업권의 실질적 권한을 거머쥐고 있었던 사람은 김 회장이었다.

MH의 “당신은 피를 이은 자식”이라는 유언이 그에겐 천군만마와 같았다. 문제는 현 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서면서부터 불거졌다. 2005년 7월 현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막후 역할을 한 사람도 김 회장이었다고 한다. 당시 현대그룹 안팎엔 “김 회장의 물밑 교섭이 없었다면 현 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현정은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은 이상 대북사업이든 뭐든 모든 결정권은 현 회장에게 있었다. 김 회장은 다만 보좌역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대북사업에 있어서만은 김 회장이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었으니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 회장은 2005년 8월 개인비리를 이유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당시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 감사팀이 적발한 김 회장의 비위는 비자금 조성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김 회장은 회사자금을 유용해 8억2000만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다. 김 회장은 지난 9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정몽헌 회장님과는 가족처럼 지내왔는데…. 그 정도 일로….” 섭섭함의 일단이 보인다.

현대아산과 김 회장은 겉으로는 대북사업을 하면서 서로 잘됐으면 한다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대북사업은 아직 독점적 성격이 강하다. 누가 하면, 다른 누구는 하지 못한다. 롯데관광이 대북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들었을 때 현대아산에서 발끈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 회장과 김 회장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한 사람은 대북사업의 발판으로 삼으려던 회사를 잃었고, 다른 한 사람은 대북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질 판이다. 만약 두 사람이 협력하는 사이였다면 지금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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