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의미 있게’ 기억되는 사람
항상 ‘의미 있게’ 기억되는 사람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동굴 벽화를 남긴 크로마뇽인처럼 후세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누군가 저런 흔적을 남겼구나 할 그런 족적을 남기고 싶어요. 안철수연구소라는 회사와 조직, 그동안 쓴 책들, 저와 교감한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면 그것 역시 저의 인생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죠.”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카이스트 BE 프로그램 석좌교수)은 “세상에 태어났으니 살다 간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의사 출신이다. 1995년 봄 단국대 의예과 학과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안연구소를 설립했다.
서울 서초동 뒷골목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3명이 시작한 이 회사는 5년여 만에 국내 보안업계 최초로 매출액 100억원을 달성했다. 4년 후엔 106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최고의 순익이다. 지난 2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은 이 회사를 5년 연속 올스타 기업과 2008년 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9위로 뽑았다.
이 회사가 개발한 백신 V3는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돼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국내 유일의 보안 소프트웨어다. 회사 이름을 안철수연구소라고 지은 것은 2대 주주인 한글과컴퓨터(한컴) 측이 그렇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안철수라는 밸류가 높은 브랜드를 활용하면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한컴 측이 49%를 출자하면서 내건 조건입니다. 1988년부터 저의 이름이 언론에 기사화됐는데, 안철수의 인지도를 마케팅에 활용하자고 했죠. 그동안 쓴 아홉 권의 책을 포함해 저는 스스로 한 말을 뒤집거나 말과 다른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회사를 설립한 지 2년쯤 됐을 때 일이다. 매출액이 10억원에 불과한 신생 기업을 1000만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외국의 선두 업체였다. 그는 별 고민 없이 거절했다. 사업을 하는 목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직원들 전부 해고하고 V3도 없애고 자기 회사 백신을 파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제의 받은 달에도 직원들 봉급 주려고 돈 빌리러 다녔으니까 돈이 아쉽지 않아 거절한 건 아니지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외국 기업의 인수 제의 일화는 그 후 미 실리콘밸리에 취재하러 간 한 일간지 기자가 현지에서 듣고 기사화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그렇게 알려지니 PR 효과가 더 강력하더라고 귀띔했다. 그 후로도 회사를 경영하는 일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직원이 열 명일 때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아야 했다.
단돈 10원의 지출도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에 관여해야 경영이 잘됐다. 직원이 30명으로 늘어나자 권한을 위임해야 했다. 잘하는 일을 넘겨주려니 퍽 고통스러웠다. 50명이 되자 전략이 필요했다. 100명이 되자 임원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300명을 넘어서자 CEO가 조직의 디자이너가 되어 각종 시스템을 설계해야 했다.
“회사가 커지면서 일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 시작해야 했죠. 마치 어느 날부터 왼손을 써야 하는 오른손잡이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멀쩡한 오른손 놔두고서. 불편하고 괴롭지만 그걸 견뎌야 회사가 잘됩니다. 못 견디면 회사가 망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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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장은 2005년 봄 안철수연구소 창립 10돌을 맞아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퇴임사에서 그는 “노안이 오기 전 공부를 더 한 후 그때의 시대 상황에 맞는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받아주는 대학이 있다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보람 있는 일일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미국 유학 길에 올라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마친 그는 지난 가을부터 카이스트에서 ‘기업가 정신’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을 떠나 있던 지난 3년간의 변화에 대해 그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새로운 기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의 쇠퇴가 심각합니다. 각광 받는 20~30대 경영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20~30대 CEO들이 여전히 경영 전문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한국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안철수연구소 경영보다 국내 벤처 산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일을 하고 싶어 회사를 떠난 그로서는 이런 현실이 암울하다. 그가 꼽는 창업 가뭄의 원인은 세 가지다. 창업의 성공 확률이 너무 낮다는 것, 실패에 따르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 그리고 쏟는 노력에 비해 보상이 작다는 것이다.
성공 확률이 낮은 원인으로는 벤처기업 자체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 대학·벤처캐피털·금융기관·아웃소싱업체·연구개발(R&D)정책 등 생존을 돕는 사회적 인프라가 부실하다는 것, 대기업·공공기관과 중소·벤처기업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꼽았다.
“대기업도 문제지만 공공기관까지 중소기업의 팔을 비틀어 이익을 회수해 가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회계장부를 열람해 최소한의 이익이 날 만큼만 돈을 주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을 더 고용할 수도 없고 R&D 투자도 제대로 못하는 거죠. 이런 구조에서는 창업을 해도 망하게 돼 있어요. 실패의 리스크는 대표적인 것이 대표이사 연대보증제입니다.
이 제도 때문에 사업에 한 번 실패하면 금융사범으로 전락해 재기 자체가 불가능해지죠. 결국 기업을 접어야 하는데도 CEO가 그 빚을 떠안지 않으려 덤핑을 합니다. 그 바람에 가격이 떨어져 건실한 회사들도 힘들어지죠. 문을 닫아야 할 이런 기업을 지속시켜 주는 게 바로 정부의 지원자금입니다. 망해야 할 회사를 연명시켜 산업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눈먼 돈이죠. 실패의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야말로 기업가 정신을 쇠퇴하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그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풀려면 모든 이해관계자가 공유된 인식을 바탕으로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로 가면 고착화돼 5년 후엔 누구도 그 구조를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업가 정신으로 잘못 번역된 ‘창업자 활동’(entrepreneurship)이 거의 말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대전 카이스트에서 가르치고 금요일엔 서울에 와 외부 강의를 많이 한다. 컴퓨터 보안, 프로그래머로서 인정 받는 길, 컨버전스 시대 직업인의 자세에서 기업가 정신의 쇠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소화한다. 그는 의학·공학·경영학 석사학위를 보유한 의학박사다. 의대 동기 중 가장 먼저 의대 교수가 됐다. 20대 때 일이다. 남다른 학습 비결이 있지 않을까?
“학문에 왕도는 없더라고요. 영어도 지름길이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빨개질 만큼 창피 당해가면서 조금씩 늘었습니다.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게(No pain, no gain) 지식입니다.”
그는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독서광이다. 페이지를 나타내는 숫자와 책 뒷면의 정가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 증세마저 있다. 정독을 하지만 정작 줄거리를 따라가지는 않는다. 소설을 읽을 때면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에 빠진다. 그래서 읽고 나도 줄거리와 결말이 남지 않는다. 이런 독서법으로 간접경험을 쌓은 덕에 그는 스스로 포용력이 생겼다고 믿는다.
“책에서 접하는 다양한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죠. 마이어브릭스 유형지표(MBTI)라는 심리검사가 있습니다. 기업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 검사를 하면 보통 총 16가지 성격 유형 중 7~8개 유형이 나온답니다. 경영진이 바라는 유형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안철수연구소에서 해봤더니 14가지 유형이 나왔습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까지 전원 제가 뽑은 사람들이었죠. 조직 경험도 없고 편협하게 전문가로 살아왔지만 제가 특정 유형만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조직의 경쟁력이 구성원의 다양성에서 나오는 시대에 꾸준히 독서한 덕을 보는 셈이죠.”
“가장 큰 리스크는 시간 낭비”
그에게 가장 큰 리스크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잘못 보내는 것이다. 정년을 보장받은 석좌교수지만 카이스트가 안정된 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에게 리스크가 가장 작은 일은 안철수연구소 CEO입니다. 교수는 그에 비하면 리스크가 커요. 업계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대학에 몸담았고, 6개월째 경영자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성공시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의사의 길도 그로서는 안정된 일이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안정적인 직업의 세계를 벗어나게 했을까? 그는 ‘발목론’을 폈다. 실패가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고 하지만 성공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실패를 경험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과감한 결단을 못 내립니다. 실패에 발목을 잡히는 거죠. 성공을 하면 기득권이 생겨 과감한 결정을 못합니다. 실패든, 성공이든 과거의 경험에 발목을 잡히는 것은 똑같아요.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그래서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일의 본질에 천착해야죠.”
그가 생각하는 일의 본질은 세 가지다. 일에서 찾는 의미, 일하면서 느끼는 행복,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의사 일도, 의대 교수라는 직업도 의미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은 저 혼자서 하는 일이었고, 그런 점에서 의미가 더 큰 일이었죠. 더욱이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10년 만에 그만둔 안철수연구소 CEO도 의미 있고 보람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제가 뛰어들어 산업 전체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그 일의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고, 또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 재미, 능력 셋 중에서는 의미를 첫손에 꼽았다. 의미를 못 찾으면 재미있고 잘하는 일이라도 어려움 속에서 신념을 갖고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분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는다면 또 길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안철수에게는 아직 ‘가지 않은 길’이 여럿 있을 법하다.
“제가 카이스트에서 정년을 마치게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순간에 가장 의미 있고, 행복을 느끼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거죠.”
정책을 맡아 볼 생각은 없는지 그에게 물었다.
“과거에 입각 등의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죠. 한 사람이 잘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미래는 모르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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