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서머스의 환골탈태
래리 서머스의 환골탈태
![]() 서머스는 매일 오바마와 얼굴을 마주하고 회의를 한다. 확률로 자신의 전망을 뒷받침하는 습관이 있다. |
래리 서머스(54)는 방정식을 푸느라 밤을 꼬박 새운 교수처럼 부스스하고 약간 졸린 듯한 얼굴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수석 경제보좌관으로 주로 정부의 대규모 구제금융을 관할하는 그는 백악관 루스벨트 룸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초상화 아래 소파에 비스듬히 앉은 채 뉴스위크 기자 두 명의 질문공세를 참을성 있게 받아냈다.
질문의 요지는 1990년대 말 경제가 흥청망청하던 시절 이후 그가 얼마나 변했느냐(얼마나 많이 학습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그가 재무부 소속으로 일하던 시절 미국 정부는 금융시장이 벼랑 끝으로 가는데도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서머스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인용했다.
대규모의 정부 지출을 촉구한 케인스의 경제이론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과 맥락을 같이하며 오바마 정부 경기부양책의 핵심을 이룬다. “케인스는 일관성이 없다고 자신을 비판한 사람에 대해 ‘상황이 바뀌면 내 의견도 바뀐다’고 말한 걸로 유명하다”고 서머스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려 기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그 의미는 말하나 마나 현명한 사람은 교조적이지 않으며(편협한 이념적 독단에 빠져 있지 않으며) 마음이 열려 있고 사고가 유연하며 지적으로 예민한 촉수를 갖고 있다(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머스는 자신이 후자임을 은근히 강조한다.
사실 그는 과격한 자유시장주의자는 결코 아니었다. 클린턴 정부 말기 재무장관이었던 그는 약탈적인 대출 관행을 규제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90년대 말에는 신용 디폴트 스와프(금융시장의 이른바 대량살상무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내가 규제 철폐를 그렇게 강하게 주장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우리의 예측력이 완벽하지 못했던 점”은 시인했다.
서머스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응해 왔다고 말한다. 지난해 봄과 여름 그는 정부의 평상시 경제안정 장치(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조정과 통화발행 기능)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신속한 정부 개입을 주장하는 명쾌한 칼럼을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그 브리핑이 대단히 훌륭해(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고 모든 참석자가 입을 모은다) 훗날 오바마는 서머스를 자신의 수석 경제보좌관으로 불러들였다. 서머스는 어쩌면 오바마가 불러모은 우수하고 똑똑한 인재들 중 최고의 브레인일지도 모른다. 오바마 팀은 아마도 케네디 정부 이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입 수능시험 성적을 올린 하버드와 예일대 출신들로 채워졌다.
케네디는 맥조지 번디 같은 사람들을 영입했다. 번디는 34세에 하버드대 학부장에 임명됐으며 케네디 정부에선 국가안보 보좌관을 맡았다. 번디는 똑똑했지만 언제나 현명한 건 아니었다. 케네디, 그리고 나중엔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베트남전 개입을 확대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존슨의 신중한 죽마고우 샘 레이번 하원의장은 케네디 정부가 온통 하버드 출신자로 채워진다는 소식에 “그들 중 보안관 출마 경험자라도 있나 모르겠네”라고 중얼거렸다. 그가 서머스에 대해선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서머스는 16세에 매사추세츠공대에 입학하고 그 뒤 하버드대에서 28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종신 교수직에 임용됐다.
워싱턴에 발을 들여놓은 뒤 곧바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가장 신뢰하는 부하가 됐으며 나중엔 잠시나마 직접 재무장관을 맡기도 했다. 곧이어 5년간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했다. 서머스는 ‘1등 증후군’에 빠져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몰라줘 약간 상처받은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그는 듣는 척만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은 실제로 경청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루하거나 짜증난 듯 보이는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무례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서머스는 익살을 떨기도 하고 엉뚱한 매력도 있다. 하지만 무례한 면모도 엿보인다. 모두가 서머스와 관련된 일화를 갖고 있는 듯하다.
프린스턴대의 경제학자 앨런 블라인더는 90년대 서머스와 정면 충돌한 일들을 돌이켰다. “누구나 알듯이 서머스는 아주 똑똑하며 그것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고 클린턴 정부의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과 훗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부의장을 지낸 블라인더가 말했다. “초기에 우리는 클린턴 정부가 한국 같은 나라에 대해 대규모 자본 자유화를 추진해야 하는지를 놓고 아주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서머스가 이겼다). 나는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워싱턴을 떠난 뒤 하버드대 총장으로 일할 때도 서머스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교수진이 그의 독단적인 경영 스타일에 반기를 든 뒤 2006년 물러나야 했다. 일류 수학자와 과학자 중에 여성이 없는 건 타고난 남녀 간 성별 차이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 지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대학 총장으로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
사람들의 불평은 그의 태도에만 그치지 않는다. 1998년 3월 워싱턴 시내에 있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브룩슬리 본 위원장 사무실의 전화 벨이 울렸다. 서머스 재무부 부장관의 전화였다. CFTC의 목격자들에 따르면 서머스는 크고 거친 목소리로 그녀를 질타했다. “그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고 통화가 끝날 무렵 그녀의 사무실을 찾았던 마이클 그린버거 부위원장이 회상했다.
“위원장은 ‘래리 서머스 전화인데 나한테 마구 고함을 치네’라고 말했다.” 그 몇 주 전 본은 미국 금융당국이 방대한 글로벌 파생상품 시장의 규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안을 제출했었다. 서머스의 전화는 그녀의 겸허한 제안이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경제 엘리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첫 번째 신호였다.
루빈,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 서머스의 우려는 규제의 기미만 보여도 파생상품 거래가 모두 해외로 빠져나가 미국 시장이 타격을 입으리란 것이었다. 서머스는 건의안을 취소하라고 본을 거칠게 몰아세웠다고 그린버거가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 CFTC 관계자에 따르면 본은 “명목 가치가 수조 달러에 달하고 우리 모두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장에 관해 질문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서머스의 입장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본이 건의안을 제출할 당시 증권거래위원장이었던 아서 레빗은 자신과 루빈·그린스펀·서머스가 모두 파생상품에 관해 제대로 몰랐던 반면 그녀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인생의 모든 비극에는 미리 경고가 주어진다”고 레빗이 말했다. “브룩슬리 본이 그런 경고를 던졌지만 우리는 제대로 듣지 않았다”).
서머스는 뉴스위크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시 시스템 전반의 위험을 막기 위한 새로운 규제가 적절하며 필요하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지금은 훨씬 더 강해졌다. 그러나 CFTC가 제안한 방식은 비효과적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시장에 커다란 위험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는 루빈 장관, 그린스펀 의장, 레빗 위원장의 강력한 견해를 표현했을 뿐이다.” (당시 본의 건의안에 대한 루빈 재무장관의 반대 주장은 CFTC에는 그런 법적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볼 때 금융시장이 무너지기 전에 규제 강화가 필요했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인정하면서 서머스는 말을 이었다. “위기의 결과를 토대로 경제의 상당 부분에 대한 사고를 재정립해야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서머스는 집중적인 금융 규제의 옹호자로 탈바꿈했다.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가기 전 파이낸셜 타임스에 마지막으로 기고한 칼럼에서 서머스는 “지금은 정부의 역할을 강화해 시장의 과잉과 결함으로부터 시스템을 구제하는 쪽으로 중심추가 이동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요즘 서머스는 자신의 모든 무례한 행동도 과거지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이 “말랑말랑해졌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젊었을 때 사람들이 느꼈던 당돌함은 약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아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가 보다. 현안과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모두 불확실성이 커지는 탓도 있을 거다.”
오바마 정부에도 그의 말에 수긍하는 동료들이 몇몇 있다. “래리 서머스는 겸손하다고 할 만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고 경제자문위원회의 크리스티나 로머 위원장이 말했다. “그러나 말할 때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이라고 시작한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옛날의 서머스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상당히 좋은 변화다. 그의 경제관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려우니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오바마는 서머스의 오랜 습관을 곧잘 골려 준다고 로머가 귀띔했다. 자신의 주장에 다소 근거 없는 확실성을 부여하는 서머스의 버릇 말이다. “대통령이 정말로 서머스를 좋아한다는 게 확연히 눈에 띈다”고 로머가 말했다.
“그는 ‘83% 확신한다’는 식으로 자신의 전망에 확률을 붙이는 서머스의 습관을 두고 곧잘 농담을 한다. 대통령이 ‘확신한다는 게 83%요 82.5%요?’라고 말꼬리를 잡으면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말을 받는다. ‘서머스 식으로 말해 77% 확신합니다.’”
서머스는 그런 놀림을 웃어넘길 만한 여건이 된다. 대통령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보다 더 실질적이고(또는 적어도 더 설득력 있고) 큰 그림을 보는 경제 보좌관으로 널리 간주된다. 가이트너와는 친한 친구이자 테니스 파트너다. 설령 두 사람 사이에 마찰이 있다 해도 표면화하지는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서머스가 좌중을 압도한다는 세간의 평에 신경을 쓰는 듯하다. 그래서 현명하게 폴 볼커 전 FRB 의장 아래 별도의 자문 위원회를 설치했다. 볼커는 70년대와 80년대 초 가장 최근의 주요 경제위기를 해결했던 원로 경제인이다. 서머스는 볼커 위원회를 자문단으로는 환영하지만 그답게 얕보는 기색을 살짝 드러내며 그들이 정책을 수립하진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서머스가 정말로 변한 걸까? 클린턴 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셉 스티글리츠는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90년대 스티글리츠는 서머스와 몇 번 역사적인 대결을 펼쳤다. 스티글리츠는 전 세계의 자본 흐름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고자 했고 서머스는 주로 루빈-서머스-그린스펀의 자유시장 방식을 옹호하는 주장을 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주장은 무시한다”고 스티글리츠가 말했다. 스티글리츠는 메리 샤피로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이번 주 CFTC 위원장 인준을 기다리는 게리 겐슬러 같은 루빈의 옛 수하들이 오바마 정부를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90년대의 약한 규제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경제학자는 현 위기를 푸는 해법은 부실 은행의 국유화 등 정부 개입 확대라고 주장하지만 서머스는 과다 규제 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다. “그는 전형적인 시장주의자다. 나중엔 규제 완화 쪽으로 더 기울 것”이라고 그의 오랜 친구인 정치 컨설턴트 데이비드 거건이 말했다. “‘거듭난 서머스’가 ‘거듭난 닉슨’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머스가 정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조짐들이 보인다. 캐럴 브라우너는 클린턴 정부의 환경청장이었을 때 서머스와 충돌했다. 브라우너는 녹색 정책을 추진했고 서머스는 그런 정책들이 경제를 해친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브라우너가 이제 오바마 정부의 환경 수석보좌관이 되고 오바마가 친환경 노선을 분명히 하자 서머스는 그녀와 긴밀히 협력하며 지금까지는 사이 좋게 지내는 듯하다.
그리고 최근 몇 주 동안 경기부양책을 설명하러 의회를 찾았을 때도 정치인으로 완벽하게 변신해 상하원 의원들의 때로는 경제학적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을 참을성 있게 경청했다. “그가 정부 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접근하기 쉽다는 게 정말 놀랍다”고 맥스 바우커스 상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말했다.
“그는 상당한 인내심을 보이며 모든 질문에 일일이 답했다. 나는 그 모습에 감탄하며 아마 그는 내심 ‘언제나 여기에서 벗어날까’ 궁금해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민주당은 당내 경기부양책 설명회를 열고 서머스와 가이트너, 그리고 피터 오스잭 예산국장이 강연을 했다. 이 세미나에서 “서머스의 설명이 너무 간단 명료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안을 크게 덜었다’고 말했지만 특히 서머스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대체로 과거 전국 토론대회에서 우승할 때 자신이 불운한 적수들을 짓밟듯 내로라하는 의원들을 마구 몰아붙이던 꾀죄죄한 재무부 부장관 시절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그는 말하기보다 듣는 데 치중했으며 ‘나는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래리 서머스를 아는 사람이 볼 때 그것이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대변인 브렌던 데일리가 말했다. 2주 전 가이트너가 재무부의 은행 구제금융안을 내놓았을 때 월스트리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은행과 많은 보통 시민은 ‘알맹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많은 대형 은행이 지불 능력을 잃어 국유화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어서 가이트너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얼버무렸다는 추측이 만연했다. 서머스는 이를 부인한다. 정부가 아직도 은행에 대한 ‘부하(負荷) 테스트’를 통해 위기의 전모를 가늠하는 과정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오바마 경제팀이 시장의 기대에 좀 더 민감하게 대응할 수도 있었다는 주장을 반박하지는 않는다. ‘거듭난 서머스’답게 겸손한 모습이다. 서머스의 최대 과제는 의회를 설득해 ‘복지제도 개혁’, 다시 말해 사회보장 제도, 빈민·고령자 대상 건강보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세제 개혁을 지지하도록 하는 일이다.
뉴스위크와 한 인터뷰에서 서머스는 대통령과 의회에 압박을 가해 정치인들이 오랫동안 발을 들여놓기 두려워하던 영역, 이른바 제3 궤도(지하철의 전력공급용 궤도로 전기가 흘러 위험하다)로 유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는 말한다. 미국이 지출과 부채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금리가 치솟아 경제가 또다시 추락한다는 말이다.
서머스는 상황이 변하면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케인스의 주장을 빌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할 때 케인스 또는 ‘거듭난 서머스’가 아직도 때때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좀 더 겸손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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