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대원이‘특수한’ 까닭
특전대원이‘특수한’ 까닭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스트레스를 더 잘 이겨낸다. 그 원인을 실험실에서 규명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실제 생활과 똑같은 스트레스와 긴장을 만들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사람들에게 끔찍한 사진이나 공포 영화를 보여줘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한 뒤 이를 회복하는 과정을 측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뒷골목에서 강도를 만나거나 산속에서 회색곰을 만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예일대 의과대학의 앤디 모건 박사는 실험실처럼 적절히 통제된 실생활 환경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관찰할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노스캐롤라이나주 동남부 포트 브래그에 있는 정예 공수특전대 기지를 선택했다.
미 육군의 유명한 생존훈련학교 캠프 매콜이 있는 곳이다. 이곳의 교관들은 이른바 ‘스트레스 면역 훈련(Stress Inoculation Training·SIT)’의 효과를 믿는다. 극소량의 바이러스를 인체에 접종해 면역력을 키우듯, 낮은 수준의 스트레스에 적응시켜 더 큰 스트레스를 견뎌내도록 한다는 원리다.
더 많은 충격을 받을수록 견뎌내는 힘이 더 강해진다는 전형적인 심리 조절이다. 캠프 매콜 교육학교에서 19일간의 훈련 기간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한 비밀 장소에서 실시하는 훈련이다. ‘저항 훈련 실험실’로 불리는 이 장소에는 모의 전쟁포로(POW) 수용소가 있고 훈련생들은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을 실습한다.
경비탑, 철조망, 콘크리트 감방, 철제 우리 등 모든 시설은 적군 POW 수용소와 똑같이 지어졌다. 십자가 묘비를 세운 가짜 무덤들도 있어 을씨년스럽다. 알카에다의 고문실이나 베트남전 당시의 하노이 힐튼 호텔 같은 지구상의 지옥을 모방한 시설이다. 대변을 보려면 제3세계의 일부 지역처럼 땅에 파놓은 구멍에 해야 한다.
이 캠프는 외부인들에겐 출입 금지 구역이다. 가시 철조망 너머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는 엄격한 기밀 사항이다.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던 몇 사람의 얘기에 따르면, 고도로 숙달된 교관들이 간수와 심문자 역할을 한다. ‘죄수들’은 정교한 훈련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극도의 혼란을 겪고 파김치가 된다.
교관들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수면 박탈, 굉음, 굶기기 등으로 훈련생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에서 적군이 사용한 기법으로 심문하기도 한다. 교관들은 고문은 없다고 말하지만, 훈련생들을 매우 난폭하게 다룬다고 알려졌다. 심각한 스트레스를 가장 잘 견뎌내는 사람을 연구하려는 모건 박사에게 POW 학교는 최적의 장소다.
그저 훈련일 뿐이고, 병사들도 자신이 정말로 위험한 지경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건 박사가 발견한 사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모의 심문을 받는 동안 죄수들의 심장 박동수는 급격히 늘어나 1분당 170회를 넘는 상태가 30여 분간 지속됐다.
신체 활동이 없는 상황인데도 그랬다. 또 그들의 체내에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량이 급증했다. 그들의 호르몬 분비량은 항공모함에 착륙하는 전투기 조종사, 베트남전 때 매복 공격에 나섰던 병사들, 고공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다이버, 혹은 큰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 등에게서 측정된 호르몬 양보다도 많았다.
이런 수준의 스트레스 호르몬은 면역 체계를 무력화하고 이화(異化)작용 상태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이화작용이란 몸의 일부가 분해되고 배출되는 현상이다. 훈련병의 체중은 3일 만에 평균 10㎏이나 빠진다. 모건이 처음 실시한 이 연구에서 심문에 가장 잘 버텨내고 공포감 속에서도 집중력과 판단력을 유지하는 사람에 대해 몇몇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모건은 두 부류의 훈련병 집단을 비교 관찰했다. 일반 육군 보병 집단과 정예 특전대원 집단이었다. 일반적으로 후자는 특히 스트레스에 잘 견디고 압박감 속에서도 냉정을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처음엔 두 집단이 기본적으로 같은 상태지만, 일단 스트레스가 시작되고 나면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두뇌에서 분비되는 ‘신경 펩티드 Y’(NPY)라는 화학물질의 양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NPY는 체내에 풍부한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혈압·식욕·학습·기억 등을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 또 천연적인 진정제로 불안감을 억제하고 노레페네프린(흔히 아드레날린으로 불린다)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효과를 약화시킨다.
본질적으로 NPY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전두엽이 더 오랫동안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해 불안·공포를 누그러뜨린다. 모건은 특전대원들이 뛰어난 생존력을 보이는 한 가지 특별한 이유를 발견했다. 그들은 일반 보병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NPY를 생성했다. 게다가 생존 훈련을 끝내고 24시간이 지난 뒤, 특전대원의 NPY는 본래의 수준으로 돌아왔지만, 일반 보병은 평소보다 상당히 낮았다.
두뇌 속에 NPY가 훨씬 많은 특전대원들은 심문 스트레스에도 판단력을 더 잘 유지하고 교관의 지시 사항을 더 잘 수행했다. 일반 군인과는 달리 특전대원들은 정말로 ‘특수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위기 상황에서도 정신을 집중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상황 종료 후에 복원되는 속도가 빨랐다.
불안감을 진정시키는 화학물질들의 분비량이 엄청나게 많은 덕분이다. 이런 특성은 전쟁터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매우 유리하다. 플로리다주 파나마 시티에 있는 해군 잠수·구조 훈련센터의 교관들은 극도로 위험한 수중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낼 사람을 신속히 찾아낸다. 교관들은 먼저 젊은 수병들의 양손을 등 뒤로 묶고 두 다리도 한데 묶는다.
그런 다음 수병들의 위·아래 치아 사이에 잠수용 마스크의 끈으로 재갈을 물리고는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에 던져 넣는다. 살아남으려면 수면으로 떠올라 숨을 쉬어야 한다. 모건은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몸부림을 칠수록 공기를 들이마시기가 더 어려워지고 더 빨리 지친다. 숨을 쉬려는 필사적이고 강한 본능과 공포를 억눌러야 한다.”
모건은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그 역시 수병들이 겪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팔다리가 묶인 채 수영장 속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대다수 훈련생은 익사하지 않는 방법을 빨리 터득한다. 긴장을 풀고 수영장의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다음, 바닥을 힘껏 발로 차서 수면으로 떠올라 악물린 치아 사이로 약간의 공기를 헐떡거리며 들이마신다.
그런 다음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아 앞의 동작을 반복하면 된다. 이 훈련 과정에서 많은 수병이 기절한다. 충분한 산소를 마시지 못해 의식을 잃기 때문이다. 그들 중 다수는 혼절한 채 물속에 가라앉았고, 그래서 조교들이 들어가 건져내야 했다. 기절한 수병이 의식을 되찾으면, 교관은 “포기하겠나?”라고 거듭 소리쳐 묻는다.
30초 안에 대답하지 않으면 훈련 과정에서 쫓겨난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대답한 수병에겐 30초 동안 쉴 시간을 준 뒤, 다시 물속에 던져 넣는다. 사디즘적인 훈련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해군 당국은 극도로 위험한 임무에서 살아남는 군인과 그러지 못할 군인을 가려낼 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호흡의 필요성을 억누르며, 뭔가 잘못될 경우엔 구조되리라 확신하고, 명령에 따르다가 의식을 잃을(심지어 죽을) 준비가 돼 있는 병사를 이런 혹독한 훈련을 통해 찾아낸다.
또 다른 고된 테스트에서 수병들은 밤에 멕시코만 연안에서 약 5㎞ 떨어진 바닷물에 떨궈진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바닷가의 특정 지점까지의 잠입이다. 물속에서만 이동해야 하며,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진 수면으로 올라가선 안 된다. 제한된 시간이 있고, 수심 8m 이내에서만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훨씬 가중된다.
바닷물의 흐름이나 조류에도 불구하고 목표 지점을 찾는다고 해변과 평행하게 수영하는 방법도 금지됐다. 이런 규칙들 중 어느 하나라도 위반하면 즉각 쫓겨난다. 속도, 효율성, 정확성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수영장 훈련과 수중 이동 테스트에서도 모건 박사는 병사들의 두뇌 화학작용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NPY 분비량과 성공 사이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었다. 즉 분비량이 많을수록 성공 확률도 높았다. 수중 이동 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수병은 DHEA라는 천연 스테로이드를 많이 분비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DHEA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의 효과를 완화하고, 두뇌 해마상 융기의 공간 지각 능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킨다.
훈련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한 수병들은 NPY와 DHEA의 분비량이 가장 많았다. POW 캠프와 잠수 훈련 학교에서 모건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하고 살아남는 병사들을 미리 확인하는 간단하고 정확한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심박수 변이도(heart rate variability·HRV)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생존력이 가장 뛰어난 병사들은 HRV가 높지 않다. 그들은 ‘메트로놈 같은 심장 박동수’를 보였다. 심작 박동이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속도로 규칙적으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모건은 규칙적인 심박수야말로 생존력이 우수하고 NPY를 많이 분비하는 병사를 미리 찾아내는 쉬운 방법이라고 믿는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일리 있는 생각이다.
심장 박동을 관장하는 뇌간에는 NPY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모건은 병사들이 고된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심박수를 분석했다. 규칙적인 심박수를 가진 병사들은 예상대로 생존 훈련 학교와 수중 이동 테스트에서 최우수 성적을 거뒀다. 이들은 접근전 훈련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모건은 그들이 모의 전투에 들어가기 직전에 심박수를 측정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그들은 건물 안으로 달려가 적군을 ‘사살하고’ 인질을 구출한다(이들이 사용하는 탄환은 맞을 경우 통증을 주지만 진짜 상처를 입히진 않는 가짜 탄환이다). 모건의 설명에 따르면, 규칙적인 심박수를 지닌 병사들은 적군을 더 많이 사살했고, 실수로 인질을 사살하는 경우는 더 적었다.
공교롭게도 규칙적인 심박수는 심장병 초기 환자나 돌연사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모건은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에서 생존력을 강화하는 규칙적인 심박수가 나이 50세에는 심장 건강을 보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규칙적인 심박수가 아니라면 정예 병사들이 혹독한 훈련을 그토록 잘 해내기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필자는 언론인이자 저술가로 TheSurvivorsClub.org.를 운영한다. 최근 ‘생존자 클럽(The Survivors Club: The Secrets and Science That Could Save Your Life)’이란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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